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허리디스크로 인해 수술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개월이 훨씬 지나 4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의 내 몸 컨디션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그냥 보통의 몸 상태이다. 다만, 수술 전처럼 많은 활동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의 몸은 아니라는 것."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수술을 하고 난 뒤, 나에게 남을 손상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걱정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당시 나에게 선택지는 수술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수술을 해야 할 당시에는 이미 마비가 왔었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약간의 걸음은 할 수 있으나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기에 결국 "언젠가 회복되겠지."와 같은 안일한 마음으로 아무런 조치 없이 낫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결국, 고통스러운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수술을 했다.
그리고, 수술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걸어 다닐 수 있어서 나는 이 수술이 굉장히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리 저림 증상과 힘 빠짐 증상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서 큰 수술을 하고도, 바로 다음날 걸어진다는 건 앞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뜻과도 같았다.
그렇게 퇴원을 하고, 일상생활에 빠르게 복귀했다.
병원에서는 어쨌든 개복 수술을 했기에 석 달간은 일상생활조차 많이 몸을 사리고, 동작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하라고 주의를 줬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느껴지는 발바닥 저림과 감각 이상증세와 이따금 찾아오는 통증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찾아온 우울감에 절여져 가만히 누워서 몸요양만 할 수 있는 성격이 되지 못했다.
몸을 사린 지 2주쯤 되자마자 나는 다시 일상생활로 빠르게 복귀했다.
회사에 출근하고, 얼마가 됐든 활동시간을 차츰차츰 늘려나가는 것.
이 두 가지를 필수 원칙으로 삼았다.
한동안은 규칙적으로 출근하는 것도 버거웠다. 몇 걸음 떼는 것도 몸에 굉장히 부담이 되어 힘들었기에.
특히, 몸이 덜 풀린 아침시간에 무거운 백팩을 메고 출근길을 향해 걸어 나가는 건 이미 그 걸어가는 과정에서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다.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몸도 스트레스 요소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 몸상태로 가만히 누워있으면 나는 정말 폐인이 되거나 우울증 환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기에.
당시에 나는 살고자 일을 하러 다녔던 것 같다.
차츰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몸은 아주 초기보다는 훨씬 더 좋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걷고 있었다.
힘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발바닥에 남아 있는 통증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오랜만에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는 최근에 나와 연락이 닿은 지인 남동생 때문이었다.
지인이 최근에 원인불명의 돌발성 난청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에 관련하여 내 직업이 '설계사'였기에 그 친구가 받을 수 있는 보험과 그 특약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지인인 동생은 귀가 불편한 것 때문에 예민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본인이 받을 수 있는 보험에 대한 것보다 본인에게 남을 장애에 대한 걱정이 큰듯했다.
대화의 내용은 이러했다.
"나 돌발성 난청 판정받았어."
"어? 갑자기 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 아니야?"
"스트레스 그렇게 크게 받을 것 없는데."
"보통 돌발성 난청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데. 뭐 스트레스받은 일 없는지 생각해 봐."
"아, 최근에 알바들 그만두고 이래저래 스트레스받았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그런 건 늘 받는 스트레스인데."
"병원에서는 뭐래?"
"원인은 없는데 일단 20~30% 청력은 살아 있고, 경과 봐야 한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네. 금방 회복되겠지. 너, 친구한테 가입한 보험 있다며, 혹시나 oo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건 없는지 친구한테 확인해 달라고 해봐."
"아니, 지금 나는 장애를 안 남아야 되는데, 그걸 왜 알아봐."
"아니, 꼭 장애 유무를 떠나서 oo은 받을 수 있는 항목이야. 네가 완치가 돼도 받을 수 있는 거고. 무조건 받는다는 아니지만, 네가 그 특약을 갖고 있다고 하니까 친구한테 물어봐서 받으면 좋을 거니 확인해봐."
"나는 지금 회복에 신경 써야 되는데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런 걸 알아봐야 돼?"
라는 식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나는 평소 그 지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이 정도의 대화 흐름이면, 내가 어떤 의도였던, 어떤 식으로 설명해 주든 이해될 상황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당시의 나로서도 섭섭한 것이 있었다.
본인이 아픈 것을 왜 걱정해 주는 지인들에게 화풀이하듯 행동하는 걸까? 하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여전히 아프고, 그는 귀지만, 나는 몸에 남은 후유증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을 그 지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수술 당시에 회복 기간 중에 병문안도 왔었기에 그 지인은 내 상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내게 남은 후유증과 불편함을 알고 있는 그가, 나에게 저렇게 말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몇 가지의 대화가 오고 가던 중 나는 그 지인에게 상처를 받았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사람은 늘 자신이 최우선이기에 상대가 더 큰 어려움을 겪든 말든 안중에 없는 경우도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 지인은 몰랐을 것이다.
본인에게 발생한 사건에 대한 예민함으로, 상대에게 뱉은 배려 없는 날카로운 말이 어떤 상처를 줬을지.
나는 늘 생각한다.
과연 허리 수술로 인해, 걸음걸이부터 불편을 겪고 있는 나.
그러나, 1년 안에는 회복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나.
vs
스트레스로 찾아온 돌발성 난청을 최근에 겪게 된 지인.
그러나, 청력이 살아 있고, 회복 가능성이 있는 지인.
나는 겉으로 봤을 때, 사람들이 내게 다리 다쳤느냐고 물을 정도로 걸음걸이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묻는 그 말에 상처받지 않았다.
"걱정해주는구나. 내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는구나." 생각하고 만다.
가끔 내게 이 불편감이 영원히 남으면 어쩌지 싶다가도, 반드시 회복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주눅 들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내게는 그보다 더 큰 일들이 그 후에도 많이 일어났기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술 후 일어났던 더 큰 일들은 다음 에피소드로 풀도록 할 예정이다.)
지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내 기준에서 지인의 돌발성 난청은 아주 축복받고, 나에 비해 훨씬 양호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귀 양쪽이 다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 한쪽이 완전히 청력이 상실된 것도 아니라는 점.
그리고, 청력은 나이가 들면 잘 안 들리기도 하는 부분이고, 이미 그보다 훨씬 더 어떠한 사유로 청력의 불편함을 겪고 있는 분들을 봤기에. 청력에 손상이 남았다 하더라도 만약 불편하다면, 보청기로 보완할 수 있는 등등의 수많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 지인은 본인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져서 내게 하지 않아야 될 이야기들을 했다.
위에서 오고 간 내용이 전부가 아니기에. 더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자세히 담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흘려버려서 사실 크게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기억하는 건, 내 지인은 나이를 먹었으나, 엄살쟁이구나.
그리고, 상황을 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구나.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가까이할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정도로 생각을 정리했다.
누군가에게 위안이나 위로가 되지는 못해도,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그대로 가감 없이 표출하고, 전가하는 사람을 지인으로 오래 두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알려주면, 나라면, "그래? 그건 몰랐네. 한번 알아봐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지인처럼 "1에서부터 100까지 다 해줄 거 아니면 말 꺼내지 마."라는 식으로 대꾸하진 않을 것 같다.
지인처럼 저런 식으로 말하면, 도와주려던 마음도 싹 사라지고,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해라." 싶은 마음 밖에 들지 않는다.
복을 발로 차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본인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 나이쯤 먹으면, 자주 느낀다.
누군가의 호의가 당연한 줄 알거나, 작은 일도 늘 크게 받아들여서 상황을 꼬는 것.
그러한 일들이 쌓여서 좋게 될 일도 나쁘게 된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은 모른다.
난들 속이 없어서 불편한 소리를 들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려고 아등바등할까?
아니다. 어차피 불편한 소리를 마음에 담아둬 봐야 내 손해고,
불편한 상황에 빠져들어 땅굴 파봐야 내 마음만 괴롭다는 걸 알기에 그러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최악인 상황에서도 또 한편으로는 좋은 일들과 주변에 좋은 분들이 도와주는 것이
이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꺼낸 후,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인생에서 정말 어려운 순간을 겪더라도 이겨내는 방법은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천국에 살면서도 작은 불편함을 세상에서 가장 큰 불편함으로 보고 불행에 절여져 사는 사람도 있고.
지옥에 살면서도 작은 것에 감사하며,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하루하루 이겨나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 나한테 엄살 피우지 마. 한 대 맞고 싶지 않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