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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 한스푼 May 04. 2023

30분 버스 타고 시장으로 출근하는 딸

엄마 오는 날은 시장 따라가는 날

어제 엄마가 왔다. 엄마는 한 번씩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한다.

엄마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시장에 끌려가곤 한다.

구 마다 큰 시장들이 있는데, 어쩌다 한 번씩 놀러 오는 엄마는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나보다,

시장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다 가 보셨다.... ㅋㅋ


오늘도 아침부터 엄마가 새벽 장을 보러 동네를 돌아보고 오셨는지,

"일어나라~ 같이 장 보러 가자~~"라고 하셨다.

나는 "조금만 더 자다가.." 했지만, 문을 열고 지켜보고 계시는 통에 1분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엄마가 오는 날에는 나의 모든 생활을 엄마한테 맞추는 편이다.... ㅋㅋ


아직 50대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쇼핑하러 다니는 걸 정말 좋아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다.

조금이라도 더 자려다가 엄마가 장 보러 가자는 소리에, 일어나 "잠깐만, 양치라도 하고, 금방 준비할게"라고 하고, 눈 감은채 화장실로 향했다.


양치를 하고 있는 중에도 엄마는 답답했던지, 장바구니와 나갈 채비를 끝내고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얼른 가자니까~ 빨리 장 봐야 돼!"라고 하셨다. 나는 편하게 양치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려서, "엄마, 화장실 문 좀 벌컥벌컥 열지 마라. 내 금방 준비하고 나간다니까? 아니면 혼자 갔다 오든지. "라고 했다.


결국 혼자 장 보러 가기 싫었던 엄마는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는 듯하더니, 먼저 밖으로 나가셨다.

엄마는 성격이 원체 급하다. 우리 남매는 엄마 성향, 말투, 행동까지 다 알고 있어서, 말없이 밖에 나갔다고 하더라도, 어딜 가 있고, 뭘 하고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가는 편이다.


집에서 기다리다 보니, 더워서 나가셨을 거다.. 나는 결국 양치하며, 잠을 깨우고,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옷을 갈아입고,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만한 장소로 향했다. 밖을 나가보니, 엄마는 그 사이를 못 참고, 자주 가는 노점상에서 야채를 사고 계셨다. 먼발치에서 엄마를 보며.. "휴.. 뭐 사는걸 왜 저렇게 좋아실까?"라고 생각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가 가자고 한 시장은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20-30분은 가야 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가고 싶다고 하니 맞춰 드렸다. 엄마 덕에 아침부터 30분 버스 타고 장으로 출근하는 딸이었다.(내 인생에 생소한 경험이었다..)

나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큰 시장이었는데, 엄마는 척척 "여기는 뭐 파는 데고, 저기는 뭐가 맛있어."라며, 나를 이끌었다. 다른 건 서툴러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하는 엄마가 시장에 가서는 이것저것 잘 찾아내고, 혼자서도 이 지역 맛집을 잘 발굴해 내는 엄마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람들은 엄마와 내가 같이 다니면, 엄마를 큰언니쯤으로 보곤 하는데, 그런 반면, 감성은 약간 올드한 편이다.

아무튼....

엄마가 오자마자 5일장 날짜를 맞춰서 이 시장을 찾은 건 너무 신기했다... 이 날짜는 또 어떻게 맞추신 건지... ㅋㅋ 그저 놀랍기만 하다. 시장에 가니, 아파트가 많은 동네라 그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는 모양이었다. 전부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면서, 시장에서 장을 보고 계셨다. '발 디딜 틈이 없다.'라는 말을 이런 때 쓰기에 딱 좋은 표현인 것 같다.


엄마는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많아 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초입부터 무거운 거 장 보면, 나중에 어차피 여기 또 지나가야 되니까. 무겁잖아. 다 보고, 나올 때 사러 오자."라고 말렸다.

내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바퀴 달린 장바구니가 아닌, 그냥 손에 들고 다니는 천 장바구니라, 지금 무거운 장을 보면 결국 고생할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말리며, 장을 보러 점점 안으로 들어갔다. 장의 끝자락쯤 참외 파는 아저씨가 계셨는데, 그곳 참외가 맛있는 건지, 아니면 저렴해서 그런 건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엄마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저기는 장사가 잘된다. 참외가 맛있는 갑다."라며, 다행히 참외를 안 사고 지나쳤다.

그렇게, 가는 곳마다 엄마눈엔 요리재료가 가득했는지, 사고 싶은 게 많았고, 나는 옆에서 '동생들과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안 먹는 음식이 있으니, 사면 안 먹을 만한 건 알려주었다.' 엄마는 보통 우리가 뭘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잘 안 하다 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는 편이었는데, 사실 엄마가 좋아하는 요리는 어린이 입맛인 우리와는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장을 볼 때, 엄마가 먹을 수 있으면 사고, 아니면 사지 말라고 옆에서 뜯어말리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명란젓도 한소쿠리 사고, 해산물도 사고, 각종 야채와 채소와 반찬들도 사고, 이미 우리가 가져간 천 장바구니는 포화 상태였고, 큰 검은 비닐봉지에도 양손 가득 들어야 할 정도로 장을 봐버렸다.

나는 무거운 짐을 들고 따라다니는 게 힘들어서 먼 구석에서 엄마가 장 보는 걸 지켜보고, 장바구니에 담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 시장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는데, 엄마가 아까 보았던 참외집을 보며 "참외 안 먹고 싶나? 참외 사갈까?"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 먹고 싶으면 사고, 근데 지금 장 본 거도 너무 무겁다. 참외 만 원어치 사면, 못 들고 갈 거 같은데?"라고 하니까, "그렇제? 그럼 다음에 사지 뭐"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장이 끝나는 건가 했지만, 우리는 시장 밖을 나가기 전까지도 반찬가게며, 국만 파는 가게며 여러 곳을 더 들렀다. 이제는 정말 끝이겠거니 하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도 바깥에 싸게 옷 세일하는 브랜드 옷가게를 보더니, 거기서도 엄마의 쇼핑을 한참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옷 쇼핑까지 하고, '엄마와의 시장투어'는 겨우 끝이 났다.


천 장바구니와 비닐봉지가 터지도록 장을 보고, 그걸 들고 다시 버스를 탔다. 20-30분을 또 집을 향해 가야 했다. 버스를 타고 나는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 좋게 버스에서 내렸다.

집에 오자마자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길래, 바로 상을 차려, 장 봐온 음식들을 차려서 먹었다.


엄마가 오는 날은 엄마를 따라다니며, 장 보러 다니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조차 나중에 살림을 살게 되면, 진짜로 필요한 생존치트키가 아닐까 싶지만... 나는 체력적으로 힘들다... 그럼에도 꽤나 재밌는 하루의 절반을 보냈다.

엄마.. 장 좀... 그만 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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