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최초 창단 구단인 OB 베어스는 프로야구 초창기에 늘 '최초'의 역사를 만들었다. 또 하나의 최초 역사가 있으니, 바로 1986년 KBO 구단 최초로 플레이오프(PO) 무대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베팬알백] 26번째 주제는 사상 처음으로 펼쳐진 1986년 플레이오프 이야기다. 한국야구사에서 가을야구는 그 이전까지 한국시리즈밖에 없었다. 1986년 플레이오프가 처음으로 펼쳐지면서 가을야구도 한층 더 흥미진진해지고 풍성해졌다. 이로 인해 KBO의 가을야구 시스템 자체가 한 단계 더 도약을 하게 됐다.
플레이오프의 출발점이 된 1986년으로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사상 최초 플레이오프 성사
KBO 포스트시즌 제도는 진화를 거듭해 왔다. 한국시리즈는 원년부터 시작됐고, 플레이오프는 1986년부터 거행됐다. 1989년부터 준플레이오프가 도입됐고, 2015년부터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열렸다.
이 중 포스트시즌 제도에서 가장 먼저 손질이 가해진 1986년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86년 플레이오프가 시행된 것은 바로 전년도 1985년에 삼성 라이온즈가 전·후기리그를 통합 우승한 것과 관련이 있다. 삼성이 한국시리즈를 없애면서 완전무결한 우승을 차지했지만, 프로야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땐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한국시리즈가 무산된 것은 흥행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한국시리즈는 반드시 개최되도록 제도 정비를 하게 됐다.
이미 앞선 [베팬알백] 이야기에서 1986년부터 시행된 포스트시즌 제도와 관련해 설명한 바 있지만, 다시 살펴보자면 ▲전·후기리그에 걸쳐 티켓 두 장(1위와 2위 상관없음)을 쥔 팀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나머지 두 팀끼리 플레이오프를 거행하며 ▲티켓을 가진 팀이 모두 다를 때(4개 팀)는 전기 1위-후기 2위, 후기 1위-전기 2위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서 진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1986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2위를 2차례 차지한 해태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리고 전기리그 1위인 삼성과 후기리그 우승 결정전에서 1위를 확정한 OB가 역사적인 최초 플레이오프 진출 팀으로 결정됐던 것이다.
●원년 KS 우승 OB, 4년 만의 가을잔치…최초 PO에서 삼성과 격돌
OB는 ‘원년 우승팀’이라는 진한 향기를 가진 팀이지만,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기억과 추억들이 가을바람의 낙엽처럼 하나둘씩 흩날려갔다.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원년 한국시리즈 MVP 김유동은 1984년 삼미 슈퍼스타즈로 이적한 뒤 1985년 청보에서 유니폼을 벗었고, 초창기 OB의 홈런포 상징 인물이었던 김우열은 빙그레 이글스가 대전·충청권을 연고로 창단하자 “고향(충북 영동) 팀에서 마지막 열정을 태우고 싶다”며 트레이드를 요구해 1986시즌을 앞두고 이적했다.
이런 변화와 흐름 속에 OB는 1982년 한국시리즈 이후 4년 만의 가을잔치 무대를 맞이하게 됐다. OB 팬들에게 1986년 가을은 그래서 가슴 설레는 계절이었다.
OB와 삼성, 삼성과 OB. 사상 최초의 플레이오프 매치업은 호사가들의 구미를 당기는 카드였다. 프로야구 출범 후 길지 않은 기간에 양 팀은 참으로 많은 사연과 역사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었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최초 한국시리즈(1982년)에서 격돌한 상대팀. 그 이후 두 팀이 4년 만에 가을 무대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도 특별한 이야기 소재였다.
양 팀 사령탑의 대결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삼성 김영덕 감독과 OB 김성근 감독은 재일교포 출신으로 한때는 형제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그러나 1982년 OB에서 감독과 코치로 팀의 우승을 합작했지만 수시로 선수 기용 등을 놓고 충돌하면서 감정의 앙금이 생겼다. 1983시즌 후 김영덕 감독이 삼성 감독으로 가는 과정에서 이들은 극도로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이에 대해서는 [베팬알백] 16편과 17편에서 자세히 기술한 바 있다.
야구적으로만 보더라도 양 팀의 색채는 뚜렷하게 대비됐다. OB는 맏형 윤동균을 비롯해 박종훈 김형석 신경식 김광림 등이 타선의 주축을 이루는 ‘좌타 군단’이었고, 삼성은 김일융 권영호에 1986년 루키 성준까지 가세해 ‘좌투 군단’으로 자리 잡았다.
얽히고설킨 라이벌 구도도 흥미로웠다. 재일교포 에이스인 OB 최일언과 삼성 김일융, 1986년 좌완 신인투수 OB 박노준과 삼성 성준, MBC 청룡에서 각각 이적한 OB 이종도와 삼성 이해창의 대결 등도 팬들의 주목받는 요소였다.
OB가 평균자책점(2.61) 1위에 오른 ‘방패의 팀’이었다면, 삼성은 팀타율(0.276) 1위를 차지한 ‘창의 팀’. 반대로 삼성은 평균자책점 2.95로 7개 팀 중 5위에 그쳤고, OB는 팀타율 0.248로 5위에 머물렀다. 만년 약체팀 청보(팀타율 0.219)와 그해 처음 1군 무대에 진입한 신생팀 빙그레(팀타율 0.236)를 아래에 뒀기에 망정이지, 0.248의 팀타율은 OB 구단 창단 후 최저일 정도로 화력이 강하지는 않았다.
●OB 1차전 선발 에이스 최일언 아닌 박노준?
1986년 플레이오프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린 아시안게임 일정으로 인해 정규시즌이 끝난 뒤 3주간의 공백 이후 플레이오프가 시작됐다. 그 사이 OB는 해태와 벌인 후기리그 우승 결정전(베팬알백 25편에 소개)으로 그나마 실전감각을 다소 찾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기나긴 휴식이 변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1차전 선발투수 매치업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OB 선발투수는 신인 좌완 박노준. 당시엔 선발투수 예고제가 시행되지 않던 시절이다. 대부분 그해 19승4패(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한 OB 에이스 최일언이 1차전 선발등판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김성근 감독은 신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박노준은 선린상고 시절부터 전국구 최고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고려대 시절까지 투수와 타자 모두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이르자면 '이도류(쌍검술)' 유형의 선수였지만 OB는 입단 당시 그를 타자로 보고 계약금 5000만 원을 안겼다. 투수는 이미 전년도에 해태에 입단한 선동열이 1억3800만 원으로 역대 최고 계약금 기록을 세웠지만, 박노준은 '역대 야수 최고 대우'라는 수식어 속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OB 유니폼을 입었다.
김성근 감독은 박노준이 입단하자 투수와 타자로 동시에 활용할 방안을 찾았는데, 오히려 타자보다는 투수 쪽에 주력했다. 그러나 박노준은 그해 투수로서 정규시즌 110.1이닝을 소화하며 5승6패7세이브(평균자책점 2.28)를 기록했고, 타자로서도 타율 0.173(52타수 9안타)에 그쳤다. 특히 시즌 중반 어깨 이상과 투구폼이 흐트러지는 난조 속에 부진에 빠졌다
박노준은 결국 선린상고 동기인 MBC 청룡의 김건우에게 1986년 신인왕을 넘겨줬다. 김건우는 첫해부터 18승6패, 평균자책점 1.80으로 눈부신 피칭을 펼쳤다. 그해엔 김건우뿐만 아니라 신인투수 풍년가를 부를 만한 시즌이었다. 삼성 성준도 혜성처럼 등장해 ‘작은 김일융’으로 불리며 15승5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2.36의 호성적을 거뒀다. 신생팀 빙그레에 입단해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승수보다 패수가 많았지만 이상군(12승17패)과 한희민(9승13패)도 신인 돌풍을 일으켰고, 해태 차동철(10승4패3세이브)과 김정수(9승6패5세이브) 등도 이름을 보탰다.
이에 비하면 박노준은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에 크게 미치지 못한 성적을 올린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이 5전3선승제의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중요한 1차전 선발투수로 최일언 대신 박노준을 선택하자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찾자면 박노준은 9월 이후에만 3연승을 올리며 OB가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 기세를 믿었던 것이다.
삼성 선발투수는 정규시즌 13승4패,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한 재일교포 김일융. 전년도 삼성이 전·후기리그 통합 우승을 할 때 팀동료 김시진과 함께 25승으로 공동 다승왕에 올랐던 좌완 에이스였다. 시즌 도중 탈수증으로 전년도보다는 성적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OB로서는 부담이 되는 상대 에이스였다.
●1차전, 박노준과 김일융 완투 대결…OB 0-1 패배
10월 11일 대구구장. 박노준과 김일융 두 좌완의 대결 속에 1차전의 팡파르가 울렸다. 1차전 선발투수 박노준 카드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6안타만 허용한 채 1실점 완투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 선발투수 김일융이 더 호투를 했다는 점이었다. 단 4안타만 내주면서 OB 타선에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1회말 나온 1점이 승부를 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공의 OB는 1회초 1사 후 2번타자 김광수가 볼넷을 얻어 나갔지만 2로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되면서 기선 제압에 실패했다.
그러자 곧바로 삼성이 반격에 나섰다. 1회말 1사 후 2번 좌타자 허규옥이 우익선상으로 빠지는 2루타로 살아나갔다. 단타로 처리할 수 있었던 타구를 우익수 김형석이 무리하게 잡으려다 뒤로 빠뜨린 것이 뼈아팠다(공식기록원은 실책 없이 2루타로 판정). 1차전이라는 긴장감과 함께 의욕이 넘친 결과였는데 이것이 이날의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장면이 되고 말았다.
박노준은 이어 3번 장효조를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 한숨을 돌리는 듯했지만, 곧바로 4번타자 이만수에게 좌전 적시타를 내주면서 1회에 선취점을 빼앗기고 말았다.
OB 타선은 김일융에게 눌려 힘을 쓰지 못했다. 4회초 2사 후 김형석이 팀의 첫 안타를 쳤지만 소득이 없었고, 6회초 2사 후 1번타자 이승희가 중월 2루타를 날렸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았다.
박노준은 1회 1실점 후 역투를 거듭했다. 삼성 역시 추가점을 못 내기는 마찬가지였다. 5회 선두타자 김용국이 2루타로 나간 뒤 배대웅의 투수 앞 희생번트 때 선행주자가 아웃되고, 6회에도 무사 1·2루 찬스에서 장태수의 희생번트가 또 투수 앞으로 가면서 2루주자가 3루에서 횡사했다.
9회초 OB의 마지막 공격. 1사 후 김광수와 김형석의 연속 안타로 1·2루 황금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4번타자 신경식이 2루수 앞 땅볼로 ‘4(2루수)~6(유격수)~3(1루수) 병살타’로 물러나면서 결국 0-1로 패하고 말았다.
박노준은 8이닝 동안 기대 이상의 호투를 펼치고도 완투패를 안았고, 좌타 군단 OB는 삼성 좌완 김일융의 두뇌피칭에 휘말리며 상대에게 완봉승을 안겨주고 말았다.
●2차전, 이종도 결정적 투런포…OB 반격의 5-3 승리
2차전에 앞서 우선 이종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원년 MBC 청룡 선수로 1982년 3월 27일 KBO 최초 개막전에서 7-7 동점이던 연장 10회말에 삼성 이선희를 상대로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려 드라마를 만든 주인공. 이 만루홈런은 지금도 개막전만 되면 회자되곤 하는 전설이다.
1984년까지 MBC 유니폼을 입었던 이종도는 1985년 1월 16일, 1800만 원의 조건에 OB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이종도는 MBC에서 입지가 좁아졌지만 김성근 감독은 좌타 일색인 팀 타선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우타 카드로 보고 영입을 추천했다.
김 감독은 1985년 110경기 중 105경기에 투입할 정도로 이종도를 중용했다. 그러나 1986년에는 시즌 내내 거의 대타 카드로 활용하는 데 그쳤다.
그런 이종도를 플레이오프 1차전에 7번 좌익수로 깜짝 선발 기용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이종도가 큰 몫을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취재진에 설명을 했다. 경험이 많고 찬스에 강한 선수인 데다, 좌타자 일색인 OB 타선에서 좌투수에게 강한 이종도를 회심의 카드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종도는 1차전 5회까지 두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나면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8회에 대타 양승호로 교체됐다. 그리고 2차전 선발 라인업에 이종도는 없었다.
10월 12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2차전 OB 선발투수는 우완 계형철. 그해 정규시즌 5승7패에 그쳤지만 경험을 믿었다. 3전2선승제의 플레이오프에 2차전마저 패하면 벼랑 끝에 몰리기에 여차하면 모든 투수를 투입하기 위한 총력전을 준비했다.
‘좌투 군단’ 삼성은 2차전 선발투수로 역시 좌완 권영호를 내보냈다. 그해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7승7패에 19세이브를 올린 투수. 김영덕 감독은 여차 하면 15승을 올린 신인 좌완 성준을 구원등판시킬 그림까지 그려놓았다.
OB는 1회초 좌타자들이 힘을 냈다. 2사 후 김형석~윤동균~신경식으로 이어진 좌타 트리오의 중심타선이 3연속 안타를 때려내면서 선취점을 뽑았다.
삼성은 1회말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1사 후 2번타자 허규옥의 3루타에 이어 장효조가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1차전 결승타의 사나이 이만수가 다시 우전 적시타를 날리면서 1-1 동점이 됐다.
OB는 3회초 2사 1·2루에서 유지훤의 좌전 적시타로 다시 2-1 리드를 잡았다. 이어 5회초 선두타자 윤동균의 우익선상 2루타, 신경식의 희생번트 후 유지훤이 다시 중월 2루타 터뜨려 3-1로 앞서 나갔다.
이때 타석에 등장한 인물은 이종도. 2차전 라인업에서 이름이 빠졌지만 3회초 박종훈 타석 때 대타로 나서 볼넷을 고른 바 있다.
삼성 김영덕 감독도 뭔가 느낌이 왔는지 기민하게 움직였다. 베테랑 선발 권영호를 내리고 팔팔한 신인 성준을 호출했다.
좌투수에 강한 타자답게 이종도는 여기서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2점홈런을 터뜨렸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5-1. 이종도는 선발로 출장하지는 않았지만 김성근 감독의 장담처럼 “큰 몫”을 해냈다.
삼성은 5회말 2점을 뽑아 2점차로 추격한 뒤 9회말 2사 후 허규옥의 안타로 마지막 불씨를 지폈다. OB는 6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한 장호연을 내리고 마침내 아껴둔 에이스 최일언을 투입했다.
장효조의 안타로 2사 1·2루 위기. 타석엔 이만수가 들어섰다. 스코어는 5-3. 홈런 한 방을 맞으면 역전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일언은 이만수를 가볍게 3루수 앞 땅볼로 처리한 뒤 포효했다. OB는 대구 원정에서 1승1패로 균형을 맞추고 서울 잠실에서 열리는 3~5차전을 기대했다.
●3차전, 최일언 2-0 완봉승…KS까지 1승 앞으로
1차전과 2차전이 대구에서 10월 11~12일 이틀간 펼쳐진 뒤 13일 하루 이동일이 편성됐다. 3차전은 잠실로 이동해 14일에 펼쳐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날 갑자기 가을비가 쏟아지면서 경기는 하루 뒤로 순연됐다. 이 점이 또 하나의 변수가 됐다.
3차전 선발투수로 OB는 최일언을, 삼성은 김시진을 선택했다.
일각에서는 부상설이 돌기도 했지만, 2차전 9회 위기에 등판해 2타자를 상대하며 승리를 마무리했다. 김성근 감독은 3차전 선발투수 최일언에 대해 “컨디션이 나쁘긴 하지만 5~6회 정도는 잘 던져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시진은 1985년 25승을 거두며 팀동료 김일융(25승)과 50승을 합작했다. 후유증이 찾아왔을까. 1986년 시즌 내내 팔꿈치 고장으로 힘든 시즌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승6패3세이브, 평균자책점 2.47의 성적을 올리긴 했지만, 삼성 입단 이후 17승(1983년)-19승(1984년)-25승(1985년)-16승(1986년)-23승(1987년)을 기록했으니 5년 사이에 가장 적은 승수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경기는 최일언과 김시진의 팽팽한 투수전으로 전개됐다. 특히 최일언은 감독의 기대 이상으로 역투를 펼쳤다. 5~6회가 아니라 7회와 8회를 넘어 9회까지 막강한 삼성 타선을 상대로 단 1점도 내주지 않았다. 9이닝 8안타 7탈삼진 무실점 완봉승. 결국 OB는 2-0 승리를 거두고 한국시리즈까지 1승만을 남겨두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OB 타선은 2회와 7회에 1점씩을 뽑아 승리에 필요한 점수를 만들었다. 이날 다시 7번 좌익수로 선발출장한 이종도가 맹활약했다. 2회말 볼넷, 4회말 우전안타, 7회에 우월 2루타를 날리면서 100% 출루를 기록했다.
사실 선취점을 빼앗길 뻔했다. 최일언의 초반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1회초 시작하자마자 선두타자 이해창에게 좌월 2루타를 맞으면서 위기를 만났다. 그러나 포수 조범현이 기막힌 견제로 이해창을 2루에서 잡아냈다. 이어 2사 후 장효조가 3루타를 때렸고, 이만수가 범타로 물러나면서 OB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OB는 2회말 신경식과 유지훤의 안타와 이종도의 볼넷으로 1사 만루 찬스를 잡은 뒤 박종훈의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뽑았다. 최일언이 호투를 거듭하는 사이 7회말 이종도가 우월 2루타를 치고 나갔고, 3회부터 포수 마스크를 쓴 김경문이 중전 적시타로 이종도를 불러들여 2-0으로 앞서나갔다.
OB는 9회초에 무사 만루의 대위기를 만났다. 선두타자 대타 이종두의 중전안타, 이해창의 1루수 앞 내야안타로 무사 1·2루. 이때 허규옥의 투수 앞 번트가 절묘하게 안타가 되면서 만루가 됐다.
타순은 3번타자 장효조, 4번타자 이만수로 이어질 차례. 삼성의 최고 타자들이 대기하고 있어 긴장감이 고조됐다. 그런데 이때 장효조의 타구가 투수 정면으로 가면서 1(투수)~2(포수)~3(1루수)으로 연결되는 더블플레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타자 이만수는 삼진.
최일언은 완봉승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반면 김시진은 8회까지 5안타만 허용했으나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이제 OB는 1승만 거두면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내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맞이했다. 더군다나 9회초 무사 만루 위기를 벗어나면서 이겼기 때문에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4차전, 김일융에 막혀 1-2 분패…2승2패 승부는 원점
10월 16일 잠실에서 열린 4차전. OB는 1차전에서 기대 이상의 호투를 펼친 박노준을 4차전 선발투수로 투입했다. 벼랑 끝에 몰린 OB는 에이스 김일융을 선택해 1차전의 선발투수 매치업이 그대로 이어졌다.
1차전에서 김일융에게 완봉패를 당한 OB는 4차전에서는 1회말 시작하자마자 선취점을 뽑으며 기세를 올렸다.
선두타자 이승희가 우전안타를 쳤을 때 우익수 장효조가 실책을 범하면서 무사 2루 찬스를 잡았다. 김광수의 희생번트로 1사 3루, 3번타자 김형석이 삼진을 당해 2사 3루로 이어졌다. 여기서 4번타자 신경식의 땅볼을 2루수 김성래가 놓치는 실책을 범하면서 이승희가 홈을 밟았다. 삼성 선수들의 부담감이 커진 것일까. 1회말에만 2개의 실책을 범해 OB에게 점수를 헌납했다. OB는 1-0으로 리드하면서 머릿속으로 한국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2회초 삼성이 반격을 시작했다. 선두타자 김성래는 1회말 수비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좌월 2루타 날렸다. 이어 이종두의 좌전안타로 무사 1·3루가 됐고, 오대석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1-1 동점이 됐다. 그러자 김성근 감독은 박노준을 빼고 장호연을 투입했다.
1-1 스코어는 8회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9회초 삼성 공격. 이만수가 중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이어 장태수가 1루수 쪽으로 희생번트를 대자 신경식이 날렵한 수비로 선행주자를 2루에서 포스아웃시켰다. 1사 1루. 이어 김성래의 우전안타로 1사 1·3루가 됐다.
삼성은 여기서 이종두 타석 때 대타로 좌타자 박승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박승호는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날렸고, 삼성이 2-1로 앞서게 됐다.
OB는 9회말 기막힌 찬스를 잡았지만 득점 실패로 아쉬움을 곱씹어야만 했다. 선두타자 윤동균이 우월 2루타를 날렸다. 그러나 다음타자 신경식의 번트가 투수 앞으로 갔고, 공을 잡은 김일융은 곧바로 3루를 선택해 윤동균을 잡아냈다.
1점차 승부에서 1사 3루 찬스를 이어가려던 계획은 1사 1루로 변하고 말았다. 이어 유지훤이 삼진으로 돌아서고 이종도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OB는 1-2로 패하고 말았다.
삼성 선발투수 김일융은 이날 9이닝 동안 5안타 2볼넷 6탈삼진 1실점(비자책점)으로 다시 완투승을 올렸다. OB는 김일융에 2승을 내주면서 플레이오프 전적 2승2패로 균형을 이뤘다. 2회부터 박노준을 구원등판한 장호연이 7.2이닝 1실점으로 역투를 펼쳤지만 소득이 없었던 것이 OB로선 못내 아쉬웠다.
●5차전, 3-7 패배…KS 눈앞에 두고 아쉬운 발길
사상 처음 펼쳐진 플레이오프는 최종전까지 가는 명승부로 문을 열었다. 10월 17일 잠실구장에서 한국시리즈 직행 판가름이 나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내일이 없는 싸움. OB는 4차전 선발등판 후 조기강판한 박노준을 다시 5차전에 선발등판시켰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만 3번째 선발등판이었다.
반면 삼성은 성준을 내세웠다. 신인 좌완투수들의 선발 맞대결이 성사됐다. 내일이 없는 싸움. 김성근 감독이나 김영덕 감독이나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투수를 대기시켜 놓고 여차하면 교체를 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경기에 돌입했다.
앞선 4경기가 투수전 속에 1~2점차의 박빙 승부로 펼쳐졌다면, 5차전은 초반부터 화끈한 타격전으로 불이 붙었다. 중반까지는 엎치락뒤치락했다.
선취점은 삼성의 몫이었다. 1회초 1사 후 허규옥의 볼넷과 와일드피치로 1사 2루. 김성래의 땅볼 때 2루수 김광수가 실책을 범하면서 1사 1·3루가 되고 말았다. 이어 이만수의 몸에 맞는 공으로 1사 만루. 여기서 이해창의 좌익수 희생플라이가 나왔다. 삼성의 1-0 리드.
OB는 2회말 2점을 뽑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선두타자 윤동균의 볼넷 후 신경식의 우익선상 2루타로 무사 2·3루 기회를 만들었다. 여기서 유지훤의 좌익선상 2루타로 2점을 쓸어 담아 2-1로 전세를 뒤집었다. 삼성은 성준을 내리고 권영호를 마운드에 올려 급한 불을 껐다.
4회초 삼성이 다시 반격했다. 선두타자 이해창의 솔로홈런으로 2-2 동점을 만들고, 박노준 대신 마운드에 오른 김진욱을 상대로 김용국이 1타점 좌중간 2루타를 때리면서 3-2로 재역전했다. 삼성은 5회초 이만수의 적시타로 또 2점차로 달아났다.
OB는 5회말 1사 1·3루에서 김광수의 3루수 땅볼 때 3루주자가 홈을 밟아 다시 3-4, 1점차로 따라붙었다.
팽팽하던 균형은 7회초 깨졌다. 6회초부터 마운드에 오른 최일언을 상대로 7회초 선두타자 장효조가 우중월 솔로홈런을 때렸다. 우중간 관중석 상단에 떨어지는 초대형 홈런. 분위기가 갑자기 삼성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어 1사 후 김성래의 2루타와 이만수의 적시타가 터졌다. 스코어는 6-3.
삼성은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도 4연속 안타로 1점을 추가하며 달아났다. 선두타자 김용국의 우전안타, 장효조의 중전안타, 장태수의 좌전안타, 김성래의 투수 앞 번트안타까지….
8회말 무사 1·2루의 찬스를 놓친 OB는 9회말에도 삼자범퇴로 물러나면서 3-7로 패하고 말았다.
삼성은 성준(1이닝 2실점)과 권영호(8이닝 1실점) 2명으로 5차전 마운드를 운영했다. 반면 OB는 선발 박노준(3.1이닝 3실점)에 이어 김진욱(0.1이닝 0실점)~황태환(0.2이닝 1실점)~윤석환(0.2이닝 0실점)~최일언(3이닝 2실점)~계형철(1이닝 1실점) 등 6명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으나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최초 플레이오프 무대…아쉬움 속에 얻은 수확
5차전까지 가는 혈투가 끝났다. 4년 만에 눈앞으로 다가온 한국시리즈에 나서지 못한 OB로서는 아쉬움이 컸다. 무엇보다 플레이오프에서 3차전까지 2승1패로 리드를 잡아 한국시리즈까지 1승만을 남겨두고 물러났기에 진한 여운이 남았다.
그러나 전기리그 5위에서 후기리그 1위로 치고 올라간 저력과 뚝심은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상 최초 플레이오프 무대에 섰다는 사실 또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베어스는 이때부터 플레이오프와 가장 인연이 많은 팀이 됐다. 2021년까지 기준으로 가장 많은 플레이오프 경기(69경기)에 나선 팀이 바로 베어스다. 여기서 40승29패로 가장 많은 승리와 가장 높은 승률(0.580)을 올린 팀 역시 베어스다.
베어스는 플레이오프와 가장 많은 인연을 맺은 팀답게 훗날까지 기억에 남을 만한 숱한 플레이오프 명승부들을 만들었다. 그 잊을 수 없는 명승부 장면들은 앞으로 베팬알백에서 차차 소개해나가리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