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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발라드 Jul 07. 2022

파리 발라드 10. 생제르망데프레

이방인

2022년 6월의 어느 날, 생제르망데프레 성당


 타향살이하며 이런저런 일들이 많지만 특히 체류증 관련된 문제는 갱신할 때마다 매번 속앓이를 크게 한다. 작년 12월에 신청한 체류증 관련 메일 7개월 만에 겨우 받았는데 다른 게 아니라 기술 문제로 이전에 등록한 지문을 재등록해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실망과 동시에 통보받은 일자에 맞추어 필요 서류 준비를 하는데 아직도 빨리빨리 한국인인 나는 괜히 화가 나더라.


 경시청 방문은 프랑스 생활 6년째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 중 하나다. 서류를 나름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프랑스인들 특유의 문화, 싸데펑(케바케) 논리로 거절되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방문은 지문 재등록만 하는 날이라 특이사항은 없었지만 체류증이 절실한 외국인으로 가득 찬 경시청은 항상 긴장감과 무거운 공기가 가득해서 한번 다녀오고 나면 기운이 다 빠지곤 한다.


 그래서 할 일을 마치고  길로 곧장 파리 6구, 생제르망데프레갔다. 생제르망데프레는 프랑스어로 Saint Germain des Prés 의미 그대로 목초지에 지어진 생제르망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7세기경 성당 건축을 주도했던 주교 생제르망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후 12세기 생드니 왕실 대성당이 건축되기 전까지 프랑스 왕들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던 중요 성당으로 필립 오귀스트 시절에는 파리의 도시 경계를 담당하였으며 근처 소르본 대학 중심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20세기 초반에는 피카소, 헤밍웨이와 같은 이방인, 외국인 예술가들이 자유를 찾아 모여들었던 동네로 특유의 바이브가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곳이기도 하다.


 메트로를 타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좋아하는 제과점 중 하나인 클레어 다몽 부티크에서 장미와 자몽으로 맛을 낸 작은 케이크를 하나 샀다. 이 예쁘고 맛난 케이크를 맛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으며 공원의 벤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이 아까의 우울함은 시원하게 부는 바람 따라 날아가버렸다. 주변 나무들과 잘 어우러지는 초록색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케이크를 크게 한입 먹었다. 보드라운 식감과 향긋한 장미향 그리고 상큼 쌉싸름한 자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입안에 가득 퍼지는 순간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든든하게 먹고 가만히 앉아 따뜻한 햇살에 광합성을 하고 있으니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나도 모르게 이 맛에 내가 파리를 못 떠나지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화시킬 겸 골목골목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마음에 드는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의 사치를 부려보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사람들, 여유롭게 신문을 읽는 노신사, 화이트 와인과 잠봉으로 간단한 점심을 즐기는 멋쟁이 할머니까지.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파리의 이방인들이 왜 이곳으로 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어느새 나 또한 그들 사이에 스며들어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나 스스로 이방인이라는 벽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외국인이라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동양 여자라서 차별을 당하지는 않을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지레짐작하여 만든 걱정이 자격지심의 또 다른 모습으로 표출되어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냥 프랑스 경시청은 이렇구나 받아들이면 될 것을 왜 굳이 한국과 비교하며 성질을 부렸는지 내 화를 내가 만든 셈이다.  


 느린 행정과 잊을 만하면 시작하는 각종 파업을 생각하면 다시 속이 답답해지는 것이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이렇게 조금씩 한 발짝씩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의연하게 걸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도 그들처럼 "C'est ça la France 이게 프랑스지"라고 웃으면서 넘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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