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생물로 따지면 곧 사라질 ‘멸종위기종’이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기술력과 경쟁력은 높지만, 원전이 혁신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국제 원전 컨설턴트 마이클 슈나이더의 발언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원전을 포기할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신재생 에너지라는 대체에너지가 생겼다. 원전의 남은 역할은 재생에너지가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일이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간의 선수 교체 시기가 멀지 않았다. 이제 과거는 흘러가게 두고, 새로운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흔히 언급되는 원전의 경제성에는 사회적 비용이 빠져있다. 발전과정에서 비용이 적게 든다고 효율이 좋은 게 아니다. 핵폐기물 처리 비용, 사고 비용, 피해보상 등 천문학적인 예산과 인명피해에 대한 비용을 계산한다면 원전의 효율성은 매우 낮아진다. 현재까지 계산된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 복구비용은 220조 원 이상이다. 비슷한 사고가 ‘전 세계 원전 밀집도 1위, 단지 규모 1위, 원전 30km 반경 내 인구수 1위’인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그 피해 규모는 훨씬 극심할 것이다. 또한, 고준위 핵폐기물의 방사능은 분해되기까지 약 10만 년이 걸린다. 그동안 소모되는 관리비용과 위험성은 몇 대에 걸친 미래세대의 몫이다. 현세대만의 편의를 위해 먼 미래까지 경제적 부담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비용을 제외한 발전비용만 고려해도,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보다 경제적이라는 주장은 구시대적이다. 2021년 ‘세계원전산업동향보고서’에 따르면 1MW/h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드는 원전의 비용은 재생에너지의 4배 이상이다. 재생 에너지와 원전의 발전비용은 이미 교차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신재생 에너지는 앞으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효율성과 가성비 역시 증가할 것이다. 이에 비해 원전은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안전 기준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어 관리, 유지비용도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던 경제성이 사라진 이상, 원전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최근 EU택소노미에 원자력이 포함되면서 원전산업에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EU는 원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분류하는 대신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설치, 폐기물 처리 세부계획 제시,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핵폐기물 처리장이 없다. 또한,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려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공정을 모두 바꿔야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원전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소모하기보단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원전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앞으로는 원전의 존재가 국가의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RE100의 확장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자발적 참여였지만, 현재는 계약 시 필수사항에 명시될 정도로 반강제적인 규칙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무역장벽에 의해 수출에 어려움이 생긴다. 발전 효율성과 국가 경제 모두를 잡기 위해서 이젠 변화에 발맞춰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 시장은 운 좋게 화석연료를 보유한 국가들이 주도하던 기존시장과 다르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산업의 선두에 선다면 우리나라가 에너지 선진국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던 나라에서 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