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접수 시엔 옷차림에 신경 쓰자

성남 지원의 원숭이

by 계영배







우리는 참으로 많이 싸웠다. 왜 그렇게 악을 쓰며 싸웠을까.... 참으로 오랜 시간 생각하며 내린 결론 "그는 나여서 또 나는 그여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싸움의 처음과 끝이 다 온통 이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별 것도 아닌 일이었다.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고 우리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심지어 결혼해서는 술 마시고 각자 집으로 안 가고 거나하게 취해서 함께 삐뚤삐뚤거리며 어깨동무를 하고는 가사도 다 틀린 노래를 바보같이 흥얼거리면서 같은 집으로 가는 것조차 너무 꿈만 같고 좋았던 우리였는데 어떻게 그러던 네가 이런 일로 내게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 그 점이 서로를 더욱 분노케 하고 그 배신감에 우리는 서로를 향해 더욱더 복식호흡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야~~~~~~~~어떻게 네가 내게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이 밤의 끝을 잡고 싸워대던 우리는 어느 날 밤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이혼장을 접수하러 갔다. 남편은 출근도 미루고 우린 둘 다 비장한 표정으로 검은 정장에 최대한 정숙하고 포멀 한 옷차림으로 예를 갖추고는 성남지원에 가서 아침 일찍 접수를 기다리고 있는데 소위 삼선 슬리퍼와 운동화를 짝짝이로 신고 머리는 산발을 한 남녀가 들어오더니 이혼장 접수처를 찾았다. 보아하니 밤새 싸우다 그 길로 바로 법원을 찾은 듯 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또 비슷한 커플들이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그들은 여기에 와서도 계속 싸우고 있었다.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이혼 서류 접수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생각해보니 이게 뭐 그리 좋은 일이라고 우리는 이리도 말쑥하게 빼입고 와서 앉아있나.... 마치 예식장이라도 가듯 말쑥하게 차려입고 엄숙하게 앉아있던 우리 둘은 서로 머쓱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들 사이에서 마치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듯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쭈뼛쭈뼛 앉아있었다.



너무 처음 온 티가 났다... TPO에 따른 적절한 옷차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이혼 서류 접수 시에는 적당히 캐주얼한 옷차림을 추천한다. 어길 시 본의 아니게 동물원의 원숭이가 될 수 있다.



무튼 호기로운 마음에 둘 다 센 척 제대로 하고 찾아갔던 가정법원에서 아이가 있는 가정은 특정 비디오를 시청해야만 했다. 비디오 시청각실의 기다란 나무 의자의 끝과 끝에 최대한 멀치감치 앉아 각자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뭔가 알 수 없는 오만 감정을 느끼고 온 우리는 접수 절차가 끝나자 둘 다 조금 머쓱해졌다.






알게 모르게 차분해지면서 우리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법원을 나오면서 남편은 "야! 너... 뭐.... 살 집은 구했냐?" 하면서 괜히 말을 걸었다.






'남이사 살 집을 구했든지 말든지 대체 뭔 상관이람.'







그렇지 않아도 남편이 "이혼했으니 이제 이 돈으로 생활비라도 쓰십시오." 하고 돈을 척척 줄 사람도 아니고 당장 일을 해야 애랑 먹고살고 또 애가 어리니까 일터랑 집이 가까워야 애 학교나 유치원에서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갈 수 있을 테니 서울에 옛날 일하던 압구정이나 청담동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들의 월세가 얼마나 하는지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식겁했던 터였다.







어차피 위자료 따위를 순순히 줄 애도 아니고... 그동안 돈 좀 벌어다 준다고 그렇게 유세를 떨었었는데... 그게 또 너무너무 징글징글했는데 또 돈 가지고 남편이랑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구박을 받고 천덕꾸러기가 되더라도 눈 딱 감고 친정에 가서 드러누울 생각이었다. 엄마 아빠한텐 미안하지만 잘되어 성공해서 갚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센척하며 말했다.







"집 다 알아봤거든. 본인이나 신경 쓰세요."







아이가 있는 집은 아이의 양육 등에 관한 문제도 크기 때문에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는데 거기 상담사 분이 아이 양육권과 양육비 등을 일단 남편과 상의해 정해야 자기가 다음 절차를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각자 차를 타고 나는 집으로 남편은 회사로 가면서 전화로 양육 문제에 관해 얘기를 하는데 나는 죽어도 애는 내가 데려간다고 했고 남편은 그럼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집이야 엄마네 들어가 어떻게든 살겠지만 돈 한 푼 없이 들어가 부모님께 생활까지 책임져 달라고 하긴 너무 면이 안서 내가 벌더라도 일단 일자리를 찾기까지는 애 유치원도 보내야 하고 다달이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있으니 양육비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월 백만 원인가를 준다고 했다.






나는 "유치원비도 안 되는 돈으로 지금 장난하냐"라고... 하며 반박했고 그런 내게 남편이 이러쿵저러쿵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길래 "그렇게 돈 주는 게 아깝냐"라고 "나는 애만 있으면 되고 네 치사한 돈 한 푼도 필요 없으니 너 좋아하는 돈 너 혼자 다 가지고 잘 먹고 잘 살으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나는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니 차 안에 숨 막힐 듯 정적이 흘렀다. 이 차가 그렇게 조용한 차였나...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






나는 운전대를 잡고 온 세상이 떠나가게 울었다.







물론 후에 가벼운 언쟁은 몇 번 있었지만 그 후 자연스럽게 이혼은 없던 일이 되었다. 이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아이를 가진 사람의 이혼 절차는 왜 이리 복잡한지.... 어디선가 이혼율을 낮추려고 일부러 복잡한 절차를 만들어 놓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인 것 같았다.



결국 세상의 이혼자들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소위 웃긴 거였다. 내 경험상 이혼자들과 비 이혼자들은 그저 회수권 한 장 차이다. 심지어 이혼자들은 비 이혼자들보다 더 부지런하여 그 지난한 절차의 귀찮음을 기꺼이 감수했던 사람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 절차가 귀찮아서 도장만 안 찍었을 뿐 그 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부부들은 내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죽도록 사랑해서 연애기간 동안 매일매일 만나서 오밤중까지 함께 있다가 것도 모자라서 같이 살아버리자며 결혼을 택했던 우리가 왜 그렇게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워댔을까




남편이나 나나 둘 다 자기 돈 한 푼 없이 부모님에게 빨대 꽂아 결혼한 철부지들이었다.

그 당시에는 특별히 감사하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가려니 했다. 요즘처럼 영끌 주택 마련 그런 것도 없었고 우리에겐 작지만 우리 소유 아파트로 시작할 수 있는 행운도 주어졌다.




남편은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서 가장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곱게만 자란 그에게 공장 사람들이나 거래처를 상대해야 하는 회사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술도 잘 못하는 그는 곱상한 외모로 대표되는 약함을 감추고자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그들과 같이 먹어대고는 집에 와선 또 게워내곤 했다.




나는 결혼해서도 나의 일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라도 바로 생겼으면 그 핑계로 일을 놓을 수 있었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 소식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결혼은 했지만 여전히 바쁜 그러나 돈을 버는 만큼 또 써서 결국 가계소득에 큰 도움은 안 되는 '유부 커리어우먼'이었다. 이런 나를 우리 남편은 '비싼 취미활동을 하시는 분'이라고 불렀다.




나는 내 일이 좋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온갖 것들이 내 손길을 거쳐 예쁘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면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무언가를 예쁘게 치장해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온갖 화려한 물건들에 둘러싸여서 일하는 나는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을 차곡차곡 저축하며 가계부를 끼고 사는 건실한 가정주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그렇다고 바쁘기만 바빴지 특별히 돈을 뻑적지근하게 벌어 가계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닌데 좌우지간 눈만 높아 씀씀이가 큰 내게 남편은 불만이 쌓여갔다.




그래도 우리는 지독히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니까 서로 일로 바쁜 와중에도 타닥타닥 익어가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 술잔을 몇 번 기울이면 우리는 진짜 지독히 사랑해서 결혼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금세 또 풀어지곤 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