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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 한스푼 Apr 28. 2023

불행을 말하고 싶지 않아.

밝음 뒤의 어둠

나는 중간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한참 힘들 땐, 내 힘듦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끝없이 진지해지고, 예민해졌고, 심각해졌다.

도덕성과 높은 기준의 잣대에서 그것들을 처절하게 지키려 했다. 그리고,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환멸감이 몰려와 견디기 힘들어했다.


나는 '진지하고, 심각한 것 외에 가볍고 즐거운 건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불필요한 감정' 쯤으로 여길 때가 있었다.


'가볍고, 즐거운 건 쉽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무겁고, 고통스러운 것만이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과거의 나는 잘 웃지도, 많은 말을 하지도,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니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택하는 꽉 막힌 삶을 살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어느 해, 어느 즈음

도저히 이런 생각과 생활 방식으로는 숨 막혀 견딜 수 없는 시점이 왔다. 인생에 즐거움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생계를 위한 일은 보람보다는 무언의 압박과 고통과 정신적인 학대를 반복했다.


내게 남은 에너지가 많았다면, '그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야.' 하며, 견뎌냈겠지만, 그때의 나는 일상생활에서 조차, 나 스스로 조차 내 숨통을 스스로 꽉 누르고 있었다.

 

이미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서 외부의 자극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매일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다스리려 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그 일들과 상황은 나를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쯤 되면, 나는 내 몸에 통증이 생긴다.

실제로 어딘가 탈이 나서, 입원할 지경에 이른다.

가끔은 생각했다. '이렇게 젊은데, 내 몸은 왜 이렇게 나약한가? 이 정도도 못 견디는가?'

'나 아닌 남들은 더 힘든 경우도 많은데, 그들도 다 잘 견디고, 극복하는데, 나는 왜 쉬이 바스러지는가?'

등등의 생각으로 아픈 나 자신에게 가학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그에 대한 정답은 없었다.

다만, 사람마다 견뎌낼 역치라는 게 있는데, 나는 그 역치가 낮았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역치를 올리려면, 계속 그 상황에 노출되고 견뎌야 하지만,

나는 견디던 도중에 몸에 탈 나기 일쑤였다.

따라주지 않는 몸 때문에, 정신도 같이 나약해져 갔다.

누구도 곁에 두지 않았기에, 의지할 곳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고, 의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 말은, 견디기 힘든 외로움에서 나를 좀 더 버티게 해주는 말이자. 생각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죽고 싶은 때, 죽이고 싶은 때 등의 감정이 스쳐 지나가곤 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 않았다면, 자기 위선이거나, 아무런 일도 없이 그저 살아진 인생임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그러던 내가 어느 날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계획적이지도 않았고, 이유도 모르겠다.

그냥 운명처럼, 무언가에 휩쓸리듯 달라진 것이,

상상도 못 할 정도의 변화로 이어졌다.


지금의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잘 이야기하며, 웃고, 상대를 웃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정말 한없이 맑고, 순수한 사람 같아. 그 밝음이 모두를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 그리고, 어딜 가나 사람들이 따르고, 인기도 정말 많을 것 같아.' 등등의 말을 듣곤 한다.


최근 들어 내가 아예 모르던 사람들인데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해줬던 일치된 평가의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은 " 참 미소가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였다.


그 말의 의미가 무얼까?

이 말을 가장 최근에 들었던 건, 염색을 하러 간 미용실에서 내 머리를 만져준 디자이너 선생님이 해준 말이었다.

나도, 그분도 서로 그날 처음 만났지만 그분도, 나도 머리를 하는 동안 서로 편하게 웃곤 했었다.

별다른 대화도 오고 간 게 없었는데, 그분은 내 머리를 만지면서, 거울에 비친 나를 맑은 눈으로 계속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머리 손질이 다 끝날 무렵, 그분이 내게 건넨 말이었다.


아마도 과장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편한 상태로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던 디자이너 선생님도, 나도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소가 참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미소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해주셨던 게 아닐까?


나는 최근 들어 이러한 경험을 굉장히 자주 하고 있다.

남과 남으로, 아무 연고 없이, 처음 만났음에도, 그리고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굉장히 편하게 여기는 상황들 말이다.

나는 이런 상황들이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설명을 하자면, 남과 남이 만났는데 평생지기 친구보다도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될까?

아무튼, 그런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과거의 나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처음 보는 상대에게도 아주 깊은 이야기,

솔직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곤 한다.


부담을 주는 이야기가 아닌, 인생을 관망하는 이야기들을 하곤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서로의 마음을 열기에 충분했던 것 같았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고통스러운 순간, 잊고 싶은 기억, 상처로 남은 순간 등등 면면이 아로새겨진 불행의 기억들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나는 그것들을 입 밖으로 잘 꺼내려하지 않는다.


가끔 나의 고통을 깊게 들여다보고 쓴 글들이 있는데, 쓸 때도 힘들지만, 쓰고 나서도 탈진할 정도의 감정 소모가 큰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 글들은 나의 보관함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아마 평생 드러내지 않을 글들일지도 모른다.


내가 내 불행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불행을 기피해서도, 경멸해서도, 감추기 위해서도 아니다.

지금은 불행을 드러내고 싶은 기분이 아닐 뿐이다.

불행도 드러내고 싶을 때가 있다. 내 불행을 드러냄으로, 내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불행을 끄집어내도 속이 후련해지지 않는 상태라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뿐이다.


이상하게 요즘은 불행보다는

그래도 삶에서 밝은 면과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드러내고 싶었다. 이 역시 내 일상에 자랑할만한 일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냥 그 밝음이 다른 누군가에게 전이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인 것 같다. 그 따뜻함이 누군가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때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벽을 허물고 나서 느껴보니,

" 내가 느끼는 고통, 저들도 느끼고 있고, 내가 힘들어하는 것 저들도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나는 그 고통과 힘듦을 어떠한 것을 감수하고, 쳐냈고,

그들은 아직 끌어안고 살아가는 중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대화로나마 그들에게 '스스로를 아끼고, 돌보세요.'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를 잘 지키기를 바란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이 차고 넘쳐,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어두운 것도, 힘든 것도, 악한 것도, 좋은 것에 덮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 어둡다고, 그 어둠을 너무 미워하지 마라. 어둠이 있기에 빛이 우리 눈에 보이는 거고, 어둠이 있기에 별도 보이는 것이라고. 맑은 하늘에선 별을 볼 수 없듯이. 어둠이 있기에 밝음도 있는 것이라고."


나 그리고, 인간은 모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나는 이 두 면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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