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기
"회원님, 지금 잘하고 계세요. 왜 스스로를 못 믿으세요! 그냥 지금 하시는 대로 하시면 돼요!"
심리상담실에서나 들을 법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운동하다가 트레이너님한테 들은 말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큰 편이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터라 언제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고쳐나가려고 노력한다. 좋게 보면 자아성찰을 잘하는 것이지만, 대부분 상황에서는 나를 깎아내리는 못된 습관이다. 이런 습관이 운동하다가도 튀어나왔나 보다. 끊임없이 자세를 고쳐가며 트레이너님 눈치를 보는 나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 트레이너님께서 말하셨다. 그 순간 '아 이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 머쓱했지만, 금세 기시감이 느껴졌다. 스스로를 믿어라, 지금도 잘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이런 비슷한 부류의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말을 들어도 부담스럽기만 하고, 딱히 격려가 되진 않았다.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하기도 했고, 오히려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지 못하면 실망할 거란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하지만 이때는 운동 중이어서 정신이 조금 깨어있었는지 처음으로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매사에 잘못하는 한심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당연시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의 출발점은 어디였을까. 왜 지금은 아주 작은 일에도 나를 못 믿고 주저하는 걸까. 시작을 알 수도 없는 믿음이 신념이 되어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그동안 자아성찰을 잘한다며 포장했던 습관이 실제로는 내 자존감을 까먹는 원천이었다는 것을 조금 인정하게 되었다. 사실 심리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자아성찰이 자신을 향하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이제야 뭐가 잘못됐는지 알 것 같다. 이 자아성찰의 악순환을 당장 어떻게 벗어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치료의 시작은 아픈 걸 인정하는 것부터라고 했으니 천천히 나아갈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자아성찰이 반성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성장으로 이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