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그 위대한 톨스토이보다 훨 나은 3가지 이유

결혼이란 걸 하다

by 계영배


1. 살인 전과 없음

2. 절도 전과 없음

3. 폭력 전과 없음





남편과 나는 소위 하이텔 소개팅을 했다. 요즘 젊은 분들은 모르겠지만 70년대생 분들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지잉~~~ 하면서 온라인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여러 부운~~ 준비하세요! 하면서 항상 인터넷의 세게로 입장 때마다 요란한 굉음으로 나를 반겨주던 그 시절, 남편과 나는 거기서 만나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항상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어요? 하고 사람들이 물으면 주저주저하면서 음... 저.. 인터넷 채팅으로 만났어요^^;; 하고는 당황해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여지없이 직면해야 했지만 언젠가 대학 같은 과에 어떤 참 멋들어지던 언니가 클럽에서 남편을 만나 참으로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부끄러움은 개나 줘버렸다.





남편은 순정파였다. 나는 '그 당시' 소위 '현모양처'가 꿈이었기 때문에 소년 같은 외모에 가정적이고 순정파였던 그가 좋았다. 그는 특히 매일매일 장미꽃을 정말 '만날 때마다' 주곤 했었는데 그 당시 남편이 살던 아파트 상가에 우연히 들른 어느 저녁, 상가 꽃집 할머니가 나를 보고는 "아이고! 이 아가씨가 그 아가씨 구만! 참 복도 많제." 하며 대체 어떤 아가씨길래 총각이 저리 매일 꽃을 사 가지고 가나 엄청 궁금하셨다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총각 진짜 없다는 칭찬을 한 바가지로 하시던 기억이 선명하다.





무슨 출근 도장이라도 찍 듯 매일 만나길 3년쯤 지나 내가 27살 정도 되었을 때 아빠는 결혼을 하던지 선을 보던지 더 나이 먹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셨고 나는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에게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남편은 주저주저하며 답했다.

"나,... 엄마한테 물어봐야 되는데..."





동갑내기였던 남편은 그 당시 군대 제대 후 소위 백수 신분으로 나와의 연애를 천직처럼 여기며 열심히 연애 생활에 헌신적이었고 수입은 제로였기 때문에 아마 부모님들도 적잖이 당황하셨을 것이다. 나 역시 일은 하고 있었으나 쥐꼬리만 한 급여였고 참으로 못난 군상이라 그마저도 많은 청춘들이 그렇듯 돈이 통장을 무슨 열차 플랫폼 지나듯 매달 스쳐 치나 가기만 했다.






그러나 하늘이 도우셨는지 저축 한 푼 없으면서 눈만 높았던 나는 혼수를 장만하러 갔던 압구정의 한 백화점 정문 앞에서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 엄마랑 고래고래 싸우기를 두어 차례 하고는 마른 수건 같던 엄마를 짜내 드디어 그 순정파 총각하고 결혼의 연을 맺었다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우리는 처음엔 참 좋았다. 퇴근하면 집 앞에 쪼끼쪼끼, 칸. 투다리 등 저렴한 맥주집을 같이 신나게 순회해주고 또 서현역 앞 고깃집 골목에 갈빗살을 먹으러 가서는 근처 경매장에서 마침 때맞춰 마치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 무리마냥 쏟아져 나오는 경매꾼 인파들에 놀라고 또 고깃집에서 나오는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처럼 아슬아슬하게 부풀어 있는 계란찜을 매~~ 번 보면서도 매~~ 번 처음 본 것 마냥 천진난만하게 같이 놀라 주는 술친구가 있어 나의 퇴근은 언제나 '매우 맑음'이었다





남편은 내가 동갑이지만 누나 같아서 좋다고 했다. 나도 정말 친구 같고 권위적이지 않은 그가 좋았다. 그러나 친구 같고 권위적이지 않아서 정말 좋던 그는 집안의 가장이 되자 정말 친구 같고 권위가 일도 없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곤 했다.







친구 같고 권위가 일도 없던 그는 그가 가장이 되어 치열하게 세상과 싸워 집에 돈을 가져다주는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모조리 집에 가져와 소위 누나 같던 내게 주욱 풀어놓고는 너랑 나랑 동갑인데 왜 나만 돈을 벌어 너네 둘을 먹여 살려야 되냐고 따지곤 했다.







순하고 순정적이었던 그를 좋아했던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이 마치 그가 전 세계에서 혼자만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모냥 유세를 부리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의 그런 행동이 한없이 어리게만 느껴지던 나는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만나다가 결혼에 골인했던 우리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연애시절 권위적이지 않고 친구 같은 그의 모습이 좋다던 나는 그가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어른스럽게 감정처리를 못하고 애처럼 군다고 질려했고 또 나의 동갑이지만 누나 같은 모습이 좋아 결혼을 결심했다던 그는 내가 그에게 하는 말들이 다 내가 정말 연장자라도 된 듯 그를 무시하면서 매번 가르치려 든다고 격노하곤 했다





한때 박진영 프로듀서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맘에 와닿던 말이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좋아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헤어진다."





내가 그의 결혼에서 이혼까지 그 지난했던 삶의 여정을 다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겠으나 아마 내가 느꼈던 그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연애시절, 아이처럼 순수하고 계산적이지 않아 자신의 모습을 꾸밈없이 다 보여주어 내게 결혼을 결심하게 했던 그의 성격은 친정에 가서도 제대로 빛을 발했다. 남편은 친정부모님에게도 순수하게 가식 없는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며 소위 사위로 예쁨 받기 위한 애교 한번 립서비스 한번 없이 본인 노선 그대로를 곤조 있게 지키며 있다가 오곤 했다.








사위로서의 넉살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는 그저 본인 성격 그대로 일 년에 설, 추석 딱 두 번 가는 처가 방문에도 전혀 가식이나 꾸밈, 혹은 '이렇게 하고 집에 갔다간 마누라한테 한소리를 들을 테니 하는 시늉이라도 하자' 뭐 이런 계산도 전혀 없었다.








절대 계산적이지 않으신 남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답게 그는 매 방문 때마다 참으로 어색하게 마치 비쩍 마른 막대기처럼 쭈뼛쭈뼛 앉아있다가 담배 피우러만 줄곧 한 백 번 정도 나가길 반복하다 집에 가기 일쑤였다.







그나마 술이 들어가면 좀 나았다. 나랑은 집에서 술 마시면서 감정이 격해져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낯도 가리고 넉살이라곤 없는 그에겐 세상을 살아가는데 술은 '백해'이기도 하지만 '무익'이 아닌 '유익'인 날이 어쩌면 더 많았을지도 모를 뭐 그런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우리 아빠는 종종 '참이슬 빨간 뚜껑'을 실온 상태로 권하곤 했다. 그러면 그는 실온의 참이슬 빨간 뚜껑이 혈관을 탐과 동시,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말이 술술 나왔다.





권위적이지 않고 친구처럼 모든 것을 나누어 내가 참으로 애정 했던 그의 성격은 일상생활에서 빛을 발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번다고~~ 번다고~~ 그는 그 모든 스트레스를 다 싸 짊어지고 집으로 가지고 들어와 저녁상 위에 주욱 펼쳐 놓았다. 그러고는 나는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데 니들은 띵까띵까 놀면서 받아먹기만 한다며 대체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스트레스를 마치 퇴근 후 친구와 고깃집서 나누 듯 나와 어린 아들과 함께 지겹게 나누었다.





나 같았으면 시부모님께 예쁨 받고 싶어서라도 없는 애교라도 부려보고 또 바깥일을 하고 경제활동을 하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스트레스들을 짊이 지고 집에 가서 다 풀어놓고는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욕을 먹느니 한 집안의 가장으로써 최소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뭘 하든 웬만하면 개인적으로 알아서 풀고 설사 배우자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이미지 관리를 '어느 정도'는 하면서 다툴 텐데 남편은 참으로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내 앞에선 그런 계산 따윈 개나 줘버리고 언제나 그냥 '자연인' 그 자체였다.








가끔 시댁 시구들에게 이런 상황을 순화해서 조금 흘리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상하다.,... 걔가 어릴 땐 참 순했는데.,,"


그럴 때마다 집에 와서 활명수 두병과 염소똥같이 생긴 한약 소화제 30여 알을 꿀떡꿀떡 들이켰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요사이 내가 빠져있는 대문호 톨스토이처럼 살인이나 강간 폭력 전과는 없는 분이었으니 그러고도 업적이 좀 남다르면 다 묻히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나도 헛점 투성이 여자사람이니..






뭐 이정도면 우리, 최악의 배우자는 아닌 것으로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