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남자애는 그랬다.
하루 종일 힘들게 밖에서 세상 거친 모든 것들과 싸워가며 식구들 먹여 살리겠다고 사투를 벌이다 들어오는 집은 좀 깨끗하고 뽀송뽀송하고 환하게 웃는 상큼한 와이프에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뭐 그런 공간이길 바랬었다.
그러나 막상 집에 오면 옛날 그 상큼하고 재미지던 와이프는 어디 외출하신 지 오래됐고 애 재우다 같이 잠들었는지 어쨌는지 부석부석한 머리에 마치 매일 저녁 야식으로 라면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듯한 얼굴을 한, 이대로가다간 언젠간 성별 판별마저도 힘들 것 같은 사람이, 내가 입다 버린 건지 어째 눈에 굉장히 익은 목이 잔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는 아이 장난감으로 잔뜩 어질러진.... 분명히 그렇게 좁지 않은 집인데 아이 살림으로 왠지 평수가 확 줄어버린 듯한 집에서 저녁밥이라고 뭔가 뚝딱뚝딱..... 그닥 내입엔, 좌우지간 참으로 결혼한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 여전히 썩 익숙해지지 않는 않는 국과 찌개 그 중간 어디멘가의 음식을 만들면서 바짝 마른 황태 껍질 같은 목소리로 “왔어?” 하는 상황이, 아무리 반복되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상황이 날 맞곤 했다.
뭐 티브이에서 보니까 아빠가 퇴근하면 대게 집에 있는 강아지고 애고 마누라고 들입다 뛰어와 빈약한 아빠 목에 너도나도 주렁주렁 매달려 아빠는 목이 졸려 쾍쾍은 거릴 망정 퇴근하는 아빠를 격하게 반기는 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아 나도 나중에 가정을 꾸리면 저렇게 살겠지 꿈도 꿨더랬는데 우리 집 마누라는 다리가 뼜는지 느릿느릿 걸어 나와 그것도 지 뭐 좀 하고 있으면 나오지도 않고 당최 집에 와 에너지를 얻고 싶었는데 되려 집안 분위기가 마치 장마철에 며칠을 널어놔도 안 마르는 물먹은 빨래 같은 느낌이고, 가장이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왔는데 마누라가 생글생글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기기는커녕 되레 들어왔다 어색한 공기에 '뭐야, 남의 집인가.....' 다시 나갈 판이었다.
한편 여자애는 그랬다. 다른 집 누구처럼 집에 남편이 왔을 때 집안일을 도와달라고도 안 하고 육아를 도와달라고는 더욱 안 하고 아이 살림에 더욱 정신 없어진 집안을 항상 예쁘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풍선처럼 부푼 채 당최 꺼질 생각을 안 하는 내 껍데기를 좀 줄이고자 육아랑 집안일 둘 다 하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 꽉 물고 매 순간 전쟁을 치르며 사는 중이었다.
또한 먹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낙인 나였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식사량도 독하게 줄였다. 애 키우고 살림도 하면서도 중간중간에 짬을 내어 운동도 열심히 하고 또 그 와중에도 시간을 진짜 나노 단위로 쪼개어 밤새 설친 잠을 어떻게든 조금씩 나눠 자기도 하고 또 아토피인 아들을 위해 아토피 아이를 위한 케어법도 인터넷서 열심히 찾아보고는 요리조리 적용도 했다가 내 아이에겐 안 맞으면 좌절도 했다가 그러나 엄마니까 다시 오뚝이처럼 힘을 내 새로운 식이요법을 또다시 시도해보기도 하고..... 게다가 그 무엇보다도 아이도 친구가 필요하니까 아이의 사회생활을 위해 기꺼이 기동성을 발휘하며 무슨무슨 센터 교육기관 블라블라 교수법 등 정신없이 쫓아 댕기다가 집에 와서는 또 집에 오면 집안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고.........
정말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지경인데 남편은 집에 오면 그런 내게 용기와 격려의 한마디는커녕 흠만 찾았다. 돈 한 푼 안 벌고 집에서 띵까띵까 놀면서 그것도 못하냐고......... 잘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미흡한 것은 팩트니까 지적당해야 했다. '팩트'니까
한편 남자애에게는 일하고 집에 지쳐 들어오면 지쳐있는 아내만 있었다. 나도 힘 좀 에너지 좀 받고 싶었는데 와이프는 이제 그런 것 따윈 나눠 줄 여력이 없어 보였다. 물론 집에서 애 키우고 집안일하고 힘든 것 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일이지만 조금 미루거나 가끔은 건너뛰어도 혹은 실수를 해도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적어도 내 생각엔).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은 집이라는 몸에 피를 대는 일이었다. 와이프는 눈이 높아 어설픈 것들은 성에 차지 않아 했다. 아들도 지엄마를 닮았는지 음식물에 몸이 예민하는 등 둘 다 소위 비싼 몸의 소유자들이었다. 따라서 적지 않은 양의 피가 한치의 잘못됨 없이 매달 같은 날 꼬박꼬박 지정된 용량만큼 따박따박 공급되어야 했다.
물론 가끔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들 하던데 나는, 나의 자존심은 그런 것은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평생을 루즈하게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결혼과 동시에 정확히는 아이의 아빠가 됨과 동시에 쓴 세상을 매일 매분 매초 매 순간마다,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한쪽 팔에 유비의 어린 아들인 아두를 안고 밀려드는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물리치는 조자룡의 마음으로 정말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조자룡은 그렇게 힘들게 아두를 지키며 피투성이가 되어 유비 앞에 나아갔을 때 유비는 자신의 아들인 아두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자신의 아들 때문에 충신을 잃을 뻔했다고 조자룡의 충성심에 탄복을 하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는데 우리 마누라는 마치 일단 애만 쏙 데려가 애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호들갑 떨며 샅샅이 살피더니만 그걸 섭섭해하는 내게 “조자룡은 유비 아들을 지킨 거잖아. 너는 니아들 네가 지킨 건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안 알아준다고 난리야” 하는 것 같았다.
남의 새끼든 내 새끼든 애를 안고 적과 싸우는 것은 힘든 법이다. 가족이 없었다면 아예 참전할 일도 없었던 전쟁이었다. 난 성격상 누구 와든 마찰 일으키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고 크게 야망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여태 살아왔듯 그저 큰 풍파 없이 무난하게 식구들과 오손도손 다람쥐 가족처럼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었다. 그 흔한 알바 한 번 해보지 않고 8 학군에서 나름 곱게 자란 몸이었던 나는 나의 이 잔잔한 호숫가에 아담하고 예쁜 집을 짓고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아 그저 알콩달콩 예쁘게 살고 싶었다.
그런 나와 다르게 아내는 알콩달콩한 다람쥐 가족은커녕 표범과 같은 호연지기를 품은 사람이었다. 연애할 때 그녀는 내숭이 없이 터프했지만 또 챙길 땐 세상 여성스럽게 엄마나 누나같이 챙겨주다가도 또 금세 돌변해 세상을 호령할 듯 걸쭉한 사나이 목소리를 흉내 내며 농을 칠 때면 뭐 저런 여자가 있나 웃기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저런 여자랑 살면 평생 재밌게 살 수 있겠다.’ 싶어서 난 그녀가 좋았다.
게다가 모험심도 강해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돈도 한 푼 주지 않는 일을 배우러 다닌다고(나중엔 좀 주는 듯싶었으나 여전히 민망한 금액이었다) 자기 돈 들여가며 쫓아다니고 또 밤새 촬영한다고 피곤해하면서도 담날이면 오뚝이같이 여지없이 현장에 튀어나가서는 그래도 이 일이 재밌고 좋다는 그녀가 대견하기도 또 안쓰럽기도 해서 나는 그녀의 일을 물심양면으로 돕기도 했다.
아무리 부모님이 돈이 많아도 손 내밀기 어려운 건 여자도 남자도 마찬가지다. 저렇게 저 여자가 저축 따윈 안중에도 없는 철 모르는 군상일 줄이야..,. 이제라도 알았으니 나는 지금부터라도 내가 더 독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평소에 호방한 척하지만 또 슬픈 일이 있을 때면 마치 수도꼭지를 튼 듯 애처럼 엉엉 울어버리는 저 여자가 나 죽으면 애 데리고 길거리에 나 앉아 바보 천치 신세가 될 것이 눈에 선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 사망 시 마누라 앞으로 얼마라도 나오는 적금도 들었다. 돈 한 푼 못 버는 애니까..... 그저 하루 종일 애의, 애에 의한, 애를 위한 삶을 사는 애니까..... 그런데 지가 살던 가닥이 있고 또 게다가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신 분도 아니고...... 무튼 내가 죽으면 애랑 둘이 구박댕이 바보 멍청이가 될 것이 뻔했다.
나는 그렇게 노력하는데 집에선 마누라가 몰라주는 것 같아 난 사실 섭섭했다. 이젠 부모님께 기댈 나이도 아니고 친구에게 시시콜콜 얘기해봐야 그 당시는 시원할지 몰라도 그래도 아직 내 와이프고 내 애 엄만데 실컷 신나게 떠벌리고 나면 집에 오는 차에선 '아, 그 얘긴 하지 말걸...... 아, 그건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고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어디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서 한바탕 놀고 오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뭐 그런 성격도 아니고... 그냥 술사 들고 집에 들어가 와이프한테, 와이프니까, 사는데 생겨나는 애로사항들 얘기하다 언성이 좀 높아질 수도 있겠지만 뭐 세상에 다투지 않고 사는 부부도 있을까. 부부생활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게다가 나는 허튼 말은 절대 안 하고 나는 팩트만을 말하니까 언제나 당당하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애로사항을 나누다 언성이 높아져 아기한테 미안해질 때도 있었는데 그러나 나는 사실 생각은 잘 안 나지만 결국은 대충 다 잘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다소 격정적인 반주와 저녁시간을 가진 후에는 대게 술기운과 피로에 바로 잠들기 일쑤 었다.
이렇게 자주 먹고 바로 자는 바람에 나는 역류성 식도염을 얻기도 했는데 특히 평소보다 유독 격정적이었다 싶은 저녁 반주 시간을 가진 다음 날이면 계절과 상관없이 집안 전체에 짙게 깔린 찬 공기와 함께 마누라 근처에 반경 1미터 정도의 시베리아 저기압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난 평소 뻘짓거리는 전혀 하지 않고 우리 가정을 위해 매일매일 이 몸 불살라 열심히 살고 있는 가장이기 때문에 마누라의 그런 기분 상태 따위는 전~~~ 혀 개의치 않는 척 더욱 당당하게 파워 워킹으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곤 했다.
'네가 아무리 센 척해봐라 내가 눈 하나 꿈쩍 하나...'
우리의 투명인간 놀이는 한 번 시작하면 그렇게 2주를 훌쩍 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