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접선 2

12. 접선 2

by 왕십리

12. 접선 2



거실에서 그간 잠잠했던 전화벨이 울렸다. 모두 벌떡 일어나 전화기에 몰려들었다. 형사는 헤드셋을 쓰고 은비아빠에게 받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보세요.” ‘맞다, 그 변조된 쉰 목소리, 기다리던 범인이 맞다.’ 형사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여보세요. 지난번에 우리 당신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우리 은비는 어떻게 된 것이요? 왜 약속을 안 지키는 겁니까? 우리 은비는 괜찮은 거죠?”

“시간이 많지 않으니 진정하시고 내 말부터 잘 들으세요, 은비는 잘 있으니 안심하시고, 저는 지난번에 약속한 금액을 절반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당신들이 약속을 어기고 형사들을 따라 붙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그런 허튼짓을 하시면 아이를 영원히 보지 못할 것입니다.”

“잠깐! 봅시다, 며칠 전에도 어떤 놈들이 아이를 데리고 있다고 사기를 쳐서 우리가 거액을 날릴 뻔했어요. 나는 이제 우리 아이가 무사 다는 확인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작정입니다. 우리 아이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그는 무엇보다 은비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은비가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어 지금 안됩니다.”

“아무튼! 우리는 아이의 생사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지난번에 돈도 절반을 가져갔었고 또 우리 아이가 지금 안전하다면 그 정도는 우리에게 해줄 수 있잖아요.”

“정 그러시다면 내가 준비하여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끊었다.

형사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뭘 준비를 해서 다시 연락하겠다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은비 엄마는 목사의 기도를 받자마자 범인과 연락이 된 것이 좋은 징조가 아닌가 생각되며 그의 다음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오후 은비의 집에 발송인이 없는 우편물이 도착했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모두 놀랐다. 그 속에 은비 사진이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서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고 옆에는 어제 날짜 중앙지 신문이 놓여있었다. 은비 엄마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여보! 여보! 이거 조작된 것 아니지? 우리 은비가 맞는 거지? 확실히 우리 아기는 살아 있는 거지? 어쩜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거야. 내 새끼 엄마 여기 있는데 거기서 무엇을 하는 거야. 빨리 집에 오지 않고!”

그녀는 순간 목사의 말을 떠올리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아이고! 하나님, 목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십자가 앞에 뛰어가 꿇어앉아 두 손 빌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제 서야 형사들은 같이 동봉된 편지를 들여다보았다.


[은비아빠 보세요,

저는 거짓말은 안 합니다.

은비 안전을 확인하셨으면 약속한 돈도 안전하게 전해주세요, 그래야 은비가 엄마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번 28일 토요일 오후 4시까지 나머지 돈을 사장님 차 뒤 트렁크에 싣고 사장님이 직접 운전하여 나오십시오.

역삼동 28번지 성주빌딩 정문 앞 대로변에 차를 주차한 다음 비상등을 켜고 뒤 트렁크를 열어 놓은 채 차 안에서 전화기를 켜 놓고 기다리세요.

물론 혼자 나오셔야 합니다. 행여 이번에도 경찰이 같이 온다거나 수상한 정황이 보인다면 나는 그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연락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은비의 목숨도 포기하셔야 하겠지요.

끝으로, 나는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정현이 아내는 마치 은비가 돌아오기라도 한 양,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누구에게 하는 소린지 모르는 고맙다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임 반장도 은비의 안전이 확인됨에 따라 일단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접선 날짜도 아직 여유가 있으니 이번에는 실수 없이 만전을 기하도록 하자.’ 편지는 국과수로 보내 분석하게 하고 우편 발송지를 찾아 범인의 행적을 조사하도록 지시한 후 수사본부로 들어와 접선을 대비한 작전에 들어갔다.

은비 엄마는 하나님이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읽으셨다고 믿었다. 그녀는 아예 교회로 들어가 목사를 붙들고 금식 기도를 시작했다. 은비가 돌아올 때까지 무한정 참회하고 빌며 하나님께 매달리겠다는 것이다.


그날 오후 4시가 가까워지자 임 반장과 정현이는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어제 늦게까지 대책을 세우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범인이 나 혼자 오라는데 어떻게 할 것입니까?”

“범인을 검거할 가장 확실한 기회인데 우리가 경찰서에 앉아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가 행여 범인이 눈치채고 접선도 안 하고 사라진다면 우리 은비는 어떻게 되느냐 말이에요?” 정현이는 점점 경찰에 대한 믿음이 불안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노출되지 않도록 원거리 배치를 원칙으로 사장님 차는 제가 직접 먼 거리에서 들키지 않게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차를 가지고 전화기도 켜놓으라는 것으로 봐서 지금 지정한 곳이 접선 장소가 아니고 틀림없이 제2의 장소로 변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자가 형사들이 따라올 것도 아마 예상을 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가 보내온 사진을 봤을 때 당장 은비를 해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그자가 면식범이라면 돈을 받아가도 쉽게 은비를 돌려보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무조건 이번에 현장에서 이자를 잡아야 합니다. 우리를 다시 한번 믿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이번에는 돈 가방에 위치 추적기를 부착했다는 사실을 정현이에게 알리지 않았다.

“내 딸 은비야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널 꼭 구해 줄게!”

정현이는 그 한 번의 사전 경험이 침착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꼭 범인과 끝장을 봐야 해.’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약속된 시간의 성주빌딩 정문 앞은 퇴근 시간 훨씬 전인데도 도로가 많이 붐볐다.

정현이는 대로변에 차를 댄 후, 범인이 지시한 대로 뒤 트렁크를 열어 돈 가방을 넣고 차 앞 보닛을 세웠다. 비상등을 켠 후 차에 앉아서 뒤 트렁크의 덮게 아래 틈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없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시하고 있었다. 뒤에서는 차량들이 빵빵거리며 피하여 가느라 난리가 났는데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정현이는 오늘도 허탕 치는 것이 아닌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나면서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달려와 정현이 차 앞을 가로막고 섰다. 차에서 내린 경찰은 정현이에게 다가와 창문을 내리라는 신호를 했다. ‘이 자들이 경찰로 위장하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고 그는 경계하며 창문을 내렸다.

“왜? 차가 문제가 있습니까? 차가 움직일 수 없어요?”

“예! 아니요!” 정현이가 당황하며 더듬거리자 경찰은 짜증스럽게 이야기했다.

“우선 차부터 빼세요! 차가 고장 났으면 빨리 견인조치 하든지 해야지 삼십 분이 넘게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저 뒤에 차들 밀리는 것 안 보입니까? 빨리 차 빼세요.”

예기치 못한 그 장면을 멀리서 주시하고 있던 임 반장은 그냥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 경찰 아저씨! 그런 것이 아니고 실은 지금 급한 사정이 있습니다. 어린아이 납치사건이 발생하여 범인과 이곳에서 접선하기로 되어있어 나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우리 아이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예? 납치사건요? …그럼, 경찰에게 신고는 하셨어요?” 경찰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예! 주위에 형사들도 나와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훔쳐보며 망설이다 이야기했다.

“조금 전에 차가 대로를 막고 있어 정체가 심하다는 민원이 접수되어 나왔습니다만. 그럼 우리가 뭘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경찰은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지금 범인이 근처에서 여기를 주시하고 있을 것 같은데 아저씨들이 있으면 접선을 못 할 수 있으니 그냥 가시면 고맙겠습니다. 지금 수사관들이 앞뒤에 잠복하고 있으니 저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바로 이때, 다시 귀를 찢는 소리를 내며 견인차가 다가왔다. 경찰이 황급히 막아서며 그냥 지나가란 신호를 했지만, 견인차는 경찰 신호도 무시한 채 아예 정현이 차와 나란히 길을 막고 섰다. 그 바람에 뒤차들이 밀려 순식간에 도로는 꼼짝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정현이는 때맞춰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범인이 견인차를 동원했나?’ 그는 더욱 긴장하여 뒤 트렁크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저씨! 견인 요청한 3671 맞죠?” 기사는 창문을 열고 정현이에게 직접 확인하려고 했다.

경찰이 쫓아가 지금 조사 중이라 견인할 수 없으니 당장 떠나라고 기사에게 호통을 쳤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럼,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 앞에서 대기할게요.”

“그게 아니라니까. 저 차는 견인할 차가 아니야, 고장 난 차가 아니라고, 뒤에 차 밀리는 것 안 보여! 일단 빨리 차 좀 빼요.” 빵빵거리는 소리에 경찰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 아저씨가 견인 요청해서 왔다고요. 일단 우리는 콜을 받아서 왔으니 여기 온 비용은 받아야 합니다.” 경찰은 정현이에게 왜 견인차를 불렀는지 물었다.

“나는 부른 적 없는데요.” 어쩔 수 없이 경찰은 정현이에게 콜 비용을 받아 견인차를 돌려보낸 후 교통정리에 나설 수 있었다.


임 반장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범인이 등장한다는 전조 현상이다.’ 그는 더욱 긴장하고 위치추적기를 살폈지만, 아직도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는 형사들에게 정신 바짝 차릴 것을 주문했다.

“도로는 아니다, 지금 도로에 있는 대원들 인도 쪽으로 올라와서 50m 간격으로 잠복하도록 해!”

경찰이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떠나 뒤 정현이는 계속 뒤 트렁크와 전화기를 번갈아 보고 있었으나 약속된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범인으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곧 퇴근 시간이 되면 길이 더욱 혼잡해질 텐데, 경찰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범인이 포기하고 돌아간 것이 아닐까?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임 반장에게 전화했다.

“아무도 안 나타나는데요. 이제 어떻게 합니까?”

임 반장은 반사적으로 위치추적기를 들여다보더니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인지 표적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장님! 뒤 트렁크 빨리 한번 확인해 보세요, 놈이 이미 가져간 것 같은데.”

정현이는 내려서 뒤 트렁크를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새 가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언제 집어갔지?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 그럼 그 경찰하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가져간 것이 분명해!’ 갑자기 나타난 경찰에 신경 쓰느라 접근하는 범인을 보지 못한 것이다. 설마 경찰이 곁에 있는데 대범하게 다가와 가방을 집어 가리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형사들 또한 전방에서는 열린 트렁크에 가려서, 뒤쪽은 몰려가는 차량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 범인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경찰과 견인차 기사가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정신이 산만해 주변 흐름을 놓친 것이다. 범인은 인도로 접근하여 열려있는 트렁크에 놓여있는 가방을 집어간 것이 분명했다. 임 반장은 급히 차에서 내려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멀리 안 갔다, 범인이 도보로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빨리 쫓아라!”

마침 건물 주변의 인도에 잠복시킨 형사에게서 긴급 무전이 왔다. 행인 중에 돈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여 추적 중이라는 것이다.

“이 형사 위치가 어디야?”

“국민은행 역삼지점 앞입니다.”

“이런! 국민은행이 어디야?” 형사들은 일제히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범인은 장발을 꽁지머리로 묶었고 운동모자를 썼으며 30대 젊은 사람으로 키는 175가 넘어 보이고 색안경과 마스크를 썼으며 청바지에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고 했다.

용의자를 처음 목격한 형사가 접근하자 그는 들고 있던 가방을 형사에게 내던지고 바로 뒤돌아 도주하기 시작하여 건물 사이 좁은 골목길로 돌아 뛰어들어갔다. 형사는 혼자 젊은 범인을 쫓아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자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하고 골목길을 뒤따라 뛰었는데, 곧 나타난 주택가 골목에서 범인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형사들이 골목마다 흩어져 찾아보았지만, 주택가에서 더 이상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날 샌 놈은 처음 본다.’ 뒤쫓던 형사들은 얼떨떨했다. 다 잡은 범인을 놓친 듯, 형사들은 아쉬움에 밤늦도록 주변 골목은 물론 큰길까지 나와 배회하며 수색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정현이는 형사들이 범인을 쫓는 동안에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설령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더라도 돈이 범인에게 전달만 된다면 약속대로 은비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겠지.’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범인을 검거하지도 못하고 돈도 전해지지 못했다는 최악의 소식에 허탈함과 경찰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

“범인을 바로 눈앞에서 놓치다니, 우리 은비는 이제 어떻게 됩니까? 잡지도 못하면서 돈은 가져가도록 했어야지,”

“아버님!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범인에 대한 인상착의가 확인되어 지금 추적에 나서고 있으니 곧 윤곽이 잡힐 것입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