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 작가님 저서 제목을 패러디했습니다.
앞선 1년 동안은 약에 의해 나의 마음이 서서히 변했다. 무거웠던 우울이 조금 떠올랐고,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약을 바꾼 지 약 3개월, 마음이 0의 언저리에 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말하자면 평온했다.
- '나는 내가 우울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뜬금 작가님)
책을 읽다가 확 와닿는 문장이 있어 가져왔다. 이 책에는 작가님이 기분부전증을 치료하는 과정과 생각, 느낌들을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공감하는 내용이라 가져왔냐? 그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위 내용은 내가 지금쯤 일기에 쓰고 싶었던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약물치료를 시작한 지 9개월이 넘어가지만 나는 아직 효과를 보지 못했다. 혹시 여기도 약물치료 중인 분들이 계실까하여 경험을 나눠보고싶다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약물치료를 시작한 건 학교 상담실 선생님의 조언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과거 약 부작용으로 쓰러졌던 기억 때문에 선뜻 병원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 괜찮은 병원 목록을 손수 적어주신 정성에 못 이겨 병원에 가게 되었고, 검사결과 우울과 불안수치가 너무 높다는 진단을 받아 치료를 시작했다.
약 복용 초기에는 오히려 효과가 '반짝' 좋았다. 그때쯤 만났던 언니가 분위기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할 정도였다. 아르바이트하다가 손님이 음료를 쏟아도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있었고, 뭔가를 시작하기 전 두렵지도, 쉽게 지쳐버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정말 잠깐이었다. 증량하면서는 점차 전처럼 무기력하고 쉽게 불안했으며 걱정도 많아졌다. 그 상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유난히 못 견디게 불안하고 미래에 대한 암울한 망상만이 머리를 채웠던 날이 있었다. 결국 상비약이 있는 파우치를 열어보자 그날 아침약이 그대로 있었다. 그제야 내 약은 기분이 더 가라앉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약에 바랬던 효과는 이 책에 설명된 '0의 언저리에 있는 상태'였다. 지금처럼 -를 떠도는 상태가 아니라.
약물치료가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건 꽤나 절망적이다. 많은 우울, 불안 보유자들에게 약물치료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참고 참다가 못 견디겠을 때 유일한 희망을 안고 찾아가는 곳이 바로 병원이다. 하지만 치료마저 나를 도와줄 수 없다면 정말 막막해진다.
처음 병원에 간 날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이 참 인상 깊었다. "과거의 모습이 지금보다 밝고 긍정적이었다면 그 모습이 00 씨의 진짜 모습이에요. 지금의 모습은 잠깐 힘들고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예요. 돌아갈 수 있어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 내겐 참 희망적이었다. 그 말 때문에 여태 포기하지 않고 선생님의 치료를 따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에도 회의가 든다. 더 우울하거나 덜 불안한 나날들만이 반복되면서 사실 기억 속 모습이 미화된 거고 나는 원래 이렇게 우울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선생님은 이 생각패턴조차 우울증의 증상이라고 하셨지만) 약까지 먹고 있는데 이 모습이라면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닐까.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과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 사이에서 점점 절망이 내 마음을 좀먹고 있다.
인정하긴 싫지만 자꾸 받아들이게 된다.
저는 제가 원래 우울한 사람은 아닌 줄 알았는데요. 아무래도 맞는 것 같습니다.
(혹시 글을 읽어주신 분들 중 비슷한 경험이나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계시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