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탄생

대체 애가 뭐길래

by 계영배








결혼해서 아이를 갖기 전까지 일을 했던 나는 실은 아이를 낳고는 전업주부로 살고 싶었다 전업주부로 집안을 예쁘게 가꾸고 내조도 잘하고 시부모님께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맛있는 밥상을 준비하고 야물딱지게 저축도 착착 잘하는 그런 주부 말이다. 그러나 세상 일은 언제나 내 맘과는 한참 먼 딴 세상에서 돌아가기 마련이다.







남편과의 트러블은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시작되었다.





결혼 후 5년이 넘도록 우리에겐 아이 소식이 없었다 처음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차츰 날이 갈수록 그 스트레스를 이길 수가 없었고. 임테기를 한 날이면 나는 여지없이 그 당시 막 나오기 시작한 갈색 플라스틱병에 든 대용량 국산 맥주를 안주도 없이 혼자 벌컥벌컥 다 마시고는 엉엉 울어 벌겋고 퉁퉁부은 얼굴로 퇴근하는 남편을 맞곤 했다





그렇게 온갖 한의원의 한약을 다 먹고 좋다는 병원, 한의원들은 다 찾아다니던 어느 날, 평소 밥에는 별 관심이 없고 군것질거리들을 주로 즐기던 내게 난데없는 밥 욕심이 솟구치기 시작했고 드디어 혼자 낮에 밥집을 찾아가 잔뜩 시켜놓고 꾸역꾸역 입에 넣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신이었다.







마침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산부인과가 있었다. 병원에 가서 과연 임신이 맞는지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동안 한스러웠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무심코 집어 든 월간지에 차마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계속 같은 페이지 위에 말 그대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남편은 그간 임신에 집착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 했다. 우리 둘이 잘 살면 됐지 꼭 아이가 있어야만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거냐고 하며 한 달에 한 번은 임테기 결과에 낙담해 매번 지하 백층쯤에 떨어져 홀로 처박혀 있는 나를 끌어내며 위로하곤 했다





그렇게 배에 주사를 맞아가며 한약이니 인공수정이니 갖은 노력에도 아이를 못 만난 우리는 결국 아이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며 다시 한번 이젠 우리 둘 만의 인생을 위해 힘을 내자고 서로를 다독이는 수순에 이르렀다. 일종의 해탈이었다.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아이 때문에 산사람 둘이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매번 지옥을 경험할 순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새 출발을 선언한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맘을 고쳐먹던 그날 우리는 둘이 조촐하게 '임신 포기 선언 및 새 출발 결심 파티'를 가졌었다. 실은 그간 둘이 임신에 적합한 몸을 만든다고 우리의 공통 취미인 음주 생활을 맘껏 즐기지 못했었던 터라 어차피 임신도 포기했겠다 둘이 신나게 각종 주류를 섭렵하고는 딱 한번 만났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것이다 너무도 너무도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물론 너무도 기뻤지만 한편으론 참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내 인생에서 뭐길래 내 인생이 이리도 송두리째 좌지우지되는 건지 근본적인 질문을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럼 불임센터에서 봤던 그 수많은 장기 불임 부부들은 다 죽기라도 해야 되나.... 나름 매사에 쿨한 스탠스를 디폴트 값으로 장착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부터도 이렇게나 임신에 연연하고 결혼 후 임신 여부에 따라 이렇게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기는 그렇게 비싸게 굴만큼의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아기를 임신한 후로 내 삶은 마치 얼굴도 모르는 아기에게 인생을 저당 잡히기라도 한 듯 아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이 되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마음이 일단 내게 기본으로 탑재되었다. 나의 몸 전체를 아가가 자리는 집으로 기꺼이 내주기에 나는 거리낌이 일도 없었다.





그간 내가 살면서 그 누구에게 이토록 바라는 것이 없이 내 몸을 맘대로 사용하라고 기꺼이 내주었던 적이 있었을까




그간 내속에 내가 너무도 많았다







내가 아기를 가지고 싶어 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던 걸까. 생각을 해보면 사실 나나 남편이나 둘 다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남편은 그 스탠스를 시종일관 고수했으나 나는 왠지 모르게 아이를 꼭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문제였다. 나는 왜 아이가 가지고 싶었던가...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게 꼭 아이가 너무 좋아서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어떻게 한 번 만나 본 적도 없는 아이가 그렇게 가지고 싶을 수가 있나 …… 아이를 가져야 하니까 가지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남들도 가지니까, 다들 가져야 한다고 하니까 뒤쳐지기 싫어서, 그저 말 그대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 싫어서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한 생명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맘속 저 깊은 곳에 깊숙이 처박혀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운 좋게도 소위 요즘 많은 청년들이 그러하듯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다니는 수고 없이도 부모님 덕에 알바 한번 안 하고 좋은 학교를 잘 졸업할 수 있었다. 학점은 엉망이었으나 특별히 대단한 취직자리를 원했던 것도 아니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고 너무 감사하게도 모아둔 돈은 전혀 없었지만 적당한 나이에 어떻게 시집을 잘 가게 되었다.





게다가 그 흔한 주택청약 통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신혼부터 자가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던 나는 맞벌이지만 생활비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 소위 (남편 표현에 의하면) '돈 많이 드는 취미 생활'에 다름없는 직업을 가진 '유부 커리어우먼'으로 별 탈 없이 결혼 생활을 영위해 올 수 있었다.





그런 내 삶에 딱 하나 티가 아이가 없는 거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언제 봤다고 그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애가 내게 안 온다고 평소 애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밤낮을 안 가리고 꺼이꺼이 울며 지냈겠는가. 남들은 다 쉽게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다. 심지어 뉴스에선 누군가는 애를 낳아서는 키울 수가 없어 내다 버린다고도 했다. 그렇게 남들에겐 다 주어지는 것인데 내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것이 그저 억울하고 화가 났던 것이었을지도 사실 모를 일이었다.







무허가 용도변경은 처벌을 받게 되는 법이다. 신께서 아이를 주시는 그 원래 의도도 제대로 파악 못한 체 아이를 아이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내 완벽한 삶을 구성하는 여러 퍼즐 조각 중 채워지지 않은 유일한 조각 하나로 생각하며 밤낮으로 구하니 신이 쉽게 허락하실리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신은 내게 필요한 고난을 주신 것 아니었을까. 모은 돈 한 푼 없이 부모님께 빨대 꽂아 시집가고 또 요즘 같은 소위 '영끌' 없이 내소유인 아파트에서 신혼살림도 시작하고 특별히 내가 돈을 벌어야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니 비싼 수업료를 내고 다니는 취미활동 같은, 게다가 특별히 돈 안 되는(물론 내게만 해당되는 경우였을 수도.. 아니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직업도 가지고...





이렇게 내가 손에 무언가를 잔뜩 움켜쥐고는 아이까지 원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내게 내려놓는 법을 알려주시려고 신께서 연단의 시간을 주셨던 것은 아니었을.... 그 후로도 아이는 내게 삶의 많은 교훈을 얻게 하는 매개로 작용하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하게 얻은 아이가 말썽이었다. 너무도 소중하게 얻은 아기에게 나는 온 맘을 다 쏟아버렸고 임신 중 심한 입덧으로 체력까지 좋지 않던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 누나 같고 포용력 있으며 유머까지 탑재한 아내가 될 여력 따윈 남아있질 않았다. 그 누나 같고 형 같으며 가끔은 코미디언 같다고 남편이 좋아했던 아내는 너무도 어렵게 얻은 아기를 돌보느라 에너지를 다 소진하였고 결국 마음의 준비 없이 그렇게 변해버린 나를 맞닥뜨린 남편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