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는 정신적 양식을 담고 있다”

『주역(I Ching)』의 자기소개

by 이제


※ 원문: Carl Jung, 「Foreword」, 『I Ching or Book of Changes』 (translated by Richard Wilhelm, English version by Cary F. Baynes)

[번역문 | 칼 구스타프 융 『주역』 서문 중 — 필자 번역]


『주역(I Ching)』에는 64개의 괘가 있으며, 각각은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전형적인 상황을 상징한다. 이 괘의 해석은 어떤 사건의 원인을 설명하기보다는, 그 순간의 상황 전체가 드러내는 의미를 읽어내는 방식에 가깝다.


융의 관점에서 보면, 동전을 던져 얻은 괘 역시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 순간의 상황 전체—외부의 사건과 관찰자의 심리 상태—가 함께 만들어낸 하나의 상징적 패턴이다.


중국 전통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우연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작용이 점괘를 통해 의미 있는 답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래서 주역은 질문을 던지면 응답을 돌려주는 일종의 살아 있는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융은 이 생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시험해 보기로 한다.

그래서 그는 동전을 던지며 이렇게 묻는다.

“내가 주역을 서구 세계에 소개하려 하는데, 너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나온 답은 50번 괘, 정(鼎)이었다.


내 질문이 제기된 방식에 비추어 볼 때, 이 괘의 텍스트는 마치『주역』그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간주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괘는 스스로를 솥(caldron), 즉 익힌 음식을 담는 제의용 그릇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음식은 정신적 양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에 대해 Richard Wilhelm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鼎)은 세련된 문명에 속하는 도구로서, 유능한 인재를 길러내고 그들을 양성하는 것을 상징하며, 이는 결국 국가에 이익이 된다. … 여기에서 우리는 문명이 종교 속에서 그 절정에 이르는 모습을 본다. 정은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사용된다. … 신의 최고의 계시는 예언자와 성인들을 통해 나타난다. 그들을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신을 공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드러난 신의 뜻은 겸손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 가설을 계속 유지한다면, 우리는 여기서 주역이 자기 자신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어떤 괘의 효(爻)가 6이나 9의 값을 가질 때, 그것은 특별히 강조된 효로서 해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 경우의 괘에서는 “영적인 작용들”이 둘째 자리와 셋째 자리의 효에 9라는 강조를 부여했다. 텍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이九二:
솥 안에 음식이 있다.
나의 동료들은 시기하지만
그들은 나를 해치지 못한다.
길하다.


따라서 주역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정신적) 양식을 담고 있다.”


어떤 위대한 것에 참여하게 되면 언제나 시기가 뒤따르기 마련이므로, 시기하는 사람들의 합창은 이 그림의 일부가 된다. 시기하는 사람들은 주역이 지닌 위대한 소유, 즉 그 의미를 빼앗으려 하거나 파괴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적대는 헛되다. 주역의 의미의 풍부함은 확고하며, 그 긍정적인 성취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텍스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삼九三:
솥의 손잡이가 바뀐다.
사람은 삶의 길에서 방해를 받는다.
꿩의 기름진 살을 먹지 못한다.
비가 내리면 후회는 사라진다.
마침내 길함이 온다.


손잡이(독일어 Griff)는 솥을 붙잡을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람이 주역(즉 솥)에 대해 갖고 있는 개념을 의미한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개념은 분명 변화해 왔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주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삶의 길에서 방해를 받는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신탁이 제공하는 지혜로운 조언과 깊은 통찰에 의해 지탱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운명의 미로와 우리 자신의 본성 속에 있는 어둠을 통과해 나갈 길을 찾지 못한다.


꿩의 기름진 살, 즉 훌륭한 요리 가운데 가장 맛있고 풍부한 부분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그러나 마침내 메마른 땅에 다시 비가 내리듯, 이 결핍의 상태가 극복되면 “후회”, 즉 지혜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이 사라지고, 그때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회가 찾아온다.


빌헬름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고도로 발전한 문명 속에서 자신이 있는 곳에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주목하지 않는 처지에 놓인 한 사람을 묘사한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심각한 장애가 된다.


말하자면, 주역은 자신의 뛰어난 특성이 인정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머지않아 다시 인정받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나는 정신적 양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인정받을 것이다."


이 대목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이미 나는 주역을 읽으며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융의 서문을 빌려,
그 생각을 다시 한번 전해 보고 싶어 이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다음 이야기


우연히 던진 동전에서

어째서 이렇게 의미 있는 답이 나올 수 있을까.

융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참고 : 동전을 던져서 괘를 구하는 방식

https://naver.me/F5seud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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