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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럭 Jan 09. 2022

실패가 너무도 두렵던 시기가 있었다.

좌절기록_운전면허를 포기하다.

"실패가 너무 무서워..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던 중 나온 이야기였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절절하게 이해하기에 뭐라고 위로해줘야 할지 잠시 머뭇거려졌다. 어떤 말을 해도 그 마음에 닿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처럼.


나의 이런 실패 공포증(?)이 극에 달했던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이십 대 초반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실패한 인생이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었던 시절이다. 그전까지 '하면 된다!'라는 마인드로 도전적이었던 내가 포기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결국 아주 사소한 도전까지도 주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완벽한 도망자가 되고 말았다.


나의 첫 포기는 '운전면허'였다. 이전 글에서 스무 살 때 운전면허를 따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나의 창피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던, 운전면허 포기사를 처음 꺼내 본다.


누군가는 겨우 운전면허 가지고 뭘 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그 당시에도 운전면허를 따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당시의 현실과 나의 거듭되던 실패가 쌓여 포기하는 방향으로 터졌을 뿐이다.


때는 내가 갓 고등학교 졸업한 20살이었다. 아까 말했듯 당시 내 자존감과 자신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파고드는 중이었다. 더구나 아빠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집안 상횡도 좋지 못했고, 이로 인해 엄마의 우울증도 심해졌다. 입시실패로 방황하던 내가 의지할 곳은 없었다. 오히려 엄마의 마지막 남은 희망 역할을 해내야 했다. 


큰 부담 없이 시작했던 면허시험이 거대한 압박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 도로주행시험에 떨어진 날, 어찌나 집에 오기 싫던지 도망가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이끌고 집에 가자 우려대로 엄마는 '집에 되는 일이 없다'고 하소연하시며 방에 들어가 버리셨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처음엔 다들 그런다'식의 아량은 당시의 나에겐 허용되지 않았다. 그만큼 다들 힘든 시기였다.


두 번째로 떨어진 날도 집에 돌아가 그 우울한 분위기와 그 원인이 나라는 죄책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걸음걸음마다 죽을 생각만 하고, 결국 강 쪽을 바라보는 벤치에 앉아 바보같이 울다가 집에는 멀쩡하게 들어갔다. 물론 그날 분위기도 첫 번째와 다를 바 없었다. 


태어나서 나 자신이 가장 한심하고 사라지기를 바랐던 시기였다. 결국 나는 포기를 선택했다. 그동안 들인 시험비가 아깝다는 핀잔도 많이 들었지만, 면허시험은 그동안 쌓여온 나의 자괴감과 우울감에 불을 붙이는 '트리거'였다. 만약 한 번만 더 떨어지면 그때는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그저 살아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짓누르는 압박감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포기는 내 일상까지도 침투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도 이리저리 재보다가 실패할 것 같으면 빠르게 단념했다. 물에 빠질까 무서워 다리 근처도 가지 못하는 사람처럼 발전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이랬던 내가 다시 다리 근처로 다가가 이리저리 살펴보고 그 다리를 건너기까지는 큰 노력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장 어렵지만 중요했던 것은 '실패하면 다시 하면 돼!'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도전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됐다. 내 실패로 아쉬워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는 것은 큰 용기가 된다. 실패해도 추스를 사람이 나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패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오랜 노력 끝에 지금은 크고 작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힐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면, 내가 지금 그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패한다'며 어깨를 토닥여주고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읽을 수도 있는, 실패가 두려운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나에게도 다시 커다란 시련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기를 발판 삼아 그때처럼 숨지 않을 것이다. 


실패는 누구나 한다. 이를 두려워할 필요도 피할 필요도 없다. 시련은 곧 지나가고, 돌아보면 이런 문제로 이토록 힘들어했나 싶은 순간이 분명 온다. 그리고 그 시기를 거치는 모든 과정은 이후의 삶에 커다란 방패막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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