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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ul 06. 2022

말말말

말만 앞서는 사람들에게...

 중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불쾌하고 매캐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도대체 이게 무슨 냄새인지 물었다. 어머니는 굳이 말하지 않으시려는 눈치였지만 냄새가 너무 심하다 보니 설명하지 않을 수도 없으셨던 모양이다. 이유인즉슨 아버지가 노숙인들을 집으로 데려와 식사를 챙겨주신 후 돌려보냈고, 그 노숙인들의 체취가 집안에 남아서였다. 노숙인들이 떠난 후에도 그분들이 밟았던 바닥에, 공기에 냄새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말수가 없는 분이다. 지금도 나를 만나면 잘 있었느냐는 물음 외에 별다른 대화가 없다. 그런 분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리 만무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빵을 한가득 사서 역을 돌아다니시며 노숙인들에게 빵과 용돈 몇천 원을 나눠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돈으로 술 사 먹지 말고 꼭 밥 사 먹으라'고 당부하시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배웠던 것 같다. 물론 아버지처럼 실천하진 못하지만 나도 내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수익의 일부는 꼭 기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을 치켜세우기 위해, 남들에게 손해보지 않기 위해 공해 같은 말들을 핏대 세우며 뱉어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을 바로 사는 것이라고 배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은 누군가에게 뒤통수 맞지 않도록 정신 차리란 의미이고, 그리 사는 것이 현명한 사회생활이라고 우리는 교육받으며 자랐다. 자신을 과잉 홍보하는 것이 마치 미덕인 듯 자기 PR의 시대라는 말도 한 때 유행이었다. 과시하고 내세우는 것이 미덕이라니 어찌 보면 궁색하고 낯부끄럽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봉사활동부터 각종 동아리 활동, 상장 등 학교생활기록부를 장식할 거리를 찾는데 혈안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자격증이며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린다. 취업 커뮤니티에는 회사 면접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비싼 돈을 주고 과외를 받기도 한다. 물론 노력의 과정으로서 일견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머리에서 아버지의 예를 든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실천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백 마디 말보다 귀하고 강력할 때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이웃을 돌본 것이 아니다.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걸 보고 자란 자식들이 배우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나눔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자식에게 똑바로 살아라, 공부 열심히 하라고 끊임없이 잔소리해봤자 부모가 실천하는 삶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효과적이지 못하다. 어떻게 말하면 우리 아이가 책을 읽을까 고민하지 말고 자식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험한 말을 쓰는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고운 말을 써야 한다. 남 앞에서 우리 스스로가 먼저 깨끗한 거울이 되어야 한다. 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말로만 가능한 건 아니다. 때로는 행동이 세상을 바꾸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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