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양자택일, 사지선다에 약한
나더러 누가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라고 묻는다면?
나는 봄가을이 더 좋아, 겨울도 좋고
비 오는 날이 좋아, 눈 오는 날이 좋아? 하면?
나는 비 오는 날을 무지 좋아하지만
눈 펑펑 소리 없이 내리는 밤도 좋아해
맑은 날도 구름 낀 흐린 날도 좋아하네
아, 개성 없다고?
다 좋아하는 건 개성이 아닌가?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한다면
나는 숲에 있을 땐 숲이 너무나 좋아 그 품에 안겨 지내지만
바다 앞에서는 파도가 너울 쳐도
파도가 잔잔해도 그 앞에 나는 가뭇하다
국수가 좋아, 라면이 좋아? 하면 국수가 좋고
수제비가 좋아 칼국수가 좋아? 하면 칼국수가 좋지만
사지선다 양자택일로 나를 묻지 마시게나,
나를 그 앞에 억지로 선택하게 하지 마시게나
나는 칼국수가 좋지만 수제비가 좋아질 날도 있을 터이고
오늘 바다에 있다면 바다 바라기가 되고
오늘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면
나는 비와 바람에 나부끼리라
나는 파도를 맞이하는 바윗돌이기도 하고
숲을 구르다 바스러지기도 하는 낙엽이기도 하다
그런 나는 오늘 무엇에 이르는가
바람 없이 바람을 맞고
기대 없이 하루를
온전히 받아 안는다
오늘이 설
오늘이 명절
내가 누구에게 선물이듯
그도 나에게 선물이라
오늘도 내일도 부활의 나날이어라
사지선다로 눕지 않고
어설픈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