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팬알백 | 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원바운드로 투수 키를 크게 넘어가는 타구. 도무지 미칠 수 없는 공을 잡아보려 점프를 하다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등번호 21번의 박철순. 마운드에 앉은 채로 유격수가 27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일어서지도 못한 채 무릎을 꿇고 만세를 불렀다.
등번호 20번의 3루수 구천서. 가장 먼저 마운드로 뛰어와 박철순을 끌어안았다. 등번호 4번 2루수 김광수. 날다람쥐처럼 달려와 두 명에게 엉겨 붙었다.
마지막 타구를 잡아 러닝스로로 1루에 던진 등번호 6번의 유격수 유지훤은 환호하며 뛰어들었고, 마지막 공을 미트로 잡아내며 우승을 확정한 등번호 19번의 1루수 신경식은 두 팔을 벌린 채 마운드 주변을 정신없이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순간, 포수와 투수가 가장 먼저 포옹하는 게 익숙한 풍경이지만 등번호 22번의 포수 김경문은 1루 뒤로 커버하러 들어갔다가 뒤늦게 마운드로 달려가 무리들과 얼싸안았다.
베어스 팬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아니 수도 없이 봤을 영상. 바로 원년 한국시리즈 최종 6차전에서 OB 베어스가 우승을 확정하는 장면이다.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열 번째 주제는 KBO리그 최초의 우승 신화를 만든 1982년 한국시리즈 이야기다.
●박철순 없는 한국시리즈, 목표는 그저 1승
[베팬알백] <9편>에서 설명했듯이 OB는 9월 29일 후기리그 최종전에서 패했다.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다면 원년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우승으로 챔피언이 됐겠지만, 어쩔 수 없이 10월 5일 열리는 한국시리즈를 준비해야 했다.
4시간 7분간 펼쳐진 연장 12회 달구벌 혈투에서 완투패를 당한 박철순은 서울에 올라와서도 허리 통증이 가라앉지 않자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검진을 받은 결과 ‘요부 추간판(腰部椎間板) 헤르니아’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척추 뼈와 뼈 사이의 구조물인 디스크가 탈출된 증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절망적이었다. OB 원년 투수는 총 7명. 박철순을 제외하면 박상열이 10승(5패)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지만 그 10승 중 8승이 구원승이었다. 선우대영(7승), 황태환(6승), 강철원(5승), 계형철(4승), 김현홍(0승)이 있었지만, 24승7세이브를 거둔 ‘절대 에이스’ 박철순을 빼고 한국시리즈를 치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국가대표 출신들이 즐비한 삼성 타선을 상대하는 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삼성 마운드는 어떤가. 국가대표 출신의 이선희(좌완) 권영호(좌완)에 황규봉(우완) 트로이카가 나란히 시즌 15승을 거두며 박철순에 이어 다승 공동 2위에 올랐다. 여기에 우완 스리쿼터 성낙수(7승)도 뒤를 받치고 있었다. 박철순 없는 OB 마운드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대적하기 힘든 상대인 게 사실이었다.
OB 원년 사령탑을 맡았던 김영덕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박철순은 한국시리즈 등판이 어렵다고 봤다. 그래서 솔직히 한국시리즈 들어가기 전 우리의 목표는 1승이었다. 망신만 당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원년 OB 매니저였던 구경백 현 일구회 사무총장도 당시 상황에 대해 “박철순이 한국시리즈에 못 나간다고 하니 내부적으로는 초상집이었다”고 돌이켰다.
박철순은 1차전이 열린 대전은 물론 2차전이 펼쳐진 대구에도 선수단과 동행하지 못한 채 서울대병원에서 침대 신세를 지고 있었다.
●1차전 10월 5일(대전)=선발 강철원의 역투, 연장 15회 무승부
1차전은 10월 5일 전기리그 우승팀 OB의 홈구장인 대전에서 열렸다. 삼성은 권영호를 선발 카드로 꺼내 들었다.
그렇다면 OB 1차전 선발투수는 누구였을까. 뜻밖에도 잠수함 투수 강철원이었다.
당시엔 선발투수 예고제가 시행되지 않던 시절. 김영덕 감독과 김성근 코치, 이광환 코치, 강철원 등 극소수만이 1차전 선발투수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구단 관계자나 OB 선수 중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물었다.
1차전 선발 라인업이 교환되고 OB의 선발투수 주인공이 밝혀졌을 때 모두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물론 야구팬들도 강철원 카드를 일종의 ‘바람잡이 선발’로 이해했다.
그러나 OB 코칭스태프가 기대를 거는 구석이 있었다. 강철원은 어깨 통증으로 전반기에는 통째로 쉬었지만, 후기리그 막바지 19경기를 남겨둔 시점에 가세해 연승 가도를 달렸다. 8경기에 등판해 완투 3차례를 포함해 5연승 무패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미스 강’이라는 별명처럼 예쁘장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 그러나 각도 큰 커브와 우타자 몸 쪽을 파고드는 역회전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기술이 있었다.
유흥수 충남도지사의 시구가 끝나고, 김광철 주심의 “플레이볼!” 선언과 함께 강철원의 손끝에서 떠난 초구를 통해 역사적인 최초의 한국시리즈가 시작됐다.
이날 경기는 KBS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삼성 1번타자 장태수 좌익수 플라이, 2번타자 허규옥 유격수 땅볼, 3번타자 오대석 삼진. 1회초가 간단하게 삼자범퇴로 끝났다.
이어진 1회말. OB 1번타자 윤동균이 중전안타로 한국시리즈 최초의 안타를 만들었다. 구천서의 희생번트 속에 이어진 2사 2루. 4번타자 신경식의 좌월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5번타자 김유동의 중전 적시타로 2-0 리드를 잡았다.
그러자 삼성은 3회부터 곧바로 투수 교체를 단행했다. 또 다른 15승 투수 황규봉을 구원등판시켰다. 3회와 4회를 득점 없이 넘긴 OB는 5회말 윤동균의 2루타와 3번타자 김우열의 우전 적시타로 3-0으로 달아났다.
그러는 사이 OB 선발투수 강철원은 놀랍게도 5회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갔다. 볼넷 6개와 사구 1개가 있었지만 삼성타선은 강철원의 유연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지저분한 공에 허둥지둥하며 결정타를 날리지 못했다.
그러나 강태원의 노히터 행진은 6회초에 깨졌다. 삼성 함학수의 2점홈런(한국시리즈 1호 홈런)이 터지면서 스코어는 3-2. 그 점수는 9회초 삼성의 마지막 공격에 들어가는 시점까지 이어졌다.
OB 마운드는 여전히 강태원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선두타자 정현발을 볼넷으로 내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김한근의 투수 앞 땅볼로 1사 2루. 이어 천보성 투수 앞 땅볼 때 2루주자를 묶어두면서 2사 2루로 만들었다.
1차전 승리까지는 아웃카운트 1개. 하지만 여기서 통한의 동점을 내주고 말았다. 배대웅에게 중월 2루타를 맞으면서 3-3 동점을 허용했다.
강철원은 다음 타자 장태수를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하면서 9이닝을 마쳤다. 투구수 160개. 볼넷 9개와 사구 1개 등 10개의 4사구를 내줬지만 단 2개의 안타만 맞으면서 버텨냈다.
OB는 10회초부터 선우대영을 마운드에 올렸고, 삼성은 연장 10회말 위기에서 황규봉을 내리고 또 다른 15승 투수 이선희를 등판시키며 저항했다.
이날 승부는 연장 15회까지 4시간 30분 동안 진행됐지만 양 팀 모두 더 이상 점수를 내지 못했다. 원년 정규시즌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연장 15회 무승부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1차전이 끝난 뒤 OB 코칭스태프는 맥주로 목을 축이며 2차전을 준비했다. 김성근 투수코치는 “저쪽(삼성)도 투수를 많이 썼다”며 위안거리를 찾았다. 3-0으로 앞서다 3-3 무승부로 끝난 상황만 놓고 본다면 아쉽기도 하지만, 강철원 카드로 삼성의 15승 투수 3명을 소진시켰다는 점에서는 만족할 만했다.
강철원은 1983년에도 4연승을 추가해 프로 데뷔 후 정규시즌 9연승 무패를 달렸지만, 이후 어깨 부상으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1986년 청보로 트레이드된 뒤 은퇴하고선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 그의 이름도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통산 39경기 등판 9승4패, 평균자책점 5.02의 성적을 남겼다.
현재 잠실새내역 근처에서 화방을 크게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강철원은 당시를 돌아보면서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로 통보받은 뒤에도 크게 떨리지는 않았다. 그냥 그것도 한 경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상대 투수가 누구든 내 공만 던지자는 생각이었다”면서 “9회에 동점을 허용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날의 강렬했던 추억은 어제처럼 생생하다”고 세월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동기들하고는 가끔씩 연락하지만 은퇴 후에는 아예 다른 길을 가기 위해 야구장 쪽을 보지도 않고 살아왔다. 그래도 가끔은 그때가 생각난다. 원년 우승 멤버들이 한 번 모이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2차전 10월 6일(대구)=0-9 대패, 어두운 그림자
2차전은 하루 뒤인 10월 6일 대구구장으로 이동해 펼쳐졌다. 1차전에서 강철원(9이닝)과 선우대영(6이닝)을 쓴 OB는 계형철을 선발투수로 낙점했다. 삼성은 전날 10회 2사 후 등판해 15회까지 5.1이닝(64구)을 던진 이선희를 선발투수로 다시 올렸다.
승부는 초반에 쉽게 갈렸다. 1회를 무실점으로 막은 계형철은 2회말 1사 만루로 몰렸다. 8번타자 김한근의 2타점 적시타와 와일드피치, 실책이 이어지며 순식간에 4실점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투수를 박상열로 교체했지만 2점을 더 허용했다. 2회에만 타자일순하며 무려 13명의 삼성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고, 스코어는 0-6으로 벌어졌다.
OB는 4회말에 2점, 8회말에 1점을 추가로 내주며 0-9로 완패했다.
OB는 계형철(1이닝 5실점 3자책점)에 이어 박상열(5이닝 3실점 2자책점), 김현홍(2이닝 1실점 1자책점)이 던졌다. 계형철은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 패전투수가 됐다.
삼성은 이선희(5.2이닝 무실점)의 한국시리즈 최초 승리투수 기록 속에 성낙수(3.1이닝 무실점)가 경기를 마무리하며 한국시리즈 최초 세이브를 올렸다.
OB 타선은 단 5안타의 빈공으로 1점도 뽑지 못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부터 따지면 삼성에 1무2패를 당했다. 박철순도 없겠다, 1차전에서 다 잡은 승리도 놓쳤겠다, 2차전에선 대패를 당한 터라 선수단 내부에 ‘삼성을 상대로는 어렵다’는 열패감이 밀려들었다.
심지어 2차전 패배 후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음날 이동일이라 선수들이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대구의 한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술 취한 사람들과 시비가 붙으면서 주먹이 오가는 패싸움으로 번졌다. 자칫 집단 패싸움에 연루된 선수들이 철장 신세를 질 뻔했지만 주변의 도움 속에 가까스로 합의를 보며 경찰서에 넘겨지는 사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을까. 맏형인 김우열과 윤동균은 “우리 선수들이 말썽을 일으켰으니 다들 알아서들 하자”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지은 죄가 있는 OB 선수들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의기투합하는 계기가 됐다.
●3차전 10월 8일(서울)=박철순의 진통제 주사 투혼! 역사적 KS 첫 승
원년 한국시리즈는 3차전부터 7차전까지 중립지역인 서울운동장(동대문구장)에서 열리게 돼 있었다. 다만 홈팀은 지그재그로 배치했다. 3차전은 OB, 4차전은 삼성, 5차전은 OB, 6차전은 삼성이 홈팀(후공)을 맡게 됐다.
OB는 2차전 패배로 1무1패의 열세에 몰렸지만, 하루의 이동일을 거치면서 일단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할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10월 8일 3차전을 앞두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던 박철순이 경기 전 서울운동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김영덕 감독은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무리하게 박철순을 써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박철순은 등판을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선수 생명이 끝나도 좋다”며 진통제 주사를 맞고서라도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런 의견 대립 속에 구단 역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우승 기회를 날려버릴 순 없다’며 박철순의 자진 등판 의지에 힘을 실었다.
김성근 투수코치가 박철순을 만나 다시 한번 “정말 괜찮겠느냐”며 물었지만 박철순은 “많이 좋아졌다”며 허리를 움직여가며 웃었다.
OB 선수들은 박철순이 야구장에 나타난 사실 자체만으로 기운이 났다. 덕아웃엔 활기가 넘쳤다. 박철순은 이미 단순한 에이스 한 명 이상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3차전 선발투수는 OB 선우대영과 삼성 권영호의 좌완 대결. 2차전 패배 후 나이트클럽 집단 패싸움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알아서들 하자”며 분위기를 휘어잡은 윤동균이 공격의 선봉에 섰다. 1번타자로 전진배치된 그는 0-0으로 진행되던 3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중월 2루타를 날리며 찬스를 만들더니 1사 후 3번타자 김우열의 좌전안타 때 선취득점을 올렸다.
4회초 삼성이 함학수의 적시타로 1점을 따라붙자 OB는 5회말 2점을 뽑으며 리드를 잡았다. 2루타로 나간 윤동균이 상대 실책 때 2-1로 앞서 나가는 득점에 성공했고, 2사 후 5번타자 김유동의 좌전 적시타 때 김광수가 홈을 밟아 3-1로 달아났다.
6회초 1사 후 역투하던 선우대영이 함학수에게 좌중월 2루타를 맞았다. 정현발의 타구를 유격수 유지훤이 놓치는 실책을 범하면서 1사 1·3루의 위기를 맞았다.
이때였다. OB 벤치는 선우대영 대신 마침내 박철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기 전 야구장 밖에 세워둔 검은색 벤에 올라탄 박철순은 진통제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는 멀쩡한 투수처럼 마운드에 섰다. 1차전과 2차전에서 자취를 감췄던 박철순의 등판에 OB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박철순은 박철순이었다. 등판하자마자 견제구로 1루주자 정현발을 솎아내더니 천보성을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아무렇지 않게 지워냈다.
OB 타선은 6회 윤동균의 적시타와 7회 구천서의 적시타로 1점씩을 추가하며 5-1로 도망갔다.
박철순은 8회에 이만수에게 3루타, 함학수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 정현발에게 좌월 솔로홈런을 내주며 5-3으로 쫓겼지만 추가실점 없이 9회까지 3.2이닝 2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를 지켰다.
선발투수 선우대영은 5.1이닝 1실점으로 베어스 최초 한국시리즈 승리투수가 됐고, 박철순은 베어스 최초 한국시리즈 세이브를 기록하게 됐다. OB는 1승1무1패로 균형을 맞추며 역전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박철순은 세월의 흔적 속에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려 3차전 등판 내용을 복기했다. 그러면서 김영덕 감독 얘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나중에 김영덕 감독님이 우승을 위해 나를 등판시켰다고 비난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내가 등판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이었어요. 감독님은 오히려 ‘우승 못해도 좋다’며 나를 말리셨지만 나로선 정말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주사를 맞고 공을 던졌지만 전력투구를 하지 못했어요. 공이 제대로 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장타를 조심하자’고 다짐하면서 요령으로 던졌는데 운이 좋았죠. 그날 지면 우승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등판하려고 했습니다.”
●4차전 10월 9일(서울)=황규봉과 이만수의 충돌로 얻어낸 행운의 역전승
한글날이었다. OB는 다시 한번 기적을 꿈꾸며 1차전 선발투수로 나서 ‘깜짝투’를 펼친 강철원을 선발로 내세웠다.
그러나 강철원은 이번엔 오래 버티지 못했다. 3회말 장태수에게 2점홈런으로 선취점을 내준 뒤 4회말 3루타 2개 등 3안타로 2점을 추가로 허용하면서 강판됐다.
OB 타선은 삼성 선발투수 이선희를 상대로 4회초 김우열의 좌월 솔로홈런, 5회초 정종현의 중월 솔로홈런으로 2점을 뽑아냈다. 2-4로 따라붙으며 역전 드라마를 그리기 시작했다.
삼성 마운드는 이선희가 5.2이닝 2실점으로 물러난 뒤 황규봉이 이어받았다.
운명의 전환점이 된 7회초. OB는 2사 만루에서 김광수 대타로 나선 정혁진의 2타점 우월 2루타를 날렸다. 4-4 동점.
계속된 2사 2·3루. 여기서 한국시리즈 운명을 반전시킨 역사적인 장면이 나왔다. 김우열의 타구가 마운드 쪽으로 높이 치솟자 투수 황규봉과 포수 이만수가 서로 잡겠다며 타구만 바라본 채 낙구 지점으로 가다가 충돌하면서 그만 공을 떨어뜨리고 만 것. 이때 3루주자 윤동균이 홈을 밟으면서 5-4 역전에 성공했다. 이어진 2사 만루서 김유동이 2타점 중전 적시타를 터뜨려 OB는 단숨에 7-4로 달아났다.
박철순은 7회말 무사 1·2루 위기에서 승리를 굳히기 위해 황태환을 구원등판했다. 그리고는 더블스틸 때 3루로 달리던 장태수를 잡아내 한숨을 돌리는 듯했다.
그러나 박철순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이만수와 정현발에게 적시타를 맞고 7-6으로 쫓겼다. 그래도 박철순은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 8회와 9회를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아내면서 1점차 승리를 지켰다. 3이닝 1실점. 한국시리즈 두 번째 세이브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OB는 1무1패 후 2연승을 올리며 한국시리즈의 방향타를 바꿔놓았다.
●5차전 10월 10일(서울)=유지훤의 끝내기안타 우승의 전주곡
기세가 오른 OB는 5차전에서 초반부터 삼성을 몰아붙였다. 삼성 선발투수 권영호를 상대로 1회말 2사 2루서 신경식의 우월 2루타로 선취 득점을 올린 뒤 김유동의 좌월 2점홈런으로 3-0의 리드를 잡았다. 3회에는 김우열의 좌월 솔로홈런으로 4-0으로 앞서나가며 권영호를 강판시켰다.
삼성으로선 5차전까지 패하면 우승 가능성이 희박해진다고 보고 권영호(2.2이닝 4실점)에 이어 이선희를 구원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쳤다. 그런 의지가 덕아웃의 삼성 선수들에게 전달됐을까. 4회까지 OB 선발 선우대영에게 1안타로 침묵하던 삼성 타선은 5회초 김한근의 안타와 오대석의 2점홈런으로 추격을 시작했다. 7회초 대타 박찬의 2점홈런으로 4-4 동점이 됐다.
OB는 선우대영이 다시 볼넷을 내주자 황태환을 구원등판시켰다. 황태환이 삼성 타선의 불길을 잠재운 가운데, OB의 9회말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이 시작됐다.
선두타자 이홍범의 중전안타. 이때 삼성 중견수 정구왕의 실책으로 무사 2루 황금찬스를 잡았다. 8번타자 김경문의 희생번트로 1사 3루. 여기서 타석에 들어선 9번타자 유지훤이 이선희를 상대로 좌전 적시타를 날리며 5-4 승리를 확정했다.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 끝내기 안타가 나온 순간이었다.
OB는 승리도 승리지만, 박철순을 아낀 채 선발 선우대영(6.1이닝 4실점)과 황태환(2.2이닝 무실점) 2명의 투수로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부담을 덜었다. 삼성으로선 권영호(2.2이닝 4실점)가 조기강판된 뒤 이선희가 구원등판해 5.2이닝 1실점(비자책점)의 역투를 펼쳤지만 패전투수가 된 점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6차전 10월 12일(서울)=박철순 완투와 김유동 만루홈런! 원년 우승 신화 완성
하루의 휴식기를 지낸 뒤 10월 12일 6차전이 펼쳐졌다. 삼성의 홈경기로 치러져 OB가 선공, 삼성이 후공을 펼치게 됐다.
OB는 3차전 구원등판(3.2이닝 63구)과 4차전 구원등판(3이닝 46구) 후 이틀을 쉰 박철순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삼성 선발투수는 이선희. 1차전 구원등판(5.1이닝 64구), 2차전 선발등판(5.2이닝 63구), 4차전 선발등판(5.2이닝 95구), 5차전 구원등판(5.2이닝 75구). 이미 4경기에 나와 297구를 던졌다. 그렇지만 황규봉과 권영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벼랑 끝에 몰리자 또 6차전에 선발로 낙점됐다.
허리가 정상이 아닌 박철순이나, 지칠 대로 지친 이선희나 정신력으로 공을 던지기는 매한가지였다.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렵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엔 에이스라면 그런 투혼을 발휘하는 게 시대정신처럼 여겨지던 시절이다.
벼랑 끝에 몰린 삼성이 먼저 장군을 불렀다. 1회말 1사 만루서 5번타자 이만수가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날리며 2-0으로 앞서나갔다.
그러자 OB는 곧바로 멍군을 불렀다. 2회초 김유동의 좌월 솔로홈런으로 추격을 시작한 뒤 3회에 김우열의 적시타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삼성이 3회말 이만수의 적시타로 3-2로 달아나자 OB는 5회초 다시 김유동의 중전 적시타로 3-3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8회까지 0의 행렬이 이어졌다. 양 팀 선발투수들은 그대로 마운드에서 버티며 혼신의 힘을 다해 공 하나하나를 던져나갔다.
운명의 9회초.
OB 선발 포수로 나선 8번타자 김경문이 3루수 쪽 기습안타로 팽팽한 흐름에 균열을 만들었다. 1사 후 윤동균의 중전안타와 김광수의 사구로 만든 1사 만루 찬스. 그러나 김우열이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나고 말았다. 절호의 찬스에서 리드하는 점수를 생산하지 못한 채 2사 만루로 상황이 바뀌었다.
타석에는 4번타자 신경식. 이선희의 구위와 제구력은 떨어지고 있었다. 볼카운트 3B-1S에서 5구째 바깥쪽 직구. 신경식은 지켜봤고,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다. 밀어내기 볼넷. 3루주자 김경문이 달려와 홈을 밟으면서 OB는 값진 4-3 리드를 잡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음 타석에 김유동이 등장했다. 이미 2회 추격의 솔로홈런, 5회 동점 적시타를 날려 타격감과 자신감이 상승해 있었다. 김유동은 허탈해진 이선희의 초구 직구를 노렸다. 그대로 잡아당긴 타구는 까만 밤하늘에 하얀 무지개를 그리며 총알처럼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터진 그랜드슬램. 스코어는 순식간에 8-3으로 벌어졌다. OB 선수들은 우승이 확정된 것처럼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개선장군처럼 홈으로 들어오는 김유동을 맞이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삼성 선발투수 이선희는 다음 타자 구천서를 투수 앞 땅볼로 잡고 완투로 9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마치 죄인처럼 삼성 덕아웃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불펜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스스로를 자책하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프로야구 원년을 얘기할 때 ‘만루홈런으로 동트고 만루홈런으로 저물었다’고 표현하곤 한다. 1982년 3월 27일 원년 개막전에서 MBC 이종도가 연장 10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면서 야구의 묘미를 선사했고, 10월 12일 한국시리즈 최종 6차전에서 OB 김유동이 9회초 만루홈런으로 대미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막전 만루홈런과 한국시리즈 만루홈런의 희생양은 공교롭게도 이선희. 영웅 김유동이 환호하며 홈으로 들어오는 짜릿한 장면과 비운의 주인공 이선희가 불펜에서 눈물을 흘리는 안타까운 장면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양 팀의 운명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박철순은 9회말 젖 먹던 힘을 다해 던졌다. 허규옥과 장태수를 가볍게 잡아내 2사를 만들었다.
삼성 마지막 타자는 배대웅. 초구를 휘둘렀고, 포수 앞에서 큰 바운드를 일으킨 타구는 투수 박철순의 키를 훌쩍 넘어갔다. 투수가 도무지 잡을 수 없는 높이로 날아가는 공이었지만 박철순은 점프를 하며 안간힘을 쓰더니 그대로 마운드에 내려앉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유격수 유지훤이 날쌘돌이처럼 투수 뒤로 달려와 공을 잡더니 1루로 러닝스로했고, 1루수 신경식은 오른 다리를 쭉 뻗은 채 공을 잡았다. 마침내 OB 베어스의 역사적인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전문에 설명한 대로 OB 선수들이 마운드로 달려가며 기뻐하는 장면은 원년 한국시리즈 영상을 통해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올드팬들에겐 추억이 담겨 있고, 그 시절을 보지 못한 젊은 팬들에겐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장면이다.
최종 6차전에서 박철순은 145구, 이선희는 138구를 던졌다. 이 역시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의 양 팀 선발투수 완투 대결로 기록돼 있다. 지금까지 역대 5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다.
●’영원불멸’의 역사, ‘최초 우승팀’이라는 영광에 관하여
OB는 최초의 시대를 개척했다. 최초의 한국프로야구팀으로 창단해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팀으로 원년의 영광을 빚어냈다. 이 또한 100년이 지나도, 1000년이 지나도 프로야구 역사에 아로새겨질 영원불멸의 기록이다.
원년 우승의 추억을 어찌 잊으랴. 팬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우승 주역들 역시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김유동은 원년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400(25타수 10안타)에 3홈런 12타점으로 초대 한국시리즈 MVP(최우수선수)에 올랐다. 12타점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 타점 기록이다.
김유동은 “매년 한국시리즈 때마다 기자들이나 사람들이 당시 얘기를 묻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다”며 웃더니 당시 꿈 얘기를 들려줬다. “6차전에 앞서 집에서 낮잠을 잠깐 잤는데 상가에서 4명이서 두 번 절을 하는 꿈을 꿨다. 아내한테 ‘오늘 홈런 한두 방 칠 것 같다’면서 집을 나섰는데 정말 홈런 2방을 쳤다”고 지난날의 추억 한 토막을 꺼냈다. 따지고 보니 절을 한 4명은 만루홈런을 의미하고, 2번 절을 한 것은 홈런 2방을 암시하는 길몽이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승을 했지만 지금도 남모르게 아쉬운 점도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우승이 확정되고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면서 현장에서 방송 인터뷰와 기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는 바람에 정작 선수들과 우승 기념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것. ‘남는 것은 사진’이라는데, 한국시리즈 최초 MVP라는 훈장을 얻는 대신 동료들과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추억의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점은 지금도 아쉬운 대목이다.
박철순은 원년 한국시리즈를 돌이켜 보면서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이겼더라면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우승으로 원년 한국시리즈를 없애고 통합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면서 “번트 수비를 하다 허리를 다치고 팀도 패해 한국시리즈가 성사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후기리그 우승을 놓친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인지 모른다”고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원년에 한국시리즈가 없었더라면 프로야구 자체가 싱거워졌을 거예요. 개막전의 만루홈런과 한국시리즈 최종전 만루홈런은 팬들에게 프로야구의 참맛을 알려준 계기가 됐죠. 그로 인해 프로야구가 빠르게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게 됐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타구를 잡기 위해 날아오르다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허리에 큰 부담이 왔다. 허리와 맞바꾼 원년 우승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잡기 힘든 공이었지만 얼마나 잡고 싶었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6차전 9회초에 점수가 나지 않았더라면 난 더 던지지 못했을 거예요. 허리 부상을 얻었지만 마지막 우승 순간에 내가 마운드를 지켰다는 점에서 만족해요. 원년 우승을 하면서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승격의 꿈을 버리고 돌아온 보람을 느꼈죠. 당시엔 우승만 할 수 있다면 허리고 뭐고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