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출타하시면 누나랑 같이 먹을 밥을 손수 차려 대령하곤 했다고 했다. 엄마를 도와 집안 일도 곧 잘하던 그는 아들이라기보단 딸 같은 자식이었다.
훌쩍 큰 나이에도 엄마랑 단둘이 스키를 타러다녔던 그는지금도 티브이 뉴스에 재개발 관련 이슈로 자주 등장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지어지자마자 입주했던 일종의 최초 입주자로 길 건너 한보미도아파트가 지어지기 전까지 초등학교 때까진가 살았다던 은마아파트 내에 있는 상가에 얽힌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반짝거리고 안면엔 생기가 돌았다,
은마상가에선 직접 거기서 닭을 잡아서 요리를 해, 볼 때마다 기겁을 했었다는 둥 그런데 미안하게도 그 통닭이 너무너무 맛있었다는 둥, 또 떡볶이가 기가 막혔다며 언제 또 먹으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둥, 또 오만가지를 다 팔던 수입코너에서 엄마가 식료품, 생활용품 등 정말 오만가지를 사 오시곤 했는데 특히 V8이라는 야채주스가 너무 맛없어서 토할 뻔했다는 둥, 또 정육점에서 산 소고기를 그 옛날 유행하던 미제 둥근 전기 프라이팬에 구워 엄마랑 단 둘이 먹었었었는데 세상에 정말 맛이 기막혔었다는 이야기 등등......
보통 때는 매의 눈으로 내 주변의 조그마한 흠도 칼같이 찾아내며 진짜 완전 정 떨어지게 “팩트! 팩트!” 운운하며 날 쥐 잡듯 잡던 그도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 상가에 얽힌 추억의 보따리를 풀 때면 그 어느 순한 양보다도 동글동글하고 반짝반짝한 눈을 하고는 너무도 신이나 그냥 뭐라고 뭐라고... 마치세 살 먹은 어린애 모양 조잘조잘 레퍼토리가 아주 삼일 밤낮을 세워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살가운 예스맨 아들'이었던 그는 그 '살가운 예스맨 아들 생활'이 조금 힘들었었나 보다.
남편은 첫째이고 와일드한 내게 심적으로 아주 조금은 의지했었던 것 같다. 그간의 착한 아이 코스프레는 이제 그만하고 이제는 누나 같고 든든한 느낌마저 드는, 장난 삼아 아저씨 목소리도 그럴듯하게 잘 내며 따라서 혹 어쩌면 자기 삶의안식처로 삼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내게 친구처럼 누나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의지를 하며 잘 살아가고 싶었는데 내가 살아보니 성격만 호방하지 실생활에선 구멍이 많아 그는 많이 또 여러 번 좌절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결혼 전에는 착한 아들로는 살아도 경제적인 일에는 전혀 신경 쓸 일이 없었는데 막상 결혼해 살아보니 이제는 남편으로서 요구되는 정서적 올바름(emotional correctness) 이외에도 경제적인 책임까지 짊어지고 살아야 하니 어쩌면 그 착한 아이의 가면을 더 쓰고 있다간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그가 변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그런 변한 모습에 관해 내가 참다못해 가끔 내비치면 시댁 식구들은 당최 상상이 안 간다며 고개를 젓곤 했다.
“그럴 리가... 걔가 얼마나 순한 앤 데....."
그때 나는 억울하고 화도 났다. 왜 평생 착하고 순하게 살다가 나랑 살면서부터 이리 변한 건지......
나를 만난 게 화근이었던 건지... 내가 그의 인생에 큰 오점인 건지... 너무도 답답한 마음에 심지어 점도 보러 갔었다. 미래를 보시는 분들의 의견은 한결같았다. 그는 원래순하고 물렁물렁한 사람 아니라고... 원래 강단 있고 강한 성격인데 워낙 부딪히는 것을 싫어해 그냥 여태 참고 살아왔던 걸 거라고... 그런데 워낙 와이프가 편하고 또 우리 와이프가 이 정도는 받아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으니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그러나 장점은 자존심이 강하고 강단이 있어서 절대 처자식 굶기지는 않을 거라나..... 그래서 뭐 결론은 워낙 성격이 그러니 이혼하지 않을 거면 그저 참고 살아야 한다고....
지금 와 생각해보면 우리는 둘 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좀 더 세상을 알고 공부하고 천천히 했어도 괜찮았을 것을... 그때는 여자 나이 28 살 정도만 되면 마치 이제부터는 소위 노처녀의 세계로 입장이라도 하는 듯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나 마치 큰 일이라도 난 듯 조바심을 가지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런 분위기에 전혀 개의치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성큼성큼 나아가는 멋진 젊은 여성들도 많았지만 그런 용기나 배짱 따윈 없는 난 그저 지극히 평범한 20대 여자였다.(아니 평범에 못 미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런 용기나 배짱은 밑천이 든든할 때 저절로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 나는 그저 대학 간판 좋은 것 빼고는 남다른 실력도 없었고 학점도 형편없었으며 이렇다 할 취미활동이나 뭐 빼어난 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현모양처가 꿈인 그저 지극히 평범한 여대 졸업 20대녀였다.
그런 나와 수백씩 용하다는 선생들에게 과외비를 쓰면서도 그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선생이 오는 날이면 과외 안 하려고 도망 다니고, 또 어쩌다 수업을 받고 나면 이 선생은 발 냄새가 심해서 수업을 못 받겠네 또 저 선생은 입냄새가 심해서 못 받겠네 하며 부모님 속을 제대로 태우고 철 모르게 살았던 남편이 만나, 그저 맨날맨날 재밌게 놀다가 또 맨날맨날 헤어져야만 하는 것이 싫어서 결혼을 결심하고, 어쩌다 진짜 운이 좋아 부모님이 사준 집에 살면서 아버지 회사에서 월급도 받고 비교적 안정적으로지내다가, 가만히 보니 결혼하면 으레 남들 다 생기는 애가 안 생기니까 "남들 다~~~~ 생기는 애가 우린 왜 안 생기네. 내가 대체 뭔 죄를 지었길래 세상이 내게 이러네 어쩌네~~~."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징징 거리니 하나님이 하도 애가 징그럽게 울어재끼니까 시끄러워서 주셨는지 딱해서 주셨는지 무튼 덜컥 아이가 생겨 이제는 부모까지 된...... 뭐 좀 많이 긴데, 말하자면 우린 그런 상황인 거였다.
이제와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까 참 그동안의 좌충우돌 우당탕탕 거림의 연속이었던 삶이 어쩌면 우리에겐 당연한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덩치만 크고 나이만 먹었지 머릿속은 그저 아직 애들인 남자애와 여자애가 어떻게 연이 닿아 만나게 되어 신나게 연애를 하다가 운 좋게도 자기들 밑천은 한 푼도 없이 어찌어찌 부모의 도움으로 결혼이란 것을 하게 되고 뭐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여자애는 집안일하는 엄마 역할, 남자애는 밖에서 돈 벌어 오는 아빠 역할을 하면서 사는데 막상 이 역할 놀이를 해보니 현실적인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세상 모든 놀이가 그렇지 않던가, 하기 전에는 되게 재밌을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판세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 즐거우려고 시작한 말 그대로 '놀이'임에도 불구,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짜증이 올라오고 내가 놀이에 아무리 집중해서 열심히 한다 해도 결국엔 이기든 지든 내가 예견한 방향으로 결판이 나는경우는 극히 드물기 마련이다.
엄마 역할을 맡은 여자애는 그랬다. 일단 자기는 집안일이 서툰데 결혼 전 친정 엄마가 깔끔의 아이콘이었어서 집안 청결과 정리 정도에 대한 눈높이는 엄청 높았다. 그러나 정작 가끔 설거지 말고는 시집오기 전에 자기가 집안 정리 정돈을 딱히 해 본 적이 없었고 그저 아침에 “에헴~~!!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떡하니 붙어 주었으니 이제 화장을 좀 해볼까~~~” 하고 굉장히 호방한 자세로 화장을 시작하여 화장대를 비롯 온 방안을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는 매우 당당하게 등교를 하곤 하는 아이였다.
그러면 여자애 엄마는 마치 우렁각시 모양 여자애가 신나게 '학교 근방'에서 놀다 집에 귀가하기 전까지 감쪽같이 방을 치워놓곤 했었는데 여자애는 뭐 다른 집도 엄마들은 다 그런가 보다 했었다.
이렇게 결혼 전까지 내내 살다가 여자애는 이젠 자기가 엄마가 되어 반대의 입장이 되었는데........ 이건 뭐 생전 안 하던 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고 본건 있어서 웬만한 집안 상태는 성에 안차니 흉내는 내보려고 하는데 이게 참 맘처럼 되질 않고... 진도는 안 나가는데 아들은 옆에서 안아달라고~~ 안아달라고~~~ 울어대고.... 이렇게 매번 하다 하다 힘에 부쳐 지쳐버린 여자애는 참다 참다 급기야는 자기랑 안 놀고 뭐하냐며 매번 우렁차게 울어재끼는 아들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아 한 손엔 걸레를 쥐고 꺼이꺼이 울곤 했다. 애가 크게 울어주니 오히려 편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애엄마 역할 중인 여자애는 또 언제까지 울고 있을 수도 없었다. 우렁차게 울어재낀 아드님은 또 금세 배가 쑥 꺼져서 이번엔 배고프다고 칭얼댔다. 그럼 여자애는 또 정신없이 빛의 속도로 그러나 아토피로 고생하시는 분이라 유기농 음식 재료에서 조리도구, 마지막으로 식기까지.... 남편에게 정신병자 소리를 들어가면서 까지 세심히 구축한, 아토피 아이를 위해 엄선된 조리도구들을 이용해 아토피 아이에게 저해될만한 음식재료 및 양념 등은 전혀 쓰지 않고 '100% 천연 재료를 이용한 특별 조리 과정'을 통해 정성스레 밥을 준비하여 애를 단디 먹이고는 애가 남긴 음식으로 내 끼니는 얼른 대충 떼운다음에, 아드님이 식사하시느라 자기 얼굴과 온몸을 비롯 식탁, 심지어 바닥에까지 온통 바르고 뿌려놓은 음식물 잔해를 말끔히 청소한 후, 끝으로 이제 그 모든 만행의 장본인을 덜렁 들고 목욕탕으로 데려가 말끔히 씻기고, 씻었으니 또 옷을 또 싹 갈아 입히고 나서는,
휴우.................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이내 바닥에 풀썩 주저앉곤 했다. 살이 쪄 엉덩이엔 쿠션이 충분해 아프지도 않았다.
그러고 나면 '끝'이었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아드님의 왕성한 활동으로 한 시간이 멀다 하고 계속 더럽혀지는 탓에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히니... 사실 뭐 안 갈아입혀도 되는데 그렇게 집이고 애고 한번 놔버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었다. 여자애의 주생활 공간이 집이고 전업주부로 그저 집에만 있는 상태에서 여자애에게 주어진 주임무인 육아와 집안 관리 상태가 어쩌다 일정 수준 미만으로 떨어졌을 때면 그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여자애는 본인부터 자존감이 훅 떨어지곤 했다. 마치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완성도가 갑작스레 떨어져 당황하는 김대리 마냥 몸이 마무리 힘들어도 정신 건강이 우선이었고 깔끔한 아이 상태와 집안 상태는 여자애의 유일한 자존심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렇게 점점 쌓이는 아이 옷가지와 뭐를 닦았던 것인지 이젠 뭐 생각도 안 나는데 여하튼 수북이 쌓여 있는 갖가지 걸레들, 또 아드님이 실례를 해주신 이불빨래에 액체식이나 주스 등을 먹은 젖병, 컵 , 식기 등의 설거지를 꼼꼼히 하고 위생을 위해 또 푹푹 삶은 다음에 탈수를 해 빨래를 널고 마른 것은 걷어 개서 서랍에 착착 넣고 그러다 애가 졸려 칭얼대면 애 재운다고 같이 누워있다가 깜박 잠이 들고.....
그렇게 좀 자다가 뭔가 싸해서 눈을 떠보면 애는 옆에서 자고 있고 그 많은 장난감들도 다 자고 있고 집안 가전제품들, 가구들도 다 자고 있고... 아주 생경하고 고요........ 한 세상이 있곤 했다.
하루 중 흔치 않게 찾아오는 이 고요가 여자애에게는 너무도 소중했다. 학창 시절 왜 그리 잠시도 고요를 즐기지 못하고 그냥 길거리에서도 독서실에서도 줄곧 귀에 워크맨을 꼽고 다니면서 뭔가를 들었었는지.... 그 시절엔 라디오가 되었든 카세트테이프가 되었든 그 뭐라도 듣지 않으면 뭔가 불안했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여자애는 이렇게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청정한 고요가 이리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질 때가 오리란 것을 상상이나 했었을까
무언가에 의해 그 귀한 고요가 깨지면 그래서 애가 깨버리면 절대 절대 안 되니까 여자애는 무슨 요기 다니엘이라도 된 것처럼 최대한 근골격 사이를 늘려 마치 연체동물처럼 몸을 주욱 늘려가지고는 잠든 아드님이 깨지 않도록, 절대 절대 깰 수 없도록 아주 조심히 빠져나와 그간 제대로 가지도 못했던 볼 일을 좀 편히 보러 화장실을 찾곤 했다.
보통 애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용변을 보기 일쑤이다. 사실, 그런 부분에서 부끄러움은 개나 줘버린 지 오래라고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애랑 서로 체면 차리느라고 애만 혼자 두고 화장실을 갔다가 애가 어디에 얼굴이라도 부딪혀 상처라도 난 기억이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것이다.
혹여 그런 사고라도 나면 나면 그때부턴 여자로서 수치심이나 뭐 엄마로서의 이미지 관리. 자존감 유지 같은 것은 마치 이마트에서 파는 자동차 부동액이나 타이어 휠 광택제처럼 엄마에겐 ‘관심 밖 tem’(관심 밖+item) 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급히 볼 일을 보고 손을 씻다 무심코 본 거울 안에는 "뉘신지......" 산발한 머리엔 어디서 묻혔는지 웬 밥풀 같은 것을 묻히고 이건 뭐 부은 건지 살이 찐 건지 언젠가부터 당최 알 수가 없게 된 얼굴에 이젠 나이를 딱히 가늠하기도 힘든 부푼 몸의 '머리 긴 아저씬지, 몸 좋은 아줌마 만 지'가 서 있곤 했다.
차라리 거울을 보지 말걸.... 여자애가 애 옷 가지러 들어간 옷방에서는임신 전에 신나게 입고 돌아다니던 샬랄라 한 옷이 그날따라 하필 반짝반짝 눈에 띄며 여자애 맘속 저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분노를 급 소환하곤 했다. 한창 정신없이 엄마 역할 중이던 여자애는 어쩐 일인지 옷을 보고는 급 신파에 빠졌다가 애소리에 미쳐 감정 정리를 못하고 급하게 방을 나와 애 옷을 거칠게 갈아 입히고는 결국 애를 울리고 만다. '그럴 거면 차라리 살을 빨리 빼서 다시 저 옷을 입던지...!' 화는 자기한테 났는데 엄한 애만 울리곤했다.
여자애는 살을 빼고 싶은데... 빼야 하는데...사실 힘들 때면 먹는 것 밖에 그 감정을 풀 곳이 없었다. 그나마 술을 한 잔 하면 그 순간에는 조금 화가. 가라앉고 편해질 것 같긴 한데... 수유 중이라 그건 또 불가능했다.
누군가 말했었다. 무슨 시골 깡촌 여자도 아니고 지금이 몇 년도인데 모유수유를 18개월씩이나... 것도 완모를 하냐며... 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살았지만 18개월 완모를 했다. 그럼 서울 중심지에 살면 뭐 분유식만 해야 되나? 모유에 좋은 성분이 많다고 매스컴에서 연일 떠들어 대는 덕에 우리 아들은 모유는 많이 먹었고 덩달아 그 안에 녹아있던 내 슬픔도 많이 먹었다.
아들은 모유를 많이 먹어서 인지 아토피 증상을 빼고는 응급실 한번 안 가고 크게 아픈 곳 없이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애엄마 역할 중인 여자애는 그간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보아 스트레스 풀 때 가히 가성비 갑이라고 할 수 있는 시원한 캔맥주 한잔을 못 먹어 항상 조금은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었던 같다. 주변에선 술은 물론이고 수유 중에는 매운 음식도 먹으면 된다고들 했다. 여자애는 잘못됐을 시 뒷감당을 할 자신이 전~~~ 혀 없었기에 미련 곰팅이처럼 그 시간을 우직하게 참아냈고 그 인내들은 결국 여자애 복부에, 옆구리에, 허벅지에 와서는 아직빵가루 안 묻힌 돈가스 고기 마냥 척척 붙곤 했다.
그러다 남편이 올 시간이 되면 저녁 준비를 해야 했다. 남편은 소위 초등학생 입맛이라 신선한 야채와 조리와 간을 최소화한 음식을 좋아하는 여자애와는 식성이 전혀 맞지 않았다. 사실 여자애도 가끔 돈가스 햄버거 소시지 등도 즐기고 다양한 음식들을 신나게 즐기는 체질이었는데 아이를 임신하고 낳으면서 체질이나 입맛이 변해버린 터였다. 더 이상 몸이 그런 류의 음식을 견디지 못했고 먹고 나면 몸이 아팠다. 그러면 여지없이 육아에 지장을 주었고 아이를 제대로 돌볼 충분한 에너지가 확보가 안되면서 괜스레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여자애 입맛은 자연스럽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런 여자애를 남자애는 이해하지 못했다. 옛날엔 신나게 잘 먹더니 갑자기 왜 이러냐며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먹고사는 음식들인데 대체 너만 왜 그렇게 유난을 떠냐고 그럼 잘 먹는 사람들은 다 못 먹을 음식들을 먹고 있는 거냐고 적당히 좀 하라고 하며 비난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햄버거 소시지 돈가스 등을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여자애 음식은 왠지 어설픈데 간도 밍밍하니 안 맞는 그런데 맛이 없더라도 절대 천연재료만 고집하면서 조미료 등은 일절 넣지 않는 한마디로 '쓸데없는 곤조'로 가득 찬 음식이었다. 그래서 남자애는 여자애가 맛이 어떠냐고 물으면 “응 지구의 음식은 아닌 것 같아."라고 하곤 했다.
좀 소홀하면 마치 “이 집 여자 집안일 손 놨네~~” 광고를 하듯 금세 티가 나는 집안일하고 애 키우고 하느라 자신의 예전 모습은 잃어버리고 점점 아줌마의 외형으로 변해가 안 그래도 거울을 볼 때마다 뚜껑이 열렸던 여자애는 남편이 밤에 들어와 일하고 와서 힘들다고 하루 종일 집안일에 치이고 애에 치인 날 힘들었지 한마디 없이 애 상태나 집안 상태가 맘에 안 들면 또 엄마 노릇 잘 못했다고 지적하기 일쑤인 독박 육아 상황이 너무 슬프고 싫었다.
독박 육아는 상관없으나 나도 돈은 안 벌지만 집에서 충분히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등 생산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큼의 값어치를 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여유까진 없었던 것 같다. 슬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다 내 선택이었고 이 결혼에 등 떠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젠가 박지성 선수가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와 진행자가 육아가 힘든지 축구가 힘든지 묻는 질문에 육아가 훨씬 힘들다며 축구는 시작과 종료 휘슬이 있는데 육아는 시작 휘슬만 있고 종료 휘슬이 없다고 했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종료 휘슬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경기를 열심히 뛰고 있다고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음 했었는데 내겐 열심히 뛰고 있다고 인정해주는 사람도 종료 휘슬을 불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월드컵에 출전해 전반전 45분 후반전 45분을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땀으로 빤스가 다졌도록 뛰었는데 막상 국가대표선수 명단엔 없는 선수 같았다.
티브이를 보면 남녀가 가사를 분담하는 시대다 육아를 분담하는 시대라며 이런저런 사례를 묶은 다큐멘터리가 연일 전파를 타고 있고 드라마 내용도 '그게 트렌드네 그래야 앞서가는 가정이네 어쩌네' 떠드는데 나 혼자만 갈라파고스어딘가에서 거주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