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적 경험에 대한 증언

빌헬름『주역』의 서문 by 융

by 이제

※ 원문: C. G. Jung, Foreword, The I Ching or Book of Changes, translated by Richard Wilhelm (English version by Cary F. Baynes).

[번역문 | 칼 구스타프 융, 리하르트 빌헬름 번역 『주역』 서문 중 — 필자 번역]


나는 중국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주역』에 대해 쓰는 서문은 이 위대하고 독특한 책에 대한 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대한 증언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것은 나의 고인이 된 친구 리하르트 빌헬름의 기억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할 수 있는 반가운 기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주역』 번역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의 번역은 서구에서 견줄 만한 것이 없다.


만약 『주역』의 의미가 쉽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책에는 서문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안에는 모호한 점이 너무나 많아서 서구 학자들은 이를 흔히 “마법 주문들의 모음집” 정도로 치부해 왔다. 너무 난해해서 이해할 수 없거나, 전혀 가치가 없다고 여겨온 것이다. 지금까지 영어로 이용 가능했던 거의 유일한 번역본인 레게(Legge)의 『주역』 번역은 서구인의 사고방식에 이 책을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각주 1].


그러나 빌헬름은 텍스트의 상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노내선(老乃宣)이라는 존경받는 스승에게 『주역』의 철학과 사용법을 직접 배웠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신탁(점법)의 독특한 기법을 실제로 적용해 보았다. 이러한 살아 있는 의미에 대한 그의 이해는, 단순히 학문적인 중국철학 지식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깊은 통찰을 그의 번역에 부여했다.


나는 빌헬름이 『주역』이라는 복잡한 문제에 비추어 준 빛과, 그것의 실제적 적용에 관한 통찰에 크게 빚지고 있다.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신탁 기법, 곧 무의식을 탐구하는 하나의 방법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1920년대 초 빌헬름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주역』에 어느 정도 익숙했는데, 그는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확인해 주었고, 그 위에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각주 1]

레게는 각 효(爻)에 대한 해설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상징을 만드는 사람은 어느 정도 시적 감각을 지녀야 하는데, 『역』의 상징들은 우리에게 마치 고루한 학자(dryasdust)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350개가 넘는 것들 중 대부분은 그저 기괴할 뿐이다.”

또한 그는 괘의 ‘교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왜 이런 교훈들이 이처럼 많은 선의 도형들과 뒤섞인 상징적 표현들의 잡다한 집합으로 전달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레게가 실제로 이 방법을 직접 적용해 보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중국학자가 아니다”

이 글은 칼 구스타프 융(C. G. Jung)이 리하르트 빌헬름 번역 『주역』에 붙인 서문의 도입부다.

한편으로는 겸손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을 오래 직접 경험하고 적용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다.


융은 먼저 이렇게 선을 긋는다.
“나는 중국학자가 아니다.”


즉, 문헌학적·역사학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겠다는 말이다. 대신 그는 다른 종류의 자격을 제시한다. 바로 개인적 체험과 실제 적용의 경험이다.


그는 『주역』을 단순한 고전 텍스트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심리적·상징적 도구로 다루었다.

융이 보기에 문제는 텍스트가 아니라 접근 방식이었다.


『주역』은 단순히 번역한다고 이해되는 책이 아니라, 상징체계와 사유 방식 자체를 배워야 접근 가능한 책이라는 것이다.


“무의식을 탐구하는 방법”

융은 미래 예측 도구로서의『주역』이라는 측면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주역』의 점법을 무의식과 대화하는 상징적 장치로 받아들인다.


즉, 질문을 던지고 괘를 얻는 과정은 외부 세계의 예언이 아니라, 내면의 상태가 상징 구조와 공명하는 과정으로 본다. 이것이 훗날 융이 말한 동시성(synchronicity) 개념과도 연결된다.


빌헬름 번역의 탁월함

융이 빌헬름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단순히 번역의 정확성 때문이 아니다.

빌헬름은 스승에게 직접 전수받으면서 실제로 점법을 사용했다.


즉,『주역』을 이론으로만 이해한 것이 아니라, 직접 배우고 점법을 실행하면서 몸으로 익혔다.

융은 이런 이해가 책으로만 배운 지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았다.


이 글의 핵심 메시지

『주역』은 읽기만 해서 아는 책이 아니라, 직접 써 보고 생각해 보면서 이해해야 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융은 자격증이나 학문적 권위가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나온 이해를 더 믿는다.


그리고 독자에게도 같은 태도를 요구한다.

읽기 전에 판단하지 말고, 먼저 경험해 보라고.




여기서 말하는 레게(Legge)는 19세기 영국의 중국고전 번역가 제임스 레게를 가리킨다. 그의 『주역』 영어 번역은 오랫동안 서구에서 거의 유일한 참고본이었지만, 상징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텍스트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융은 서문 각주에서 그의 비판적 견해를 인용하며 간접적으로 한계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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