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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발라드 Jan 24. 2022

파리 발라드 9. 룩셈부르그 공원

사람과 공간

2022년 1월 6일 룩셈부르그 공원에서의 오후

 

 파리 판테옹 앞 큰길을 따라 내려오면 마주치게 되는 룩셈부르그 공원.

본래에는 이름과 같이 룩셈부르그 공작의 소유지였으나 이후 마리 드 메디치가 구입하며 변화가 시작된다. 새로운 주인 마리 드 메디치는 암살당한 남편 앙리 4세와 함께 머물었던 루브르 궁전의 허전함을 대신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온 측근들이 모여있는 센 강 서쪽, 이곳 룩셈부르그 궁에 자리 잡아 자신의 취향을 적극 반영하여 그리운 고향 이태리 르네상스 스타일의 공간을 만들었다. 

 성은 피렌체 피티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재건축되었고 공원은 근처 대로와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크게 확장되었으며 갤러리에서는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 인생을 그린 24점의 작품이 당당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혁명 동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오스만 시장의 도시 정비를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본관은 프랑스 상원의회로 갤러리는 룩셈부르그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더불어 공원 한편에 자리 잡은 메디치 분수는 과거 그 모습을 상상하기 충분할 만큼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소르본 대학 근처에 있어 점심시간에는 샌드위치, 도시락을 들고 온 사람들로 가득 차는 도심 속 안식처 같은 공간으로 볕이 좋은 날에는 공원에 빈 의자가 없을 만큼 많은 파리 시민들이 나와 따뜻한 햇빛을 즐긴다. 과거 룩셈부르그 궁의 오렌지 나무를 가꾸던 온실, 오랑쥬리 앞에 앉아 있는 파리지엔들을 보면 꼭 따사로운 햇살로 얼굴이 붉어진 오렌지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의자가 초록색인 탓에 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에는 공원 중앙에 위치한 분수대에서 아이들을 위한 작은 배를 띄운다. 그곳에 옹기종기 모인 꼬마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물 위에서 반짝이는데 그중 누군가는 바다를 항해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 유튜브에서 건축물이 4차원인 이유는 우리가 그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이 기억난다. 아마 이 룩셈부르그 공원 또한 우리 모두 각자의 경험과 추억이 녹아있는 그런 4차원의 공간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5년 전 함께 프랑스어를 공부했던 태국 친구, 마니와 함께 바이올렛 꽃 디저트를 먹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오늘보다 날은 따뜻했으며 이만큼 날씨가 좋았다. 특히 공원에 핀 빨간 개양귀비가 하늘거리는 모습이 룩셈부르그 궁전을 더 돋보이게 하는 완벽한 액자가 되던 그런 날이었다.

 지금은 마니가 태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이번엔 잊지 말고 꼭 연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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