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람 Jun 21. 2023

7. 아이들에게 배우는 불안 대처법

-오로지 현실에 집중하기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출국길


여행이나 소풍을 가는 날이면, 그 전날 어김없이 밤잠을 설치곤 했다.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 때문이었다.

미국 1년살이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에도 역시 잠을 설쳤다.

이번엔 기대와 설렘 때문이 아니라, 걱정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11시간 가까이 걸리는 긴 비행을 아이들이 잘 버텨줄까 하는 걱정부터,

LA공항에 도착했을 때 입국심사인터뷰는 과연 무사히 잘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처리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해야 할 일들은 대충 이랬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가서 공항에 마중을 나오기로 한 기사님을 만나

얼바인에 있는 우리집까지 약 1시간 정도 거리를 차로 이동한다.

그런 다음, 미리 계약해 둔 집에 가서 중고차를 인수받고,

바로 그 차를 몰아서 *무빙을 받기로 한 집으로 가야 한다.

(*무빙 : 해외에 살다가 국내로 들어가는 사람의 물건을 일정금액을 주고 한꺼번에 구입하는 걸 가리킨다.)

그곳에서 당장 그날 저녁 깔고 잘 침구와 밥을 해 먹는데 필요한 주방용품부터 받아와서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고, 다음 날은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고, 인터넷을 연결한다.

그런 다음 아이들 학교에 가서 입학 등록도 해야 하고, 미국 운전면허도 필기부터 실기까지 다시 따야 하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차라리 몇 박 며칠 일정으로 여행을 하는 거였으면,

룰루랄라 신나게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겠지만.

1년살이를 하러 가는 마음은 단순한 여행자의 마음과 애초에 같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르는 미래에 나를 내던지는 기분이랄까. 불안하고 자꾸만 초조해졌다.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엄마 VS 아이들의 온도차


엄마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시간 비행에 힘들어할까 걱정했던 아이들은 오히려 여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들을 감상하기도 하고,

보고 싶은 영화도 골라서 보고, 기내식으로 나오는 음식도 맛있게 챙겨 먹고,

집에선 해보지 못했던 게임도 실컷 하면서 아주 신이 났다.


이런저런 걱정에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기내식은 잘 안 넘어가고,

편하게 잠 한숨 못 자는 엄마랑은 완전 딴판이었다.

아이들에겐 온전히 여행길의 들뜸과 설렘만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아이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아이들이라고 미국행이 마냥 즐겁기만 할 리는 없었다.


두 아이 모두 미국에 도착하면 당장 학교를 다녀야 하기 때문에,

낯선 환경.. 낯선 언어.. 낯선 친구들과의 학교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어쩌면 엄마인 나보다 더 두렵고 걱정이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은 마냥 설레고 즐거웠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내려놓고,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한 채 이 상황을 즐길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했다.

놀이터에서 놀 땐 집에 가야 하는 시간도 잊은 채 놀이에 집중했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땐 밥 먹자는 엄마 아빠의 말도 귓등으로 들었다.

내일까지 마쳐야 할 숙제가 있어도, 지금 당장 동생이랑 노는 게 더 중요했다.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음식이 식어서 맛이 없어질까 걱정하고,

숙제를 못할까 봐 걱정하는 건 엄마 아빠의 몫이었다.

아이들은 그저 온전히 그 순간의 즐거움에 집중할 뿐이었다.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사실 집에 조금 늦게 들어간다고 해서, 음식이 조금 식는다고 해서, 숙제를 늦게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그저 엄마 아빠의 조급함과 걱정이 아이들을 다그칠 뿐.

걱정과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현재의 즐거움에 오로지 몰두할 수 있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우린 언제부터 잃어버린 걸까?


그래.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없다. 해야 할 일은 그때 하면 그뿐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느라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놓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나서야, 비로소 미국행의 즐거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비행이, 신혼여행 이후 첫 해외 비행이라는 것도..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고 일을 하느라 쉴틈 없던 나에게 1년 이라는

꿈같은 공백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미국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소들을 직접 가볼 수도 있다는 것도..

무엇보다, 낯선 나라 낯선 곳에서 1년을 살아볼 수 있다니..

그것만큼 설레고 멋진 일이 또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아이들을 통해 배운 불안대처법이었다.

그렇게 불안을 다독여가며, 우리 가족은 드디어 미국 LA공항에 도착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