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권수길
17. 권수길
다음날 두 형사는 일찍 범인의 행적이 멈춘 곳으로 다시 향했다. 어느새 변두리에는 화려한 단풍이 그들의 심란한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속도 모르고 마누라는 계속 단풍 구경 가잖네요,”
“아직 젊어서 그래, 우리 나이 되면 귀찮아서 싫다고 할 거야, 젊어서 좋겠네, 하하하.”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성과를 얻어야 할 텐데.’ 그들은 아침 회의 때 느낀 험악한 사무실 분위기에 양어깨가 짓눌리고 있었다.
“잠깐! 조 형사! 여기 우리가 지난번에 지났던 길 아닌가?”
“언제요?”
“지난번 권수길인가 하는 사람 미행하며 따라갔던 길 아냐?”
“아, 이 길은 아니죠, 그것은 더 남쪽 길이였는데요.”
“그래? 그런데 차가 사라진 곳도 이 근처이고 그 공장 위치도 이 근처 아니었나? 그리고 그 사람 차도 체어맨이었고 지금 범인의 동선도 겹치는 것으로 볼 때, 이거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한 느낌이 오지 않아?”
“그때 그 사람 집과 그 공장을 조사했었지만, 이 사건 하고는 관련 사항이 없었잖아요.”
“관련이 없기는,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상표법 위반이 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다른 생각을 미처 못한 체 우리가 너무 쉽게 손을 놓은 게 아닐까? 그 사람 지금 어떻게 되었지?”
“지금 재판받고 있지요, 불구속 상태로.”
“그곳 위치 알지? 오늘 다른 것 보다 그 공장부터 다시 가보자.”
그곳은 여전히 조용했고 인적도 없었다. 권 사장 차도 보이지 않았고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는 것이 아무도 없는 것이 확실했다. 문 앞에 쌓인 우편물도 그가 며칠간 이곳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장은 모든 곳이 잠겨있어 내부의 정황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들어오는 길 어귀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점심도 먹지 못해 그들은 호빵을 꺼내 허겁지겁 먹으면서 그 공장 사정에 대하여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저 골목 끝에 공장은 요즘 일을 안 합니까?”
“왜? 지금 아무도 없나요? 얼마 전까지는 문을 열었던 것 같은데요. 무슨 일입니까?”
“예, 어린아이 유괴사건을 수사 중인데 혹시 그곳에서 이상한 점 보신 것 없나요, 이 아이 사진을 한번 봐주세요.”
“예!”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왜 그러세요?”
“형사님! 저 일주일 전인가, 저녁 늦게 그 차가 큰길로 진입하려고 잠깐 요 앞에 멈췄었는데 그 사장이 운전하고 뒤 자리에 그 공장 여자가 비슷한 아이를 데리고 있었던 것을 본 것 같아요. 어두워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게 불빛에 잠깐 비쳐서 본 것 같습니다. 그때는 무심코 그 집 자녀이려니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가끔 보았거든요.”
“혹시 여자아이였었나요? 몇 살이나 되어 보였어요?”
“예. 여자아이는 맞는데, 대여섯 살 되어 보였어요.” 형사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기, 그게 일주일 전이면 22일인데 확실히 그날이 맞나요?”
“가만히 보자, 내가 약속이 있어 좀 늦게 나간 날이니까, 21일이네요, 수요일.” 그날은 범인이 터미널에서 돈 가방을 가지고 사라진 다음 날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혹시 그 사람 보거들랑 우리 만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 주세요.”
그들은 흥분했다. 본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그 공장과 권수길 주택을 수색할 수 있도록 영장준비를 요청한 후 바로 권수길 집으로 향하였다. 곧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에 배고프고 피곤함이 말끔히 사라졌다.
권수길이 살고 있다는 다가구 주택의 1층은 잠긴 채 불이 모두 꺼져 고요했다.
“어떻게 합니까? 영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까요?”
“안돼! 어쩌면 영장이 오늘 떨어지기는 힘들지 몰라!” 형사는 2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이 건물 주인 되십니까?”
“그런데 누구십니까?”
“우리는 중부서에서 나온 형사들입니다. 잠시 협조 좀 부탁합니다. 1층 권수길 씨 가족은 요즘 어데 갔나요?” 그녀는 놀란 눈으로 답변했다.
“아! 지난주 초에 이사 가고 그 집은 지금 비어 있어요.”
“예? 이사 갔어요?” 형사들은 뒤통수가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이곳에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하남이라고 했던 것 같았어요, 아직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았는데 사정이 생겼다고 전세금 빼서 급하게 떠났어요.”
“혹시 그 집 자녀들은 없나요?”
“예! 애를 갖고 싶어 노력했는데 잘 안 돼서 그런지 우리 애들을 엄청 예뻐하는 것 보면 안 되기도 했어요.”
“그분들 사는 형편은 어떤가요? 집세는 잘 냈나요?”
“형편은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삼 년 전에 이사 왔는데 공장이 잘되지 않아 빚을 많이 져 살던 집까지 처분하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어요. 월세도 계속 밀리다가 이사 가기 전 한꺼번에 다 지불했지요.”
“그분들은 성격은 어떻습니까?”
“두 내외가 법 없이도 살 사람들입니다. 누구한테 원한 사고 할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요. 남편은 말이 없어 좀 어려웠지만, 부인은 조선족 출신이라는데 성격이 활달하고 누구나 호감을 느끼는 편이거든요.”
“조선족요?” 형사는 뜻밖의 사실에 귀가 번쩍 띄었다. ‘조선족이라면 은비의 집 도우미 아주머니도 조선족이었는데’
“그럼 혹시 근래에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을 보거나 아이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나요?”
“아이요?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갑자기 무서워지는데 그 사람들이 무슨 큰일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단순 참고인으로 수사상 필요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 외 뭐 특별한 사항은 없습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알려주세요.”
“그 사람들이 요즘 별로 집에 있지도 않은데 쓰레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주로 배달음식과 택배 상자 들인데 권수길이 퇴근 때 공장에서 가지고 와 버리는 것 같았어요.”
“감사합니다.” 형사들은 바로 동사무소에 들러 권수길 전출내용을 확인하려 했지만, 아직 전출신고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형사들은 공장 주위에서 그날 밤새 잠복을 했으나 권수길 부부는 돌아올 기미가 전혀 없었다.
“과연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날이 밝기가 무섭게 수사본부는 부산해졌다. 영장을 발급받아 권수길 공장과 집을 수색하고 연고지에도 형사들을 급파해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강제로 열고 들어간 권수길 공장 내부 모습은 지난번과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형사들은 내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은비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좀처럼 특이사항이 나오지 않자 김 형사는 지하실로 내려가 외부 바닥과 벽체를 두드리며 다니다 문뜩 걸음을 멈추고 반대편 벽을 쳐다보았다. 그는 걸음으로 반대편 벽까지의 거리를 재더니 1층으로 올라가 같은 위치의 거리를 재 보았다.
“거리가 많이 차이가 나네, 어쩌면 이 벽 뒤에 제3의 비밀 공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공구선반으로 짜인 벽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선반 벽 일부가 열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걸쇠를 찾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는데 안에서 쾌쾌한 음식 냄새와 함께 칠흑 같은 공간을 발견하였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밝혀본 결과 놀라웠다. 그곳에는 최소 열 평 이상의 공간으로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침대, 책상. 화장실 및 샤워실 심지어 에어컨까지 설치되어 있었고 최근까지 사용한 후 청소까지 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때 조 형사는 눈에 비친 책상의 모습에 주목했다.
‘이거 범인이 보낸 은비 사진 속의 그 책상 아닌가?’ 그는 사진과 현장을 비교해 본 결과 은비가 계속 이곳에 있었던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지난번 우리가 이곳을 조사하였을 때에도 은비가 바로 옆에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드디어 범인을 특정하게 되자, 그는 바로 본부에 보고하였다.
“반장님! 권수길이 범인이 확실합니다. 사진과 현장이 일치합니다.” 조 형사의 흥분된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통해 형사과 사무실을 울렸다.
“그래, 그래! 잘했어! 내가 지금 그곳으로 갈 테니까 그곳은 이제 과학수사대에 넘겨 조사하게 하고 조 형사는 권수길 집 수색팀과 같이 그들의 행방을 찾도록 해. 지금 그 연고지에도 사람을 보냈으니 우선 그들이 갈 만한 곳을 찾아야만 해! 아이의 신상에 언제 어떻게 변화가 생길지 모르니 서둘러야 해. 그나저나 어제 잠도 못 잤을 텐데 괜찮겠나, 오후에 다른 사람으로 교대시켜 줄 테니 그때까지만 수고 좀 해요.”
“지금 잠이 문제가 아니고, 그 두 사람 전화기 추적결과는 아직 없나요?”
“그자들이 전화기를 계속 꺼놓고 있어 감지가 안 되고 그 후 생활반응도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이미 잠적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네. 지금 고속도로 CCTV도 전부 조사하고 있는데 분명히 그자가 가짜 번호판을 달고 있어서 차를 특정하기도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들어 당장 그들의 위치를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 같네.”
“그런데 그 권수길 아내가 조선족이라는데 그 집 도우미 아주머니도 조선족이었잖아요? 빨리 둘의 연관성도 조사해 봐야겠는데요. 또 이들이 이곳에서 아무 흔적이 없다면 이미 중국으로 밀항할 가능성도 있으니 그쪽으로도 알아봐야겠어요.” 장 반장은 일이 마무리되어 가기보다 더 어렵고 복잡해진 기분이 들었다.
구현이는 자신이 제보한 내용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가 궁금해 수사본부를 다시 찾아갔다.
“우리가 그 제보에 따른 혐의자에 대한 조사와 집 집마다 방문하여 목격자에 정보를 탐문했는데 아직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계속 수사는 하는 중입니다.” 경찰들은 그의 방문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어제도 내가 그 아파트에 가봤는데 형사들은 아무도 없던데요.” 그 또한 불만이 많았다.
“선생님의 제보는 고마운데. 지금 우리가 다른 급한 일이 있어 그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요, 수사가 끝나는 대로 결과를 알려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경찰의 신경은 온통 권수길에게 쏠려 다른 일은 염두에도 없었다.
그는 실망하여 경찰서를 나섰다. ‘역시 경찰들은 믿을만한 것이 못돼, 괜히 들쑤셔서 범인들만 더 숨어들게 하였잖아.’ 그는 다시 오영선의 남자 친구 준구의 집을 찾아가 무슨 실마리든지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만 쳐다보고 있는데 차가워지는 날씨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어린것이 얼마나 따뜻한 엄마 품이 그리울까. 조금만 더 이곳을 조사하면 분명히 뭔가 나올 텐데.’ 그는 경찰은 물론 형 부부 등 모든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권수길, 김재 호평서동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이 어려워 지방에서 혼자의 힘으로 전문대 기계과를 겨우 졸업했다. 그 후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생활도 시작하였다. 그러나 박봉에 시달린 직장 생활은 곧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새로이 시작한 철물점이 운영이 잘되어 제법 돈을 벌기도 한 그는 좀 더 욕심을 부려 기계부품 제작 회사를 설립하는 등 의욕적으로 활동에 나섰다.
이때, 옛 직장 시절에 알게 된 구현이를 통하여 태광산업에 부품을 납품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회라고 생각했던 그 계약은 치명적인 위기로 돌아올 줄을 몰랐다. 납품한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여 다툼이 생겼고 결국 물품대금을 받지 못하게 되어 회사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 뒤 대금의 일부라도 받아보려고 노력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회사를 파산 정리하고 지금은 하남에 작은 철물 제작소를 운영하는 중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6개월 전.
산부인과를 나온 연자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을 향한 어떤 눈길이 낯설지가 않았다. ‘누구지?’
“저 혹시 중국에서 오지 않으셨어요?” 1층에서 뒤따라 내린 그녀의 말에 몇 년 전 문화센터에서 같이 교육을 받았던 그녀가 생각났다.
“아 그때 그 언니! ” 답답한 일상에서 모처럼 고향 사람을 만난 그들은 더 없어 반가웠다. 하소연할 곳 없는 타지의 고생은 그녀들을 장시간 서로 붙잡게 하였다. 희진이는 연자보다 5년 연상으로 이곳에서 결혼 후 삼 년 만에 이혼하여 아이 둘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그럼 언니는 생활비를 어떻게 해요?”
“처음에는 공장일을 했는데 너무 힘들고 아이들 때문에 그만두고 지금은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지. 주인만 잘 만나면 수입도 그렇고 시간적 여유도 있어 괜찮지. 그때 연자 신랑도 사업한다고 했지, 그간 돈 좀 많이 벌었어?” 갑자기 연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도 그게 잘 안되었어요. 한참 잘 되었는데 사고가 한번 나니까 바로 부도가 나서 다 접고, 지금은 작은 공업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요즘 경기가 신통치 않아 힘들어요.”
“저런 그러면 연자도 직장을 얻어야 하지 않아? 내가 좀 알아 봐줄까.”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남편이 혼자 그 일을 할 수 없어서 지금 같이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아직 아이도 없어 큰돈이 들지 않아 그냥 버티며 사는 중입니다. 필요하면 내가 언니에게 부탁할게요.” 연자는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찹찹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모든 면에서 자신의 처지가 한결 나았는데 지금은 그녀의 표정이 훨씬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희진이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그 후 한참이 지나서였다.
“연자 씨! 다음 주 화요일 혹시 시간이 되면 나 좀 도와줄 수 있나?”
“무슨 일인데요?”
“여기 주인집이 봄맞이 대청소를 하는데 하루 일손이 좀 필요해 연자하고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보수는 일당 10만 원이니 괜찮은 편이거든.”
“내가 남편에게 물어보고 오늘 중으로 전화해 줄게요.”
유난히 봄 향기가 집 밖으로 유혹하는 날, 연자는 희진이가 하는 일도 궁금하고 부잣집 구경도 할 겸 아침 일찍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정원수에 가려 밖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집은 웅장한 전면 유리창을 통하여 외부 정원과 자연스럽게 연계된 현대식 건물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살아보고픈 그런 집이었다.
“언니는 매일 이런 곳에서 지내니 좋겠어!”
“다 그림의 떡이지, 내 눈에는 다 일거리로밖에 안 보여.”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실에 걸린 사진을 연자는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주인 가족이야, 아직 젊지.” ‘저 여자는 얼마나 복이 많아 부자 남편과 저렇게 예쁜 딸을 얻어 이런 천국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지.’ 자신은 죽었다 다시 살아나도 저들과 같이 될 수 없다는 허탈감에 연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집에 돌아와 저녁 밥상에 앉은 그녀는 말이 없었다.
“오늘 다녀온 곳은 어땠어?” 아내의 눈치를 살피던 권수길이 물었다. 흠! 한숨을 쉬던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지금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야. 같은 땅에서 산다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야! 그런 집에서 사는 사람이 정말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여보 우리도 다 정리하고 중국으로 들어가서 살아볼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도저히 이곳에서는 답이 없을 것 같아.”
“그렇다고 그곳에는 방법이 있나? 이곳보다 더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잖아?”
“그래도 거기는 모두 비슷하여 마음은 편할 것 같아, 그런데 여보! 그 집 남자가 태광산업인가 하는 회사 사장이라고 하는데, 어디서 들어본 회사 아니야?”
“어? 태광산업? 태광산업주식회사? 우리가 옛날에 거래했던 그 태광산업이라고? 설마, 이름이 같은 회사가 많지. 혹시 그 집이 연희동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
“맞아! 서대문구 연희동!” 갑자기 권수길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
연자는 은비의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어린이 놀이터의 은비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응! 너 은비 아니니? 너 어렸을 때 봤었는데 어쩜 이렇게 컸니!”
“아줌마는 누구세요?”
“아! 나는 혜리엄마야, 네 엄마와도 친한 친구야!” 은비는 동래 친구 혜리를 생각하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혜리 점심때 봤는데요.”
“응! 혜리는 지금 학원 갔어. 그런데 은비가 너무 예뻐졌네! 가만있자, 아줌마가 저기 큰길 제과점에서 네게 과자를 좀 사주고 싶은데 같이 가서 너 좋아하는 것을 골라보지 않겠니?”
“그런데요, 선생님이 처음 보는 사람은 절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요.” 은비는 주저하면서 주위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생각보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았고, 은비의 태도로 봐서 그곳에서 은비를 데려오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 똑똑하기도 해! 그래야지, 그럼 아줌마는 갈게, 다닐 때 차 조심하고 집에 일찍 일찍 다니도록 해, 다음에 아줌마 보면 인사 잘하고, 알았지!”
“예~ 안녕히 가세요.”
연자가 은비 집 근처에 다시 나타난 것은 은비 엄마가 해외에 나갔을 때이다.
“은비, 안녕!”
“안녕하세요.”
“은비야! 엄마 해외 가셨지? 엄마가 가시기 전에 너 도형 그리기 용품이 필요하다고 내게 부탁하셨는데 내가 좀 늦었구나. 미안해!”
얼떨결에 물건 봉지를 건너 받은 은비는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했다.
“참! 엄마가 돌아오실 때 아줌마도 엄마 보러 올 거야, 그날 보자, 저녁 식사시간 됐는데 어서 집에 들어가야지. 감기도 조심하고 건강하게 잘 있어!”
사건이 발생하던 당일 권수길 부부는 낡은 체어맨 승용차를 몰고 은비 학교 앞에 다시 나타났다. 엄마 마중 나간다고 학교에서 일찍 나온 은비는 학교 정문 앞에 서 있는 차가 당연히 아빠 차로 생각하고 열려 있는 뒷문으로 타려다 주춤하더니 차 안에 앉아있는 연자를 보고 인사를 했다.
“아빠는요?”
“집에서 기다리고 계셔, 엄마가 곧 공항에 도착한다고 은비를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지금 가야 해! 어서 가자.” 그녀는 은비의 손을 끌어 옆에 앉혔다.
“예? 연자가요?” 형사의 이야기에 도우미 아주머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 그녀는 연자가 이 집 방문했던 사실을 떠올리면서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싶었다.
“맞아요, 지난봄에 그 여자가 이 집 대청소 때문에 한 번 왔었던 일이 있었어요,” 마치 자신 때문에 은비가 잘못되기라도 한 양 몸과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어떻게 이 집을 오게 되었어요?”
“제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서로 친하게 지내셨나요?”
“아주 친한 것은 아닌데 그때 우연히 만난 뒤로 몇 번 만났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만난 적이 없나요?”
“이곳을 다녀간 뒤로는 연락하거나 만난 적은 없어요.”
“이곳에 와서 뭐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았나요?”
“여기 와서 저 가족사진을 한참 보고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여자가 남편과 같이 은비를 데리고 행적을 감췄거든요, 혹시 그들이 갈만한 곳이 어디인지 생각나는 곳은 없나요?”
“그 여자는 이곳에 연고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갈 곳이란 남편의 연고지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형사님! 제발 우리 은비 좀 찾아주세요, 빨리요.” 그녀는 은비 엄마의 분노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졌다. ‘어쩌자고 그런 사람을 집에 불러들여 우리 집을 풍비박산을 내놨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