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설 쇠러 집에 와서
참 오랜만인 기분으로 설날을 한주 앞둔 11일, 집을 향했다. 사실 추석 때도 왔었고 김장하러 12월 초에도 왔으니 제법 왔었는데도 마음의 거리 때문이었으려나? 집으로 향하는 마음속에 설렘이나 기대가 섞여 있진 않았다. 익숙한 느낌과 담담함이 대신 자리한 채 광주 공항에 내리자 제주 따스운 햇살과는 다른 찬바람이 볼을 어루만진다.
어딜 떠날 때 미리 예측하고 시간을 잡긴 해도 아주 넉넉하고 여유 있게 다니지 않는 나, 그날도 달달거렸다. 카카오택시를 불러 공항 가는데 집 앞 일방통행로를 큰 쓰레기 수거하는 차가 택시를 막았고 천천히 수거할 거 다 하고 움직였다. 그때만 해도 여유가 있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 노트북이 들어 있는 캐리어를 화물로 보낼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부치고 가벼운 등가방만 메고 타자 하고 화물 부치는 줄에 섰다. 줄은 제법 길었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가 컨베이어벨트에 가방을 올려놓으니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화물은 마감처리가 끝났단다. 마침 10킬로가 안 되니(9.5킬로) 빨리 들고 비행기 타러 달려가란다. 아이코, 판단 착오, 그냥 들고 탈 걸하는 후회는 이미 뒤늦었다. 숨이 턱에 차서 딱 죽을 만큼 헉헉대며 도착한 8번 홈. 막 줄을 띄워 탑승을 마감하는데, 숨넘어가는 말을 하니 줄을 열어주며 얼른 뛰어가란다. 흐미, 또 뛰어야 한다. 2층에서 아래 계단으로 달려 내려가자 나 하나만을 위해 셔틀이 마지막 운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비행기를 기적처럼 타고 캐리어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털썩 앉고 보니 이마와 목, 등허리에 땀이 주르륵 흐른다. 양쪽 팔 알통이 뻐근하다. 그날부터 집에 와서까지 3일간 우리하게 아팠으니, 늦장 부린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막내가 표를 끊어줬기 때문에 막내가 내 대신 탑승 안내 전화를 받고 카톡을 했는데 내가 움직이는 중이라 안 받으니 전화를 했었다. 마침 짐이 세관 통관할 때라 전화기마저 레이저를 통과하느라 못 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발을 굴렀나 보다. 이 사건을 두고 집에 와 이야기하다 장난기 많은 큰아들이 나를 맘껏 놀려댔다. 이제부터 엄마의 느긋함에다 “유상~~ 하다”라고 말하자고. 우리 집안 형용사 하나가 새로 생긴 순간이다. 저번에도 광주역에서 국수 먹다 시간을 착각해 비행기 놓치는 통에 비행기표를 부랴부랴 새로 바꿔 탄 전적이 있던 나는 아들들 놀림이 민망했지만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만 부끄러워 얼굴 빨개지고 다른 식구들은 신났다. 고것 참 잘코뱅(쌤통의 충청도 말)이다 하는 표정. 아이쒸, 저 세 남정네... 아놔, 이제부턴 좀 더 여유 있게 나가야 할 텐데 잘 될까 모르겠다. 다짐은 해 보는데 나쁜 습관일수록 잘 안 고쳐진다는 걸 아는 탓에 자신은 없다.
기차를 타고 오는 날은 뿌옇게 비현실적이었고 뭍이라는 게 실감 났다. 길게 이어진 산허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뻘을 드러낸 샛강, 벌거벗고 누워 있는 논들이 어깨춤을 추며 맞닿아 있는 모습, 대파는 긴 추위에 누렁 잎을 여름날 개 혓바닥처럼 늘이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대천을 지날 때 안내방송에서 “이번에 내리실 역은 대천역, 대천역입니다.” 하다가 다시 한번 방송할 때는 “이번에 내리실 역은 광천, 광천역입니다, 다음에 내리실 역은 광천역입니다.”라고 한다. 대천인 걸 뻔히 알고 있던 나도 흠칫, 다시 확인했다. 자신이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뱉어버리는, 말에 붙은 때 묻은 관성을 발견하고 나도 저럴 때 있지 하면서 푹 웃음이 나왔다.
무궁화가 아닌 새마을호로 대천에서 광천 사이는 제법 길다. 한 15분쯤 되는 그 긴 사이 모처럼 마중 나오는 남편을 생각하며 여태 멀쩡하다 슬그머니 설렜다. 그동안은 늘 막내가 트럭을 몰고 나왔는데, 이번엔 아빠가 갈 거라는 막내의 말에, 장난 삼아 “아빠더러 대대적인 환영인사를 준비하라”고 일렀었다. 하하, 뭔 대대적인 환영 인사가 있겠는가. 현수막을 달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으니 괜히 해 본 말이었을 뿐. 역에 들어오지도 않은 남편을 찾아 대기실 쪽으로 가니 마스크 낀 남편이 대기실서 막 나온다. 한 팔로 나를 안아주며 캐리어를 받는다. 볼을 맞대며 “뽀뽀~”하니 서로 “마스크 낀 사람끼리 뭔 뽀뽀는” 하면서도 눈은 벌써 꼬부라진다. 트럭을 타고는 광천 역 근처 축산물 공판장을 향했다. 온 김에 고기를 사 가잔다. 그동안 풀만 먹었다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대체로 그렇게 지낸 걸 알고 있으니 기꺼이 그럽시다 하고 가서 오겹살에 목살에 소고기 국거리며 돼지등뼈까지 수북하게 사가지고 왔다. 오는 날부터 우리 식구는 고기를 구워 고소한 날배추와 큰아들이 사 온 쌈채로 푸짐하게 먹었다. 냄새난다고 뜰로 큰아들과 아빠가 들며 날며 고기를 굽고 막내는 상을 차린다. 나는 쌈채를 씻고 모두 푸짐한 상을 앞에 놓고 앉는다.
며느리가 보고 싶지만 며느리는 우울증 약을 바꾸어 신경이 날카로워져 만날 형편이 못 된다며 큰아들을 통해 미안한 마음만 건너왔다. 모처럼 우리 네 식구 도란도란 밥상 앞 완전체를 이룬다. 큰아들은 22년 코로나 직전 제주로 여행 갔을 때가 생각났는가 보다. “엄마, 우리끼리 여행 온 거 같다”하는 아들. 그러게. 마음이 시간을 거슬러 붕붕 날고 추억과 현재를 오가며 아내이자 엄마의 훈기를 느끼는 식구들. 고기를 즐겨하지 않는 나도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얼굴 찡그릴 이유가 없었다. 아들 녀석들, 내 앞에서 춤도 추고 장난기도 맘껏 부리고 다정한 저녁을 먹었다. 별 것 없는 하루여도 식구들은 온 얼굴로 내가 돌아온 것이 마냥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한 사람이 없다 있는 것만으로도 꽉 찬 이 느낌이, 늘 있으면 허물어지고 쉽게 잊히고 말겠지만, 그것조차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는 존재의 편안함이라는 다른 얼굴 아닐까. 한동안 비어있던 자리에 이물감 없이 안착하는 건 역시 식구들의 환대 덕이다.
여전히 남편은 코를 골고 나는 잠꼬대를 할 것이다.
설이라고, 명절이라고 모인 자리에서 으등거리지 않고 하하 호호 웃으며 모여 밥 먹을 수 있는 소박하고 단순한 기꺼움, 오늘, 설명절 내내 모두 그러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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