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팬알백 | 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프로야구 OB 베어스는 26일 경기도 이천에서 전용구장 개장식을 가졌다. 총 6억 9500만 원의 경비를 들여 만든 이 시설은 정규 내야 그라운드보다 사방 10m가 큰 전천후 실내연습장을 비롯, 웨이트트레이닝장 및 스탠드가 없는 정규 잔디구장 등이 포함돼 있다. OB 베어스는 냉난방 시설이 된 전천후 실내연습장을 아마추어팀이 사용신청할 경우 무료로 개방할 예정이다.』 <1983년 1월 26일자 경향신문>
KBO리그 역사에서 OB(현 두산) 베어스는 여러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간 구단이었다. 1982년 1월 15일 최초로 구단 창단식을 하고, 원년에 가장 먼저 우승을 차지한 것도 그렇지만 마케팅과 육성 등에서도 가장 발 빠르게 프로화를 진행했다.
1982년 최초로 어린이 회원을 모집한 것은 KBO리그 전체 마케팅 차원에서 바라볼 때도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1983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일을 벌였다. 바로 2군 육성을 위해 경기도 이천에 ‘전용연습장’을 개장한 것이다. 오늘날 두산 베어스를 두고 ‘화수분 야구’라 일컫는데, 그 화수분은 프로야구 출범하자마자 시작됐던 것이다. 베어스 역사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 육성의 역사에서도 혁신적인 시도였다.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11번째 주제는 '화수분 야구'의 뿌리와 역사에 얽힌 이야기다.
●일본에서 얻어 온 2군 육성의 아이디어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기로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일본을 갔어요. 제가 기자 시절 일본 특파원을 지냈다 보니 돌아가신 박용곤 회장님이 당시 저한테 시간 날 때마다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에서 장훈(3085안타로 일본프로야구 역대 개인통산 최다안타 기록)이나 가네다 마사이치(400승을 거둔 한국명 김경홍. 일본프로야구 역대 개인통산 최다승 기록) 등 재일교포들을 만나서 조언을 많이 들었죠.”
박용민 OB 초대 단장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껄껄 웃었다.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도 가고, 세이부 라이언스에도 가고 했어요. 1982년 초에 세이부에 갔을 때 스프링캠프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일본은 선수들이 엄청 많았어요. 우리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그래서 ‘우리는 선수가 부족한데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세이부 감독이 된 모리 마사아키 씨가 ‘재주 좋은 놈을 골라서 2군을 만들어서 선수를 키워라. 2군 감독 똑똑한 사람 하나 앉혀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OB도 2군을 처음 만들기로 했던 거죠.”
1982년 1월 15일에 25명의 선수로 창단식을 한 OB는 다른 팀에 비해 선수가 부족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프로야구팀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선수 육성. 지속적인 강팀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프로화의 첫걸음이라고 믿었다. 원년에 다른 팀은 1군 선수 구성과 운영조차 힘겨워하던 상황에서 OB는 이미 저변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한국프로야구의 선구자였다.
●1983년 1월 26일 최초 전용연습장 개장
“그런데 2군은 만든다고 쳐도 운동장이 없잖아요. 허허.”
박용민 OB 초대 단장은 화수분의 원조가 된 2군 시스템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갔다.
“그래서 박용곤 회장님한테 얘기했죠. 그랬더니 바로 ‘야구장 하나 만들자’ 그러시더라고. 당시 이천 OB 맥주 공장 안에 부지가 많았어요. 그래서 거기다 야구장을 만들자고 했던 거죠. 회장님 추진력도 대단하셨어요. 워낙 야구를 좋아하셨으니까. 그래서 원년부터 2군 훈련장을 구상하다가 1983년 1월에 이천에 실내 전용연습장을 만들었던 겁니다. 내야만 있는 연습장이었지만, 실내 야구장이 귀하던 그 시절엔 엄청난 규모의 실내 연습장이었죠.”
1983년 1월 26일. 경기도 이천에서 전용구장 개장식을 한 날이다. 이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국야구사 측면에서 보면 선수 육성 분야의 획기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원년 우승팀 OB는 이듬해 1월부터 이곳에서 스프링캠프를 시작했다. 추운 겨울에 남들은 삭풍을 피해 비닐하우스에서 훈련할 때, OB는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최신식 실내연습장에서 훈련을 했다.
OB 원년 멤버였던 조범현(전 kt 감독)은 한국에서 최초로 마련된 전용연습장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실내에서 훈련을 하고, 2층에 있는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몸을 만들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시설까지 갖춘 곳을 우리가 쓰니까 다른 구단 관계자나 선수들이 다 부러워했어요. OB는 당시 뭐든지 한 발 빨랐죠.”
원년부터 OB 매니저로 시작해 OB의 초창기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은 “박용곤 회장님이 다리를 놔서 요미우리 미야자키 구장 실내훈련장 설계도를 보고 만들었는데, 나중에 요미우리 관계자들이나 장훈 등 재일교포 유명 선수들이 이천 전용연습자에 와서는 ‘우리 시설보다 더 좋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선수들의 요구에 구단은 다시 귀를 열었다. 이에 대해서는 박용민 초대 단장은 “선수들이 겨울에 거기(이천 전용연습장)에서 열심히 훈련을 하더니 ‘길이가 짧아서 많은 선수들이 훈련을 소화하기가 곤란하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좋다. 그러면 정식야구장 하나 만들자’라고 얘기가 발전됐던 거죠. 그리고는 곧바로 야구장을 만들었어요. 이천에다가. 그것도 대한민국 최초야. 1983년에. 2군 실내연습장, 2군 전용경기장…. 그때 모든 최초 기록은 다 OB였어요. 허허. 그랬더니 다른 구단들이 ‘어떻게 하면 되냐’고 전부 다 나한테 물어보고 그랬지. 그땐 야구발전을 위해 노하우를 다 줬어요.”
●1983년 7월 2일 2군 창설
OB는 일단 전용연습장부터 마련한 뒤 2군을 만들었다. 6월 30일에 2군 감독으로 강대중을 선임했고, 7월 2일에는 2군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KBO리그 역사상 최초의 2군 감독’이라는 직함을 갖게 된 강대중은 1922년생으로 재일교포 출신이었다다. 교토상고 시절 고시엔 대회에 유격수로 출전하는 등 수비의 귀재로 평가받았고, 광복 후 한국으로 들어와 국가대표를 지내며 한국 선수들의 내야수 교본이 됐다. 1964년 크라운맥주 창단 감독이 된 그는 한일은행 감독 시절 김응용 강병철 김인식 등 수많은 선수들을 길러냈다. 재일교포 출신 김영덕 감독(1936년생), 김성근 코치(1942년생)의 대선배이기도 했다.
아래는 당시 OB의 2군 창설과 관련한 기사다.
『OB는 7일 우선 현재의 선수 31명 중 선우대영 강철원 이근식 등 투수 3명, 내야수 박종호, 외야수 김유동 정혁진 등 6명과 신인 테스트를 거쳐 입단한 이상구 서일권 등 8명으로 2군을 편성하고, 10월초에 대대적인 신인 테스트를 실시, 유망 신인을 보강시켜 20명 규모의 2군을 운영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이날 강대중 씨를 2군 감독으로 임명하는 한편 8일부터 경기 이천에 있는 전용구장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키로 했다』 <1983년 7월 8일자 매일경제>
●육성의 선구자, 끝없는 ‘화수분 야구’ 투자 역사
OB의 전용연습장 개장은 이천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지역까지 확대하기 시작했다. 1984년 1월 15일에는 창원에 전용 연습구장을 개장하고, 1987년 5월 22일엔 광주에도 전용 연습구장을 열었다. 역시 OB 맥주 공장 부지에 만든 것이었다. 창원은 마무리훈련이나 전지훈련지로 활용했고, 광주는 원정을 갈 때 훈련하기 위해 만든 구장이었다.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은 “당시 선수들은 전용연습장 때문에 광주로 경기하러 가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다른 팀은 인근 고등학교 야구장을 빌려 1시간~1시간30분 정도 훈련하고 광주 해태전을 치렀지만, OB는 전용구장이 있었기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두산은 이어 2004년 8월 27일 이천에 전용구장인 ‘베어스필드’ 기공식을 한 뒤 2005년 12월 12일 베어스필드 준공식으로 문을 열었다. 약 200억 원을 투자해 신장개업을 한 이곳은 2000년대 후반부터 두산이 지속적인 강팀으로 뿌리를 내리를 배경으로 자리매김했다.
투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남들이 이미 부러워하던 이곳에 다시 550억 원을 투자했다. 그리고는 2014년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현재의 베어스파크 문을 열었다.
베어스의 육성 시스템은 그만큼 역사가 깊다. KBO리그 2호 전용연습장은 삼성이 1987년 만든 경산야구장. OB가 1983년 경기도 이천에 가장 먼저 전용연습장을 만든 뒤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KBO에도 2군 리그의 그림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KBO리그 최초로 개장한 OB 전용연습장과 2군 훈련 풍경을 다룬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서 소개한다. 프로야구 초창기 민완 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한 고(故) 이종남 기자가 경향신문 야구기자(훗날 스포츠서울 야구기자)로 활약하던 시절, <1984년 5월 14일자>에 쓴 기사다. 당시엔 이천에 선수단 숙소가 없어 서울에서 모여 구단 버스를 타고 훈련장을 오가던 시절이다.
『이천행 전용버스는 강남터미널 앞에서 매일(일요일 제외) 상오 9시30분 정각에 출발한다. 환갑이 넘은 강대중 유격대장(2군감독)이 31분에 헐레벌떡 달려오는 것을 빤히 보고도 이충순 조교(코치)는 가차 없이 출발을 명한다. 선수들의 지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2시간 이상 지각이면 결석, 결석은 감봉.
상오 10시30분 정각에 연습시작. 체조-러닝-체조-러닝-체조-러닝…하다보면 12시30분에 기다리던 점심식사. 하오 1시부터 5시까지 배팅과 수비연습. 말이야 쉽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중략) OB 베어스의 선수 총원은 59명. 1군 엔트리는 28명이니까 31명은 싫어도 2군에 남아 있어야 한다. 박용민 단장은 “2군 경영 때문에 다른 구단보다 연간 5억 원을 더 쓴다”고 말한다. 6개 구단 중 유일하게 전용연습장을 갖추고 있기에 철저한 2군 연습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