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

24. 두 가지 불편

by 조유상

파스 붙일 때와 뒤 지퍼 올릴 때



내가 친한 친구 중엔 혼자인 경우가 몇 있다.

홍동 동네 친구들 중엔 거의 다가 부부인데. 희한한 생각이 든다. 내 몸은 부부의 삶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 정신은 혼자인 삶을 유영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현재 부부지만 돌싱이었다가 재혼한 경우도 더러 있다. 동네 친구들은 토박이들이 대개고 미우니 고우니 토닥이고 삐지고 깔깔대다 다투고 갈라졌다가도 눈 흘기며 밥 먹다가 맛있다며 화해하기도 하면서 탄력적으로 '그래도 다시' 자기 집, 자기 배우자와의 삶으로 돌아선다. 죽을 때까지 다 이해할 수도 다 인정할 수도 없는 걸 불 보듯 뻔히 알면서도 때론 마지못해, 때론 바닷가 작은 실게들이 우리 발소리에 놀라 후다닥 집을 찾아 숨듯이 관성인양 집으로 돌아간다. 한숨은 후렴처럼 뱉다가 돌아갈 땐 미련 없이 둘의 세계로 들어선다. 놀랍지만 나도 그렇다.



어렸을 때는 부모 그늘 아래 살아오다 어느덧 독립, 그러다 뜨거운 둘이 되고 둘이 셋, 넷으로 불었다 다시 둘만 남게 되고, 정신 차리고 보면 문득 혼자가 되고 그 혼자는 재처럼 사라지고 마는 인생.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참 적적하네. 삶이 때론 지루하게 느리게 흐르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먼저 흙으로 돌아간 이들을 생각하면 또 따뜻한 햇살에 방울방울 녹아버리는 고드름처럼 짧기도 하다.


일 년 살이 중 병원을 내가 아파 간 거로는 지난 금요일 제주에 와서 처음이었다. 그새 외국 여행도 친구들과 한 번, 동네 친구 부부들과 한 번, 그렇게 두 번을 다녀온 사이, 약 한 번 먹지 않고 일 년 잘 버텼는데... 겪어보진 않았지만 제대말년 병장 같은 제주살이 말기 증세 탓일까. 잠깐 사이 균형을 잃었다. 늦게 자고 거실 소파에서 차게 누워 있었다. 마스크를 꼈지만 찬바람에 숲을 걸었다.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면서 휘청, 일상이 접질렸다.


보통 내 몸의 감기는 목부터 시작해 몸살을 앓다가 코감기로 넘어가면 끝을 알리는구나 짐작해 왔다. 이번에는 심하진 않지만 목이 붓는 게 느껴졌고 컬컬해져 왔다. 보통 초기대응을 잘하는 편이라 무사히 넘겨왔건만 잠깐 방심했다. 한 이틀 그런 상태일 때 따뜻한 물과 소금을 먹고 감기 기운이 오는 초기에 하는 나만의 처방법을 썼다. 코 양옆을 손가락 날로 문지르기, 귓불 뒤 오목한 부분을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쳐올리기, 등 쪽 목뼈 아래와 배를 뜨거운 물주머니로 지지기, 발 따뜻하게 하기 등등. 아직도 미열이 살짝 남아있다.



보통 주말이나 명절 앞둔 시점에 아팠던 걸 기억하고는 지난 토요일, 아무래도 오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 딸내미가 근무한다는 근처 한마음병원을 다녀왔다. 딸내미는 주말이라 출근 안 한 듯했고, 의사는 생각보다 친절했다. 항생제 처방을 원하지 않는 내게 항생제가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인 것 같다며 약에 대해서도 간략하나 자세히 알려주었다. 따뜻한 처방에 마음이 먼저 가뜬해진 기분이었다. 그 길로 농협마트에 가서 보리차와 계피를 사 와 생강가루를 넣고 차를 끓여 마셨고 한 수저 남았던 녹두로 녹두죽도 쑤었다. 해독이 필요한 시간인지라. 혼자 가만한 시간을 견딘다. 글쓰기에는 아프다는 아무 흔적 없이 그대로 써 올렸는데, 어제는 남의 글을 읽다 보니 내 글을 미처 올리지 못했다. 그래, 놓칠 수도 있지, 뭐. 맘껏 관대해져 본다. 괜찮아, 누가 목매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걸. 그냥 나와의 약속이었을 뿐이니 잠시 한눈판 나를 혼자 쓱쓱 쓰다듬는다.


처음으로, (아니 처음은 아닐지도 몰라. 허리와 다리가 좀 아팠던 남편을 두고 왔으니-이젠 괜찮단다, 진짜 괜찮나? 걱정할까 봐 말 않고 있는 건 아닐까?) 처음인 듯, 남편은 나 없는 한 해를 아픈 적 없이 잘 견뎠는지 궁금하다. 가끔 전화하면서도 아픈 데는 없어?라고 묻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나? 무심한 아내...


혼자 있다는 건, 삶을 무너뜨리기로 작정하지 않는 한, 자기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한다는 게 선택이 아닌 강박적 필수과목이다. 혼자인 친구들은 이 과목에 빠삭하다. 웬만한 부탁은 잘 하려 하지 않고 엄살은 뒷북으로나 부린다. 혼자 있어 보니 뼈저리게까지는 아니어도(혼자인 친구들에게 백퍼 공감한다고 말하면 웃을 테니까) 근사치로는 느껴진다. 혼자인 감각이라는 게 어떤 건지 곰곰이 머물게 된다. 나는 친구들이 혼자인 걸 아니까 일부러 오늘 입에 곰팡이는 안 슬었나 어쩌다 실없는 안부전화를 하곤 했다. 부탁이 일상이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스스로를 챙기게 되는 그들의 모습 속에, 어쩌면 알 수 없는 내 미래도 들어 있다.


한 친구가 등 쪽이 아파 파스를 붙이려는데 손이 도저히 닿질 않아 파스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붙여보려 애쓰다가 몇 장을 망치고 결국은 방바닥에 놓고 눈대중으로 조준해 가며 붙여보기도 했다는 말을 들으며 그 그림을 상상하며 함께 웃다가 결국 찔끔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또 한 친구는 원피스가 이뻐서 샀는데 문제는 손이 안 닿아 지퍼를 끝까지 다 올리지 못하고 외출했었더라는 말을 했다. 곁 손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일 초면 됐을 일을... 이것도 코끝이 찡하고 서글픈 말이긴 마찬가지였다.



혼자 사는 친구들이 겪었다는 두 가지 불편을 들으며 ‘불편’으로 대변되는 혼자만의 외로움이 설움으로 다가가지 않기를 바란다. 둘이 살아도 헤아릴 길 없이 외로웠던, 어쩌면 더 외로웠을지 모를 시간 속을 징검징검 디디며 걸어왔으니까. 이제 외로움이 아니라 아프게, 어쩔 수 없이 시작했으나 현재는 고독을 즐기는 친구들 선택을 바라보며 그 선택 앞에 외줄을 타며 망설망설 아슬아슬해지는 나를 바라본다. 나만의 공간을 바라는 내 마음은 그에게 선언이나 벽처럼 차폐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쩌면, 오래 함께 살기 위한 보험 같은 게 아닐까...


혼자인 게 좋다. 둘이 싫다는 뜻이 아니다. 역시 나무랄 데 없는 공간에 자기만의 삶의 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침대 같은 지지대, 세상이 무너져 내려도(아니야, 그럼 안 되지) 오롯한 혼자만의 방. 그것이 고픈 사람들이 있고 그것이 좋을 뿐만 아니라 옵션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 ‘같이’의 가치를 퍽이나 좋아하지만 오래 같이는 힘든 종류의 사람, 내 안에 그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돌아갈 집이 나를 포근히 품어줄 집인지, 의무로 뭉쳐진 달팽이집일지 의심한다. 이제, ‘따로 또 같이’가 좋아지는 인생 저물녘, 자신만의 시간 앞에서 묻고 또 묻는다. 나는 나를 노크하고 내 안의 나를 자주 들여다보며 여전히 궁금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