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뎌도 결국 회복된다.

by 초콜릿 한스푼

디스크 수술을 한 지 2달 정도 흘렀다.

그간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글 역시 꾸준히 쓰지 못했다.


수술을 하고 일주일 정도는 내게 생긴 후유증이 수술을 한지 얼마 안 되었기에 생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기준에서는 큰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내 몸의 회복속도가 빨랐기에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내게 생긴 후유증이 별것 아니라고 넘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별것 아닌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수술하고 이틀부터 움직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병원에서 근무하셨던 다른 분들은 내가 이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니자, "아직 그렇게 다니면 안 돼요."

수술했다고는 하지만, "허리는 재발도 많아서 평생 몸을 사려야 해요. 조심해요."라고 했다.


당시에 내게 그 말이 참 고마운 말이기도 했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 역시, 내 몸이 전과 같지 않고, 불편하고, 약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멘탈 역시 아무리 부여잡으려 해도, 그러한 말들에 내 멘탈이 흔들리기도 했으니까.


원래는 넘치도록 잘 움직이던 몸이 잘 안 움직여지면 거기에서부터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아무리 속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도, 내면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평생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일 수밖에 없다.


더더군다나 활동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욱더.


하지만, 나는 마음이 괴롭다고 주저앉아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괴로울수록 더 미친 듯이 움직이고, 뭐라도 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나는 몸을 쉬어주고, 최대한 활동을 조심하고 회복에 집중하라는 주변 사람들과 의사 선생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상생활에 복귀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몸은 영영 망가져,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에서였던 것 같다.

저릿한 발끝 통증과 함께 둔감해진 감각.

그리고,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서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되지 못했던 순간들.

아무리 괜찮다고 하지만, 전과 다른 몸 컨디션에 가만히 누워있을수록 내 감정은 저기 밑바닥을 헤매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살기 위해서, 회사에 복귀했다. 2주 만이었다.

아직까지 누워서 몸을 요양해야 할 시기였지만, 답답하게 이 상태로 회복되길 기다리는 것이 더 고통이었기에 나는 출근을 했다.


다행히도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이 9 to 6가 아닌 비교적 자유로운 프리랜서 직업군이었기에, 수술 후 2주 뒤부터 출근할 수 있었다. 내가 회사에서 머무를 수 있을 만큼만 출근해서 개인 업무를 보고 퇴근하면 되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당시의 내 몸 컨디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30분 이상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었다.

또, 택시에 탈 때조차 허리를 살짝 굽히면 허리에 통증이 생겼고,

오랜 시간 걷는 것이 몸에 부담이 가는 상태였다.


즉, 일상생활이 아닌 요양을 해야 하는 몸상태가 맞았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회사에 출근했다. 그리고, 근 3주 만에 보는 회사 동료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다들 나를 걱정해 주었지만, 나는 꿋꿋이 복대를 착용하고, 내 자리에 앉아 최소한의 업무를 보았다.


2주 만에 출근한 회사에서 보는 동료의 얼굴.

오랜만에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

그리고, 내 자리에 앉아서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중해서 작업했던 순간.


그 사소한 것들이 내게 숨 쉴 숨통을 만들어주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없었다.

나는 내 자리를 지켜야 했고, 내 할 일을 해야 했고, 크든 작든 내 역할에 집중해야 했다.

더 이상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어린아이도 아니었기에.


그렇게 나는 차근차근 내 살길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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