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접선 3
16. 접선 3
매미의 울음소리도 짧아진 늦은 여름, 마음만큼이나 음산하고 쌀쌀해진 날씨에 점심을 마치고 은비 집에 들어선 장 반장은 그동안 침묵하고 있었던 집 전화벨 소리를 듣고 거실로 뛰어들어갔다. 모두 전화기 주위에 몰려들어 잠시 숨을 고른 후, 준비를 마친 형사의 수신호를 보고 범인으로부터 걸려온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 정현이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려 애를 썼다.
“여보세요!”
“은비 아버지? 맞으세요?” 위장한 목소리 그자였다.
“그렇소.”
“은비 아버지! 지금 은비가 죽었을까요? 살아 있을까요?”
“뭐요, 뭐라고? 죽어? 죽다니! 너! 너 누구냐? 이 죽일 놈!”
“그럼, 은비가 살아 있기를 바라셨습니까?”
“이놈! 네가 사람이냐! 그 어린것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정현이는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은비를 살리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딴 잔머리를 써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듭니까? 누굴 바보로 아는 거요? 은비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책임은 모두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장 반장은 정현이에게 진정하고 말을 계속 이어가라고 신호했다.
“여보시오, 그래 내가 잘못했소, 내가 잘못했으니 우리 얘가 어떻게 되었는지만 말해주시오, 부탁합니다.”
“진즉 그렇게 하셨어야죠, 그럼 잘 들으세요. 은비는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것을 끝내려고 했는데 은비를 보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한 번만 더 기회를 드리려 전화했습니다.”
“고맙소, 정말 은비는 안전한 것이죠? 정말이죠?”
“말씀드렸죠. 나는 절대로 거짓말 안 한다고.”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조금 후에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그리고 범인으로부터 오 분 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통화가 길어져 추적당할 것을 우려한 것 같았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잘 들으세요. 내일 오후 5시에 상봉 전신전화국 앞에 와서 인도 가까이 차를 정차시켜 지난번같이 뒤 트렁크에 가방을 싣고 비상등을 켠 채로 차 안에 대기하도록 하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지난번같이 경찰에 알리거나 가방에 위치추적기를 설치한다면 나는 모든 것 포기하고 은비와 함께 영원히 잠적한다는 것을 명심토록 하세요, 이거 다 녹음되고 있을 테니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번 전화한 장소는 미아리 삼거리에 있는 공중전화로 범인은 일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서울에 CCTV가 없는 공중전화만 찾아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정현이는 일단 범인과 다시 연락된 것에 안도하며 범인을 믿고 싶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이번에는 꼭 범인에게 돈을 넘겨 줍시다. 그리고 혼자 가도록 해 주세요. 지난번같이 우리 몰래 가방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서 아이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목적은 은비를 찾는 것이지 범인을 잡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현이는 장 반장에게 애원하다시피 했다. 한참을 고심하던 장 반장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저는 지난 임 반장 때와는 다릅니다. 만약에 범인이 돈만 취하고 은비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은비를 이미 해쳤을 경우와 앞으로 해칠 경우를 생각할 때 우리도 각각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도 범인을 잡을 마지막 기회일 수 있잖아요. 범인이 지금까지 은비를 해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해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범인이 위치추적기를 탐지할 수 있다면 가방에 추적기 부착은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가방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합시다. 그러다, 범인이 목격되어 체포가 가능한 상태에서 우리 형사들이 움직일 테니 사장님은 우리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절대로 눈에 띄지 않도록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음날 정현 지난번 되돌아온 돈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범인이 지정한 장소로 출발했다. 범인이 지난번과 같이 트렁크를 열어 놓으라는 등 구체적인 지시가 없어 분명히 제2의 장소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긴장은 되지만 곧 이 모든 악몽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정현이가 출발하자 장 반장도 조심스레 뒤를 따랐다.
약속한 장소에는 생각보다 한적한 것이 지난번과는 달랐다. 바람도 불고 황량한 느낌마저 드는 거리의 모습은 곧 다가올 겨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위에 형사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같이 범인이 인도로 접근할 가능성도 있어 그는 그쪽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지며 그의 긴장감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정확히 5시에 정현이의 전화가 울렸다.
“아버님! 장소를 좀 이동하겠습니다. 지금 출발하셔서 삼십 분 후에 상봉 버스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대시고 가방을 들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 안에 화장실 앞에 물품 보관함이 있는데 그 오른쪽 옆 소화기가 있습니다. 그 밑에 물품 보관함 키가 있는데 그 번호의 보관함에 가방을 넣고 잠근 후에 그 키를 다시 원위치에 넣고 아버님은 차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또 연락하겠습니다.”
“그럼, 우리 은비는 같이 있나요?”
“돈 받으면 한 시간 내로 은비 있는 곳을 알려 드립니다.”
정현이는 장 반장에게 알리지도 않고 서둘러 제2의 장소로 달려갔다. 장 반장도 은비아빠의 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뒤를 따르면서 잠복 중인 형사들에게도 사실을 알렸다.
범인이 말한 곳에 과연 유료 물품 보관함이 있었다. 서둘러 열쇠를 찾아보니 12번 함 키였다. 정현이는 주저 없이 보관함을 열고 가방을 넣은 뒤 다시 문을 잠근 후 열쇠를 제자리에 놓고 그는 주차장 차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대합실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장 반장은 버스 매표소로 다가가 표를 사는척하고 대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은비아빠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다. 화장실 부근 물품보관소는 유난히 어두웠다. 은비아빠가 가방을 그곳에 넣고 자리를 떠나자 형사를 따라 붙이고 그의 눈은 12번 보관함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까지 겹쳐 대합실 내부는 더욱 혼잡스러웠다. 그사이 벌써 보관함에는 두 사람이 다녀갔다. 그러나 범인이 나타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방이 들어있는 보관함에 접근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바로 이때 대합실 한편에서 ‘불이야!’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라 소동이 일었다. 쓰레기통에서 발생한 불길은 천장까지 넘실거렸고 사람들은 소화기를 찾아 우왕좌왕하였다.
‘드디어 놈이 나타나겠다고 팡파르를 울리는구나.’ 장 반장과 형사들은 바짝 긴장하며 물품 보관함을 주시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고, 관리원 복장을 한 남자가 뛰어와 보관함 옆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불이 다 꺼지고 사람들도 떠나갔지만, 보관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조용하기만 하였다.
이때 안에서 벌어진 상황을 모르고 주차장에서 초조하게 범인의 다음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정현이에게 범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님 돈은 잘 받았습니다. 돌아가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우리 아이는 어디 있어요. 이제 있는 곳을 알려준다고 했잖아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안전하게 돌아간 후 한 시간 뒤에 전화로 알려 드리지요. 아직도 저를 못 믿으시는 것입니까?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는 형사와 입구 쪽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 형사들 수고 많이 하셨다고 전해주세요.”
정현이는 장 반장에게 연락하지도 않고 물품 보관함으로 달려갔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해서야 무슨 범인을 잡겠다고 그러는지’ 그는 범인보다 형사들이 더 원망스러웠다.
보관함 문은 닫혀 있었고 소화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열쇠는 그 자리에 버려져 있었다. 급히 보관함을 열어보니 과연 가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멀리서 정현이의 모습을 본 장 반장이 급히 뛰어와 텅 빈 보관함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내가 계속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가져갔단 말인가? 불이 났을 때 붐비는 사람에 가린 순간에 가져갔다고? 그 짧은 시간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그 큰 가방을 들고 이동하는 것을 어떻게 못 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놈이 사람이야, 귀신이야?’ 장 반장은 허겁지겁 형사들에게 주위에 가방을 든 사람을 추적하라고 지시하고 현장을 조사하다 보니 보관함 옆에 있던 창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범인이 가방을 먼저 밖으로 던져 놓고 밖에서 집어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보관함을 비치고 있는 CCTV는 누군가 일부러 방향을 틀어놔 그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조작한 흔적이 있었다. 그 큰 가방을 들고 이곳을 걸어서 버젓이 빠져나갈 수는 없다. 형사들은 막 출발하려는 버스들을 전부 세우고 승객들과 짐칸을 조사하는 한편 터미널 주위에서 가방이나 짐 보따리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했다. 이때 이곳에서 조용히 형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터미널은 이미 어둠이 깊어 범인의 흔적을 찾지 못한 형사들이 모두 떠나자 그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호는 오늘 범인과의 접선으로 어쩌면 사건의 결말이 드러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경찰들도 이번만은 실수 없이 뭔가는 보여 줄 거야.’ 한편 구현이의 처남에 대한 의혹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홀가분하게 해소하기 위해서는 오늘 처남의 행적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범인이 나타나기로 한 5시가 가까워지자 그는 처남에게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매형.”
“차 소리 들리는 것 보니 외부에 있나 봐? 어디야?”
“예, 저는 지금 용산에 나와 있어요.”
“왜? 회사는 출근하지 않았나?”
“회사의 행사 비품을 사러 나왔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궁금해서 전화했네.”
“저 잘 있습니다. 영선이도 잘 있고 곧 매형 만나러 한번 가기로 했어요.”
“무슨 일로?”
“그냥 뵙고 싶어서요. 매형! 지금 차 소리 때문에 길게 통화하기 힘드니 곧 회사로 한번 들릴게요.” 준호는 처남을 믿고 싶었다.
“왜? 제2 장소로 이동하라는 범인의 연락을 받고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장 반장은 책임을 정현이에게 돌리는 듯 투덜거렸다.
“아니! 이보시오, 이렇게 매번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면서 그런 말이 나옵니까? 자칫 잘 못 되면 애 목숨만 위태롭게 할 텐데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믿고 전화를 했겠어요.”
“그래도 변한 상황은 알려 줬어야지요, 그래서 우리가 한발 빨리 대처했더라면 그놈을 잡을 수도 있지 않았겠어요.” 장 반장은 범인에게 어처구니없이 당한 분풀이라도 하듯 물러서지 않았다.
“자, 좋습니다. 결론은 좀 더 기다려봅시다. 이제 범인이 돈을 받아갔으니 그놈 말대로 은비가 돌아오기만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잖아요.” 준호가 얼굴을 붉히는 정현이를 달랬다.
장 반장은 정말 신출귀몰한 놈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형사 생활 20여 년 동안 이렇게 허무하게 당한 일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어느 틈에 가방을 빼내 갔을까? 분명히 분전함에서 열쇠를 찾아 문을 열어 가방을 꺼내고 문을 닫은 다음 열쇠를 다시 제자리에 놓고 갔다면 짧은 시간에 이뤄질 일이 아닌데, 그리고 그 보관함은 유료 아닌가? 돈을 지불해야 문을 열 수 있었을 텐데.’
“사장님! 보관함 열 때 돈은 어떻게 넣지 않았나요?”
“예! 동전을 넣는 구멍은 있었던 것 같은데 범인의 말대로 열쇠만 돌리면 그냥 열리고 닫혔어요.”
“범인이 그럼 미리 그 열쇠를 동전을 넣지 않아도 여닫을 수 있도록 조작해 놨다는 이야기네!”
그는 바로 터미널 현장으로 달려갔다. 12번 보관함은 이미 과학수사대에서 지문조사를 끝내고 키를 보관함에 꽂아 놓은 상태였다.
장 반장은 물품 보관함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 자물통은 열쇠만으로도 여닫을 수 있도록 조작되어 있었고 보관함 내부는 철판으로 모두 막혀 물건을 밖으로 빼낼 수가 없었다. 그는 버스터미널 시설관리과에 들러 물품 보관함 관리회사 담당자를 불렀다.
“동전 수거는 며칠 만에 하나요?”
“매주 한 번 화요일에 합니다.”
“그럼 여기 이 자물쇠가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바뀌어 있었나요?”
“…어! 이상하다. 이게 누가 이렇게 해놨지? 아니? 이것은 우리가 설치한 것이 아닌데요.”
“예? 무슨 소리죠?”
“우리 회사가 설치한 것은 여기 5줄이고 마지막 줄은 우리가 설치한 것이 아닙니다, 이번 화요일에도 못 봤는데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가? 외형이 아주 비슷하나 우리 것은 아닙니다.”
문제의 마지막 줄 보관함은 위아래 2칸으로 되어있었고 12번 아래 칸은 13번으로 잠겨 있었다.
“여기 13번은 지금 누가 사용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거 열어볼 수 없어요?” 장 반장은 물품 보관함 관리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자신들의 시설이 아니기에 자신들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장 반장은 결국 열쇠공을 수배하여 그곳을 강제로 열어보았지만, 그곳도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빈 보관함이 왜 잠겨있었지?’
“…어! 이거 이상합니다. 이게 조금 움직이는데요.” 13번 보관함 내부를 살피던 형사가 뭔가를 발견하고 소리를 쳤다. 놀랍게도 13번 보관함은 이중 함으로 되어있어 내부 함이 위쪽으로 밀면 12번 보관함으로 이동하게 되어있었다. 다시 말해 엘리베이터 식 구조로 12번 함에서 일정 이상 무게를 넣고 키를 잠그면 천천히 13번 함으로 내려오게 되어있었다. 정교하게 설계되어 제작된 장치였다.
“그래! 은비아빠가 돈 가방을 범인이 가져간 것을 확인했을 때에도 돈 가방은 13번 보관함에 있었던 거야. 범인이 돈을 가져갔다고 친절하게 알려준 것도 경찰들을 빨리 현장에서 떠나게 한 뒤 안전할 때 와서 13번에 있는 가방을 가져갈 계획이었어.”
방향이 틀어진 CCTV 상에는 마지막 줄 보관함을 누가 언제 가져다 놓았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은비 부부는 초조하게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범인의 말과 행동으로 볼 때 약속은 지킬 꼭 것이라는 믿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오후가 훌쩍 지나도 전화기는 조용하기만 했다. 전화기를 들어 혹시 고장이라도 나지 않았나 확인하기도 하고 혹시 대문을 열고 은비가 돌아오지 않나 대문을 활짝 열어두기도 했지만 흐르는 시간은 매정하기만 했다. 불안한 마음이 점점 공포로 바뀌어 가고 결국, 온통 세상이 흑백으로만 보였다.
은비 엄마는 절망으로 집에 있을 수가 없어 피폐한 몸을 일으켜 교회로 나갔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이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 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목사님! 어제 그들이 은비를 보내주기로 한 날인데 어떻게 될까요? 목사님이 기도 좀 해주세요. 저들의 마음을 온화하게 하여 은비가 오늘 집으로 꼭 돌아오게 하여 주세요.”
“은비 어머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좀 더 기운을 내셔야 합니다. 은비가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나 생명은 무사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목사는 단호하게 은비의 안전을 약속이라도 하듯이 은비 엄마를 위로하였다.
‘이거 틀렸어! 우리가 당한 것이야.’ 이튿날이 다 지나도록 은비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장 반장은 은비의 생존에 대한 회의가 강하게 일었다. 판단컨대, 범인이 면식 관계가 있다면 어떻게 은비를 살려서 보내겠느냐, 더구나 약속한 돈을 확실하게 받았다면 지금까지 아이를 잡아놓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늦었지만, 수사를 공개로 전환하여 전국적으로 시민 제보를 받아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더 이상 범인의 처분에 기대할 것이 없다면 이제는 경찰이 직접 발로 뛰어 은비를 찾아 나서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식사도 거른 채 범인 행적을 뒤쫓고 있는 추적팀을 찾았다.
“지금 어디까지 갔나?”
“상봉동 쪽은 지금 5km 정도에서 막혀 있고, 역삼동 것은 거의 20km까지 따라가고 있습니다.”
“길동은 누가 나가 있지?”
“조 형사와 이 형사가 캐고 있습니다.”
둔촌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범인 차량의 행방은 찾기 위해 주위 50여 개의 CCTV를 다 뒤져 보았으나 더 이상 그 차량을 발견할 수가 없자 그들은 검은색 체어맨을 찾아 근처를 골목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으로 형사들은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마지막 심정으로 CCTV 탐색 범위를 더 확대하고 그 시간에 근처를 지나간 버스들의 내부 영상기록도 제공받아 하루 밤낮을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 한 시내버스 CCTV에 해당 차량이 하남 방향으로 가는 장면을 발견한 형사들은 환호했지만, 곧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그 차는 사라졌다. 그곳은 번화가를 벗어나 한가한 동네로 더 이상 따라갈 CCTV도 지나간 시내버스도 없었다. ‘분명히 이 근처 같기는 한데.’ 두 형사는 온종일 근처를 샅샅이 헤매고 다녔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조 형사! 할 수 없이 내일은 하남으로 넘어갑시다.” 날이 어두워지자 형사들도 지쳤다.
“하남 쪽으로 가면 복잡해지는데, 범인이 서울시를 벗어나 이 멀리까지 범행을 저지르고 다녔을까요?”
“그래도 그곳에 범인의 행적이 발견되었으니 분명히 근처 어딘가에는 흔적이 나올 수 있을 거야! 내일 하루만 더 뒤져보자고, 반장님 표정 못 봤어? 지금 빈손으로 들어갈 수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