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추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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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아침은 아직 이른 가을인데도 서리꽃이 피었다. 떠오르는 햇빛에 산등선의 화려한 단풍이 눈에 부시지만, 정현의 처는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간은 은비가 사라진 날 전후로 나뉘어 있었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언제쯤 가야 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생전에 그럴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절망에, 차라리 이곳 어디에 조용히 묻혀 깊이 잠들고 싶었다. 자꾸 약해지는 믿음을 다 잡으려 어제 이 기도원에 들어왔지만 모든 것이 버거워지면서 지쳐가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님은 왜 저를 세상에 불러 이런 고난을 주시며 제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련으로 단련되기를 위함이라면 제가 왜 단련이 되어야 하는지요? 이제 낙엽이 지고 바람도 불며 무심한 시간은 또 지나가겠지요. 그다음은요? 나는요?’
시간이 지날수록 은비를 잊지 못해 나타난 아내의 정신건강 상태가 위험 수준이라는 진단이 나오자 정현이의 걱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여보, 이러다가 우리 모두 제대로 살 수가 없을 것 같소, 목사님 말씀도 그렇고, 경찰들이 하는 말도 그렇고 우리 은비는 반드시 잘 살아있다고 당신도 믿고 있지 않소. 그러면 언젠가는 은비가 돌아올 것이라고 우리가 모두 믿고 있으니 너무 애달파하지 말고 마음을 조금만 편하게 갖도록 합시다, 은비가 후에 돌아와도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만날 수 있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소.”
“당연히 우리가 있어야죠, 그때 우리가 없어 은비를 못 만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지요.”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우리 사내아이를 한 명 입양해서 키워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 그는 조심스럽게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아이에게 신경을 쓰다 보면 은비로 인한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은비가 돌아올 날이 오지 않겠소?” 등을 돌리고 앉아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그녀의 등이 이내 들썩이더니 급기야 큰소리로 오열하기 시작했다.
“끄억끄억! 이제 잊자는 것이요,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해! 어떻게 은비를 잊고 다른 아이를 생각할 수가 있어! 엉엉! 그렇게 고통스러우면 우리 헤어지자고, 은비와 나를 잊고 당신 혼자 편히 살면 되잖아! 이 마당에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해! 엉엉~.” 그녀는 두 다리를 뻗고 바닥을 치며 통곡을 했다.
“내가 잘못했소, 어찌 우리가 은비를 잊을 수 있다는 말이요, 그런 뜻이 아니니 제발 진정 좀 하구려.” 그는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아내를 진정시키기에 안간힘을 썼다.
‘그래! 언제 돌아오던지 살아만 있어라. 목사님도 은비는 안전하게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은비야 부디 조금만 참고 기다려, 곧 엄마가 데리러 갈 테니.’
은비 엄마는 매일매일 은비의 안전을 위한 기도를 위해 교회에 기거하다시피 하였다.
숨을 쉬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굶어도 배고픈지를 모르겠다. 햇볕의 따스함도 모르고 몰아치는 바람에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정현은 자신의 부도덕한 처신을, 아내는 평소 은비와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죄를 대신하여 어린 은비가 벌을 받고 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사랑하고픈 포근한 함박눈이 한에 서린 세상을 덮어 버리듯 쌓이고 있다. ‘어쩌면 은비가 있는 곳 창밖에도 이 눈이 내리고 있겠지, 어디서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나중에 이 엄마를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하나, 오늘따라 한없이 보고 싶구나.’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깊은 밤에 눈과 함께 쌓여만 간다.
주일 아침에 은비 엄마는 교회로 향하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내 앞에 보이는 저 십자가 실체가 뭘까, 나는 애타도록 바라보건만 과연 저렇듯 허공에 매달려 나를 굽어볼 수는 있을까. 나는 온몸과 마음을 기대고 있는 것만 하나님은 그 무게를 느끼고는 있는지,’ 그렇게 붙들고 있던 십자가가 오늘따라 너무 무심하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따스하진 날씨에 움츠러들던 몸이 조금 풀리는 듯했지만, 동서를 보나 남북을 보나 갈 곳을 잃은 황망한 마음은 오는 봄도 비껴가는 듯했다. 왁자지껄 뛰며 지나던 여자아이들, 갑자기 멈춰 서서 인사들을 한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돌아보았다.
“그래! 너희들 누구니?”
“저 서영이요!”
“서영이? 우리 은비 친구 서영이?”
“예!” 서영이는 은비 이야기가 나오자 곧 침울해졌다.
“세상에! 너 지금 몇 학년인데 이렇게 컸니?”
“6학년 예요.”
“6학년! 벌써 6년이 흘렀단 말인가. 너는 어쩜 이렇게 예쁘게도 컸느냐! 부모님이 얼마나 행복하실까!” 그녀는 날리는 꽃잎 속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한없어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에게만 잔인한 세월을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애써 외면했던 은비 찾는 광고지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항상 자신을 보고 반갑게 웃고 있는 딸아이, ‘너는 언제까지 그곳에 그렇게 있을 테냐. 조금 전 지나간 서영이 봤잖아! 나는 그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는 어미란 말이냐.’ 그녀는 복받치는 울음을 억누르며 은비 사진을 쓰다듬었다. ‘잘 지내고 있지? 도대체 언제쯤 어미에게 올 수 있겠니? 언제쯤 나를 용서할 수 있느냐? 보고 싶구나, 정말!’ 그는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도 잊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은비야!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거야. 약속해! 그러니까 건강하게 잘 지내도록 해.’ 돌아서는 그녀의 뒷전에서 은비가 애타게 부르는 듯했다.
‘엄마! 가지 마! 날 데려가 줘! 엄마! 나 두고 가지 마!’
‘오늘은 또 뭘 먹어야 하나.’ 몇 달 사이에 구현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음식이 맞지 않고 환경의 변화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몸무게가 5kg이나 줄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광고지를 돌리며 찾아 헤맨 지 벌써 삼 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된 제보가 없어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아이의 납치사건이 흔하게 발생하는 이곳에서의 은비에 관한 관심은 포상금이 적지 않은데도 예상 밖으로 저조했다.
어느 날 아침 이 씨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조금 전에 전화가 왔는데 방송국에서 우리 사건에 대하여 취재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하지요? 방송에 나가게 되면 우리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그래? 잘 됐다. 그들이 우리 일을 어떻게 알고 방송을 하겠다는 것인가.”
“우리가 그동안 차에 사람 찾는 광고를 하면서 돌아다니고, 곳곳에 광고지 돌리고 하는 것이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취재하던 날에는 기자와 촬영 팀들이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사전에 대본 연습을 마친 구현이는 환한 조명과 많은 시선 앞에 비장한 각오로 앉았다.
오늘 이 방송이 은비를 찾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그는 간절하게 빌며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이 씨의 귀띔으로 기자에게 수고비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던 다음날 그들의 모습이 방송에 비쳤다.
“여기 이렇게 애타게 납치된 아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다름이 아닌 이웃 한국에서 발생한 어린이 납치사건의 피해자 가족으로서 범인이 이곳 중국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이렇게 직접 아이를 찾아 나섰는데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아이는 일 년 전 서울의 다니던 학교 앞에서 납치되어 이곳으로 끌려 온 뒤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경찰에서 범인들을 잡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지만, 아직 그들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가 아이를 데리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중국국민의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시청자 여러분 여기에 나오는 범인들과 아이의 사진을 잘 기억하셨다가 혹시 주위에 비슷한 인물을 보시면 이곳 방송국이나 가족에게 제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의 한 시간을 촬영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방송 시간도 짧고 내용도 간단했다. 하지만 중국 전 지역 방송이 아닌 그 지역의 방송인데도 그 효과는 놀라웠다. 연이은 제보에 그들은 숨을 돌리기에 바빴다. 모두가 확실하고 사건과 연관이 있어 보여 어느 것부터 확인해야 할지, 마치 시간과 싸움 같기도 했다.
첫 번째 제보를 따라 찾아간 곳은 세 시간 만에 도착한 소도시의 한 아파트였다. 이곳에 인상착의가 비슷한 가족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구현이는 곧바로 올라가 그들을 확인하려고 했다.
“아니 그러다가 정말로 범인과 마주치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입구에 숨어서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 확인해야 봐야 하지 않겠어요.” 이 씨가 팔을 붙들었다.
“아니야! 그럴 시간이 없어요, 권수길은 내가 잘 알아요, 그는 무력을 행사할 사람이 아니고 충분히 내가 대화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요.” 설령 비상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체격 면에서 능히 그를 제압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문을 두드리자 열고 나온 아이는 한눈에 봐도 은비는 아니었다.
“어른들은 안 계시냐?” 뒤따라 나온 여자도 사진 속의 범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구현이는 그들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한 후 양해를 구하고 광고지도 놓고 나왔다. 첫 제보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은 아니지만 맥이 빠지고 허탈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곳을 나온 그때 걸려온 전화는 뜻밖에 대사관이었다.
“아니, 우리와 상의도 없이 그런 일을 그렇게 방송에 내보내고 하면 우리는 뭐가 됩니까!” “아! 죄송합니다. 우리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고 방송국에서 먼저 취재를 나왔던 것인데요, 방송 인터뷰도 대사관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꼭 허락을 받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의 입장이 고려되는 일은 반드시 우리와 상의하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뭐 그나저나 그 뒤로 뭐 특별한 소식이라도 있었습니까?”
“예, 제보가 몇 건이 들어와 지금 확인하는 중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수고가 많으신데, 이곳에 위법한 일은 절대로 하지 마시고 특히 위험한 일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특이한 내용이 있으면 꼭 우리에게 연락 좀 주시고요.” 전화를 끊고 난 구현이는 한국말이 더 낯설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아이가 유독 닮았다는 두 번째 제보는 다행히 돌아가는 길에 들릴 수가 있었다. 이웃 마을 바오딩의 한 가정에 아이가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은비 또래의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예쁜 여자아이가 가끔씩 보이는데, 학교도 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틀림없이 불법으로 입양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제보자가 이야기 한 집을 찾아가서 그 아이를 마주한 그는 깜짝 놀랐다. 은비하고 너무 닮은 것이 다가가 와락 안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그 집의 가까운 인척 아이로 건강이 좋지 않아 치료차 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어른들의 이해와 따뜻한 위로를 받기는 했지만, 오늘 하루를 다 보내고 돌아오는 그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앞날을 예측했다.
그렇게 하루해가 어떻게 뜨고 지는지 모르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구현이를 돕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다다익선이라고 우선 최대한으로 광고도 하고 정보도 얻을 필요가 있는 그로서는 당연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임학수,’ 그는 한국인으로 고향은 대구이고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후 중국으로 유학 왔다가 눌러앉아 지금은 이곳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방송을 보고, 자신도 또래의 자식이 있다면서 동포를 돕겠다는 생각에 달려왔다고 했다. 또한, 이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한국에서 죄짓고 도망 온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들의 생리나 특성을 잘 알고 있고 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인맥도 많다고 했다.
임 사장 자신의 소개에 흥미롭게 듣고 있던 구현이는 적지에서 원군을 얻는 듯 기뻤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그럼 우리가 임 사장님께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하나요?”
“아니 같은 동포끼리 보답은 무슨 보답입니까, 동포라면 어려울 때 기꺼이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로지 어린애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만 바랄 뿐입니다.”
“임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저를 꼭 좀 도와주십시오.” 구현이는 그의 두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며칠 후에 다시 들른 임 사장의 표정은 그의 큰소리와는 달리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제가 그간 검토와 조사를 해 보았는데 아직 어떠한 낌새도 보이지 않은 것이 아마 그들이 단단히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보라는 것이 돌아다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 조금만 지나면 반드시 들어오게 되어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땀을 닦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자들이 이곳 청도로 들어와 여자의 고향을 거쳤다고 하면 그곳에 지금까지 머물러 있을 리는 없고, 일단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잠깐 은거하여 고향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미 제삼의 장소에 정착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곳은 아주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이나 아니면 번잡한 큰 도시 주변도 될 수 있는데, 그자들은 젊고 또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들이고, 아이도 데리고 있으면서 가진 돈도 있다고 보면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지요. 한편 한국 사람이 많은 곳에 숨는 경우와 반대로 전혀 없는 곳을 택한 경우가 있는데 이자들은 역시 후자의 경우로 본다면 여기 허베이, 산시, 산둥 등 베이징을 중심으로 반경을 넓혀가며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호적관리가 엄격하여 장쑤, 산둥, 저장, 광둥 등 위장 신분으로 살기 어려운 곳이나 인구가 너무 적어 쉽게 표가 나는 쓰촨, 위안, 칭하이, 기타 자치구 쪽을 제외한다면 범위를 많이 축소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완전히 숨는 방법으로 주변의 베트남, 라오스, 및 미얀마 등으로 국경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 그것은 쉽지 않으리라 봅니다.” 임 사장은 마치 강의를 하듯 지도를 찍어가며, 또 중요한 부분은 적어가면서 열심히 설명하는 한편 구현이는 넋을 놓아 듣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아이를 인신매매 조직에 넘겼을 경우를 대비하여 그쪽 라인도 접촉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그들이 신분을 위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때, 전문 중개인들을 찾아 정보를 얻는 방법도 있기는 하나 그들의 입을 열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라고 보면 됩니다.”
“그럼, 인신매매 조직이나 위조 여권 중개인들을 어떻게 접촉해야 합니까?”
“그것도 내가 다리만 몇 번 건너면 연줄을 닿을 수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하다가 도저히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될 때 마지막으로 매달릴 곳이니 그때 내가 알아서 하면 됩니다.” 착실한 학생이 된 그들은 그의 설명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명을 받았다.
돌아가는 임 사장을 큰길까지 배웅하고 사무실로 들어온 구현이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앞으로 저 사람을 자주 만나 도움을 받아야겠어, 대단한 사람이야.” 그는 탁자 위를 정리하다 낯선 볼펜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아마 임 사장이 설명하면서 사용하고 깜빡 놓고 간 것인가 본데.” 그러나 볼펜에 쓰인 문구를 보고 그는 화들짝 놀랐다. ‘김책 공과대학 체육대회 기념’ 그는 몰골이 송연해지며 털끝이 곤두섰다.
“아니! 이 씨 이것 좀 보세요. 이 사람 이거 북쪽 사람이네!”
“그래요? 그 사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물건을 가지고 다닐 수가 있어요?”
“이곳에서 흔한 일이기는 합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물건일 수 있고, 이곳에 북한 공작원이 활동하고 있지만, 상관없는 사람들도 많이 북한에 다녀오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적대시하거나 방심할 필요는 없어요.”
“아니! 정이 확 떨어지는 것이 안 되겠어, 저런 사람을 만나도 괜찮은 것인가? 잘못하면 우리 국정원에 끌려가 은비고 뭐고 다 끝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임 사장이 지금 아무 조건도 없이 우리를 돕겠다고 하는 것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앞으로 정체를 확실히 알 때까지 그 사람과 접촉은 가급적 삼가도록 합시다.” 그러나 임 사장의 조언은 그들의 활동 지침에 많은 도움과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