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얻은 아이는 어렵게 얻은 값을 했다. 몸에 고도계를 단 듯 깨있는 동안은 자기를 안고 있는 엄마가 앉아 있는 꼴을 보지 못했고 밤새도록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는 모유를 열심히도 찾으셨다.
그렇게 아이는 밤낮으로 울어댔고 남편은 급기야 따로 자야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내가 무슨 밖에서 애를 낳아 온 것도 아닌데 지새끼 우는 것을 저렇게 싫어하나 싶어 '어떻게 아빠가 되어서 저렇게 어른스럽지 못할까...' 하는 마음에 섭섭한 감정은날마다 커져갔다.
내가 부족한 탓인지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한계가 있었다. 전에는 남편에게 주던 사랑이 100이었다면 아이를 낳고는 아이에게 그중 90을 주었고 그 90 만큼 남편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우리의 골도 깊어갔다 육아에 대한 의견차로 우리는 자주 다퉜고 행복하려고 낳은 아이 덕에 우리 둘 사이엔 거리가 생겨버렸다. 난 그럴수록 아이에게 점점 더 집착했다. 잘 키워서 남편에게 보란 듯 당당하고 싶었다. 좋은 옷, 좋은 책, 좋은 교구들, 좋은 음식... 특히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 나는 더욱 예민하게 아이를 돌봐야 했고 피부 트러블이라고는 경험해본 적 없고 특히 아토피 유발 음식(밀가루, 유제품, 화학조미료 등)등에 알러지가 전혀 없던 남편은 내가 유난을 떨어 애가 더 예민해졌다며 날마다 비난의 수위를 높여갔다.
특별히 알레르기 따윈 없었고 심지어 삼겹살 3인분 정도는 아주 가볍게 한자리에서 뚝딱 해치우던 나의 몸도 출산 후 밤낮이 바뀐 육아를 하면서 민감해졌다. 점점 유제품이나 동물성 단백질처럼 특정 음식에 몸이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등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음식들이 늘어가면서 내 성격도 날이 서 있는 때가 많아졌고 특히 출산 후에 애는 밖으로 나왔으나 아직 껍데기는 거대하게 부풀어 있는 내 모습이 내가 봐도 너무 부담스럽고 싫어 나의 자존감은 매일 마룻바닥 저 어딘가를 헤매고 다녔다.
내용물이 밖으로 나왔으면 겉껍질은 쪼그라들어야 정상 아닌가. 애가 뱃속에 있을 때는 그나마 애가 들어 있어서 부푼 몸이 납득이 됐었지만 이제는 애도 밖으로 나왔겠다 더 이상 거대한 몸을 위한 핑계처는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은 산후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공식적으로 있어서 그나마 그 공식적 병증 안에 산모들이 조금이나마 각자의 몸을 숨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임신하고 출산하던 때에는 그런 것이 있다더라 하고 가끔 들어보긴 했지만 요즘처럼 보편적이고 흔한 증상이므로 그런 병증을 보이는 출산맘에게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정상적임을 사회적으로 용인해주는 분위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유달리 유난스러운 엄마일 뿐이었고 "남편에게서 네가 유난스럽다, 네가 이상하다"는 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정말 내가 잘못되었나 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 거대한 몸을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감출 곳 없어 매 순간 예민한 상황에도 너무도 어렵고 힘들게 얻은, 게다가 나나 남편의 장점만 쏙 빼닮아 내 새끼 맞아, 싶을 정도로 예뻤던(적어도 내 눈에는) 아이를 어떻게든 잘 키워보고 싶었던 나는 자발적 예민함을 선택했고 선택적 예민함을 인생의 디폴트 값으로 놓고 살면서(애가 밤에 운다고 다른 방에서 취침 시작하심) 본인은 굉장히 무난하고 모든 것을 잘 참아내며 살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편의점에서 파는 천 원짜리 햄버거도 자기는 맛있다고 잘 먹고 소시지, 햄, 치킨너겟 등 각종 가공식품을 애정 해도 건강상 문제 1도 없음) 남편은 그런 나를 정신병이라며 병원 방문을 자주 권하곤 했다.
그렇게 행복하려고 낳은 아이는 그렇게 우리 부부 사이에 어느새 싸움의 도화선으로 자리 잡아갔다.
남편은 기저귀 한 번을 갈아준 적 없었다.
내가 불만을 제기하면
"너는 내가 하는 방식을 맘에 안 들어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아예 안 하는 거야."
하고 남편이 받아친다. 그러면 나는
"그러니까 육아책 한 번이라도 보고 와서 시도를 해봐야지. 육아책은 읽어봤어?"
하고 쏘아대곤 했다. 그러면 남편은
"네가 유난을 떠니까 애가 더 예민해지는 거야. 우리 엄마는 육아책 그런 거 없이도 나랑 누나 잘만 키웠어"라고 답하곤 했다
부부의 대화는 여기서 끝나야 한다
더 이상 나가면 그만 살자는 것이다. 조폭도 엔간해선 가족은 안건들이는 법이다
너무도 어렵사리 세상에 나와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뭔가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자기보다 커다란 덩어리들 둘 사이에서 눈을 꿈벅거리며 이 소란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저 어린 생명을 생각해서는 갈라설 것이 아니면 여기서 부부의 대화는 끝나야 했다.
그러고는 보통 1~2주의 투명인간 놀이를 했었다. 이십 평대 아파트 안에서 애를 키우면서 투명인간 놀이는 쉽지 않았다. 옛날 이십 평대 아파트는 요즘처럼 크지 않았고 특히나 부엌에서 거실로 나오는 중간에 혼수 할 때 엄마를 쥐어짜서 산 조금은 큰 식탁을 놓아 지나갈 통로가 갑자기 급. 격. 히. 좁아지는 구간을 우연히 동시에 지날 때면 짜증이 치밀었다.
'난 대체 뭐한다고 좁은 집에 저렇게 큰 식탁을 사 가지고 지금 이런 순간 스트레스 과부하를 만들었나.'
예쁘다고 엄마를 졸라서 졸라서 사 달랠 때는 언제고...
좌우지간
세상 오만 것들이 다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기의 힘은 강력했다 이내 그 강력하신 파워로 남편과 나를 하나 되게 하셨다.
남편이 미운 것은 미운 것이고 애가 예쁜 것은 예쁜 것이었다. 나는 뒤통수가 납작한 편이었다. 남편은 작고 갸름한 얼굴에 너무도 예쁜 뒤통수를 가졌었다. 연애시절 나는 종종 어쩜 그렇게 뒤통수가 예쁘냐며 남편에게 아낌없는 칭찬세례를 퍼붓곤 했었다
어느 날 아침, 전날 저녁 남편과 실컷 싸우고 한바탕 울어 퉁퉁부은 얼굴로 남편은 출근하고 애기랑 둘이 있는데 뭐라고 혼자 옹알옹알하며 놀고 있는 아이의 뒤통수가 너무도 예쁜 것이었다.
'누구 닮아 어쩜 저렇게 두상이 이쁠까... "
쌍꺼풀이나 납작코는 수술로 어떻게 해볼 수나 있지 두상은 돈으로도 쉽지 않다.
나는 어젯밤 그 꼴도 보기 싫던 남편을 용서해주기로 한다.
이렇게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기를 마치 타오르는 불금을 보내고도 월요일 9시면 사무실 책상에서 정색하고 진지하게 업무를 보는, 그러다 불금이 찾아오면 또다시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고는 넥타이를 머리에 동여 메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 신나게 노를 젓는 회사원처럼 우리는 참으로 지겹게도 반복하곤 했다.
이렇게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남편은 지쳐갔다. 급기야는 자기는 케어는 받지 못하는데 너네 둘 쓰라고 돈만 벌어다 주는 기계냐며 걸핏하면 성질을 부려대기 시작했고 나는 다른 집 가장들도 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는 그렇게 사는데 그럴 거면 왜 결혼한 거냐고 악을 썼다.
그랬더니 남편이 하는 말
"네가 결혼하자고 했잖아!"
그렇다. 이 결혼은 내가 하자고 했다.
남편은 넉넉한 집에서 어려움 없이 자란 사람이었다. (본인 말로는) 여성분들한테 인기는 많았으나 마음에 드는 여성분이 없어 이렇다 할 연애한 번 못한 체 이십 대 초반을 보냈다고 한다(그러나 여사친은 엄청 많았다). 그러다 군대 제대 후 친구랑 집에서 장난 삼아 채팅을 하다가 얼떨결에 나와 번개를 하기로 한 친구를 따라 나와 우연히 날 만났고 어쩌다 그만 사랑에 빠져 거침없이 불같은 연애를 하다가 난데없이 갑자기 내가 결혼하자고 해서 뜻하지 않게 이른 나이(27)에 결혼을 하게 되는 우(?)를 범했다고 한다.(순전히 본인 얘기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느슨하고 여유 있게 인생을 살아온 남편에게 어린 나이에 갑자기 찾아온 가장의 무게는 너무도 컸던 것 같다
왠지 동갑이지만 어딘가 누나 같아 좋았고 특히 그녀의 아저씨스러운 개그를 좋아했던 그는 이제 그와 함께 압구정 청담동 골목을 쏘다니며 이쁜척하면서 스티커 사진을 찍어대고 압구정 'rock-and-roll' 옆 bar 'Amaranth'에서 '잭다니엘'이나 '밸런타인'에 콜라를 섞어 홀짝홀짝 들이키기를 즐기고 도산공원 앞 카페'느리게 걷기'에선 '해물 떡볶이'를 먹으며 그를 향해 까르르까르르 웃어대던, 또 언제나 넘치는 식욕을 자랑하며 심지어 술이 나오기도 전에 로바다야키의 기본 안주들을 올킬하고는 씩 웃음을 날리던 호방한 그녀는 없고 자기의 성씨를 가진 어린 남자애의 엄마 역할에만 깊이 빠져있는 것 같은 그녀에게 지쳐갔다.
그러면서 가끔 핸드폰 사진첩 저~~ 구석 어딘가에서 수백만 년 전 내가 샤넬 18번 립스틱을 귀신같이 시뻘겋게 바르고 그 당시 유행하던 큐빅이 잔뜩 박힌 커다란 머릿 핀을 한쪽 귀에 대문짝 만하게 찌르고는 세상 걱정 없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을 찾아내 내게 슬쩍 보여주고는 ” 이때 참 예뻤는데... 근데 그 여자는 이젠 없는 것 같다..” 고 중얼거리며 쓱 지나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