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고시를 안 보기로 한 이유
무책임한 조언은 사양합니다.
"올해 임용고시는 볼 거니? 경험이다 생각하고 한번 봐봐"
"그래, 이번에 봐야 내년에 일하면서도 볼 수 있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모님이 나에게 던진 말이다. 누군가 내 목을 틀어쥔 것처럼 숨이 막혀왔다. 이미 이 부분에 대한 내 계획을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심지어 나는 그 계획을 말할 때조차 부모님을 실망시킨다는 죄책감에 너무나 힘들었음에도.
나는 교육대학원생이다. 자연스럽게 주변 많은 동기들이 임용고시를 준비한다. 부모님도 그 길을 원하신다. 성격이나 성향 등을 고려했을 때 꽤 최적인 직업으로 보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많은 권유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나조차도 교사가 나와 잘 맞는 직업이라는 착각을 했었다. 또 지금껏 공부한 게 아깝지 않냐고 물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고민 끝에 나는 그 길을 걷지 않기로 했다.
처음 교육대학원에 들어왔을 때는 임용고시가 당연한 수순인 것 같았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 길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겁이 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시험을 올해부터 볼 수 있는데, 그럼 2번만 떨어져도 서른인데 과연 그걸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좀먹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런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걸 이겨내고 해야지!
열심히 하면 붙을 수 있지 왜 안될 생각부터 하냐!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안 본다는 거 아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다. 겉으로 보면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대학원에 들어오기 직전부터 급격히 심해진 우울증과 불안장애 증상으로 집중력은 바닥을 쳤고, 무기력은 최고조를 찍었다. 고시 공부를 할 몸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이 상태에서 공부해 봤자 그냥 시간낭비이자 현실회피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교생기간 동안 학생들이 예뻐서 교실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다녀오는 동료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다. 아이들과 친해지는 게 힘들었던 건 아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이 애틋하거나 예쁘다는 느낌도 없었고 의례적으로 친해지려는 노력뿐이었다. 나는 간절하지 않은 목표를 향해 피땀눈물을 모두 쏟는 노력을 할 성실의 아이콘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한 번에 붙을 수 있는 인재도 아니고, 한번 떨어지고 다시 시험을 준비할 멘탈갑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두 번 떨어졌을 때도 다시 시험을 준비할지 훌훌 털어버리고 다른 길을 걸어갈지 결정할 수 있는 긍정이도 아니었다. 일 년을 준비하든, 몇 년을 준비하든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버린 공백기를 후회하며 그 이후 삶에 대한 막막함에 주저앉을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안타까운 소식의 당사자가 내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2년을 도서관에서 살았는데 안되니까 그때는 진짜 미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더는 못하겠어서 다른 길 알아봤어'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 취업한 선배가 한 이야기였다. 임용고시는 수능과 다르다. 수능은 점수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이 정해지지만, 임용고시는 합격과 불합격 둘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합격은 기약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 나이 스물일곱, 이미 취업시장에선 여자 신입 마지노선에 간당간당한 나이다. 몇 년을 준비해도 안된다면 그래서 그제야 취업판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또 내가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임용을 준비하면서 몇 년을 보내고 있으면 그 주변 사람들은 돌변하여 내게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며 비난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은 나만이 살아낼 수 있다. 공부도 나만이 할 수 있다. 나에게 임용을 추천한 그 누구도 대신 공부를 해주거나 면접을 봐줄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책임져줄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무례한 조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강요한다. 그리고 그런 조언을 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중엔 발뺌하기도 한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조언 때문에 인생의 방향을 바꿨을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자신이 책임져줄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감히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노력과 성실을 당연시하거나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그 사람을 폄훼하지 않아야 한다. 부디 개인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될 테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한 번쯤 이런 생각에 대해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