25. 용기로 읽히는 마음
어쩌면 만용이었을 거야. 대학원까지 나오고 별볼 일 없는 강사와 조교, 학원강사를 하거나 번역 나부랭이를 하다가 수녀원을 간 것도, 거기서 나와 농촌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농촌 총각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것도, 모두 다. 종횡무진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버린 거야.
한가을 작가의 글을 읽다 아들러 인용구를 발견한다. ‘남에게 인정받기보다 나 자신을 수용하는 용기’를. 용기와 만용의 차이를 찾아본다.
만(蠻)족이라는 건 주로 중국 국경 밖 이민족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고 자기 권내와는 다른, 수용하고 싶지 않은 이질적인 걸 대할 때 쉽게 가져다 쓰는 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주민이나 귀농귀촌인이란 말, 지방 사람이란 말에도 그 배타성과 얕잡아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구별 짓는 데 쓰이는 말이고, 자기를 높이기 위한 자만심이 숨겨 있는 말이다. 것도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한국인이란 말도 예전엔 동률 선상에서 얕잡아 보이는 대명사였다. 지금은 한류열풍 덕에 세계에 나아갔을 때 달라진 위상을 체감하는데, 그걸 보면 관계는 변한다, 변하고야 만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또 여전히 변하지 않아 편견으로 우선 작동하는 것도 있다. 변하고 싶어 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속에, 구별은 어떤 형식으로든 똬리를 틀고 생존하고 있으리라.
그래서 만용과 용기. 어떻다고?
추억과 기억 속에 많은 게 비틀어진 프리즘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제 절친과 통화를 하다 공통적으로 확인한(말로 하진 않았지만) 사실 하나, 우리는 흙수저라는 거. 이것도 역시 경계를 아프게 구별하는 단어이다. 학교 동기 중 하나, 시니컬하던 아이는 소위 금수저였었나 보다. 웃기는 말을 툭툭 던지긴 했지만, 아마도 근본적으로 세상 아쉬울 것 없는 그런 태생. 호주머니 속 용돈이 달랑달랑하던 우리완 다른 세상을 살았을 테고 아쉬움이 많았던 우리에게 그는 부러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제쳐놓고 싶어 하는 대상이었다. 마음속으로 제쳐놨다고 감옥에 가는 것도 아니므로 안심하고 그럴 수 있었고 경계가 선명하니 안 어울리면 그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만약 당신을 궁금해한다면...?
왜? 내가 관심의 표적이 되었을까?
나는 그냥 내가 원하는 삶을 내 안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시골로 갔고 거기서 지극히 평범하게(시골에도 시골 부르주아가 있게 마련이지만) 결혼해서 살고 있을 뿐이건만... 가끔 본의 아니게 그런 뜬금없는 관심의 대상이 될 때 되묻게 된다. 평범이란 무엇인가, 나를 움직였던 힘은 만용일까 용기일까 하고.
누구나 묻고 물으며 길을 나선다. 대충 묻다가 결혼(혹은 취업, 또 다른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 후)과 더불어 질문을 파묻어 버리고 살게 될 때 삶은 여전히 계속되지만 방향을 잃을 수 있는 거 아닐까? 내게는 방향키 흔들리는 거센 바람이 많았고 그때마다 질문은 낡았다가 다시 새로운 얼굴을 하고 찾아오곤 했다.
시골에서 살면서 몸으로 때우는 일에 지쳐 아쉬웠던 글쓰기 시간, 구름 올려다보며 걷고 사색할 시간, 책 읽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빼고는 대체로 다 좋았다. 하긴 짬짬이 주어진 그 시간이 갈증 덕분에 더 소중하기도 했으니 그것마저 나쁘지 않았네.
산책을 나가려 할 때, 운동을 하러 나가기 전, 내 마음이 뭉쳐 펴지지 않는 건 사실 귀찮음이다. 잠시 생각을 접고 몸을 일으키기만 하면 되는 그 짧은 사이, 시간의 목줄만 잡아채면 되는데, 그 몸을 일으키는 동력은 뭘까? 빠르게 정답부터 내려보자면,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나를 돌보고 아끼는 마음 아닐까? 길든 짧든 내 방식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세우며 ‘끙차’하는 자기를 견인하는 마음이 용기, 혹은 관점에 따라 만용 아닐까? 남들이 손가락질한다고 내가 용기라 발심했건만 만용이라 평가받는다고 해도, 뭐, 어때? 어깨 한 번 으쓱하면 그만 아닌가? 그게 죽도록 창피한 일일까?
엄마가 그토록 격렬하게 반대했던 수녀원은 전에 난지도에서 쓰레기도 줍고 공장 다니고 농사일하고 허드렛일 하는 바람에 엄마 표현으로 ‘핫바리 수녀원’으로 불렸지만 나는 정작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곳에서 인생을 새로 보고 질문하고 부대끼며 알아갈 시간을 겪었다. 사람을 핫바리로 보는 시선이 웃기는 거지 하고 되 웃어주면 그뿐이었고 시골행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할 거 없는 이력의 사내와 결혼한 것도 마찬가지였고. 삶 구석구석에 보석처럼 박혀 빛나는 걸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겉바속촉 아닌, 겉촉속바까지 짐작해 아파할 일인가? 그냥 애도하고 말 일이다. 그 죽은 시선에 애도를 표하자. 경계에 서 보면 경계를 넘나드는 건 일도 아니나, 이건 경계를 넘어본 사람에게만 그렇다.
용기를 만용이라고 일컫는다면, 역사를 뚫고 나간 수많은 이들이 남기고 만들어 온 새로운 역사는 없지 않았을까? 멀리 가지 않아도 브런치에서만도 내가 놀랍게 바라보고 가슴 깊이 공감하게 되는 이들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끊임 없이 자기 삶을 역성(易姓)에 가깝게 용기 내어 한 발 디딘 이들이다. 남이 보기에 미친 짓일 수 있지만, 어때?
중국이란 커다란 땅덩이도 우리나라에선 오랑캐로 부르기도 한 만족의 집합체로 볼 수 있지 않던가? 수많은 종교들이 가톨릭, 불교, 기독교 외엔 이단 취급 받는 것처럼. 오랑캐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고 심지어 내 마음속에도 충분히 있다. 그 오랑캐 마음을 내어 용기로 만드는 데에는 오랑캐 만(蠻),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많은 입이 벌레 취급했던 마음을 뒤집어 보기만 하면 된다. 한 관점을 내던지는 마음이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러기에 용기는 만용을 거스르는 다른 기운을 내어야 완성이 되는 것이고 만용을 뒤집을 힘이 필요하다. 책임이 따르는 일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재밌지 아니한가? 만용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용기가 되는 이야기.
겨울, 조용히 엎디어 마음속 지도를 뒤져 자기 안에 끓고 있는 용광로가 어디로 튈지 길을 묻고 흔들려보는 건 어떨까? 지나온 나의 만용이라는 지도 위에 굵고 붉은 색연필로 용기라고 밑줄 그어 써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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