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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 한스푼 May 03. 2023

착하게 살되, 통수 맞지 않는 법

어렸을 때부터 '스토리' 그 자체를 좋아했다. 그 취향은 몇십 년간 변치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브런치 외에도 4곳에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매일 써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글을 쓰는 게 그저 재미있나 보다. (사실, 재미까지는 아니고,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해왔던 터라, '단어'하나만 스쳐 지나가도, 그에 대해 쓸 이야기가 생기는 것 같다. 논리 정연한 글까지는 아니다. 일단은, 그것에 대한 것을 잊지 않으려고, 일필휘지로 써두는 정도이다. 나중에는 이것을 한데 묶어 예쁘게 정리하고, 보기 쉽게 만드는 작업이 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글을 쓰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또, 내 생각의 흐름을 손가락이 잘 따라와 주는지, 남에게 불편할 표현은 없는지, 잘못 전달될만한 오해의 소지가 있지는 않은지 등등 많은 요소를 고려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구미에 딱 맞는 글은 써낼 자신은 없다. 

그러려면, 거짓말을 하거나,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써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배짱 좋게,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직설적인 공감을 끄는 글' 등의 방식으로 써야 하지만,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누군가에게 큰 불편감을 주지 않을 정도에서 '나만의 글'을 써 내려가고 싶다. 


브런치를 시작 한지 이제 한 달 반 정도 되었을까? 그 간에 잘 되는 글들도 있었고, 잘 안 되는 글들도 있었다. 

하지만, 잘 되는 글을 쓰려고 글을 쓴 게 아니었다. 잘 되면 물론, 좋고, 행복하다. "내가 쓴 글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네! ㅎㅎ 뿌듯하다!" 하는 정도의 만족감과 작은 행복감을 가져다주곤 한다. 그렇지만, 그 정도가 다일 것이다. 


나는 이곳 말고도 여러 곳에 글을 쓰고 있는데, 하나 같이 '돈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아주 초보자들도 수익화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조차 나는 수익화를 하기 위해 일말의 노력도 하지 않고 있었고, 굴러 들어오는 제안을 외면하기 부지기수였다. 좋은 제안은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아직 제안을 논할 위치가 아니라 생각되어서,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일단 부딪혀 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제안보다 나는 '소득이 0원'이어도, 각각의 플랫폼에 내가 하고 싶은 각각의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싶다. 


내가 하는 모든 플랫폼에서 익명으로 활동하는 이유도 그 이유에서다. 물론, 실명을 밝히고, 모든 플랫폼을 다 연결시켜서 볼 수 있도록 하면, 참으로 좋겠지만, 나는 각각의 플랫폼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르고, 이야기 표현 방식도 다르다. 그렇기에, 연결할 수 없다.. (지금은...)

특히나, 브런치에서는 나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글들을 많이 쓰려고 하고, 그러한 글들을 앞으로 더 심도 있게 써 내려갈 예정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끔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 속내를 브런치에서는 드러낼 때가 있다. 그리고, 아주 깊은 내면을 파헤친 글도 적어 놓았는데, 그 글은 '발행'하지 않았다. 


나의 면면을 드러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어떤 마음의 변화로 언제든지, 드러낼 준비를 하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는 중이다. 

이미 나는 전업 작가와 다름없이 살고 있다. 하루종일 글만 쓰고, 체력적 여유가 되면 책만 읽고, 또 글 쓸 소재를 찾고, 영감을 얻을 것들을 찾고 있으니까.. 

나는 이미 내가 하고 있는 일상이 글을 생산해내는 사람의 삶으로 살고 있다. 다만, 아직은 무명일 뿐이다. 그러나, 무명이라고 해서, 무명배우가 배우가 아닌 게 아니듯, 무명작가라고 해서, 작가가 아닌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나의 직업을 '작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모든 분께도 '작가님'이라고 인사드린다.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면, 내 기준에서 '작가'가 맞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있으니, '작가님'이라고 존칭어를 쓰는 것이다. 더불어, 나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며, 매일 내가 하는 지루하고, 성과 없어 보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의 돈이 목적이 아니기에, 이렇게 '배고픈 활동'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돈이 목적이라면, 다른 플랫폼에서도 돈이 되는 제안을 받았을 때, 계속 그 제안에 컨택해, 이미 그 활동으로 원고료 등을 받거나, 다른 혜택들을 봐야 했지만, 그러한 활동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내 글을 쓰는 행동만 반복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소통하는 작은 세상이었기에 그 세상을 그대로 깨끗한 채로 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밥을 먹여주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반복하다 보면, 좋은 기회란 오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도 컴퓨터를 켜고, 이렇게 글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고 있다. 오늘도 여러 곳에서 여러 곳의 글을 발행하느라 하루가 탈진 상태에 이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회사를 다닐 때보다 이 삶이 더 좋다. (나도 인간인지라, 계속 배고플까 봐 걱정도 되지만, 그 불안만 잘 다스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다...ㅎㅎ ) 



오늘 제목을 '착하게 살되 통수 맞지 않는 법'이라고 지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는 '착한데, 고집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이 보면,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근데 내 성향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적은 없기도 하거니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도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그러려니 하며 산다. 


지금껏 자주 들어왔던 말이 '너는 가치관이 정말 뚜렷한 사람 같아.'라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내가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인지 잘 몰랐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산다.'라는 느낌이 더 강했기에,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참 신기 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말을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나를 잘 모르던, 같은 과 동기 여자 아이가 해줬던 이야기였다. 그때는 "음?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했더니, "아니야. 너에게는 뭔가 그런 게 느껴져. 그래서, 항상 부러워."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 있다.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살면서, 이 말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착하고,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과 '가치관이 뚜렷한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착해도, 가치관이 뚜렷할 수 있는 거였다. 나는 여태 '착하면, 남에게 배려를 하느라, 내가 좋아하는 걸 밀어붙일 수 없는 상태와 같다.'라고 생각해오고 있었기에, 가치관이 뚜렷한 것과 양립할 수 없는 단어라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근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 물러 터져서 안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착한 구석이 있는 반면, 어떤 면에서는 아주 땐땐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힘듦을 겪는 순간에도 나는 나를 잘 지켜 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조직 자체가 정말 안 좋은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문화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누가 보나 안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그곳에서 적당히 어울리는 듯 하지만, 완전히 장단 맞추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남에게 험담하는데, 장단 맞추는 걸 정말 싫어한다. 험담도, 정말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때는 같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도 아닌데, 심심풀이로 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주된 무리에게 섞이지 않는 이러한 행동은 그 무리에서 눈엣 가시가 되는 행동과 같다. 그리고, 나와 같이 어울릴 사람을 찾는 건 더 힘들어진다. 주된 무리의 눈총에서 벗어나기 싫은 게 사람의 심리이지 않은가? 꼭,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들의 처지도 이와 같을 것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것들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다만,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다. 정 힘들면, 내가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 떠나면 그뿐이었다. 내가 담길 곳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새로운 좋은 곳을 찾아 떠나가는 식의 방법을 택했다. 굳이, 싸우지도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정도면, 나 같으면, 신고했다.' 할 정도였어도, 나는 아무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깔끔히 연을 끊고, 떠나는 스타일이다. 그 과정에서 금전적 손실을 입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착한데, 착한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깡'이 나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 깡이 겁나고, 두려운 상황에서 치졸해지지 않고,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되어주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더글로리에 나오는 '동은'이 학폭자들과 마주할 때의 모습과도 같을까? 외롭든, 소외 받든,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나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 되고, 나도 상대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 그뿐이다. 그렇게 해서, 나를 비교적 잘 지켜오지 않았나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착하게 살되, 통수 맞지 않는 법'은 '깡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 나를 지켜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깡이 있어야 하는데, 이 깡은 소위 맞아도 지지 않고, 덤비는 것을 의미하는 그 깡과는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깡은 '나만의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주 어릴 때부터 튼튼했다. 그래서, 대학교 때 교수님 께서도 '너는 믿고 있는 종교 없니? 살면서, 힘들 때 종교가 있으면, 의지가 된단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저는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이유는 어느 것 하나에 의지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흔들리는 순간 내가 부서져 내릴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의지 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이런 성향과 가치관을 가졌기에 '대쪽 같기도 하고, 너무 단단하면, 부러진다.'라는 종류의 피드백을 받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 때나 대쪽 같지 않다. 아닌 상황에서만이다. 아닌 상황에서 한번 눈을 감고, 두 번 눈을 감고, '융통성'이라는 말로 반복하다 보면,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걸 잘 알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양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세상에 어떻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나의 지론이다. 

요즘에 기사를 읽다 보면, 이러한 것들로 불거지는 문제가 대부분인 것 같다. 

때리는 놈이 있을 때, 자꾸 맞아주면, 때리는 놈은 자기가 잘난 줄 알고, 더 심하게 군다. 그러니,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맞아 주지 말고, '그만하시죠?'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건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람, 주가조작, 마약 그리고, 윤리관에 어긋나는 불법적인 일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 등등에도 해당된다. 당장 나의 삶은 윤택 해질지 모르겠지만, 다수가 하지 않는 데는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을 했을 때, 피해를 입거나 억울한 사람이 없다면, 그렇다면... 해도 될지도 모를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피해 입거나 억울한 사람이 없을 수 없다. 


그러니, 남에게 통수를 치는 사람 혹은 통수에 맞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결국은 '나에게 흔들리지 않을 올바른 가치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세상을 살면, 나약해지고,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쉬이 꺾이지 말자. 오늘도 가치관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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