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기
지난주 금요일, 비폭력대화 모임을 초창기부터 했던 거의 20년 넘은 지기들을 떼로 만났다. 바로 가까이 있는 홍성여성농업인센터에서 주관해 단체로 홍성 cgv 한 관을 임대해 <세계의 주인>을 본 까닭이다. 그때 오래간만에 제주에서 올라온 나를 본 친구들이 여럿 있다.
같이 차를 얻어 타고 갔던 친구 하나가 그 밤에 연락을 했다. 비폭력 센터가 이전하게 되어 냉장고를 날라야 하는데 내가 생각났다고. 내일 우리 집 트럭을 쓸 수 있겠느냐 물었다. 남편과 아들 두 남정네한테 물어보니 오전에는 써도 된다기에 빌려주마고 했다. 우리 집 트럭뿐 아니라 연장들도 가끔 공용이고 공유재산이다. 면 소재지에 있기에 드나들다 생각나면 들리기 쉬운 집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어릴 때는 바로 앞 초등학교 아이들 바지에 똥 싸면 우리 집에 전화해 여분의 바지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것뿐이랴. 학교를 드나들며 방과 후 교사를 하는 친구들이 냄비나 그릇을 깜빡했다고 빌리러 오기도 하고 아이들과 꽃밭에 꽃구경 가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 대문이 있을 때는 대문을 지쳐만 두지 잠그는 일은 거의 없었고 대문이 없는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길가 집이자 학교 코앞에 있다 보니 참, 다양한 이들이 무시로 찾아오곤 했다. 우리 트럭으로 친구 집 아들 둘이 운전면허 시험 연습을 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일로 빌려 쓰는 이가 많았으니 예사로운 일이었다.
속내를 훤히 알고 있는 지기들인 비폭력대화 팀에서 쓴다면야 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랜만에 하는 트럭운전이긴 해도 몸으로 익힌 기술은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가 보다. 후방 카메라가 없긴 해도 백밀러가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도시도 아니고 시골에서 운전이야 어려울 게 없다.
함께 그 모임을 해온 친구들 중 하나가 비폭력대화 강사가 되었고 그의 이름은 수마나(수많은 나). 그 순하디 순한 친구 아우라 덕에 우리는 그미의 존재 자체로 벌써 비폭력을 느낄 수 있었다. 홍동과 홍성뿐 아니라 대천이며 서천 등 많은 따뜻한 물결을 만들어 낸 우리 모임은 드디어 재작년에 비폭력대화센터 지부를 홍성에 탄생시켰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없이 많은 이들이 비폭력대화를 맛보았고 일상을 함께 하며 곳곳에 평화의 씨앗을 날렸고, 날리고 있다.
이 친구들이 터전을 옮긴다는데 거들 수 있는 건 기쁨이다. 내가 올빼미과이긴 해도 보통 그 시간쯤이면 일어나지만 혹시라도 못 일어날까 봐 전날 7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들었다. 다음날 알람보다 먼저 눈을 떠 준비하고 바로 트럭을 가지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우리 동네 공소 근처 언덕배기에 있는 다미 집으로 가니 다미 아빠와 한 친구가 바로 왔다. 남자 둘이 냉장고를 싣고 수마나 집으로 갔더니 길가에 여러 물건을 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트럭에 함께 주섬주섬 주워 싣고 홍성에 있는 청운대 건물로 갔더니 뒤에 바로 소나무 숲이 있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제주에서도 숲이 좋아 숲길을 자주 걸었는데, 여기서도 숲이라... 반갑고 정겨운 기운이 느껴진다.
이층이라 냉장고며 집기들 올리느라 남자들이 쉽진 않았지만 다들 기꺼운 모습이었다. 처음엔 냉장고 하나라 하더니 제법 여러 가지 물건들을 함께 나르게 되었으니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기였다. 이십 여평 되는 사무실에 공간을 나누기 위해 잠시 고민하며 이야기 나누다 다미는 남자 세 명을 본 김에 책장 배치를 달리하는 걸 부탁해 볼까 했다. 역시 그들을 잡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냈으려나?(같은 밥 먹고 남자들은 왜 여자들보다 힘이 더 센지, 그것이 알고 싶고 그것이 불만이다.) 눈짓으로 부탁해보라는 신호만 주고받았다. 잠시 쉬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트럭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 트럭 본 김에 더 나르고 싶은 게 있다며 그들이 와서 트럭을 다시 끌고 갔다. 제사를 한 번 더 지낼 모양이었다. 마침 그 센터에 맞춤할 우리 집 커다란 몬스테라 화분도 그리로 보내주었다. 작은 집에 있던 몬스테라는 거기서 네 활개를 피고 공간을 초록으로 비추며 잘 지내리라.
몬스테라가 놓였던 공간을 비우니 부엌 공간에 있던 화분들도 배치를 달리하게 되었다. 내가 집에 없던 1년 여 동안 웃자라버린 제라늄을 과감하게 잘라내어 삽목이를 만들어 발근제 발라 물에 담가두었다. 천천히 잘린 부위에서 뿌리가 하나둘 자라나리라. 저게 자라나면 아름다운 걸 우선하는 다미가 있을 센터에도 나눌 테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운 닿는 누군가에게 또 나눌 수 있겠지. 집에서도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고 있구먼. 혼자 웃는다. 우리 제사는 왜 이렇게 자주 오는겨? 없는 집 제사 돌아오기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오늘은 안팎으로 제사 지내는 날인가 보다. 어렵지 않은 십시일반, 이런 제사 얼마든지 환영이다.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고 한 버전으로 외쳐본다. “나에겐 대들보처럼 든든한 이웃과 친구들이 있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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