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도피

18. 도피

by 왕십리

18. 도피



경찰들은 사라진 그들의 행적을 찾아 권수길 고향과 연고지를 뒤지고 다니는 한편 계속 전화 사용이나 생활반응을 살피는 등 하루를 바삐 보냈지만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자 결국 부랴부랴 사건을 전국에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속보입니다. 경찰은 두 달 전에 유괴 실종된 여자 어린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사진 속의 황 은비 양은 초등학교 1학년으로 지난 8월 16일 학교 앞에서 실종되어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그동안 유력한 용의자들을 파악하여 추적 중이라고 밝히면서 그들의 신상을 공개하여 주민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청자들께서는 다음 영상 속 용의자들의 모습을 기억하시고 많은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대대적인 방송으로 전국에서 들어온 제보를 확인하러 경찰들은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래서는 인력도 제한적인데 수사에 혼선만 가져와서 오히려 사건 해결에 지장이 많을 것 같으니 가능성이 희박한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유력한 정보에만 집중하기로 하자.” 장 반장은 허둥대는 직원들을 채근했다. 그런 중에 수사본부로 들어온 제보가 하나 있었다.

“여보세요. 확실치 않아 제보하지 않으려 했는데, 자꾸 마음에 걸려 전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19일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반대편 도로를 걸어가는 여자와 아이를 안은 남자를 보았는데 어두워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 새벽에 아이까지 데리고 인적 드문 그 길을 걷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아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혹시 어린아이가 여자아이였나요?”

“그것은 확실히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그 지역이 그들의 연고와는 전혀 관련이 없기는 하지만 그곳이 해안과 가까운 지역이라서 혹시 그들이 밀항이라도 하려고 갔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형사들을 급파하였다. 그들은 권수길 부부가 그곳에 있었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목격되었다는 장소를 중심으로 추가 목격자와 권수길 부부가 이용했을 차량과 숙박업소 등을 찾아 나섰다.

그런 와중에 은비와 비슷한 아이와 역시 여자 용의자와 비슷한 여자를 권수길 부부의 행적이 끊긴 곳에서 멀지 않은 콘도에서 보았다는 신고에 형사들은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숙박객들과 차량을 조사하였다. 산속에 은신하고 있을지 몰라 주변 계곡과 숲을 뒤져 보았고 외부로 나가는 도로에서 검문과 검색을 하였지만 역시 그들의 모습은 찾아내지 못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이렇게 아무런 흔적이 없을 수가 있을까?”

그러자 권수길의 차량이 군산 국제여객터미널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형사들은 화들짝 놀랐다. 달려가 뒤늦게 확인해 본 결과, 그들은 경찰로부터 범인으로 특정되기 하루 전에 이미 중국 청도로 출국한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밀항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했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버젓이 공항이나 항만을 빠져나갈 것은 미처 생각을 못 했었다. 어떻게 은비의 여권도 없이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였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결국, 은비는 황 은지라는 위조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용의자들이 특정되어 사건이 바로 해결될 것으로 흥분했던 경찰은 무거운 침묵에 싸여 있었고 무능하다는 비판 소리가 매스컴을 가득 채웠다.

당시 정치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도 기대하기 어려운 탓에, 많은 현상금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기약 없이 흘러갔고 그 공백은 오로지 정현이 부부의 고통으로 채워야 했었다.


수길은 애초부터 은비를 해칠 생각은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현이 회사에 대한 앙심으로 벌린 일이지만 목적만 달성하면 자신들은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은비도 안전하게 돌려보낼 계획이었다. 그날 은비를 납치하여 하남 공장 지하 은신처로 데리고 온 아내는 24시간을 곁에서 은비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보살피며 환심을 사기에 노력했다. 유난히 맑은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로 귀티가 넘치는 은비의 모습에 자신은 평생 가질 수 없는 보물을 훔쳐 숨겨놓은 듯 은비를 볼 때마다 뛰는 심장을 느낄 수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유모의 손에서 자라온 은비도 엄마에 대한 집착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받아주는 연자의 손길을 크게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초긴장 상황에서도 은비와의 행복한 시간에 빠져들고 있었다. 대담하게 은비를 데리고 공원도 다녀오고 병원도 다니면서 은비에 대한 애착을 키워만 갔다.

“여보! 우리 은비 데리고 가면 안 돼? 이왕 이렇게 된 것, 은비를 우리가 키우면 안 될까?” 애초 남편의 뜻에 따라 이 사건에 가담하게 된 권수길의 처는 시간이 갈수록 돈보다 은비에 대한 욕심이 더 커졌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떻게 우리가 애를 데리고 있어? 정신이 있는 거야? 우리가 지금 아이를 입양한 것으로 착각하지 마!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지금 우리 다 죽는다.”

그러나 권수길은 며칠 동안 부지런히 다니면서 무엇인가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돈까지 성공적으로 챙긴 권수길은 돈을 차명계좌에 입금한 뒤 서둘러 공장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것 다 버려!”

“안 돼요, 이것까지만 가져갑시다.” 처는 은비의 옷과 먹을 것, 장난감과 학용품들을 우선 챙겼다.

“그것 가지고 배 못 타! 그곳에 가면 새로 사면 되잖아!”

“내 옷을 다 버릴 테니 이것은 가져가야 해요. 그곳에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녀는 은비 물건만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남편에게 애원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권수길은 약 기운에 잠든 은비를 안고 공장을 나섰다. 늦게 군산의 한 여관에 도착한 그들은 가져온 햄버거로 저녁을 마친 후 다음날 출항시간까지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귀엽게만 자란 녀석이 이게 무슨 고생이냐. 아가야 미안하다. 우리 조금만 참고 견디자.’ 은비의 자는 얼굴을 내려다본 처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여보! 아기는 여기에 두고 우리만 갈까?”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였다.

“지금? 그래도 되겠어? 괜찮아?” 그는 반색하며 되물었다.

“너무 얘한테 죄를 짓고 있는 것 같고, 무서워!”

“그래! 잘 생각했어! 그게 우리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야. 은비 여권이 잘못하면 통관에서 걸릴 수도 있어. 그럼 우리 인생은 모두 끝나는 거야. 너무 위험해!”

“위험하다고? 그럴 일은 없다면서요?”

“하여튼, 내일 출발할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하기로 하고 오늘은 일찍 자도록 해! 내일부터 험난한 날이 될 거야.”

은비를 놓고 갈 생각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처는 남편이 깨기를 기다렸다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은비 놓고 갈 수 없어! 차라리 내가 혼자 은비 데리고 이곳에서 살면 살았지 그냥 갈 수 없어.” 아내의 완강한 태도에 권수길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애를 이곳에 놓고 간다면 우리가 한국을 떠나는 시간이 불확실해서 금방 우리의 위치가 탄로 나 경찰들이 추적할지 모르잖아요, 너무 늦었어요. 내가 은비는 책임지고 안전하게 챙길 테니 우리 데리고 갑시다.”

힘든 여정을 예상이라도 한 듯 권수길의 품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은비를 안고 그들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터미널 안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어느덧 시간은 눈보라 흩어지는 겨울 문턱에 달했다.

‘이 추위에 어린것이 그 멀고 험악한 땅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과연 안전하게나 지내고 있을까.’ 그동안 은비가 가까운 곳에 잡혀 있었는데도 구하지 못하고 아주 멀리 떠나보내버린 애통한 마음이 그들을 비참하게 했다.

“지금 외무부와 경찰청을 통하여 중국의 협력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이 없다면, 이제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놈들이 우리 애를 데려다가 어떻게 하려고 한 것일까요? 설마 고생을 시키거나 인신매매를 하지는 않을까요? 우리가 중국으로 가서 대사관에 시위라도 한번 하는 것이 어떨까요? ”

“현재 중국과의 수사 공조 체계도 없을뿐더러 지금 정치적인 관계도 좋지 않은데 자칫 역효과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이와 같이 다니면 힘들고 남의 눈에 띄어 위험할 텐데도 불구하고 공을 들여 중국까지 데리고 갔다는 것은 아이를 해치거나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힘드시지만 시간이 필요하니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경찰의 설명에도 좀처럼 마음을 잡을 수 없어 애만 태우던 정현이 부부는 막막한 현실에 나날이 지쳐만 갔다.


몇 개월 후 중국으로부터 더 이상 협조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되자 경찰은 사실상 은비의 사건에 손을 놓아버린 상태로, 가족들의 속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앉아만 있을 수는 없잖아.” 정현이는 점점 무너지는 아내의 몰골을 보고 무슨 수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 사람이라도 보내서 찾아봐야겠는데, 어떻게 수사관 출신으로 적당한 사람이 없을까?”

“그것이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는데 누가 가족들 마음같이 열심히 찾으러 다닐 수 있을까, 차라리 구현이를 보내면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지 않겠어.” 준호는 구현이가 은비에 대한 마음이 지극하고 또 지난번 은비를 찾는다고 여기저기 다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 구현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은비와 권수길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내가 가서 은비를 찾아오겠소.” 중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구현이를 은비 찾으러 중국으로 보내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가족들의 처사였다.

“작은 아빠만 믿겠습니다.” 구현이를 그렇게 싫어하던 형수도 시동생의 손을 잡으며 간곡하게 부탁하고 나섰다.


그렇게 베이징 공항에 내려선 구현이는 흑갈색 연무와 낯선 냄새에 앞으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망막하고 심란한 마음이 앞섰지만, 이 땅 어디엔가는 은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심장은 두근거리고 얼굴은 투지로 굳어졌다. 공항에는 미리 약속된 조선족 이 씨가 나와 있었다. 정현이 집의 도우미 아주머니 인척이기도 하면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그는 과거 한국에 거주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비록 나이가 젊지는 않지만, 체격이 건장하고 운전도 할 수 있어 구현이의 보디가드 겸하여 여러모로 도움이 될법했다.


수길이 입국했을 칭다오와 가깝고 모든 정보가 모여 있을 베이징과도 가까운 텐진에 거처를 잡은 구현이는 다음날 먼저 이 씨를 앞세워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다.

“네, 사건 내용은 잘 알고 있습니다.” 범인과 은비 사진이 들어있는 파일을 펼치며 마주 앉은 참사관은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이미 이곳 경찰에 협조 의뢰가 되어있고 지금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직접 찾아 나선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범인들이 착실히 중국 내에 머물러 있는지 이웃 주변국으로 빠져나갔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칫 외교 마찰을 일으킬 수 있으니 이곳 수사결과를 좀 더 기다려보는 것이 좋겠는데요. 잘 아시겠지만 지금 한중 관계가 정치적으로 경색되어 있어 부쩍 조심해야 할 때입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만 우리는 뭐 외교 마찰 같은 것은 잘 모르고 또 그럴 주제도 못되지만 단지, 우리 아이가 무사한지 확인만 할 뿐입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거기까지는 우리가 말릴 수가 없지만, 행여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있거나 폭행 등 불법적인 일은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물론 이곳에서 개인이 범인들의 소식이나 소재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지만 말입니다.” 소극적이고 보신 위주의 대사관을 나서면서, 그는 서울에서 떠나올 때 대사관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니 기대는 하지 말라는 준호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넓은 중국 지도에 현재 자신의 위치와 권수길 처의 고향 상추를 표시한 뒤 어디서부터 찾아 나서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시작하실 것인가요?” 이 씨 또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이것은 어쩌면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선 이것부터 뿌리도록 합시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광고지 더미를 보며 말했다.

“한국인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을 중심으로 광고지를 배포하면서 탐문해 나가도록 합시다. 그러다 보면 더 좋은 방법도 생길 것이고 또 우리를 돕겠다고 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겠어요.”

“이곳에서는 광고물을 길거리에 뿌리거나 붙이지는 못하고 음식점이나 상점 내부에 게시토록 일일이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전 지역을 방문하여 그렇게 한다는 것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고 또 중간중간에 들어온 제보도 확인하러 다녀야 하는데, 아마 몇십 년이 걸릴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씨의 설명을 들은 구현이는 길어야 일이 년이면 실마리가 잡힐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큰 지도를 들여다보니 그 막막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운 좋게 금방 해결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우리는 꼭 해야 할 일이니 희망을 걸고 해 봅시다.”

그는 아무리 험한 산길이라도 찾아가겠다는 생각으로 구동력이 좋은 밴을 구매하여 차량의 좌우에 범인과 은비의 사진을 붙이고 광고 인쇄물도 가득 실었다.


연자는 급히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여보! 여보! 큰일 났어!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하겠어요.”

“왜? 왜 그래?” 더 놀란 권수길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능평 삼촌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공안에서 사람이 나와 우리와 관해 자세히 조사하고 갔데요.” 그는 털이 곤두섰다.

“그래서 삼촌은 그들에게 뭐라고 했나?”

“우리가 아직 한국에 있고 연락도 끊긴 지 십 년이 넘었다고 하긴 했는데 아마 곧 이쪽으로도 조사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하네요.”

“벌써 한국에서 손을 쓰고 있는 모양인데, 어서 서두르자, 은비는 어디 있나.” 생각보다 빨리 그들이 찾아온 바람에 위기감에 휩싸였다.

은비야! 은비야!” 그녀는 황급히 은비를 찾아 앉혔다. 긴 머리를 자르고 하얀 얼굴도 검게 하여 사내아이로 변장시켰다. 다행히 어리둥절하면서도 은비는 그녀의 말을 잘 따라 주었다. 늦은 밤 그들은 조용히 그곳에서 다시 자취를 감추었고 그 후 그곳에서 그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은평 삼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