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평생 가난을 꿈꾸며 살아왔다.
초근목피가 로망이었다. 냉골에 앉아 책을 읽는 학자의 모습이, 내가 오래도록 그려온 삶의 형상이었다.
모름지기, 배부른 예술가, 배부른 학자는 멋져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많이 망설였다.
그렇게 설득력 있게 써내지도 못할 거면서 굳이 쓰고 싶은 이유는 뭘까?
돌이켜보면, 나에게 가난은 형편이라기보다 태도에 가까웠다. 그 선택이 언제부터 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런 삶의 모습을 좋아해 오고 있다.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차를 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돈을 벌어도 변변한 옷 하나, 살림살이 하나 사지 못했다. 넉넉한 돈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썼다.
“나는 또 금방 백수가 될 테니까, 그때는 좀 봐줘요.”
라는 마음이었다.
대신 책값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책도 사지 않는다. 대신 도서관에 사달라고 신청한다.
도서관에는 내가 매일 읽어도 다 읽지 못할 만큼의 책이 이미 있다. 게다가 도서관은 곳곳에 제법 많다. 요즘 생기는 도서관은 온도와 습도, 공기청정까지 완벽하다. 이러한 문명 발전의 선물을 감사하며 만끽하고 있다.
요즘 권여선의 소설 『이모』에 나오는 윤경호라는 여인의 루틴을 따라 하고 있다. 그녀는 췌장암으로 죽기 전까지, 휴관일을 빼고는 매일 도서관에 간다. 그리고 하루에 한 권의 책을 골라 읽는다. 재미가 있건 없건, 이해가 되건 되지 않건 끝까지 읽는다.
나에게 인생이란 그녀의 독서법과도 같다. 좋아서가 아니라, 이해돼서가 아니라, 일단 끝까지 해내야 하는 점에서.
가난을 좋아하는 내가 스스로 당당하지도 않고, 이해가 되지도 않고, 때로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어려운 책을 읽어나가듯, 우선은 끝까지 살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