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과학사] 1: 오븐의 발명

점토 가마가 빚은 식문화와 과학의 여정

by 네모

들어가며: 불로 익힌 첫 빵의 놀라움을 상상하며

고대 어느 날, 인류는 처음으로 반죽한 곡식을 뜨거운 점토 가마 속에 넣었습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설익은 곡물죽이 아니라 노릇하게 구워진 빵이 나오자 사람들은 놀라움과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기원전 3000년경 발명된 점토 가마는 인류 식탁에 거대한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불을 가두고 온도를 조절하는 기술은 단순히 새로운 조리 도구의 등장을 넘어, 문명의 풍요와 과학기술의 태동을 이끌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현대의 전기오븐과 가스레인지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시작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부엌으로 돌아가, 점토 가마가 불러온 식문화의 변혁과 과학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시다.


1. 역사적 배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의 식문화 기반

인류 최초의 문명이 꽃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곡물 재배가 사회의 근간이었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나일 강 범람원에서 밀, 보리 같은 곡식을 대량 생산하게 되면서 이를 빵과 맥주로 만들어 저장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사실 이 지역에서 빵과 맥주는 음식을 넘어 삶 그 자체와 동일시되었습니다. 예컨대 현대 이집트 아랍어에서 빵을 뜻하는 아이시(eish)는 곧 "삶"이라는 뜻일 정도로, 고대부터 빵은 생존과 동일시되었지요. 각 계층 누구나 하루 세 끼 빵을 먹었고, 14가지나 되는 서로 다른 빵 글자가 상형문자로 기록될 만큼 빵은 중요한 식량이었습니다.


이처럼 곡물이 남는 사회에서는 효율적인 조리가 필수였습니다. 맷돌로 곡식을 갈아 가루를 만들고, 물과 섞어 반죽한 후 불에 익히면 소화도 잘 되고 맛도 좋은 빵이 됩니다. 그러나 고대에는 야생의 불씨나 노천의 화덕에 의존했기에 균일하게 빵을 굽기가 어려웠습니다.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한 번에 여러 개의 빵을 고르게 구울 수 있는 전용 설비가 필요했지요.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점토로 빚은 가마였습니다.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간단한 형태의 오븐은 신석기 시대부터 존재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야림 테페(Yarim tepe) 유적

예를 들어 2014년 크로아티아 유적에서 약 6,500년 전(기원전 4500년경)의 오븐 유물이 발견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븐으로 보고되었고,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600년 무렵 이미 발효빵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 오븐은 대개 땅을 판 구덩이에 불을 지핀 형태나 진흙으로 대충 둘러싼 수준이었습니다. 시간에 따라 점차 벽돌과 점토로 구조를 쌓아 올리고 내부 열을 유지하는 완전한 가마로 발전해갔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북부 야림 테페(Yarim Tepe) 유적에서는 기원전 6000년경의 집터에서 무려 1500개 이상의 화로와 오븐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가마는 8000년 전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는 곡식 가공과 조리에 오븐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며, 문명 태동기에 이미 불을 다스리는 기술이 등장했음을 말해줍니다.


2. 고대의 과학과 기술: 가마 제작과 온도 관리의 비밀

불을 다루는 일은 인류 과학기술의 출발점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점토 가마를 만들고 적절한 온도로 유지하는 기술은 체계적인 경험 축적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초창기에는 노천의 모닥불에 토기를 굽거나 곡물을 볶았지만, 이는 온도가 들쭉날쭉하여 실패하기 일쑤였습니다. 고대 기술자들은 이를 개선하고자 가마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수사(Susa) 지역에서는 초기 형태의 전용 가마가 등장합니다.


땅 위로 수직으로 세운 이 가마는 아래에서 불을 때고 위로 연기를 내보내 안정적인 고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향식 가마(Updraft kiln)의 원리는 이후 널리 퍼져, 이집트에서도 기원전 2700~2500년 무렵 비슷한 형태의 가마를 도입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이 기술을 특히 유리와 도자기 제조에 활용하였는데, 실험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 이미 섭씨 1000도에 가까운 고온을 달성하여 청동기와 유리 비즈 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마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온도 관리였습니다. 오늘날처럼 자동 온도계도 조절장치도 없던 시대, 오로지 장인의 눈과 감이 의지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고대 도공과 제빵사들은 불길의 색, 연기의 냄새, 점토 색깔 변화를 보며 온도를 짐작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적절한 조리 시간을 익혀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기록에는 가마 온도를 관장하는 숙련공 “바나우소이”(Vanausoi)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는 오랜 경험을 통해 불의 성질을 꿰뚫은 장인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문헌을 보면 다양한 화로와 가마의 종류가 언급됩니다. 예를 들어 아카드어로 우투누(utûnu, atûnu)라는 오븐은 원래 주방에서 맥아를 건조하는 용도로 쓰였지만 금속을 녹이거나 벽돌을 구울 때에도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또 키루(kîru)라는 가마는 주로 유리 제조와 금속 용해에 쓰였고, 키슈키투(kiškittu)나 나스라푸(nasrapu) 같은 전문 용어도 각각 벽돌 굽기와 금속 제련용 가마를 가리켰지요.


이는 불의 세기와 용도를 조절하는 기술이 상당히 전문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곧, 빵을 굽는 화덕에서 출발한 가마 기술이 토기 생산, 금속 공예, 유리 공방까지 폭넓게 응용되며 고대 과학기술의 기반이 된 것입니다.


온도를 다루는 경험적 지식은 후대에 이르러 과학 원리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기원전의 장인들은 열역학이나 화학 반응을 이론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험적 실험을 통해 최적의 조건을 찾아냈습니다. 점토를 얼마나 말려야 터지지 않고 굽는 동안 어떤 연료를 쓰면 최고온에 이를 수 있는지, 가마 입구를 얼마나 막아야 내부 산소량이 줄어드는지 등 수많은 문제를 몸으로 부딪쳐 해결했습니다. 그러한 시행착오의 지혜 덕에 인류는 불의 제어라는 경이로운 성취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점토 가마는 어찌 보면 최초의 실험실이자 엔지니어링 워크숍이었던 셈입니다.


3. 가마가 가져온 식문화의 혁신과 사회적 파급

빵 굽기 기술의 발전은 고대 사회의 식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점토 가마를 이용해 구운 빵은 영양가 높고 휴대와 보관이 쉬워 대량생산에 적합했습니다. 이는 도시 국가의 등장과 함께 집단 급식을 가능케 했지요.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 우루크(Uruk) 시대의 유적에서 쏟아져 나온 버벗림 그릇(Bevel-rim Bowl)들은 당시 사람들이 표준화된 식량 배급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학자들은 이 투박한 점토 그릇들을 일일 곡물 배급이나 빵 굽기 틀로 사용했다고 추정하는데, 수천 개씩 찍어낸 흔적으로 보아 대규모로 노동자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준 증거로 해석하지요. 다시 말해, 가마에서 구운 빵 한 덩이가 사회 조직을 유지하는 급료와 같았던 시대가 펼쳐진 것입니다. 실제로 수메르의 쐐기문자에 등장하는 '닌다(ninda)'라는 글자는 빵을 뜻했는데, 그 모양이 빵을 담았던 그릇과 닮아 있습니다. 이는 빵이 사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상형문자로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베드자 빵을 묘사한 이집트 벽화

한편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건설한 노동자들에게 매일 수천 개의 빵과 수백 리터의 맥주가 지급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기자(Giza)의 피라미드 근처에 남은 노동자 마을을 발굴해보니, 대형 제빵소의 흔적과 함께 수십만 점에 달하는 점토제 빵 틀(베드자, bedja) 파편이 발견되었습니다. 베드자란 이집트 고왕국 시대에 사용된 벨 모양의 큰 빵 몰드로, 무게가 최대 12kg에 달하는 거친 점토 그릇이었습니다. 이 틀에 반죽을 채워 불에 구우면 뾰족한 원뿔형 빵이 구워지는데, 무덤 벽화에 그 빵 굽는 장면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노동자 마을의 유적과 벽화 내용을 대조한 결과, 고대 이집트의 제빵사들은 먼저 여러 개의 베드자 틀을 뒤집어서 불에 예열한 뒤, 다시 똑바로 세워 반죽을 붓고 또 다른 뜨겁게 달군 빈 틀로 뚜껑처럼 덮었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재와 숯을 그 둘레에 쌓아둔 채 한동안 익히면 속까지 잘 익은 큰 빵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처럼 두 개의 점토 용기를 포개 하나의 작은 가마처럼 이용하는 방법을 현대 고고학자들이 재현해본 결과, 실제로 효율적으로 빵을 구울 수 있음이 확인되었지요.


오늘날 이집트 룩소르의 한 가정집에서도 전통 점토 가마에 빵을 굽고 있다. 수천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 방식은 여러 가족이 공동으로 큰 가마를 돌리는 생활상을 보여준다. 고대부터 근세까지 중동과 지중해 지역에서는 마을마다 공동의 화덕이나 공동 오븐을 두고 여럿이 함께 빵을 구웠다. 이렇게 구운 빵은 잘 말리면 오래 보존이 가능해 군량이나 여행식으로도 유용했다. 또한 한 번에 다량의 빵을 구울 수 있어 대규모 인구 부양에 필수적이었고, 결과적으로 대형 건축 프로젝트나 상비군 유지 같은 복잡한 사회 조직을 뒷받침했습니다.


빵만이 아니라 조리 방법 전반이 점토 가마와 토기의 등장으로 다양해졌습니다. 일례로 토기가 보급되기 전까지 인류의 요리는 주로 불에 직접 굽거나 불 옆에 올려놓는 정도였지만, 내열 토기가 생긴 후로는 물에 음식을 넣고 끓이는 조리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식생활에 큰 변혁을 일으켰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점토 냄비는 고기를 물과 함께 끓여 스튜를 만들거나, 독이 있는 식물을 오랫동안 삶아서 독성을 제거하는 등의 새로운 요리를 탄생시켰습니다. 실제로 신석기 이후로 인류의 치아 상태를 보면 질긴 생고기나 껍질째 곡물을 씹는 일은 줄어들고, 부드럽게 가공한 음식의 섭취가 늘었다고 합니다.


찌개, 국, 죽과 같은 음식은 치아가 약한 노약자도 먹을 수 있게 해주어 인구 생존률을 높였으며, 육류와 곡물의 소화율을 높여 영양 흡수를 극대화했습니다. 다시 말해, 점토 가마와 조리용 토기의 발명은 인류에게 새로운 메뉴와 미각의 세계를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식품 자원의 이용 효율을 높여 문명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문적인 직업 요리사와 제빵사 계층이 등장하고, 빵가게와 맥주양조장이 도시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 등 고대 법률에는 빵 굽는 자와 맥주 만드는 자에 대한 조항이 있을 만큼, 이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가마를 운영하려면 꾸준한 연료 공급이 필수인데, 이집트의 사례를 보면 피라미드 건설현장에서 매일 대량의 땔나무(주로 아카시아 나무)를 태워 빵을 구웠고, 연료 확보를 위해 숯을 만들어 운반하거나 나무를 재배하는 등 자원 관리 체계도 발전했습니다. 결국 점토 가마로 대표되는 조리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음식 맛의 향상에 그치지 않고, 경제·사회 구조 전반에 변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4. 경험의 엔지니어링: 고대 과학사의 휴리스틱(heuristic)

점토 가마의 발명과 활용은 고대 과학기술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오늘날 과학은 흔히 이론과 실험에 근거한 체계적 탐구로 여겨지지만, 인류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 지식은 경험의 축적과 전승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가마를 다루는 기술야말로 그런 경험공학의 정수였습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도공·제빵 장인들은 구두 전승과 견습을 통해 기술을 익혔습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흙 반죽 비법, 가마 쌓는 요령, 불 때는 방법을 가르치고, 제자는 이를 되풀이하며 자기 나름의 개선을 더했습니다. 비록 그들은 온도계도 화학 성분 분석도 없었지만, 반복되는 성공과 실패 속에서 사실상의 실험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가령 이집트의 유리 제조는 가마의 다른 용도 중 하나였는데, 색색의 유리 구슬을 만들기 위해 어떤 광물 가루를 얼마나 넣어 몇 도쯤에서 녹여야 하는지 등을 수세대에 걸쳐 알아냈습니다. 또 청동을 주조하기 위해 구리에 주석을 섞는 비율을 찾아내거나, 철을 단련하기 위해 숯불 속에서 오랜 시간 달구는 방법을 터득한 것도 모두 이러한 경험 과학의 승리였지요. 이론 없는 기술 발전이었지만, 그 축적된 경험들은 후대에 금속공학, 세라믹 공학, 화학으로 체계화되어 이어졌습니다.


최초의 요리책으로도 알려져 있는 예일 요리 점토판(Yale Culinary Tablet) 사진.

흥미로운 것은, 이때쯤부터 고대인들도 자기들의 경험 지식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한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문서들에는 가마나 불과 관련된 기록이 다수 존재합니다. 불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올리는 찬가나, 적절한 화로의 종류를 언급하는 행정 문서 등이 대표적입니다. 불 조절에 대한 정량적인 비법 자체가 직접 기록되진 않았지만 금속을 다루는 제련소, 빵을 굽는 왕실 제빵소 같은 시설의 운영에 대한 행정 문서가 남아 있어, 이를 통해 우리는 고대 기술 행위의 체계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한 기록에는 “하루에 벽돌 가마 한 곳에서 벽돌 천 개를 구워 바치라”는 식의 명령이 나타나는데, 이는 당대에 이미 생산량 예측과 표준화 개념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무덤 부조에는 왕실 제빵소 감독관이 노동자들을 지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옆에 적힌 짧은 글에는 빵의 종류와 개수가 명기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가마를 활용한 생산 활동이 국가의 행정 관리 하에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합니다. 사람들은 경험으로 축적된 기술을 체계화하여 사회 인프라로 편입시켰고, 이는 곧 과학적 정신의 발아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현대 역사학자들은 “부엌이 곧 실험실”이었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유명한 저서 <날것과 익힌 것>에서 요리 행위가 인간이 자연을 문화로 전환하는 상징적 활동임을 지적했습니다. 불에 익힌 음식은 날것에 비해 안전하고 다양하며 사회적 교류의 중심이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점토 가마에서 불을 조절하며 음식을 만들어낸 고대의 조리 공간은 최초의 연구소나 다름없습니다. 그 안에서 인간은 자연의 재료를 변형시키고, 관찰과 시행착오를 통해 결과를 누적하며, 암묵적으로나마 과학적 방법을 실행했습니다.


비록 오늘날처럼 공식화된 이론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점토 가마를 다루던 무수한 손길들이 쌓은 데이터들은 인류 문명의 기술 지식 저장고로 기능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점토 가마의 발명은 인류가 경험을 통해 일구어낸 과학적 성취로서 의의를 가집니다. 불의 길들이기는 곧 인류 이성이 자연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간 여정의 출발이었던 것입니다.


5. 문화·의례적 상징: 가마와 불이 담은 의미

불에 반죽을 넣어 빵을 구워내는 과정, 흙으로 그릇을 빚어 가마에 굽는 과정은 고대인들에게 깊은 상징적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는 여러 신화와 의례에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모두에 “신이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창조 신화가 존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수메르의 창세 신화에서 태초의 여신 남무(Nammu)는 불만에 찬 신들의 부탁을 받고 진흙을 이겨 아들 엔키의 도움으로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전합니다. 또한 이집트 창조신화에서는 원숭이 머리를 한 신, 크눔(Khnum)이 나일강의 진흙을 가지고 도예가의 물레 위에서 인간을 빚어냈다고 묘사됩니다.

크눔신을 묘사한 이집트 벽화

크눔 신은 빚은 인간의 형상을 어머니의 배에 넣어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하는데, 이는 마치 토기를 구워 단단하게 만들 듯 신이 인간을 완성시켰다는 비유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진흙→형태 부여→불의 작용→생명 탄생이라는 서사가 양 문명에 모두 존재하는 것은, 가마에서 흙과 불이 만나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고 떠올린 원형(archetype)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불과 진흙으로 문명의 산물을 만들어내면서, 신들도 그렇게 우리를 만들었다고 상상한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 신전과 무덤에는 빵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사진은 이집트 기원전 14세기경 무덤에서 출토된 빵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식량으로 매장되었습니다. 빵과 맥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신에게 올리는 성물(聖物)로서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이집트의 제사 의식에서는 신상(神像) 앞에 빵과 맥주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매일 차려 두었는데, 특히 빵은 풍요와 생명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심지어 신자들은 사원이 만든 빵을 축복받은 음식으로 여기기도 했지요. 무덤에는 사자의 여정을 돕기 위해 부장품으로 빵과 맥주가 빠지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빵의 모양도 제의에 맞게 다양했습니다.


피라미드 시대에는 신에게 바치는 빵을 특별한 원뿔형(pyramid-shaped) 또는 뾰족탑형으로 만들어 테-헤지(t-hedj)라 불렀으며, 이것이 곧 신성한 제물빵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나중에 그리스도교의 “생명의 빵”이나 성만찬 의식 등에까지 연계되어, 빵은 곧 생명과 신성함의 상징으로 이어집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매년 새해 제의 때 빵을 구워 신전에서 나누고 바알 신에게는 진흙으로 빚은 신상(神像)을 불에 구워 바치는 의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렇듯 불에 굽는 행위는 단순히 요리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숭고한 행위, 자연을 문명으로 승화하는 의례로 자리잡았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불 그 자체도 신격화되어 고대인들의 경외 대상이 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불의 신 기빌(Gibil)이나 바빌로니아의 누스쿠(Nusku)는 화로와 등잔을 관장하는 신이었고,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Ra)의 눈빛이 곧 지상의 불꽃이라 여겨졌습니다. 불을 담는 그릇인 화덕과 오븐에도 영험함이 부여되곤 했는데, 훗날 로마인들은 아예 오븐의 여신 포르낙스(Fornax)를 만들고 그녀를 기리는 축제를 열기도 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포르나칼리아(Parilia)라는 축제는 빵을 굽는 오븐을 보호해달라고 기원하며 불꽃에 곡식을 볶아 제물로 바쳤다고 전해집니다. 이름부터 라틴어 포르누스(fornus), 즉 화덕에서 유래한 이 여신의 등장은, 조리 기술이 문화와 종교의 일부로 승화된 한 사례입니다.

포르누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헤스티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또 하나 눈여겨볼 상징적 측면은 가마의 형태와 공간적 의미입니다. 가마는 불을 내부에 품고 있는 둥근 배 모양의 공간입니다. 이러한 형상은 여성의 자궁이나 지모신(地母神)의 품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문화에서 가마나 화로를 집안의 중심, 생명의 공간으로 여겼습니다. 중국이나 한국 등지의 전통 가옥에서도 아궁이를 신성시하여 함부로 발로 차지 않고 정화된 나무만 태우는 금기가 있었지요. 이집트에서도 집집마다 작은 제단처럼 부엌 귀퉁이에 화덕을 마련하고 수호신 가구티(Gauguti)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불을 사용하는 공간이 단순 노동의 현장이 아니라, 생명과 정화를 상징하는 신성한 자리였음을 시사합니다. 어둠을 밝히고 추위를 몰아내며 식량을 익혀주는 불은 곧 생명의 불씨였고, 그 불씨를 품은 점토 가마는 고대인들에게 문화 창조의 요람이었던 셈입니다.


6. 현대 주방 기술으로 이어지는 고대 주방의 통찰

불과 점토로 시작된 조리 기술의 역사는 현대 부엌에서도 맥이 이어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버튼 하나로 온도를 맞추는 오븐, 빠르게 끓는 인덕션 레인지, 불 없이 조리하는 전자레인지까지 갖추고 있지만, 기본 원리를 들여다보면 고대의 가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들이 많습니다. 현대 오븐의 단열 구조나 열순환 방식은 고대의 아궁이와 가마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이를테면 현대의 벽돌 피자 가마는 반구형 천장에 열을 머금어 내부를 고르게 가열하는데, 고대 로마 시대에도 이미 이런 형태의 돔형 화덕이 사용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벽돌가마로 구운 빵을 특히 귀히 여겨 제국 전역에 공공 빵가게를 두었고, 오늘날 이탈리아의 화덕 피자 전통으로 명맥을 잇고 있지요.


현대에는 과학의 발달로 조리 기술이 더욱 정밀해졌습니다. 온도 센서와 자동 타이머 덕분에 미세한 온도 조절이 가능해졌고, 이는 제과제빵이나 요리의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술 발전이 과학과 요리의 재결합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21세기의 분자요리(molecular gastronomy) 운동은 주방에 실험실 기구를 들여놓고 조리 과정을 분자 단위로 탐구합니다. 예컨대 오븐 안의 습도와 온도를 정밀 제어하여 고기의 조직 변화를 연구하거나, 진공 저온조리(수비드) 기법으로 최적의 식감을 구현하는 등, 이는 다름 아닌 고대부터 내려온 경험 조리법들을 현대 과학으로 분석하는 작업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최첨단 요리법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전통 방식으로 장작불에 천천히 구운 빵이나 장시간 숙성시킨 발효빵(사워도우)이 풍미와 식감 면에서 뛰어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는 수천 년 전 이집트인들이 자연 효모로 발효시킨 반죽을 점토 틀에 넣어 구운 빵과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이지요. 현대인이 옛 방식의 장인 정신을 다시 주목하며 슬로우 푸드나 아르티장 빵을 찾는 것도, 어쩌면 고대의 지혜를 재발견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주방 기술의 역사에는 주기적으로 과거로부터의 학습이 나타납니다. 산업혁명기에는 효율성을 이유로 전통 화덕을 밀어내고 금속제 오븐과 가스레인지가 자리잡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다시금 전통 화덕이나 옛날 방식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예컨대 현대의 전문 베이커리들은 석조 화덕을 들여와 빵을 구우며, 셰프들은 숯불 그릴이나 토제 냄비 등을 애용하면서 불맛과 깊은 풍미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 조상들의 경험이 완성한 조리 도구와 방법들이 여전히 유효하고 독보적임을 증명합니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직접 불에 굽는' 원초적 조리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고, 이는 인류의 미각과 문화에 깊이 각인된 원형의 경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의 부엌을 가만히 살펴보면, 고대와 현대가 흥미롭게 공존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전기오븐 옆에 토기 솥이 놓여 있기도 하고, 인덕션 위에서 쇠솥에 장작불 조리하던 찜닭을 현대식으로 끓여내기도 합니다. 전자기파로 조리하는 전자레인지나 분자 수준을 제어하는 조리법은 분명 고대에는 상상도 못 했을 혁신이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불로 음식 재료를 맛있고 안전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만큼은 똑같습니다. 이는 결국 기본에 충실한 기술이 얼마나 생명력이 긴지 보여줍니다. 점토 가마로 시작된 조리 기술은 형태와 매체를 바꿔가며 수천 년을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인류가 불을 사용하는 한 그 원리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마치며

-불과 조리의 시작, 인간의 식탁을 바꾸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점토 가마는 인류 역사에서 단순한 조리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불을 길들이고 활용하는 법을 깨우친 전환점이자, 식량을 새로운 방식으로 가공함으로써 생활 양식의 혁명을 이끈 장치였습니다. 가마에서 구워낸 빵은 고대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했고, 그 빵을 매개로 사회 조직이 유지되었으며, 빵과 함께 나온 맥주는 공동체의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또한 가마를 통해 발전된 고온 기술은 도자기, 금속, 유리로 이어지는 물질문명의 토대를 마련했고, 인류는 이를 바탕으로 보다 정교한 예술과 도구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불과 흙을 다루는 경험적 지식은 세대를 넘어 축적되었고, 마침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되어 인류의 지성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요컨대 점토 가마의 발명은 불을 향한 인류의 탐구심과 창의력이 빚어낸 걸작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구워진 빵과 그릇은 단순한 음식과 물건이 아니라, 인간 삶의 양식과 사고의 변화를 담은 문화의 산물이었습니다. 가마 앞에서 서로 빵을 굽고 나누어 먹던 장인들과 가족들의 모습은, 곧 불 앞에 둘러앉아 지식을 나누던 최초의 연구자 공동체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여전히 매일 불을 사용해 식사를 준비합니다. 가스레인지 불꽃이나 오븐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5000년 전 점토 가마 앞에 모여 앉았을 인류 최초의 빵 굽는 자들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불은 인류에게 위험한 도전이면서도 문명의 동반자였습니다. 그리고 점토 가마는 그 불을 품어 인간에게 이롭게 돌려준 지혜의 도구였습니다. 오늘날 최신 과학기술이 적용된 주방에서도, 그 근원에는 선조들의 숱한 시행착오와 발명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식문화와 과학사의 긴 여정 속에서, 점토 가마에서 시작된 불의 길들이기는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른 빵 한 조각, 따뜻한 수프 한 그릇에는 그 오랜 여정의 기억과 혜안이 깃들어 있습니다. 인류는 불을 통해 맛과 지식을 익혀왔고, 그 불의 역사는 곧 우리 문명의 맛과 멋, 그리고 지혜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문헌 및 자료

Michael Chazan & Mark Lehner, 〈An Ancient Analogy: Pot Baked Bread in Ancient Egypt and Mesopotamia〉 Paléorient 16/2 (1990)

Ancient Egypt Research Associates(AERA), 〈Feeding Pyramid Workers〉 (1993)

Claire Malleson, 〈How Did Ancient Egyptians Bake Bread?〉 RAWI Egypt’s Heritage Review, Google Arts & Culture (2020)

Carolyn Wilke, 〈How Pottery Offers Glimpses Into Ancient Foodways〉 SAPIENS/Knowable Magazine (2021)

Queensland Museum Blog, 〈Ancient Egyptian Bread and Beer〉 (2020)

《Mesopotamian Creation Myth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7)

《Khnum》, Britannica (2021)

기타: Mr. Appliance Blog 〈History of Baking〉, , Levi-Strauss The Raw and the Cooked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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