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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Oct 06. 2022

거절의 품격

내면의 소리를 말하세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남의 말을 딱 잘라 거절하게 되면 관계를 망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본인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부탁을 받아들이고야 만다. 심지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부탁을 받아들이고 억지로 맡은 임무를 수행하다 일을 그르치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도와주고도 욕먹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관계의 상당 부분이 인정(人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우리 사회에선 개인이 느끼는 이러한 고충들이 더 클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친한 사이일수록 금전거래는 하지 말라고 가르치거나 남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도울 상황이나 여건이 되면 모르겠지만 거절해야 할 상황이라면 잘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거절의 말은 어떻게 해야 할까?

 거절을 할 때는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좋다. 상대가 절박함에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든, 혹은 나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든지 간에 거절당하는 당사자는 일종의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거절의 말을 전할 때는 상대에게서 거절의 이유를 찾기보다 나 자신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

 

 최근 미술계에서는 NFT 열풍이 불고 있다. NFT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현재 그 열기가 뜨거운 것은 사실이다. 작가들 뿐만 아니라 갤러리들도 작품을 NFT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인기 작가들에게는 작품을 NFT로 만들자는 제안이 쇄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 미술의 거장 박서보 선생에게도 이런 제안은 있었나 보다. 박서보 화백은 한국 현대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단색화의 거장인 그의 작품 가격은 한 점당 10억 원을 호가한다. 예술의 세계에서 돈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낯부끄럽지만 그만큼 NFT시장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작품을 NFT로 만들자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며 SNS에 올린 글이 화제였다. 그의 글을 덧붙인다.

 나는 그의 입장표명이 거절의 품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 자체가 대체 불가능한 것이며, 오프라인 세상인 물질세계에 속해 있는 자신은 다음 세대의 디지털 예술 세계까지 넘볼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는 NFT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의 말 대신 그 자체가 다음 세대의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특히 자신의 그림이 디지털화되어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것을 거부했다. NFT는 틀린 것이고 잘못된 것이기에 거부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대의 것이 아니기에 자신의 작품이 상업화되어 이용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거절의 이유가 상대나 환경에 대한 것이 아닌 내면의 고찰에서 나온 것이다. 사상의 자유가 허락된 세상에서 이보다 명쾌한 거절의 이유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주변의 여러 여건을 거절의 사유로 꼽았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문제를 해결해 드릴 테니 제안을 받아달라고 매달렸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거절의 이유를 우리 내면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핑계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들이 은연중에 우리 안에 깔려있는 듯하다. 상대가 '그건 네 사정이고!'라는 생각으로 내 뜻을 무시할 거라 지레짐작하는 측면도 있으리라. 거절의 말을 전할 때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란다. 거절의 이유가 보다 명확해지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거절한다고 세상이 무너지거나 관계가 끝장나는 것도 아니다. 거절 한번 했다고 끝날 사이라면 그다지 공들일 사이도 아닐 듯하다.


 NFT 관련 박서보 선생에 대한 비슷한 평가의 경우 필자가 글을 쓴 시점보다 9개월 먼저 유튜브 채널 '김고흐'에 방송된 것을 알게 되어 이를 밝힙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김고흐' 채널을 참고하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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