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대한 오해
독실한 크리스천인 내 동생은 내가 주역을 읽고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 거부감을 에둘러, 나의 블로그가 현학적이라고 일축했다. 나는 그 '현학적'이라는 말에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
지금은 내가 너무 진지하게 좋아하고 즐기니까, 마음을 조금씩 여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몇 번씩 확인을 한다.
"점은 아닌 거지?"
나는 실제로 점을 치기 위해서 『주역』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니라고 대답을 한다. 그런데 주역은 점을 치는 책이라는 전제가 늘 깔려 있다.
이 지점에서 나의 혼선이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점치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부정적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 구스타프 융이 쓴 『주역』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나부터가 "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점占"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해야겠다.
네이버 한자사전과 중국어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1. 동사: 차지하다. 점령[점거]하다.
2. 동사: (어떤 지위나 어떤 상황에) 처하다. 차지하다.
3. 동사: 읊조리다.
4. 동사: 점치다(占--)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점치다’를 이렇게 설명한다.
"팔괘ㆍ육효ㆍ오행 따위를 살펴 과거를 알아맞히거나, 앞날의 운수ㆍ길흉 따위를 미리 판단하는 일."
"앞날의 운수, 길흉 따위를 미리 판단하는 일"이라는 이 풀이가 "占"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말일까?
이것 때문에 "주술"과 "점"이 혼용되어 누군가에게는 밀쳐내야 하는 것이 돼버린 것은 아닐까?
내 생각에는 오히려 ‘읊조리다’ 혹은 ‘어떤 지위나 어떤 상황에 처하다’라는 뜻이
『주역』에 더 가깝게 닿아 있다.
이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서 칼 구스타프 융이 리하르트 빌헬름의 『주역』 번역서에 붙인「서문」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이 과정을 기록하여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발행하겠다. 브런치처럼.
이 연재는『주역』, 그리고 "점占"에 대하여 찬찬히 묻기 위해 시작하는 기록이다.
내 필력으로는 풀기 어려운『주역』에 대한 이해와 오해의 지점을 융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