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혼란

11. 혼란

by 왕십리

11. 혼란



그날 오후 바람 불고 비가 와서 수사팀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는데 은비 집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왔다.” 깜짝 놀란 형사가 재빠르게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어 은비 아빠에게 건너 주었다.

“여보세요.”

은비 아버님 좀 바꿔주세요.”

“내가 은비 아빠요. 누구세요.”

“저는 이 건수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은비를 데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댁 우편함에 노란 서류봉투가 있으니 그것부터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십 분 후에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굵고 차분한 목소리가 이제까지 통화한 목소리와는 달랐다. 형사가 벌떡 일어섰지만 임 반장이 저지했다.

“이게 무슨 수작이지? 혹시 그놈이 지켜보고 있을 수 있으니 아버님이 직접 나가셔서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장갑을 끼세요.” 과연 편지함에 서류봉투가 있었고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뜻밖의 물건이 나왔다. 바로 은비의 손수건이 있었다.

“여보! 이거 은비 것 맞아요?” 손수건에는 황 은비 이름이 세계 있었다.

“아이고! 이거 우리 은비 것 틀림없어요. 분명히 내가 세계 준 것 틀림없어요.” 은비 엄마가 손수건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전화가 울렸다.

“보셨죠? 이야기 잘 들으세요. 은비는 제가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예? 지난번에 전화 한 사람 아닙니까? 돈 가져갔잖아요? 그럼 약속대로 은비 보내셔야지요.”

“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기가 막힙니다. 사장님은 지금 속고 계신다고요. 은비는 여기에 있고 저는 지금 처음 전화하는 것인데 엉뚱한 놈에게 돈을 준 것입니다. 길게 이야기할 시간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저는 지금 돈이 필요하고 사장님이 도와주시면 됩니다, 어떻게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이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여보시오! 아이를 포기라뇨! 정말 우리 아이는 잘 있습니까?”

“물론 잘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님이 저를 믿고 가셔야 할 부분이고.”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입니까?”

“좋습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명동 프린스 호텔 로비로 2억 준비하여 사장님이 직접 나오셔서 제 전화 기다리세요. 반드시 혼자 나오셔야 합니다. 그럼 은비는 바로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기회는 딱 한 번입니다. 나중에 후회하시지 말고 제대로 하세요.”

그는 경찰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이야기인가?’ 임 반장과 정현이는 혼란스러웠다.

“이 손수건 은비가 가지고 있던 것 확실합니까?”

“예! 우리 은비 것 확실해요, 이놈들이 우리 은비를 어떻게 한 거야.” 은비 엄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 진정들 합시다. 그럼 이놈이 진범이라는 이야기 인가, 왜 이제야 전화를 했지?” 목소리도 감추지 않고 너무 자신만만한 것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처음 그자들은 누구야? 어떻게 은비가 납치된 사실을 알고 전화를 했을까? 아무튼, 은비를 납치하자마자 바로 전화한 것이 수상하기는 했었다.”

“저기 전화번호는 추적됐나? 그리고 언제 이 집 문 앞에 다녀갔는지 방범 카메라 뒤져 보고, 이 봉투하고 손수건 빨리 보내서 감식시켜 봐.” 집 앞 방범 카메라에는 버젓이 다녀간 범인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범인의 신상은 흰 운동화밖에 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형사들과 정현이는 이 자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이것들이 아주 경찰을 우롱하고 있구나! 이게 무슨 꼴이냐, 일단 만약을 모르니 내일 접선을 준비하시죠. 지난번에 남은 돈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집 앞에까지 왔던 범인이 큰길로 나가 사라진 것으로 봐서 택시를 잡아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생각하고 임 반장은 그 시간에 인근을 지난 택시하고 버스를 전부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왜 아침 8시 명동일까, 번잡한 출근 시간을 이용해 돈 가방을 강탈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일까?’ 임 반장은 지원을 요청하여 전 병력을 명동 주위에 배치했다. 예상 도주로에는 사이드카를 대기시키고 인근 지하철역에도 잠복 형사들을 물샐틈없이 배치했다. 임 반장은 이번에도 실수하면 사표를 쓸 각오를 하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후 아침 일찍 약속장소로 달려가 주변 상황을 살피고 호텔 라운지에 잠복해 있었다.

과연 범인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접근할지 숨을 죽였다. 조금 후에 로비에 나타난 은비아 빠은 돈을 들고 로비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정현이는 임 반장을 보지 못한 채 연신 시계만 쳐다보았다.

‘과연 8시에 범인은 나타날까?’ 그러자 8시 정각에 은비 아빠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벨 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임 반장 귀에도 들렸다.

“주위에 형사들이 많이도 오셔서 수고하시네요. 그것은 됐고요, 자! 지금 호텔에서 나와 바로 앞 지하철역으로 내려오셔서 을지로 4가 방향 플랫폼의 2-5번 승강대 앞으로 가세요.”

“잠깐만요, 적을 테니 좀 천천히 불러 주세요. 을지로 3가 역 그리고요? 4가 방향 승강대 2-5번 위치, 알겠습니다.”

“30분 안으로 오시고 다시 연락하지 않을 테니 실수하지 않도록 하세요.”

“여보세요, 그럼 우리 애는요?”

“돈을 받은 후 1시간 내로 은비가 있는 곳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형사들은 을지로 3가 역으로 움직였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좁은 승강대는 하차하는 사람들로 발붙이기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정현이는 무거운 돈 가방을 둘러매고 겨우 범인이 지시한 대로 승강대에 섰다. 숨은 헐떡이고 온몸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이때 범인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뒤돌아보면 벤치가 있는데 그곳에 가방을 올려놓은 뒤 사장님 코트를 벗어 덮어놓고 사장님은 그 옆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십시오.” 마치 범인은 정현이를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그는 범인의 지시대로 가방을 벤치에 놓은 뒤 자판기 앞에 서서 가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정현이와 승강대 각 방향에 형사들의 눈은 가방을 떠나지 않았다. 2번째의 열차를 보냈지만 아무 일이 없자 그는 오늘 범인이 형사들을 보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3번째 열차에서 승강대로 쏟아져 나오는 인파로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워 둥둥 떠밀려 나가는 상황에서 벤치는 사람들에게 가려 순간순간 보이지도 않았다. 이때 언뜻 보이는 벤치의 코트 모습이 이상했다. 정현이가 인파를 뚫고 들어가 코트를 들춰보니 어느 사이에 가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형사들에게 신호를 보내어 사실을 알렸다. 형사들이 흩어져 그 가방을 찾아 사방을 뛰어다닐 때 승강대 중앙에서 감시하던 형사들이 가방이 없어진 사실을 안 순간 문이 닫히려는 열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들은 아직도 승객으로 붐비는 열차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집고 다니면서 열심히 그 가방의 행방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범인이 이 차를 타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형사의 눈에 선반에 놓인 국방색 천으로 된 가방이 들어왔다. ‘그 돈 가방은 갈색이었는데.’ 그는 다가가 가방 주인을 찾았지만, 가방의 소유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즉시 가방을 내려 내용을 확인하려 했으나 가방은 잠금장치가 되어있었다. 형사는 가방 겉을 만져보고 그 안에 돈 가방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형사가 가방을 조사하는데도 여전히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열차는 곧 다음 역에 도착하기 전에 범인을 찾아야 하기에 다급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 살피며 소리쳤다.

“우리는 경찰입니다. 이 가방 주인이 누구입니까?” 열차는 어느덧 승강대에 서서히 들어서고 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하차하려 문으로 다가가던 승객이 형사를 보고 눈을 깜박이며 앞의 사람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는 모자를 눌러쓴 젊은 사람으로 신발을 보니 흰 운동화였다. 열차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형사는 내리려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기 저 가방 주인 아녀요?”

“예? 저 아닌데요.” 그러면서 그는 형사를 비켜 급히 내리려 했다. 형사는 그의 혁대를 움켜잡고 끌어다 자리에 앉혔다. 그는 다시 열차 문이 닫히려 하자 벌떡 일어나 형사를 밀치고 문을 향해 돌진했으나 다른 형사가 그의 발을 걸자 그는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열차는 출발했고 그는 거칠게 항의했다.

“아니 이 양반들이 왜 이러세요? 생사람을 잡고 있네, 지금 못 내려 회사에 지각하게 됐잖아요!”

“미안하지만, 방금 손님이 당신이 가방 주인이라고 이야기해 줬는데 거짓말을 해?”

“누가 그래요? 그러면 그 사람이 그 가방 주인 아녀요?” 아차! 형사는 잠시 혼란스러워 둘러보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것 보세요. 그 사람 도망갔잖아요!” 그는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잠깐 그대로 움직이지 말아요, 그럼 저 가방이 당신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 보세요.”

“뭐라고요? 이 사람들이 돌았나. 증거는 당신들이 내놔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증거는 당신이 가지고 있잖아요, 그 당신 핸드폰! 거기에 증거가 있으니 그것 좀 봅시다. 핸드폰 내놓으세요.”

“이 양반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남에 핸드폰을 아무 이유 없이 무슨 짓이냐고요.” 격하게 거부하는 것을 본 형사들은 그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일단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경찰서로 데리고 왔다.

용의자를 체포했다는 소식에 수사본부는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먼저 그의 핸드폰을 압수하여 통화목록을 살펴봤는데 은비 아빠와의 통화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통화 후 바로 지웠나?’ 형사는 그 전화기 번호가 정현이의 전화기에 기록된 번호와도 일치하지 않자 당황하여 그의 몸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결국, 양말 속에서 전원이 꺼진 다른 전화기를 찾아내 열어본 결과 그곳에서 정현이의 전화번호와 통화기록을 발견하고 모두 환호했다.

‘김종만’ 그는 32세로 사기 및 폭행 전과자로 일일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형사들은 바로 그의 주거지를 찾아 은비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임 반장은 직접 그의 신문에 들어갔다.

은비 어디 있나? 밥은 잘 먹이고 있나?”

그러나 취조실의 그는 머리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문 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 가족들 애를 태우게 했다.

“우선 은비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만 이야기해 봐. 어떻게 했어?”

“저는 잘 몰라요,”그는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뭐? 뭐라고?”

“저는 모른다고요, 저는 아이를 납치하지 않았어요, 그저 납치범 흉내만 냈을 뿐입니다.”

“뭐?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이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돼? 당신이 이 손수건 보낸 사람 맞잖아?”

“그것은 맞는데요, 아이는 모릅니다.”

“그럼 은비의 손수건은 어떻게 가지고 있었어?”

“학교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은비 아빠 회사에 운전기사로 있는 친구로부터 사건 내용을 듣고 이를 이용하여 돈을 벌어 보자는 계획을 하게 된 그는 사건으로 혼란한 학교를 찾아가 형사 행세를 하면서 은비의 사물함을 뒤져 그 안에 들어있던 학용품과 손수건 등을 들고 나왔다고 했다.

“직접 아이를 납치해야 하는 부담도 없이 잡히더라도 처벌이 가볍다면 한번 해 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사들은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나쁜 놈이 있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납치범의 돈을 가로채려 했다고? 치사하고 교활한 놈! 아이를 잃어버려 비통한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네 녀석은 납치범보다 더 나쁜 악질 중 최고 악질이다, 이것들이 경찰들을 조롱이나 하고.” 형사들은 그의 범행보다도 그가 납치범이 아니라는데 더 분노했다.

결국, 그에게서 은비 관련한 아무런 흔적이나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수사팀은 그를 공갈과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검찰에 넘기고 수사의 방향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야 했다.


경찰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남은 권수길에게 수사를 집중했다. 그가 진술한 그날의 행적을 조사하던 수사팀은 그가 여주 휴게소에 나타났던 시각에 지방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는 주장이 거짓임이 확인되자 수색영장을 받아 그의 집과 하남 공장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공장을 뒤지던 형사는 구석에서 작은 상자 속에 있는 숫자판을 발견하였다.

“여기 이 금형들은 다 뭐요?”

“예, 그것은 옛날 관에 번호판을 납품했었거든요.”

“번호판요? 자동차 번호판?”

“예. 지금은 폐기해서 쓰지 않습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형사의 머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승용차의 색과 차종도 같은데 번호판 제작 기계까지 있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보통 우연이 아니다.’

“그럼 이것은 마지막으로 언제 사용했습니까?”

“오래되었어요, 오 년 전 일입니다.” 형사는 금형의 녹슨 상태로 봐서 최근에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과 함께 그것을 증거물로 압수하고 권수길의 말이 사실인지 본부에 확인 요청하였다.

수길이 제시한 전화기에서는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사업하는 사람의 전화기에 이렇듯 통화기록이 단순하고 간단한 것은 분명히 통화기록을 미리 삭제했거나 다른 대포폰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게 하였다.

“당신 왜 거짓말했어요. 그날 지방 내려간 사실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은 다녀왔었잖아요! 그곳 어디 무엇 때문에 갔는지 자세히 시간대로 말해 봐요.”

“무슨 소리입니까? 권수길은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해했다.”

“그날 원주 다녀온 시간까지 우리가 톨게이트에서 다 확인했으니 똑바로 이야기하세요.”

“아! 제가 요일을 좀 착각했네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날이라면 원주에 사업상 누구 좀 만나러 갔다 왔었어요.”

“누구를 만나러 갔는데요?”

“도로 표지판을 만들어 달라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단가가 안 맞아 그냥 돌아왔습니다.” 형사는 그의 눈빛이 흔들라는 것을 보고 계속 말을 꾸며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출발 한 시간과 그 사람 만난 시간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한 시간을 불러봐요. 그리고 사실을 확인해야 하니 그 사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도 적어요.” 권수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형사는 권수길이 여기저기를 뒤적이며 겨우 적어낸 번호로 전화를 했으나 계속 전원이 꺼져있었다.

“당신 이거 전화번호 제대로 적은 거요?”

“예! 맞는데요.”

“전혀 전화를 받지 않잖아요! 사업하는 사람이 전화기를 꺼놓고 어떻게 사업을 하나, 그런데 이 번호로 처음 통화하는 것이 아닐 텐데 왜 이전에 통화한 기록이 없어요?”

“그거야 가끔 지워지기도 하고, 보통은 사무실 일반전화나 집 전화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번호는 상대가 없는 대포폰일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권수길이 사용하는 대포폰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거기에 여주 휴게소에서 은비 엄마와 통화했던 기록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형사는 본부에 연락하여 그 번호의 소유자와 통화기록을 확보하도록 부탁하는 한편 그 대포폰을 찾기 위해 권수길의 몸수색은 물론 차량과 사무실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공장을 여기저기 살피던 형사가 문뜩 발밑을 살피더니 팔딱 뛰어보았다.

“여기! 혹시 지하실이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요! 여기에 무슨 지하실이 있겠어요. 단순한 단층 건물입니다.” 그의 당황스러운 표정에서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단층 건물이라면 이 아래가 흙바닥일 텐데, 마치 공간이 있듯이 바닥 판에 진동이 느껴지는데요.” 형사들이 발을 굴러보며 지하층 입구를 찾기 시작하자,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상자 밑에 합판으로 가려진 지하 사다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지! 이런 것이 있을 만한 곳이야.” 혹시 이곳에서 은비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형사들은 긴장하며 내려가 불을 켰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일반적인 공장 기계와 물품 상자 외에는 이렇다 할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비밀장소 입구를 숨겨놓은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쉽게 그곳을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포장된 작은 상자들을 열어본 형사가 중얼거렸다.

“이것은 모두 유명 상표 로고들이잖아.” 형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찾으려 했던 위조상표 공장이 이곳이었나?.” 그들은 그 지역에서 각종 명품 위조상표를 제작해 전국에 뿌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사 중이었다. 권수길이 원주를 다녀왔던 날도 유명 모조품 제작 업체에 납품을 위해 다녀왔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오 년 전 구청에 번호판 납품했다는 그의 진술도 사실로 밝혀지면서 그를 상표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였을 뿐 그에게 걸었던 기대는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호랑이 잡으러 들어간 굴에서 토끼 한 마리 잡아 들고 온 꼴이었다.


장마철 날씨만큼이나 무겁고 어두운 긴급 수사상황 회의에서는 경찰서장까지 참석하여 질책에 나섰다.

“현재까지 수사활동은 몇몇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을 중심으로 집중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적인 혐의점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기타 회사와 피해자 가족 주변의 인물에 대한 탐문과 CCTV 및 전화통화 추적 작업도 계속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범인과 1차 접촉의 기회가 있었으나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검거에 실패하였고, 모방 범인까지 나타나면서 수사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탐문 및 추적조사는 계속 범위를 확대하여 나갈 것이며, 범인과의 2차 접촉에 대비하여 수사팀을 보강하고 여러 가지의 시나리오를 예측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뭔가 열심히 쫓아다니는 것 같은데 결과가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소극적으로 하지 말고 인원을 더 충원해서라도 수사 범위를 과감하게 넓히세요. 지금 면식 범행으로 초점을 맞추어 편협하게 수사를 하고 있는데 그러지 말고 이제 동일 전과자나 최근 출소한 우범자들 등 비 면식범으로도 수사력을 투입하세요, 그리고 필요하면 수사를 공개로 전환하여 이제는 시민의 제보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서장은 다람쥐 채 바퀴 도는 듯한 수사에 답답함을 나타냈다.

“예! 그렇지 않아도 오늘내일 결과를 보고 공개수사 전환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