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추적 2

20. 추적 2

by 왕십리

20. 추적 2



수길이 아내의 고향을 피해 은신한 곳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난창이라는 큰 도시였다. 그곳은 대륙의 중심에 위치하여 교통의 중심지로서 강과 호수 그리고 숲이 많아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도시 중심에는 고택들과 사찰들이 들어차 있었고 담장과 개울이 어우러진 골목은 아직 고색이 창연했다. 남쪽으로 높은 건물이 띄엄띄엄 들어서고 있는 신시가지를 따라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과 지평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모든 시름과 걱정을 내려놓게 하였다. 그는 이곳에 한국 교민도 많지 않고 대부분 시골에서 유입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신흥 도시로 한 곳에 조용히 섞여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완벽해! 중국 공안이 다른 나라 사건에 기를 쓰고 쫓아다닐 이유도 없고, 우리의 정체를 알아보고 일부러 한국에 알릴 사람도 없다, 게다가 다른 곳에 비해 호적관리도 느슨하여 운신하기가 안전하지.’ 그들은 완전한 정착을 위하여 증평 삼촌의 도움을 받아 큰 비용을 들여 호구 정리도 마쳤다.


이름을 진경으로 바꾼 권수길의 아내는 비로써 안정을 얻어 역시 이름을 바꾼 딸, 초휘와의 삶에 계획대로 전념할 수 있었다. 때마침 그곳에 아파트 건설 붐에 편승하여 권수길이 시작한 철물점도 큰 호황을 맞게 되었고 머지않아 성 전 지역을 상대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큰돈도 만지게 되어 과거 한국에서의 모든 고난을 다 잊을 수가 있었고 이곳에서 그들의 앞날도 걱정할 것이 없어 보였다. 다행스럽게 초휘도 현실에 잘 적응해 가고 있었고 그렇게 부부는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의 작전은 성공한 거야.’

그렇다고 죄는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들이 그곳에 정착한 지 삼 년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하늘이 그들의 죄를 묻기라도 하려는 듯, 갑자기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 권수길은 이웃 도시에 다녀오는 길에 차량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황망한 남편의 죽음으로 졸지에 단둘이 남겨지게 된 그녀에게 앞날에 대한 책임과 두려움은 일생의 큰 위기로 다가왔다.

‘과연 내가 이 아이를 지켜내며 잘 살 수가 있을까? 지금이라도 초휘를 집으로 보내야 하지 않나?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 이제까지 이 아이 얻자고 그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녀는 초휘가 없는 삶이란 이미 생각할 수가 없었다. ‘두려워할 것 없어, 내게 남아있었던 업보는 남편이 모두 청산하고 떠났어, 이제 죄의식 같은 것은 버리고 홀가분하게 새로 시작하면 돼.’ 스스로 위로하며 다독였다. 그 후 그녀의 위축된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휘에 대한 집착과 의지하는 마음으로 키워만 갔다.

초휘를 위하여 학교 근처로 자리를 잡은 그녀는 거의 밖의 출입을 하지 않은 채 숨죽이는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행여 초휘가 남의 눈에 쉽게 드러날까 두려워 머리도 짧게 자르고 하얀 얼굴과 피부도 최대한 가려, 남루한 차림으로 생활하게 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초휘의 낯빛이 흐려지기라도 하면 남편 사망의 충격으로 아이의 기억에 혼란이 생기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걱정된 나머지 자신의 표정부터 밝고 활발한 모습을 보이려 애를 쓰면서 초휘에게 그림 그리기와 책 읽기 등에 정신을 집중케 하여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거처를 항저우로 옮긴 구현이는 후덥지근한 중국의 여름을 견디고 있었다. 어느덧 삼 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제보를 확인하려고 뛰어다니다 보니 그의 몸과 마음도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만 뜨면 제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을 억누르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준호와 매일 하던 진행 보고도 요즘은 한 달에 두세 번이 고작이다.

그는 세차게 쏟아지는 빗물이 모여 떨어지는 추녀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도 앞으로 얼마나 이 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 지긋지긋한 땅에 혼자 남을 은비를 생각하면서 놓인 정신 줄을 다잡기도 했다.

그는 며칠 전 받은 제보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찾아가기는 너무 멀어 부담되고 무시하기에는 자꾸 생각나는 제보였다. 제보자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도 보내왔다. 그러나 사진만으로는 너무 거리가 멀고 흐려서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제보에 의하면 남쪽 끝 인펑 시골 마을 깊숙이 떨어진 곳에 몇 년 전부터 낯 모르는 가족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이 범인들 사진과 너무 일치하며 게다가 한국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갑자기 나타나 외부와 단절하며 사는 것이 수상하여 처음에는 당국에 신고도 했었는데 별다른 조치도 없었다가 지금에야 광고지를 본 제보자는 모든 면에서 확신한다면서 꼭 내려와서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경험으로 볼 때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그 지역도 언젠가는 한번 다녀와야 할 테니, 이 기회에 다녀오기로 했다.

“차로 간다면 열흘 이상 걸릴 텐데 차라리 비행기로 다녀오는 것이 어떨까요?” 가능성이 낮은 정보에 너무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는 생각에 이 씨가 제안을 했다.

“아닙니다, 그 가족이 금방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는 않을 터이니, 이왕이면 가는 도중에 거치는 마을마다 들려 광고지도 돌리고 정보도 얻으면서 다녀오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네요, 또 중간에 들어온 제보에 바로바로 운신하려면 차가 꼭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요.”

계속되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던 구현이는 날이 맑아지자 이 씨와 함께 남해로 출발했다. 여정이 험하고 장기간인 것을 대비하여 야외숙박과 식량 차량정비 부품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취저우를 지나 지름길로 달리기를 하루가 지나자 봉천강 자락에 다리가 큰비로 유실되는 바람에 곧 난관에 봉착했다. 강을 따라 하류 쪽으로 차를 돌렸지만 조금 못 가서 또 도로가 유실되는 등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부득이 되돌아가 인근 도시에서 하루를 지낸 후 큰 도로로 우회하기로 했다.

그들은 난창 시내로 들어갔다. 가까운 숙소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웬 아주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이 근처 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숙소에 주차된 그들의 차에 붙은 광고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문구점은 숙소에서 가까운 곳으로 도보로도 금방 다녀올 거리였다, 그들은 내일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여장을 풀지도 못한 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문구점을 찾아 들어서자 제보한 주인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 아이가 엄마하고 꼭 3시쯤 이 앞을 지나가는 데, 오늘도 그 시간에 두 사람이 이미 지나갔거든요, 그 아이와 엄마가 보이기 시작 한지는 한 이년 이상 되었고 그전에는 이곳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내가 볼 때 거의 틀림없이 그 아이가 맞아요, 중학생이면 다들 혼자 학교 다니는데 이 아이는 꼭 엄마하고 같이 하교를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천상, 내일 한 시에 다시 한번 오셔야겠어요.” 가야 할 길이 먼 구현이는 내일 오후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렇게 뜻하지 않게 이곳까지 온 것이 우연이 아닌 어떠한 필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 쉬었다가 그 문방구를 먼저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 시간의 공백을 위하여 모처럼 늦잠과 함께 목욕장에도 들리러 숙소를 나왔다. 개울길을 따라 늘어선 음식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음식 냄새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행여 권 사장이나 은비를 볼 수도 있어 우연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야.’ 그는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도 계속 주위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후 시간에 맞추어 미리 문방구에서 도착한 그들은 하교하는 아이들이 나오는 길 쪽을 바라보며 모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저기 나오네요, 저기 보이세요?” 아주머니가 가르치는 곳에는 순박한 모습의 다른 학생들 속에서 키가 크고 하얀 얼굴의 학생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에 매달려 재잘대며 걸어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녀를 본 구현이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아니야! 우리 은비 아니야! 저 엄마는 잘 모르겠는데 한눈에 봐도 은비는 아니야.”

“맞잖아요! 아이 머리 모양만 달라졌다 뿐인데, 잘 좀 보세요.” 실망한 아주머니는 광고지 사진을 구현이 코 밑에 들이밀었다.

“그러면 내가 직접 가서 물어보기나 할까요?” 아쉬운 마음에 이 씨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 은비가 아니잖아요, 너무 이곳에서 지체했어요, 적어도 내일까지 목적지에 가려면 지금 출발해야 합니다.” 그 들은 아쉬워하는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문방구를 나왔다. 조금 전에 지나갔던 모녀는 벌써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주저우를 벗어나자 간간이 펼쳐지는 절경은 그를 딴 세상에 데려온 듯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했지만, 그는 잠시라도 멈춰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는 절박한 자신이 서글프기만 했다.

이런 생활이 언제쯤 끝나 자신이 홀가분하게 여기를 떠날 수 있을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그렇게 겨우겨우 열흘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열기가 몸을 감싸고 흙먼지가 앞을 가렸다. ‘이런 곳에 은비가 살고 있다고?’

“이런! 이렇게 광고 차량이 공개적으로 마을에 나타나면 그 사람들이 보고 도망을 가거나 아예 집에서 나오지 않을 텐데…” 제보자는 난감해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들을 알아볼 수 있으니 지금 바로 그들을 만나게만 해주면 됩니다. 그들이 광고를 보고 말고 할 것이 없어요.” 정현이는 제보자가 알려준 집으로 즉시 찾아갔다. 마당에는 농기구와 농약 포대가 쌓여있는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외출 중인지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 집안에 누군가는 있을 법한데.’ 별수 없이 그들은 그 집이 보이는 길 어귀에 차를 세운 채 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피로에 차 속에서 잠깐 잠이든 그들은 누군가 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깨어났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그 집은 불이 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웬 남자가 차 속을 들여다보며 창문을 내리라는 신호를 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찾아왔는지를 물었다. 억양이 특이하여 이 씨도 잘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구현이는 그가 권수길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으나 어두워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혹시 얼굴이 변하여 서로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안녕하세요? 권 사장! 오랜만입니다.” 구현이는 일부러 한국말을 건너보았다.

“……“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 사람은 권수길이 아닌 것이 확실해! 우선 키가 더 크잖아!’ 그들은 자신들이 찾아온 사연을 설명하자 그는 자신의 딸까지 불러내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그는 시안 출신으로 아내의 병 치료차 따뜻하고 바다가 있는 이곳에 이주하여 온 것으로 아내의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했다. 자신의 고향 사투리가 워낙 심하여 사람들이 한국말로 오해했을 수 있을 것이라며 웃기도 했다. 저녁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잡는 그의 호의를 뒤로하고 그들은 집을 나왔다. 결과는 역시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그 멀고 험한 길을 달려왔는데, 이제 이골이 나는구나.’ 구현이는 푸념으로 겨우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돌아갈 길이 바쁜 그들은 일찍 그곳을 떠났다. 장마가 끝나서인지 더위는 살인적이고 곧 끝나려니 하는 흙먼지 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빠른 길을 택하여 들어선 곳이 비포장도로인지는 미처 몰랐다.

“아예, 그곳에서 식사하고 출발할 것을 잘못했네.” 식사 때를 놓쳐 시장한 그들은 당장 식사할 곳을 찾아야 했다.

’ 흥화루‘ 뜻밖에 인가도 드문 한적한 곳에 식당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곳에서 합시다, 차도 많이 주차하고 있는 것 보니 맛도 괜찮을 것 같소.”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 찝찌름하고 쾌쾌한 음식 냄새는 몇 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 사장님 거기 보세요.” 식당에 들어선 이 씨가 식당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 벽에는 은비를 찾는 광고지가 붙어있었다.

“아~ 저것을 멀고 한적한 이곳에 누가 언제 붙여 놓았을까?” 그는 그래도 자신들이 고생하며 뛰어다닌 보람이 있었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그는 식당 주인에게 어떻게 광고지를 붙이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작년 초에 충칭을 다녀왔는데 누가 놓고 내렸는지 버스 좌석에 놓여있어서 가져다가 붙였어요. 현상금 때문에 손님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았어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들은 은비 광고지 한 다발을 주인에게 건네며 손님들에게 배포해 줄 것을 부탁한 뒤 자리를 찾아 앉았다.

구현이는 배는 고픈데 마땅히 주문할 음식이 없어 메뉴판만 뒤적이고 있었다. 옆 건너 테이블에서 중국인치고는 얼굴이 검게 탄 젊은이들이 식사를 마치고도 앉아서 떠들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으로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그들은 나가면서 고맙게도 은비 광고지를 한 장씩 챙겨 나갔다.

“이제부터 내가 운전할 테니 이 씨는 좀 쉬세요.” 생각보다 입에 맞아 만족한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온 그들은 서둘러 차에 올랐다. 이때 차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한이 순식간에 이 씨 옆에 올라타 목에 칼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조금 전에 식당에서 먼저 나간 그자들이 분명했다.

“가만히 있으시오! 꼼짝하면 이게 그냥 들어갑니다.” 동시에 또 다른 한 명이 뒷문을 열고 타려고 했다.

“어! 어! 빨리 출발하세요!” 이 씨가 소리치자 놀란 구현이가 황급히 시동을 걸려는 순간 운전석 문이 열리면서 무거운 주먹이 그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그는 정신을 잃었다가 잠시 후 깨어나 보니 자신과 이 씨의 손이 결박당한 채 자신의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한쪽 눈이 부어올라 아예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두 사람의 옷과 차 내부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 찾는 현상금이 아주 많던데, 우리에게 미리 조금만 주면 우리가 알아서 찾아줄 테니, 가진 돈 좀 내놔 봐요.” 그들은 찾아낸 돈이 예상보다 작자, 칼을 눈앞에 대고 협박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그게 전부요. 많은 현찰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 수가 있겠소.”

“그럼 회사나 집에는 그 현상금이 있을 것 아닌가. 지금 전화해서 직원에게 여기로 보내라고 해! 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해야 당신들을 보낼 수가 있어,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서든 돈이 들어오게 하라고.” 그는 정현이의 전화기를 빼앗아 들고 빨리 번호를 말하라고 눈을 부라렸다.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가족도 없고 직원도 없는데 누가 전화를 받고 돈을 보낼 수가 있겠소.” 그들 중 한 명이 광고지에 나온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 응답이 없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들 한국 사람인 것 다 알아! 이곳 지나오면서 계곡들 봤지? 죽여서 그곳에 던져 놓으면 아무도 찾을 수 없어, 순수히 협조하는 것이 좋을게요.” 그들 중 한 명이 구현이의 손수건으로 피가 나는 그의 머리를 동여 매 주었다.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협조를 하란 말입니까, 답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항저우에 가서 당신에게 송금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들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멀리서 식당 주인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들어간 것이 걱정되었는지 그들은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부탁인데 우리 집에 갈 기름값 좀 주고 가세요.” 이 씨가 말하자 그들은 지폐 두 장을 자리에 던져둔 채 모터바이크 2대에 올라타고 총총히 사라졌다.

천신만고 끝에 항저우로 돌아온 그는 다음 병원에서 상처를 치료한 뒤 며칠을 몸져누워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한심한 꼴을 보니 형님과 준호에게 면목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말씀드려야 할까, 아예 처음부터 내가 나설 일이 아닌데, 이게 무슨 꼴이냐.’ 그는 자책하면서 신세 한탄 겸해서 준호한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이게 끝이 없네요. 지금 와서 면목이 없는 소리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자신이 없는데 어쩌면 좋습니까.”

“… 힘들지? 우리가 왜 그걸 모르겠어, 그런데 지금 갑자기 형님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달리 방법이 없는데, 지금 찾지 못하면 평생 은비는 그곳에 버려져야 해, 그러지 말고 구현이 자네가 조금만 더 참고 수고해 주면 안 되겠나?, 내가 형에게 틈나는 대로 자네 문제를 이야기하고 다른 방법도 찾아보겠네, 어쩌면 은비가 가까운 곁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우리 조금만 더 고생해 보면 어떨까?” 은비를 생각하면 지금 다른 대책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구현이는 은비를 찾을 때까지 자신은 영원히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시간이 흘렀다.

마치 조물주가 원하는 세상을 캠퍼스에 그려 놓은 듯, 파란 하늘과 깨끗한 도시, 그리고 신선한 사람들. 그 속에서 진경은 마당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며 절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쩜, 우리 초휘를 보는 것 같다.’

그녀의 바람대로 초휘는 지금까지 속 썩이는 일 한번 없이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우윳빛 피부와 깊은 눈망울 우뚝 선 콧날 그리고 훌쩍 자라난 날씬한 체형과 큰 키, 그녀는 세상에 둘도 없는 걸작을 본인이 직접 만들어 낸 양, 초휘를 바라보며 지금까지 살아온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예전의 고립된 생활에서 벗어나 여행이나 쇼핑, 미장원을 가더라도 항상 예쁘게 꾸민 초휘를 곁에 데리고 다녔다. 심지어 학교와 학원에 일일이 데려가고, 데려오는 등 그녀의 생활은 오로지 초휘를 중심으로만 움직였다. 마치 남편처럼 갑자기 초휘가 자기 곁에서 홀연히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온종일 초휘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학교 앞 먼발치에서 초휘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이 멀지 않아 그녀가 바쁠 때는 초휘 혼자 능히 다닐 수 있었지만, 행여나 누가 훔쳐 갈 새라, 아무리 춥고 더워도 그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문을 나서는 초휘가 마마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그녀는 가슴이 설레었다. 저 모습을 군계일학이라고 하는구나. 초휘는 가방을 벗어 들고 그녀의 팔에 매달렸다.

“마마! 나 지금 배고픈데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면 안 돼?”

“뭐? 학교에서 점심 안 했어? 배고픈데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맛있는 것 해줄 테니 어서 집으로 가자.”

“빵도 먹고 싶어, 지난번에 갔던 제과점에 들러 빵도 사러 가자.”

자신만큼이나 훌쩍 자란 아이가 칭얼대는 모습도 보기에 흐뭇했다. 문방구 앞을 지나 초휘의 팔에 이끌려 큰길로 향한 그녀는 곧 나타난 여관 앞에서 걸음이 얼어붙고 말았다. 여관 앞에 세워진 차에 붙어있는 사진은 자신과 남편 그리고 초휘의 사진이었다. 비록 사진이 오래되었고 이름도 옛날 이름이지만 자신들을 찾는 광고임이 분명했다.

“마마 왜 그래요?”

“아! 아니다 어서 가자.” 그녀는 다리가 후둘 거려 움직일 수가 없었지만, 재빨리 초휘의 시야를 몸으로 가린 채 그곳을 벗어났다. 허둥지둥 빵을 사서 서둘러 집에 도착한 후에도 뛰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왔을까?’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이곳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다, 어떻게 하지? 남편도 없는 지금,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다음 날 초휘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