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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국 Feb 15. 2023

[05] 베어스 최초 경기, 역사적 1호 기록과 추억들

베팬알백 | 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원년 OB 베어스 최초 경기 장면 ⓒ두산베어스>


 “미국 본토 야구를 배워온 박철순이냐? 일본 프로야구 타격왕 출신의 백인천이냐?” 첫판부터 호사가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빅매치가 성사됐다. 팬들과 언론의 관심은 온통 이들의 맞대결에 쏠렸다.


 1982년 3월 28일 서울운동장 야구장(동대문야구장). 개막전에서 승리한 MBC 청룡으로선 이날이 두 번째 게임이지만, OB 베어스에겐 이날 MBC전(원정경기)이 구단 역사상 최초의 게임이었다.


 MBC는 선수 구성상 우승후보 삼성의 독주를 견제할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던 팀이었다. 선수층도 넓은 서울을 연고지로 삼았고, 일본프로야구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인천이 감독을 맡으면서 별도의 드래프트 없이 자연스럽게 선수로 등록되기도 했다. 게다가 전날 공식 개막전에서 그 유명한 이종도의 연장 10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삼성을 11-7로 격파하면서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반면 OB는 시즌에 앞서 객관적인 전력상 “잘해야 3~4위권” 정도로 평가됐다. 일부에서는 “국가대표 출신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는 삼미보다는 앞서지 않겠느냐”며 “꼴찌 아니면 다행”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실제 OB 내부적으로도 “MBC나 롯데 둘 중 하나 정도만 잡고 3위만 해도 성공”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OB가 믿을 구석은 역시 박철순이었다.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더블A에서 뛰었고, 트리플A 승격이 약속돼 있던 에이스. 창단 최초 게임 선발투수로 일찌감치 내정해놓고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베팬알백ㅡ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다섯 번째 주제는 베어스 역사상 최초의 게임 이야기다. 그 역사적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면서 웅장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 축제 분위기 속 긴장감! 최초의 경기 앞둔 풍경들


<원년 OB 베어스 경기 ⓒ두산베어스>


 “동대문에 도착했더니 여기저기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그랬어요. 마치 만국기를 운동장에 걸어놓고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는 초등학교 운동회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구단 차원의 최초 게임이었으니까 다들 설레면서도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초창기 OB 베어스의 2루를 책임진 ‘날다람쥐’ 김광수(전 한화 수석코치)의 회상이다. 건국대를 졸업한 뒤 실업팀 농협에 입단했다가 프로야구에 뛰어든 그는 이날 OB 베어스 최초의 게임에 2번 2루수로 선발출장해 구단 역사상 최초의 안타를 기록한 인물이다.


 프로야구 시대의 개막. 유인 우주선 아폴로11호가 1969년 달나라에 최초로 착륙한 것처럼, 프로야구 출범은 마치 그동안 우리가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야구문명의 시대를 열어줄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차 올랐다. 전날 공식 개막전에서 MBC가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만화 같은 승리를 장식하면서 그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됐다.


 “프로야구가 시작됐지만 당시 동대문구장은 선수단이 밥 먹을 데가 마땅치 않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개막전을 앞두고 도시락을 일본식 식당에서 주문해서 가져 왔는데, 대기실과 덕아웃 뒤쪽 복도에서 다들 쭈그리고 앉아서 먹고 최초의 경기를 치르러 나갔죠. 박용곤 그룹회장(구단주)도 오시고 그룹 차원에서 임직원들도 많이 왔어요. 구단주께서 선수단 앞에서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라. 너무 승부에 연연하지 마라. 다만 최선을 다하고 허슬플레이를 해달라’고 주문했어요. 특히 ‘허슬플레이를 하라’고 당부하신 게 분명히 기억나요. 두산의 허슬플레이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사실 그때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용곤 구단주는 그 이후에도 자주 야구장에 오셨지만 그때 말고는 선수단 미팅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그라운드로 내려오지를 않았으니까요.” 원년부터 OB 베어스 매니저를 맡았던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 선발투수는 박철순! 최초 게임 라인업은?


<박철순 ⓒ두산베어스>


 OB 베어스 초대 사령탑에 오른 김영덕 감독은 역사적 첫 게임을 승리로 장식하기 위해 라인업을 짜는 데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선발투수였다.


 “원년 개막을 앞두고 마산 캠프 때 박철순이 던지는 걸 처음 봤는데 공이 좋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코치나 선수 누구라도 야구를 한 사람이면 딱 보면 알죠. 미국에서 야구를 배웠으니 잘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캠프 때 실제로 박철순이 처음 던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공이 너무 너무 좋은 거예요. 당연히 첫 경기 우리 선발투수는 박철순이었죠.” 김영덕 감독은 최초의 게임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갔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도 박철순을 선발 카드로 내세운 사실에 대해서는 또렷하게 기억해 냈다.


 그렇다고 해도 선발투수를 결정하는 과정마저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베팬알백] 3편에서 설명했듯이 박철순을 밀워키에서 데려오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LA 다저스 피터 오말리 구단주가 중재에 나서면서 밀워키 버드 셀리그 구단주의 양보를 이끌어 냈지만, 개막을 앞둔 시점까지 이적 동의서가 오지 않은 탓에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박철순의 선수등록이 보류되고 있었다. 여기에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좌완 선우대영마저 감기몸살로 훈련을 쉬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식 개막전이 열리기 불과 이틀 전인 3월 25일 오후, 마침내 밀워키로부터 공증된 이적 동의서가 도착하면서 KBO에 정식으로 박철순의 선수등록을 신청할 수 있었다. 박철순이 정식 선수가 된 이상 개막전 선발투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조범현 ⓒ두산베어스>


 “캠프 때 철순이 형의 공을 처음 받아봤는데 확실히 느낌이 달랐어요. 팜볼, 너클볼을 던졌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에 그런 볼 던지는 투수가 없었거든요. 직구와 슬라이더, 커브만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직구도 빠르고 볼끝이 좋았는데 요즘으로 치면 팜볼을 체인지업처럼 던졌으니 타자들이 많이 속았죠. 그 시절에 완급조절을 한 거였죠. 여기에 낙차 큰 커브가 있었어요. 키도 커서 각도가 좋았어요. 커브는 주로 카운트 잡는 용도로 사용했죠.” 최초의 게임에 8번 포수로 선발출장한 조범현(전 kt 감독)의 회상이다. 원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우승 순간엔 김경문(전 NC 감독)이 박철순과 포옹을 했지만, 베어스 최초 게임엔 조범현이 안방에 앉아 박철순과 호흡을 맞췄다. 배터리가 정해지면서 선발 명단이 완성됐다. 다음은 1982년 3월 28일 OB 베어스의 라인업이다.


1번 좌익수 이근식(小)

2번 2루수 김광수

3번 우익수 윤동균

4번 지명타자 김우열

5번 1루수 신경식

6번 3루수 양세종

7번 중견수 이홍범

8번 포수 조범현

9번 유격수 유지훤

선발투수 박철순


 상대팀 MBC 선발투수는 이광권(현 독립야구단 용인 스텔스 감독)이었다. 독특하게 몸을 비틀어 던지는 데다 공끝이 지저분한 국가대표 출신의 잠수함투수. 전날 개막전에 이길환~유종겸을 소모한 청룡이었기에 강속구 투수 하기룡의 선발등판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았지만 백인천 감독은 이광권 카드를 뽑아들었다. MBC 라인업은 다음과 같았다.


1번 2루수 김인식

2번 중견수 송영운

3번 1루수 김용윤

4번 포수 유승안

5번 지명타자 백인천

6번 좌익수 이종도

7번 우익수 신언호

8번 유격수 정영기

9번 2루수 박재천

선발투수 이광권



● 김광수 구단 최초 안타! 이어진 부정배트 시비 해프닝


 오후 3시, 황석중 주심이 힘차게 “플레이볼!”을 선언했다. 원정팀 OB의 선공으로 1회초가 시작됐다. 1번타자 ‘작은(小)’ 이근식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1사후 2번타자 김광수가 등장했다. 연속 2개의 스트라이크를 지켜본 뒤 파울 하나를 포함해 볼카운트를 2B-2S로 몰고 갔다. 이어 날아든 6구째를 받아쳤다. 장쾌한 중월 2루타! 베어스 역사상 최초의 안타가 터져나온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상대 백인천 감독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는 황석중 주심에게 뭔가를 항의하기 시작했다. 김광수는 당시의 상황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제 기억으론 우중간 쪽으로 치우친 2루타를 쳤어요. 구단 최초 안타를 기록해서 2루에 서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백인천 감독이 ‘타임’을 부르더라고요. 그러더니 심판들과 함께 배트 검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실업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쓰다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나무방망이를 사용해야하니까 구단이 일본에서 방망이를 수입해 선수당 15자루씩 나눠줬는데, 선배부터 골라가고 후배들은 남은 배트 중에서 대충 길이와 무게, 그립감으로 배트를 골라잡았죠. 그런데 그게 부정배트라고 하니 황당했죠.”


<김광수 ⓒ두산베어스>


 백인천 감독 역시 당시 상황을 잊지 않고 있었다. 1942년생으로 이제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 그러고 보니 원년 6개 구단 감독 중 4명(삼미 초대 감독 박현식, 삼성 초대 감독 서영무, 해태 초대 감독 김동엽, OB 초대 감독 김영덕)은 세상을 떠났고, 생존 중인 감독은 이제 1941년생 롯데 초대 감독 박영길과 1943년생 MBC 초대 감독 백인천 2명뿐이다.


 “그 방망이는 일본에서 압축배트로 금지된 방망이였어요. 제가 일본프로야구에서 20년을 뛰어서 모를 리 없잖아요. 왕정치 시대에는 허용했지만 1980년부터 금지했어요.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는 그걸 압축배트라고 아는 사람조차 없었어요. 심판들 중에서도 누구도 압축배트를 본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모두 ‘이상 없다’고 하니 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프로야구가 막 시작하는 시점이라 제가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OB 매니저였던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은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두산상사라는 무역회사를 통해 일본에서 나무방망이를 수백 자루 구했던 것이었다”면서 그때의 일을 기억해냈다.


 “그 시절에 좋은 방망이는 일본 선수들이 쓰고 나머지 방망이를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들도 수입해 썼죠. 그런데 김광수 안타 때 백인천 감독이 나와서 갑자기 어필을 했어요. 사실 누구도 그게 압축배트인지 아닌지 누구도 알지 못했어요. 심판도 부정배트에 대해 뭐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죠. 백인천 감독이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기 때문에 압축배트를 알아보고 지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우리가 사용하던 방망이엔 분명히 일본프로야구 커미셔너 공인 마크가 찍혀 있었어요. 그래서 심판도 부정배트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경기를 재개하게 됐죠.”


 실제 압축 방망이 시비는 3월 31일 광주에서 열린 MBC-해태 전에서도 발생했다. 1회말 해태 4번타자 김봉연이 좌전안타를 치자 MBC 백인천 감독이 또 그라운드로 나와 “김봉연이 사용한 방망이는 압축 배트”라며 항의를 하면서 15분간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것이 압축 방망이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당시엔 백인천 감독의 주장이 옳았는지, 아니면 백 감독의 억지주장이었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업야구 시절 알루미늄 배트를 쓰다 프로야구가 갑자기 출범하면서 일본산 나무배트를 비롯해 프로에 걸맞은 야구장비를 구하는 것도 그 시절 각 구단의 큰 업무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 박철순 완투-신경식 4타점! 9-2 역전승으로 장식


 OB의 역사적 첫 안타가 터지자마자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지나갔다. 경기는 속개됐지만 베테랑 윤동균과 김우열이 범타로 물러나면서 OB는 선취득점에 실패했다. 이어 1회말 MBC의 공격이 시작되자 모든 눈은 마운드로 향했다. 미국 유학파 박철순의 야구 실력을 눈앞에서 확인할 찬스였다. 게다가 원년 특급선수에게는 계약금 2000만원과 2400만원의 연봉을 책정했는데, 6개 구단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2400만원 받은 선수가 바로 박철순이었다.


 그러나 출발은 좋지 않았다. 1회 시작하자마자 선취점을 빼앗겼다. 선두타자 김인식을 1루수 앞 땅볼, 2번타자 송영운을 유격수 앞 땅볼 유도해 2사까지는 잘 잡았으나 3번타자 김용윤(훗날 김바위로 개명)에게 좌전안타를 맞았다. 이어 유승안의 볼넷으로 2사 1·2루. 여기서 백인천을 맞닥뜨렸다.


 ‘미국파가 셀까? 일본파가 셀까?’ 모두들 숨을 죽이며 백인천과 박철순의 맞대결을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1개와 볼 1개가 지나가면서 볼카운트 1B-1S. 백인천은 양쪽 팔꿈치가 맞닿을 정도로 특유의 웅크린 자세로 타격폼을 가다듬더니 박철순의 3구째를 제대로 잡아당겼다. 타구는 3루수 양세종의 다이빙캐치를 뚫고 좌익선상으로 굴렀고, 2루주자 김용윤이 홈을 밟았다. 1타점 2루타였다.


 계속된 2사 2·3루 위기. 타석에는 전날 만루홈런을 때리며 영웅이 된 이종도가 들어섰다. 이종도라면, 박철순이 연세대 1학년을 마치고 군복무를 위해 성무(공군)에 입단했을 때 목표 의식 없이 방황하던 그를 다잡아준 선배였다. 박철순 스스로도 1995년 8월에 펴낸 자전에세이 <혼을 던지는 남자>에서 “이종도 선배는 내게 있어서 커다란 강을 건너게 해준 사람”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엄격한 선배의 혹독한 가르침 속에 마음속에 ‘오기’라는 게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국가대표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승부는 승부. 여기서 박철순은 이종도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고 위기를 탈출했다.


 곧바로 반격이 이어졌다. 2회초 신경식(현 LG 타격코치)이 우전안타로 포문을 열었다. OB의 2호 안타! 그러더니 다음 타자 양세종 타석 때 2루를 훔쳤다. OB 구단 역사상 최초의 도루로 기록됐다.


<신경식 ⓒ두산베어스>


 여기서 신경식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그는 프로에 입단할 때만 해도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공주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상업은행에 들어가 3년간 뛰다 OB 유니폼을 입었지만, OB의 주전 1루수로는 큰(大) 이근식이 유력하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마산에서 시작해 천안북일고로 이어지는 스프링캠프를 통해 점점 신경식이 주전 1루수 후보로 급부상했다. 장신을 이용해 다리를 찢어 공을 받는 ‘학다리’로 변신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시범경기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천안북일고에서 연습게임을 하는데 김영덕 감독이 갑자기 ‘너는 다리도 길고 유연성도 있는데 다리를 쭉 뻗으면서 공을 받아봐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낮게 오는 내야수의 송구를 그렇게 받기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실업팀 롯데 출신의 큰 이근식 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속으로 ‘경기에 뛸 수나 있을까’라고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연습경기에 근식이 형 한 번, 나 한 번 나가면서 점차 출장 기회가 늘어나더라고요.”


 김영덕 감독은 이에 대해 “처음엔 수비를 잘해 눈길이 갔지만 갈수록 방망이 치는 게 눈에 들어왔다”며 “이미 일찌감치 마음속으로 개막전 주전 1루수로 신경식을 점찍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신경식은 188㎝의 장신으로 원년 선수 중 롯데 김용희(190㎝)에 이어 두 번째로 키가 컸다. 여기에다 발레 선수처럼 다리를 쭉 뻗어 내야수의 송구를 받으니 다른 1루수보다 한 발 앞서 타자를 아웃시키는 장점이 있었다. 실제 김광수는 “신경식 덕분에 송구가 수월했다”며 “키가 크니까 위쪽으로나 옆으로 대충 던져도 되고, 낮게 던지면 다리를 찢어서 다 받아주니 실책수도 줄었고 실제로 송구하기가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며 웃었다.


 “원년 최초 게임은 정말 어떻게 치렀는지 모르겠어요. 관중석을 까만 천막 같은 것으로 쳐놓은 느낌이었어요. 관중이 한 명도 안 보일 정도로 긴장했죠. 당시 내 밑으로는 쌍둥이 형제인 구천서, 구재서 밖에 없었어요. 저도 막내급이었죠. 안타도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지만 도루도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살긴 살았는데, 다리로 들어가는 훅 슬라이딩을 잘못하면서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꼬리뼈가 무지하게 아팠던 기억이 나요.” 최초의 게임에서 승리를 이끈 신경식은 전기리그에서 백인천과 타격 선두 다툼을 할 정도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이날 또 다른 히어로는 양세종. 6번타자로 등장해 우중간 2루타를 날리면서 신경식을 불러들였다. 1-1 동점. OB 베어스 최초의 타점과 득점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양세종 ⓒ두산베어스>


 5회초 승기를 잡았다. 1사 후 이근식(小)이 상대 2루수 송구실책으로 출루하면서 2사 3루 찬스가 이어졌다. 마운드에는 3회초 1사 후부터 이광권을 구원등판한 MBC 2번째 투수 하기룡. 개막전에서 최고령 선수로서 선수 대표 선서를 했던 윤동균이 타석에 등장했다. 그리고는 중전안타로 3루주자 이근식(小)을 생환시켰다. 2-1 리드. 결과적으로 이날의 결승타점이 터진 시점이었다. 이어 김우열의 볼넷으로 계속된 2사 1·2루. 여기서 신경식이 다시 우월 3루타로 2명의 주자를 모두 홈으로 밀어넣었다. 베어스 최초의 3루타가 터진 순간이었다. OB는 4-1로 앞서나갔다.


 1회 첫 실점 이후 안정을 찾은 박철순은 5회말 고비를 맞이했다. 선두타자 정영기를 내야안타로 내보낸 뒤 박재천의 타구를 유격수 유지훤이 실책(베어스 최초 실책)하면서 무사 1·2루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어 김인식의 투수 앞 땅볼로 1사 2·3루가 됐고, 송영운의 2루수 앞 땅볼 때 3루주자를 들여보내 이날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실점을 하게 됐다.


 4-2로 쫓긴 상황. 6회초 선두타자 이홍범이 벼락같은 스윙으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비거리 110m)을 때리면서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5-2 리드. 시계바늘은 오후 5시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베어스 최초의 홈런 주인공이 탄생한 시점이었다.


<이홍범 홈런 ⓒ두산베어스>


 7회초 상대 실책을 틈타 1점을 추가한 OB는 9회초 상대 세 번째 투수 정순명을 상대로 홈런 2방을 날리며 한꺼번에 3점을 뽑아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2사 1루서 신경식의 2점홈런(오후 6시)과 양세종의 솔로홈런(오후 6시2분)이 연이어 터진 것. 최초의 백투백홈런이었다.


 OB는 역사적인 첫 게임을 9-2 완승으로 장식했다. 박철순은 3시간 14분이 걸린 이날 경기에서 9이닝 동안 124개의 공을 던지며 탈삼진 3개를 포함해 4안타 4볼넷 2실점(1자책점)으로 역투했다. 미국 유학파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베어스 최초의 승리투수이자 최초 완투승을 일궜다. 원년 24승 투수의 화려한 출발은 이렇게 시작됐다. 타선은 홈런 3방을 포함해 장단 11안타를 터뜨렸다. 신경식이 홈런 1방과 5타수 3안타 4타점을 올리며 맹활약을 펼쳤고, 양세종 역시 홈런 1방을 포함해 5타수 4안타 2타점으로 상대 마운드를 맹폭했다.



● “저녁 회식 장소 호텔로 변경!” 밤새 이어진 축제 분위기


<원년 OB 베어스 역사적인 최초 경기 결과가 전광판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두산베어스>

 “삼성과 MBC가 양강으로 꼽히고, 우리는 사실 꼴찌 아니면 다행이라는 평가가 많았어요. 그런데 개막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삼성을 이기고 기세가 올랐던 MBC를 우리가 꺾으면서 축제 분위기였죠. 당초 저녁은 동대문의 한 식당을 예약해 놨었는데 그룹 차원에서 명동에 있는 세종호텔 뷔페로 잡으라고 해서 부랴부랴 회식 장소를 바꿨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저녁을 늦게 먹었어요.” 구경백 매니저는 어제 일처럼 추억을 소환했다.


 박용민 초대 단장 역시 그날을 잊지 못한다. “MBC가 첫 경기 이기고 상당히 분위기 좋게 나왔는데, 저는 그냥 선수단에 ‘최선을 다하자’는 말만 했어요. 난 야구를 안 했기 때문에 야구 얘기는 안 했어요. 그런데 첫 경기를 이겼어요. 그러고 나서 세종호텔로 가서 선수들에게 술을 많이 사줬죠. 저도 그날 술을 왕창 먹었어요. 코칭스태프를 포함해 선수단이 30명 가까이 되는데 전부 나한테 술 한 잔씩 주는 걸 다 받아먹었으니까. 그땐 제가 술이 좀 셌어요.”


 OB가 이처럼 첫 승 후 만취될 정도로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운동선수가 술을 마시는 것에 관대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원년에는 80경기(전기리그와 후기리그 40경기씩)를 치르는 일정상의 여유도 있었다. OB는 3월 28일(일요일) 첫 경기를 치른 뒤 이틀간 쉬고 3월 31일 부산 구덕구장에서 롯데와 2번째 경기를 치르는 스케줄이었다. 그래서 베어스 선수단은 첫 승의 여흥을 만끽할 수 있었다. 1982년 3월의 마지막 일요일, 명동의 밤은 OB 베어스 선수단의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원년 OB 베어스 최초 경기 기록지 ⓒ두산베어스>


◇ 최초 경기에서 나온 OB 베어스 1호 기록들

▲1호 범타=이근식(1회초 선두타자로 우익수플라이 아웃)

▲1호 안타 및 2루타=김광수(1회초 1사후)

▲1호 아웃카운트 처리=신경식(1회말 선두타자 김인식 1루수 앞 땅볼 잡아 태그아웃)

▲1호 도루=신경식(2회초 우전안타 출루 후 2루도루)

▲1호 득점=신경식(2회초 2루에서 양세종 2루타 때 득점)

▲1호 타점=양세종(2회초 무사 2루서 우중간 2루타로 신경식 불러들임)

▲1호 삼진=조범현(2회초 1사 2루 상황)

▲1호 볼넷=김광수(3회초 1사 후)

▲1호 결승타=윤동균(5회초 2사 3루서 중전 적시타)

▲1호 3루타=신경식(5회초 2사 1, 2루 상황)

▲1호 실책=유지훤(5회말 무사 1루서 박재천 유격수 땅볼 놓침)

▲1호 홈런=이홍범(6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1점홈런)

▲1호 백투백홈런=신경식(9회초 2사 1루 상황 2점 홈런), 양세종(9회초 2사 상황 1점 홈런)

▲1호 승리투수 및 완투승=박철순(9이닝 4안타 4볼넷 3삼진 2실점(1자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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