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

26. 나이가 대수냐고?

by 조유상

올해 공식 노인(老人)이 된 나. 내가 잘 아는 임락경 목사님은 유사명함을 가지고 다니셨다. 명함이라 하기엔 좀 거시기한 게, ‘No人 임락경’이라고 적고 연락처를 넣어 A4용지에 여러 개 복사해 조그맣게 잘라 명함보단 작고 옛날에 버스 탈 때 한 장씩 내던 회수권보다는 좀 크게 만든 종이쪼가리. 그걸 몇 장씩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고 다니시다 아픈 사람들이 연락처를 달라 하면 한 장씩 빼주곤 하셨다. 그걸 보고 “‘이제는 사람이 아니므니다’ 시군요?” 하며 킥킥 웃곤 했는데, 이제 내가 ‘사람이 아니므니다’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백세 시대에 아직 한창이라고들 말하지만 백 세는 생각만 해도 참, 지루해서 무섭다. (이러다 정말 백 세까지 가면 어쩌지? 흡! 입을 두 손으로 가리게 된다. 말이 씨가 된다는데...)


올 1월 초에 제주 교래자연휴양림을 간 적이 있다. 물론 혼자. 입구에서 카드 결제를 하려는데 기계음처럼 국가유공자니 뭐 기타 등등 할인에 해당하는 경우의 수를 읊어준다. 열심히 내 삶을 살아온 것만으로도 국가 유공자긴 하지만, 그놈의 ‘쯩’은 따로 없다. 그중 해당 사항이 있느냐고 묻는데, ‘음... 혹시 경로?’하니까 신분증을 달란다. 신분증을 내니까 그냥 들어가란다. 응? 뭐지? 아직 다섯 달은 있어야 생일이 지나는데 싶어 근무 태만이신 거 아닌지 다시 확인할까 하다 아, 여기는 생년만 맞으면 통과시키나 보다 하고 1000원 한 장도 안 받고 들여보내 주는 걸 넙죽 받았다. 그러자 날개라도 달린 듯 갑자기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워졌다. 그 천 원은 예사 천 원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내 나이 먹어봤냐? 이런 기분이었다. 하루하루가 쌓여 한 달, 두 달, 그놈들이 쌓여 일 년 이 년 십 년이 되어가는데, 거저 살아진 날은 얼마나 되려나? 매일 살기 위해 꼼지락거린 날수는 젊은이들이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훈장처럼 느껴진다. 나잇살은 결코 거저먹어지지 않는다.


다들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하지만 제주에 있을 때 나는 빨리 나이 들고 싶어 머리도 하얗게 탈색해 버렸었다. 탈색하면 머리가 하얗게 되는 줄 알고 했더니 아니었다. 검은 머리는 노르스름해지고 그 와중에도 자라기는 왜 그리 잘 자라는지. 누가 야한 생각 많이 하면 머리칼이 빨리 자란다는데 나보고 그런 거 아니냐고 농담하더라만, 야한 생각을 해 본들 이 나이에 뭐 하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잘만 자라는 머리칼은 다시 한번 커트를 해서 노르스름했던 게 조금 남았다. 앞머리는 허연 편인데 뒷머리는 아직도 앞머리와 달리 검은 머리가 더 많은가 보다. 뒤를 봐주는^^ 친구들 말에 의하면.

제주시에 살면서 한 번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바로 근처 미용실하는 분을 만났다. 안면은 없으나 양손에 가득 든 쓰레기를 보며 모른 척하기가 어색해 하나 들어드릴까 물었는데 괜찮다 했다.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물어봤는데도 여전히 양손을 추스르며 또 괜찮다고 하는 게 아닌가. 더 이상 말 걸기도 뭣해 그냥 나는 가벼운 쓰레기만 버리고 돌아왔다. 나중에 이 장면이 다시 떠올라 혼자 푹하고 웃고 말았다. 나는 나이에 비해 발걸음이 성큼성큼 가벼운 편이고 따로 정기적으로 먹는 약이 아직까지는 하나도 없는 나, 하지만 머리칼! 그놈의 머리칼이 허연 할매가 40대로 보이는 젊은이한테 도와준다고 말을 건넸으니. 더군다나 미용실을 하는 젊은이는 얼핏 본 내 머리칼 색으로 나이를 점쳤을 텐데, 난 뭔 짓을 한 것인가! 이그 이그 나잇값도 못하고 서리, 뒤늦게 혼자 웃으며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이젠 절대로 도와준다고 나서질 말아야겠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두어 해 끊었던 염색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이번에 큰딸을 여위는 작은 오빠를 보니 그새 안 하던 염색을 갈색으로 해서 오빠랑 나를 사진 찍어주던 아들들은 내가 누님 같다며 놀리기도 했다. 흰머리가 잘 어울리던 오빠의 변신이 나는 영 못마땅할뿐더러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이제 세월을 굳이 머리칼에 잡아 묶어두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얼굴의 주름과 주근깨 기미만큼, 이 머리칼이 참 마음에 든다. 남편은 나더러 숱이 많다고 숱을 치라는데 숱을 치라는 건지 짧게 자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이 나이에 숱을 치면 어쩌라고요? 어렸을 적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끔 뒤돌아보며 아이구 머리칼이 삼단 같다며 부러움 섞인 말을 하며 심지어 손으로 훑곤 했지만, 나이가 들어 무겁던 머리칼 숱이 제법 줄었고 돼지털 같은 굵기와 뻣뻣함도 성질만큼이나 죽어버렸다. 그래도 이 정도 숱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뭘 알고서 말을 하는 건지 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세월을 얼굴과 피부에서, 걸음걸이와 머리칼, 생각의 회전이나 두름성, 멀티에서 단순으로, 그것은 구석구석 느껴지고야 만다.

약을 꾸준히 먹는 게 없다고 자랑삼아 말하던 나. 홍성 집에 오자마자 임시로 오신 의료생협 선생님을 만나 뵙기도 할 겸 가서 말하다가 나의 왼쪽 다리 저림을 이야기했다. 원인으로는 짧은 다리로 10여 년 넘게 트럭 운전하면서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잡느라 애쓰던 게 아닐까 말했더니 맞다고 하신다. 굳이 다리를 잘 꼬는 편도 아니고 몸살림운동을 꾸준히 해 왔음에도 그런 걸 보면. 당신도 몸살림운동 1기 생이라 같이 했던 나의 작은 오빠를 잘 기억하고 계셔서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고관절을 바로 잡는 운동과 병행해 마그네슘을 먹어보는 게 어떨까 여쭤보니 좋다고 하셨다. 10일 치를 처방받고 계속 먹어도 좋은 산화마그네슘이 아닌 약처방을 받고 왔다. 이제 꾸준히 먹을 약이 생긴 셈이다. 나이가 들면 진 데는 말라지고 마른 데는 질어진다던 엄마 말이 생각난다. 게다가 약봉지만 는다더니 나도 그 길에 발을 슬쩍 들였구나. 딱히 서글프진 않았지만 묘한 기분마저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다.


동네 친구 4인 방을 만나 이야기를 한참 하다 걷기를 거의 10여 년째 계속해 오는 언니가 말했다. 우리가 늘 대단하다고 말해왔었는데, ‘대단하기는 뭘, 그냥 눈뜨면 생각을 접고 무조건 나서야 된다’고 했던 언니, 무릎도 시원찮았고 다리 힘이 없었는데 꾸준히 걸으니 낫더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놈의 꾸준히’가 안 되는 우리는 못 쫓아가는 근력과 지구력이었다. 그러던 언니 입에서, “아유, 이젠 정말 어떤 때는 나가는 것도 싫고 꼼짝하기도 싫어. 그냥 집에서 침대에 누워 TV나 보면서 놀고 싶지” 그랬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리 모두 빵 터졌고, 나는 언니가 다시 보였다. 그렇구나.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언니야말로 우리(나이가 대여섯 살까지 차이가 남) 중에 제일 오래 정정하게 살 거야’라고 말해왔는데, 언니가 철인은 아니었던 거였다. 꾀나고 귀찮은 마음을 떨구며 일어나 걸었을 뿐이라는 걸 안 순간, 왜 그리 위안이 되던지. 반찬도 만들기 싫고 삼식이는 더 싫은 나이. 꾸역꾸역 해 오던 것들을 내버리고 싶은 나이, ‘마음대로 살 거야, 맘껏 망가질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 봤자 금방 몸을 저격해 들어올 것에 저항할 근력이 더 이상 없어진 나이. 35,6년 동안 시부모를 모시던 친구들은 이제 지난달로 그 시어머니들 마저 흙으로 보내드리고 홀가분해졌지만 그새 모두 환갑이라는 허들을 훌훌 넘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폴싹 재가 되어 사그라져 버린 시간 속에 여기저기 아픈 나이가 되어버린 우리만 시간의 째깍임 앞에 놓여 있다.


이제,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나이가 대수냐고 하던 시절은 갔다.


나이, 그놈이 대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