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죽이기 위해서 남에게 결투도 신청했다. 노름 때문에 돈을 크게 탕진한 적도 있다. 농부들이 땀 흘려 수확한 것으로 무위도식하면서도 그들을 저버렸다. 간음도 했고 거짓말도 했다. 기만, 절도, 폭행, 만취, 살인 등등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악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 등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大文豪)'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가 그의 나이 50세 개종을 하는 등 이른바 회심(回心)을 하게 되면서 그간의 정신적 고뇌와 방황 또 숱한 자살 충동 등을 이겨내고 쓴 책인 '참회록'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사실 위의 참회록에 인용한 부분에서 스스로 고백한 것만으로도 지금으로 치면 최소 전과 5범은 되는 톨스토이는 앞서 말한 대로 그냥 러시아의 유명 소설가도 아니고 '대문호(大文豪)' 라 불리면서 특히 그의 소설 '전쟁과 평화'는 러시아의 전체 리얼리즘 소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고 더 나아가 19세기 유럽 소설 중에서도 이보다 우수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극찬으로후한대접을 받고 있다.
또한 독일 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거장으로 칭송받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사망 이래로 그 어떤 작가보다도 제대로 자국 문학을 세계적 반열 위에 올려놓은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톨스토이는 문학 외적인 존재감에 있어서도 프랑스 문학사가 랑송이 그의 저서 프랑스 문학사에서'18세기를 지배한 자'라고 단언할 정도로 추앙받던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인 거장 볼테르(Voltaire)에 비견되며 당대 사회 전반에 널리 영향을 끼친 그야말로 문학계의 슈퍼스타이다.
그에 대한 찬사는 좌우지간 삼일 밤낮을 얘기해도 끝이 없는데 귀족 신분이었으면서도 귀족 문화를 경멸했던 톨스토이가농민 등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등 약자들의 삶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일이나특히 변호사였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서신으로 시작된 둘의 인연으로 톨스토이의 비폭력 사상 이 인도 독립운동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바 있으며 그 무엇보다도 톨스토이는 그의 저서들을 집필할 때 식자(識者)들을 위한 문어체는 되도록 피하고 순수함을 유지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구어적인 어휘를 사용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도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이쯤 되면 톨스토이 판 용비어천가는 어느 정도 마무리에 들어가야 는데 너무 대단하신 분이라 이미 너무 많이 열거했지만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소개해보겠다.
'안나 카레니나' 등 톨스토이의 대표작들은사실 다소 통속적일 수 있는 불륜 등의 소재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풀어나간 말 그대로 '세속적인 색채'를 짙게 풍기는 작품이었다(물론 책을 읽어보면 불륜, 외도 외에도 삶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들에 대한 진지한 고찰 등의 심오한 이야기기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사실 일정 부분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어찌 됐든 메인 줄거리는 바람난 유부녀이야기다)
그러나 문두(文頭)에 언급한 톨스토이 나이 50세에 찾아온 회심(回心) 후 써낸 참회록 이후의 작품들은 그와는 정반대로 종교와 삶의 의미, 죽음 등 세속적인 것들과는 정반대의 나름 심오한 주제들에 관한 그의 견해들을 또 소상히 펼친 작품들을 내놓으면서심지어는 '안나 카레니나' 등 자신의 전작들을 거침없이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른바 자기 검열을 시작으로 자아성찰의 경지에 이르러 결국엔 마치 진정 '해탈한 자의 그것' 같은 모습마저 보여주는등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의 삶처럼 톨스토이는 작가 자신의 삶 자체도 스펙터클하고 다이내믹한 요소들로 가득했던 인물로 자신의 작품에이어 삶마저 작품성, 예술성, 대중성의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말 그대로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다.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는기본적으로 '살인'이라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나 '폭력'이라는 같은 인간에게 물리적인 힘을 가해 육체적인 고통을 야기하는 행위, 그리고 또 '절도'라는 내 것이 아닌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 등 '자신에게 분노의 감정등을 야기한 특정인에 대해,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욕설을 한다거나 혹은 소리를 지르는등의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출의 정도'를 넘어선 소위 <'범 도덕 및 사회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허용 기준을 벗어난과잉 행동'>등을 하는 사람에 대해 물리적 신체 구속 등 '특정 규제를강제' 하는 법령을 만들어 이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 그것이 뭐실수가 되었든 홧김이 되었든 법률상 이제는 '성인(成人)이니 알아서 제 앞가림 정도는 해줘야 하는 자(者)'의 '감정 컨트롤 미숙'은 실제 사회적으로 큰 비용 발생을 야기하기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닌 모두 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구성원인바,누군가의 감정조절 미숙으로 인해 야기되는 특정, 혹은 최악의 경우 '소란 유발자의 분노 야기와는 일도 상관이 없는불특정 다수' 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상황이 생겼을 땐 다소강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맞다고 배워왔고 또 그것이 이른바 공공의 선에 좀 더 부합되는 방향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선 그간 '해당 법률 제정' 등의 장치들이 만들어져 왔으며 또 (그 법률의 내용적인 면에서도 시류에 따라 물론 조금씩 수정은 거듭하고 있으나 어찌 됐든) 이른바 '권선징악'의 큰 골자는 유지한 상태로 그 장치들은 우리와 현재 공존 중이다
사실 보통의 이른바 범부凡夫들에게는 사람을 죽이거나 상당相當한 범죄를 저지르고는 반성문 등을 그럴싸하게 써내거나 혹은 <그저 범부에 지나지 않았던 내가 특정 사건으로 인해 감정적 동요가 크게 일었고 결국 나 같은 사람이 평소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살인 등의 범죄 행위를 벌이게 되기까지의 경위>를 진실성등을 잔뜩 함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되도록 그 진실성의 정도에 흠집을 낼 수도 있는 예를 들어 '현학적인 기교'나 '수사학적 트릭' 등은 철저히배재한 채 극도로 간결하면서도 인문학적 고뇌가 듬뿍 묻어나는 그러나 실로 그 명민한 수려함이 당최 도무지 감춰지지 않는 문체로 써냈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거나 형량이 경감되지는 않는다(물론 판사들도 다 사람이라 간혹 '진실성과 신실성이 담뿍 묻어나는' 반성문의 경우 그 내용이 참작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어 언젠가 심지어 '반성문 대필 업체가 성업 중'이라는 뉴스를 접하고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런 류'의 상식이 자신이 참회록에 밝힌 범죄들 '살인, 폭력, 간음, 만취, 노름, 기만' 등 만으로도 지금으로 치면 최소 전과 5범 정도 되는 톨스토이에게는 위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소개해도 모자를 만큼 실로 거대한업적을 가졌던 귀족 출신 작가여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년 3 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다수의 대선 주자들의 여러 범죄 경력이나 연루 의혹 들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우리는매번 '선거는 어차피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니 어느 후보나 절대 적임자란 없고 다 그저 불완전한 인간군상들인터,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까 보면 공과功過가 다 있기 마련이므로 <이 후보가 그래도 다른 후보들보다 이 직을 수행하기에 덜 부족한 것 같다.>는 웃프기그지없는 판단'을 내리고 투표장에 가곤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그래도 한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대선 레이스에 참가하는 사람이니 말 그대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뽑는 자리에 걸맞은 최고의 지성과 훌륭한 인품을 갖추어야 함'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텐데 안타깝게도 매번 실제 대선 주자들의 드러나는 면면을 보면 '나는 그저 일개 범부일 뿐이지만 그래도 내가 속한 나의 조국을 대표하는 인물은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이러한 소망 한 가지씩은 가지고 대선 레이스를 지켜보던 국민들의 마음에 '이 사람이면적절하겠다'라고 느껴질 정도의 신뢰감을 주었던 후보는 그간 몇 명이나 있었는지....
그런데 더욱 절망적인 건 내가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반백년 좀 못되게 살면서 느낀 건 '그런 후보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거'다.뭐 사실 절망적이라기보다 해당 분야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달까?(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고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매초 매분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이 생각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스코어 '그런 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기본 스탠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로 유명한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은 그 유명한 '모든 나라는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는데 사실 얼핏 들으면 그다지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는 않는 발언 같으나 그 '수준'이라는 단어를 '형편'이라는 단어로 바꾸면 그야말로 한나라의 지도자에 관해 이보다 더 촌철살인의 묘사를 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11월 8일 치러진 미(美) 대선에서 명실공히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언행에 있어서 브레이크를 자주 상실하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다수의 내외국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외교적인 감각이나 비즈니스적인 감각 등의 '전반적 대통령 업무 수행 능력의 정도'를 떠나 그간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보았을 때 '도널드 트럼프'라는 사람 자체가 당최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격'에 맞긴 한 건지 그간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었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에서 나오는 말처럼 트럼프가 만일 관상가에게 "내가 과연 왕이 될 상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가 그간 아무리 비즈니스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여러 정책적인 면에서 눈에 띄게 앞서가는 등 다방면에 두루 실력을 가진 자라 해도 최소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상'은 아니라고 많은 이들이 단언했었는데 오직 컴퓨터의 인공지능 빅데이터는 그를 '대통령이 될 상'이라고 말했고 그 '인공지능 관상가'의 말은 적중했다.
당시 대선의 최대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주(州)에서 '박빙의 혈투'를 벌이긴 했지만 많은 여론조사에서이미 힐러리 클린턴 (Hillary Rodham Clinton)의 승리를 점쳤던 상황이라 이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에 실로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는데 사실 실제로 두 후보의 검색 빈도를 측정하는 데 사용된 빅데이터 기반 분석 도구인 '구글 트렌드(Google Trends)'에선 트럼프 관련 검색량이 힐러리 클린턴 관련 검색량을 크게 앞섰고 따라서 인공지능 관상가는 단순히 그저 영험한 촉이 아닌 지극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당선자를 예측했던 것이다
물론 "단순히 검색량이 많다고 해서 그 수치가 해당 후보에 대한 지지도와 비례할 것이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이렇게 누군가 둘의 상관관계에 관해 의구심을 가지시는 분이 계신다면 음..."당장 빵이 필요한 사람이 빵을 팔겠다는 상점을검색하지 모자나 신발을 팔겠다는 가게나 한 술 더 떠 <우리는 단순히 그저 밥이나 빵 같은 일차원적인 소비재 생산 판매 가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더 고귀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등의 멍멍이 소리를 하는 가게를 검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즉 수십 년 전 이러한 진리를 알려주고 먼저 세상을 떠난 윈스턴 처칠 경의 말처럼 "모든 국가의 국민은다 국민의 수준(형편)에 맞는 지도자를 가지"므로 <이 일화에 관해선 처칠 이전에 프랑스 철학자이자 외교관인 조셉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가 먼저 주장한 것을 처칠이 인용했고 처칠의 인지도가 더 높으니 마치 처칠이 최초의 주창자인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는 말도 있다.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얘기인 것이 사실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사실 소크라테스가 최초로 말한 것이 아니고 고대 그리스 아폴론의 신탁(神託)을 받는 곳으로 세계의 배꼽이라 불렸던 '델포이 아폴론 신전'앞마당에 쓰여 있는 글귀를 소크라테스가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 이것도 입구니 앞마당이니 기둥이니 벽이니 좌우지간 문헌마다 말이 다 다르다. 역사란 이런 것이다. 그때 살던 사람들은 다 죽고 없으니 어디가 확인할 길 없는 나는 답답할 뿐이고 - 더구나 소크라테스 본인은 저서를 남긴 적이 없으니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은 주변인 즉 제자들에 의해 한 번씩은 걸러진 말들일 테고 그 유명한 성경 속 예수의 업적에 관해서도 제자들마다 조금씩 다른 관점으로 기술해 놓은 것을 우리가 4 복음서를 통해 보았으니 세상 모든 역사서는 그저 당시 '역사서를 집필할 형편'이 되었던 승자의 기록 인바 항상 70~80% 정도의 신뢰만 주고 나머지는 변동의 여지를 항상 남겨놓자. 무튼> 당시 미국인에게는 그 어떤 멋들어진 명분이나 폼나는 대의보다도 당장의 경제적인 불안정 상태라는 특정 형편이 있었고 이를 해소해 줄 지도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늘 언론에 대서특필되곤 하는 돌출 언행 등은'목구멍이포도청이다'라는 우리네 속담처럼은 국가를 떠나서 <'목구멍'이란 언제나 전 세계의 '포도청'>이었으므로 당시 미국국민 형편상 선거의 승패를 가를 정도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당연히 막말을 일삼고 ‘미국의 리더십’은 커녕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동시, 이민자 반대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몰상식한 비하 이슈 등 좌우지간 캐도 캐도 여기저기서 계속 터져 나오는 그의 '몰상식한 세계관의 부산물' 등에 국민들이 충분히 신물이 날 수도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트럼프처럼 천방지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별 대단치도 않았던) 기성 정치인들에 대해 신뢰를 잃은 지 오래였던대중 즉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과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제조업의 몰락 등으로 타격을 받은 백인 중산층 들은 결국 달타냥 같은 정치신인 도널드 트럼프의 선동적인 포퓰리즘 주장에 열렬한호응으로 답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미국이란 나라의 당시 '국민의 형편'은 트럼프같은 지도자를필요로 했고 그 결과 그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으며 실제 당선 후에 트럼프의 '미국 우선 주의' 등 '자국 이기주의 노선'들은 일면 관련 성향 국민들의 오랜 '정책적 갈증 해소'에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다소 극단적이었던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 성향에 맞춘 정책 시행의 결과 어찌 되었든 미국 국민의형편 판세는 달라지게 됐으므로 따라서 자연스럽게기존의 국민 형편과 안녕을 고함과 동시, 새롭게 바뀐 미국 국민의 '새로운 형편'은 새로운 형편에 걸맞은 '새 인물'을 원하면서이젠 과거가 돼버린 미국의 형편에 적합했던 트럼프는 결국 재선에 실패하게 된다.
정치 예언 분야 일타 강사에 손색없는( 대(大) 윈스턴 처칠경의 예언(앞서 말한 프랑스 철학자이자 외교관인 조셉 드 메스트르 보다 유명해서 처칠이 한 말로 알려졌다니 조셉에겐 미안하지만 '처칠이 언급 안 했으면 사장(死藏)될 수도 있었던 명언'이므로 여기선 처칠이 한 말이라고 해주자 - 그래서 옛말에 "억울하면 출세하라" 고 하지 않던가) 적중했고새로운 국민 형편상 트럼프식 정책의 필요도가 낮아진 미국민들은 자신들 형편의 태세 전환과 동시, 트럼프를 손절해버린 것이다.
뭐 근데 미국민들을 욕할 것도 없다. 내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일찍이 세상의 이치를 깨친 것으로 보이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의 글로벌 앰버서더 지드래곤이 그의 히트곡 '삐딱하게'에서 말해주지 않았는가 "영원한 건절대 없다"라고.
우리네 각자의 '말 그대로<형편>'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또 같은 학교 같은 반에 고만고만하게 생긴 30 명의 동급생이 있더라도 그들은각기 다른 30개의 형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지구 상엔 250 여개의 각기 다른 국가 국민들의 각기 다른 형편이 있고 그에 따라 250 여가지 다양한 양상을 띈 지도자가 존재하며또 그 지도자들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국민들의 형편 상태에 따라 언제 손절당할지 모르는 터, 언제나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은 긴장을 디폴트 값으로 탑재하시고 생활 하심이 맞지 않나 싶다(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 가 말하지 않았던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사람이 처음에 배가 고플 땐 당연히 밥을 찾게 마련이다. 그런데 밥을 다 먹은 사람에게 디저트나 커피 등 다른 선택지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 "너 처음에 배고프다고 밥 찾았잖아. 그런데 왜 이제는 디저트를 찾아? 밥을 다 먹은 건 알겠는데 처음에 네가 먼저 밥을 달라고 했으니 그냥 너는 계속 밥만 먹어." 하면 그 밥을 사실 주는 사람 돈으로 만든 거라 공짜로 얻어먹는 입장일 땐 뭐 짜증은 나지만 어쩔 수 없겠으나 이게 순전히 먹는 사람이 낸 세금으로 밥 만드는 재료에 만드는 인건비까지 손수 줘가며 만든 것일 땐 얘기가 달라진다.
또한 반대로 공급자들이 수요자들의 니즈에 나름 부응해 준다고 일생을 백반만 만들던 사람이 쿠키 등 디저트도 만들고 원두를 갈아 커피도 만들고 하면 순간 수요자의 니즈를 공급자가 충족시킨 것처럼 쌍방이 느낄 수는 있겠으나 곧 각 분야 전문 공급자들의 그것과는 (급조된 것이고 따라서 깊이가 있기 어려우므로) 현격히 차이나는 품질에 결국 수요자는 어설픈다품목 공급자를 떠나 디저트가 되었든 커피가 되었든 각 필요시에 해당 수요에 적합한 각 분야 전문 공급자를 찾아 나서게 되면서 결국 세상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여러 공급자가 고루 먹고살 수 있게 되고 뭐 그게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가아닐까
즉 다시 말해, 이 세상 그 어느 지도자도 '무슨 신라의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처럼알에서 나오지 않은 이상' 그저 인간일 뿐, 모든 분야에 다 우수할 수 없으므로 우리도 지도자라고 해서 애초에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며 따라서 특정인에게 그 사람만이 대안인양 과한 기대를 하거나 또 과한 권한 허용도 말고 그저 큰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각 필요시에 맞춰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맡을 '일꾼'을 그때그때 선택한다는 조금은 상대적으로 힘을 뺀 마인드를 디폴트 값으로두고 지도자를 선출한다면 민주국가에게 중요한 힘의 균형이나 국가의 균형 발전 등에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선거 시에 혹여 내가 지지하는 지도자가 선출되지 않았다고 해도 밤새 술을 푸며 이 나라가 어쩌려고 이렇게 가고 있는가 하며 크게 통탄할 필요도절대 없고 또 반대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또 나와 정반대의 세계관을 가진 국민들이 또 당신이 그러했듯 밤새 술을 푸며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할 것이니 우리 모두 이 나라에 빈부의 차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다 '두(頭) 당한 개씩의 투표권만 가지고 있는 지금 내가 지지하는 후보만 내리 당선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내가 지지하는 후보만 선(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나라에 똑같은 요율로 세금 내고 살고 있는 당신과 정반대의 사상과 성향을 가진 누군가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특정시기, 특정 후보의 당선은 앞서 언급한 처칠의 말처럼 그저 그 당시 그 국가 국민의 상대적 다수가 원했던 가장 최우선 과제의 해결을 위한 홍반장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그였을 뿐 내가 지지했던 후보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고 해도 그가 당선자에 비해 전반적인 역량이 부족하거나 인품이 떨어져서가 아니기 때문에 지나치게 낙담은 금물이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물론 간혹 신기하신 분들이 대통령을 하시겠다고 입후보하시긴 하나 어디나 그런 분들이 계셔야 자칫 경직되기 쉬운 관련 분야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지고 또 좋아지는 법이다)
어느 날 기사에서 결혼정보회사 매니저가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이
모든 부분에 고루 70점 되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는 거였다.
나름 고품격 중매 회사로 최고 수준의 회원 풀 보유에 자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보통 특정 부분이 뛰어난 배우자보다 전반적으로 어느 수준 이상은 되는 사람을 원하는데 안타깝게도 직업이 좋으면 집안이 안 좋고 집안이 좋으면 얼굴이 박색이고 외모가 좋으면 학벌이 엉망이고 등등 세상엔 정말 고루 평균 70점 정도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드물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다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몬테카를로 방법(Monte Carlo method)에 의거, 좀 더 넓은 범위에 위의 결과를 적용해보자면(몬테카를로 방법은 뭐 많이들 아시겠지만 시간이 좀 남아서 설명을 좀 해드리자면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 캐나다가 공동으로 참여했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서 시뮬레이션이나 특히 수소폭탄 개발에 큰 역할을 했던 특정 알고리즘을 부르는 용어로 '모집단의 범위가 너~~~ 무 방대할 때 무작위 표본집단을 반복적으로 추출, 결국 수리적으로 가장 근사한 함숫값을 내는 방법'인데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 '더 볼 것도 없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우리 속담의 '맨해튼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 아 그리고 몬테카를로라는 매력적인 명칭은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 참여 수학자의 삼촌이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에서 도박을 하기 위해 돈을 종종 빌려갔었다는데 도박이나 이 방법이나 결국 무작위성을 띄는 것은 매한가지 이므로 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아... 가고 싶다 몬테카를로)
진정하고 돌아와서, 좌우지간 앞서 말한 일종의 결혼정보회사 발(發) 통계가 나는 비단 중매시장에서만 통용되는 법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주변에 당장 나부터도 나아가 가족이나 지인들만 둘러봐도 골고루 괜찮은 사람 찾기는 사실 참 쉽지 않다.
학창 시절 우리를 무진장 괴롭혔던 것들 중에 소위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이 있었다. 당최 얼굴도 모르는 누구네 집 딸이나 아들들은 왜 그렇게 전분야에 걸쳐 훌륭한 퍼포먼스를 펼쳐 안 그래도 빠릿빠릿하게 안 돌아가는 머리를 자괴감에 그저 쥐어박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렸는지...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걔들 엄마 눈엔 그랬을지 몰라도 또 그들의 이성친구 나 배우자 랑 인터뷰 라도 한다 치면 그들엄마는 절대 모르는 치명적 단점 폭로에 삼일 밤낮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한나라의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그들도 다 우리와 같은 삼시세끼 밥을 먹고 배가 아프면 용변도 보고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도 흘리고 배우자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티브이에 나오면 괜히 채널을 돌려버리기도 하고 뭐 그런 일개 사람인 것이다(1871년 세계 최초의노동자에 의해 수립된 자치정부 파리코뮌 Commune de paris에 빛나는 나라답게 정치 지도자라고 특정 권한을 과도하게 부여하지도 또 특정 의무를 과도하게 요구하지도 않는 지구 반대편 나라 프랑스의 국민들은 쿨하게도 자국 대통령에게 이성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한도 없는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 바 있다)
그런 이들 중 조금 더 이타적 성향이나 사회참여 의지가 충만하거나 아니면 또 다르게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특정 사건에 의해 권력에의 의지가 불끈 생겨 정계로 진출하여 관련 욕구를 해소 해 보고자 한 사람들이 정계에 발을 들여 일정 기간 후 지지 기반이 마련되자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뭐 그런 사람들일 뿐인 것이다.<물론 이 발언에 반발하시는 분들이 다수가 계실지도 모르나 비폭력 투쟁으로 유명한 간디도 소아성애로 물의를 빚은 바 있으며 버락 오바마는 자기 세대에 sns가 있었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청소년기의 마약을 비롯한 비행을 고백한 바 있고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세계 4대 시성으로 불리며 신곡(神曲)으로 유명한 단테(Alighieri Dante)는 부인이 있음에도 베아트리체라는 외간 여자 이름으로 작품을 도배하는 지금으로 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일을 저지르고도 자기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니 괜찮고 이교도인 마호메드는 이교도라는 이유만으로 배를 갈라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것으로 묘사했는데도 여전히 학계에서 존경받고 있으며 내가 너무도 흠모하는 화가이자 17세기 유럽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는 도망자 신세인 살인자였고 천하의 공자(孔子)나 소크라테스도 돈도 벌어다주지 못하고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남편이기에 부인에겐 항상 찬밥신세였으며 얼마 전 이혼한 그러나 이혼 전에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 많이 하는 존경할 만한 부자 유부남 사업가였던 빌 게이츠한테 고백을 받았다는 여직원이 좌우지간 끝도 없이 나오고(인류에 대한 음모론은 여기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대표 철학자로 객관적 관념론의 창시자인 플라톤(Plato)도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부인 공유제'를 주장하질 않나..... 지금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면면을 다량 탑재한 소위 위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넘쳐나고... 이는 우리가 다 똑같이 그저 부족한 인간들일 뿐임을 대변한다>
물론 그런 개인들 중 특히 법조계 인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것은 좀 눈여겨볼 만 한데 사실 법조인이 되기 위한 과정이 타 직종에 비해 그렇게 순탄치 만은 않으므로 당사자 스스로나 또 주위에서도 법조계 출신 인물들의 관련 업무수행능력에 관해 무조건적인 가산점을 조금씩은 주는 것 같기는 하다.(나도 한때 특정 사건으로 인해 법조인에 뜻이 생겨 양재역 소재 법조인 양성 사관학교(?) 메가로스쿨을 추운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아침 댓바람부터 열심히 다닌 적이 있었는데 넓지 않은 교실 안에 새카만 점퍼를 마치 교복처럼 입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 그 추운 겨울 아침 콩나물시루처럼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는 그냥 앞에서 강의하는 강사를 잡아먹을 듯 집중하며 수업을 듣던 법조 지망생들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 난데없이 변호사가 되겠다는 미대 출신 전업주부 경력 14년 차 딸에게 아버지는 "네가 변호사가 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하셨고 나는 차마 그 귀한 아버지 손에 파텍필립(Patek Philippe)은 못 채워드릴 망정 장을 지지 시계 할 수는 없어 법조인 꿈을 포기하고 만다.- 쓸데없는 효심은 끝이 없고)
무튼, 따라서 정치 지도자 지망생 중에는 법조계 출신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어려운 공부를 해왔다고 그의 인성을 보장할 수 있다거나 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이상적인 정책방향 설정이나 실행에도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는 절대 단언할 수 없다.
따라서 법조계 출신이든 학계 출신이든정계 출신이든 우리는 그저 매 선거마다 그때그때 해당 이슈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인물에 한 표를 던지는 것이고 그게 결국각 분야 인재가 고루 등용되며 국가가 고인물인 특정 라인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보다는 언제 어느 부분에서 국민에게 손절당할지 모르니 국정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항상 긴장을 디폴트 값으로 탑재하게 할 것이며 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 평가에 의한 재빠른 손절은 회전율을 높이게 되는데 회전율이 높은 식당의 재료가 싱싱한 것은 국룰이므로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출신 성분을 떠나 다양한 인재에 의해 골고루 발전할 수 있게 되는 이상적인 국가의 형태로 나아가는 그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고 이상적인 수순아닐까(그래서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레이지 수잔 Lazy Susan -중국집에 있는 돌아가는 원형 테이블'이라고")
물론 국가 기관과 연계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지자체나 개인들에겐 국가 지도자뿐 아니라 그에 따른 담당공무원의 잦은 교체는 사업의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진행에 큰 저해요소로 작용한다고 한다(물론 부서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구멍가게가 아닌 이상 기업도 커질수록 오너나 특정 몇몇이 일일이 다 다니면서 지시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효율면에서도 가성비가 형편없으므로 자연스럽게 사업 전반의 매뉴얼화에 투자를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과경쟁 사회에서 특히 아이디어에 대한 수명주기가 짧은 고성장 산업에서 시작은 되었으나 현재는 은행, 학교, 기업 등 실로 다양한 곳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는 매트릭스 조직 시스템 같은 경우, 기존의 기능부서 상태는 유지하지만 특정 프로젝트 진행 시엔 서로 다른 부서의 인력이 헤쳐 모여 방식으로 함께 일하는 현대적인 조직설계 방식으로 기존의 전통적 조직구조에서 사용했던 명령 통일에의존하는 진행방식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부서의 전문인력들이 함께 일하게 되면서 창의적 발상이나 신속한 의사소통 또는 효율적 부서 운영 등 장점을 가진 기업 운영이 가능하므로 이러한 방식이 국정 운영 전반에 널리 이용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물론 잦은 이합집산을하다 보면 부서 내 팀원 간 유대관계의부실이야기될 수도 있고 또 어쩌다 보면 한 부서에 해가 둘일 수 없는데 둘인 경우도 생길 수 있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 그에 따른 권력 다툼이나 조직 질서 혼란 등의 문제도 야기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조직이나 장단점은 있는 법. 그동안 우리는 국정 운영이든 기업체 운영이든 아주 징그럽게 오랜 세월 동안 수직적 계층구조를 고수해왔으므로 이제는 새로운 형태도 두렵지만 도전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고 따라서 야기되는 단점들은 그때그때 보완해가며 나라살림 운영 전반에 새로운 챕터를 열어가는 것은 어떨까
물론 변화는 비용을 야기한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자의 떠나는 여정은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법, 해보고 아니면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다. 그럼 그간 써 없앤 비용은 어쩌냐고? 세상 모든 수업엔 수업료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혹여 국민을 상대로 일종의 실험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어차피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실험자와 피실험자 관계이고 우리는 모두 우리의 선조들이 온몸을 바친투쟁형태의 실험 참가를 통해 가까스로 얻어낸 제도들 위에서 좀 더 안락하게 살고 있는 셈이므로 우리 다음 세대들을 위해 우리가 실험대상이 된다고 억울해한다면 그건 음... 일종의 반칙이다
나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SKY 등 소위 멀쩡한 대학 졸업한 자식이 삼성 등 대기업 대신 무슨 검색엔진이나 게임회사에 취직한다고 하면 부모님 중 팔 할은 뒷목을 잡으셨을 거다. 그러나 언젠가 뉴스를 보니 2020 년 기준으로 대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는 카카오이고 2 위가 네이버 그리고 CJ제일제당, 삼성전자 순이라는 하는 것이었다.
순위의 앞뒤야 엎치락뒤치락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때 그 유명했던 삼성전자나 LG는 어디 가고 1,2 위에 나란히 카카오와 네이버 등 내가 대학 졸업할 무렵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따라서 삼성전자 등 기업력도 오래되었고 또 탁월한 이미지 관리로 오랜 기간 취업선호 회사 리스트 상위권에랭크되었던 회사들 입장에선 소위 '족보도 없는 회사' (물론 카카오나 네이버 모두 삼성 SDS 출신들이긴 하다 - 삼성이 결국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인가) 들이 상위권을 차지한 이 상황을 보면서 정말 세상은 Lazy Susan 같다는 생각이 든다.결국 한나라의 지도자나 세상을 주름잡는 기업이나 완벽한 것은 없으므로 세상은 그저 계속 변화하며 흐를 뿐이고 우리는 그에 순응할 뿐인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나름 핫이슈라고 해서 아들의 추천에 나도 얼마 전에 MBTI 테스트를 실행해본 결과 ENFJ라는 판정을 받은 나는 한 블로그에서 그 유형에 대해 설명을 주욱 써놓은 것을 보다 ENFJ의 약점 중 사람과 인간관계에 대하여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항목을 보고는 내 마음을 이 얼굴도 본 적 없는 블로그 작성자에게 몽땅 들킨 것 같아 순간 나도 모르게 움칫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헉 귀신인데..."
귀신이 그 블로그를 작성한 것인지 우리 아들 말고는 ENFJ타입 사람을 만나본 적 없는 나는, 사실 아들이 같은 유형이라고 해도 내가 그 맘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그가 사람과 인간관계에 관해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는지 어쩌는지 도통 알 길이 없고... 무튼 적어도 난 그랬던 것 같으니 이 테스트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심지어 입사 시에MBTI 유형을 적어내라는 회사도 있는가 보다)
어차피 세상 모든 것에 100퍼센트 참도 거짓도 없으니 홍대 거리를 걷다 만난 타로 아줌마한테 장난 삼아 본 타로 결과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듯 MBTI 결과도 뭐 상업적으로 성공은 했으나 학계에선 싸늘하다던데 그러든지 말든지 한 블로그에서 앞서 말한 내 유형인 ENFJ형 사람에 대한 단점으로 꼽았던 '사람과 인간관계에 대하여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특징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실제 그간 나는 특정 정치인들에 대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물욕이라곤 일도 없이 저렇게 헌신하는 모습은 정말 본받아야 한다며 그저 세속적이기 그지없던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던 적이 있었는데 훗날 드러난 그들의 민낯에 많이 충격을 받고 정말 말 그대로 '속이 상한' 적이 있었고 그 말을 들은 지인은 내게 말했다. "정치인이 됐든 그 어느 위대하다고 소문난 사람이라도 다 장단점이 있다고 저들도 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니 그렇게 우상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어찌 보면 너무 뻔하고 다 알고 있는 얘기인데도 나는 그간 왜 그렇게 이 말을 믿지 않았었는지...)
남편은 결혼 전에 정말 내게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저런 사람은 다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먼저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했으며 당황하는 그에게 우리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자기도 결혼이 처음이면서) 안심 시킴과 동시 용기를 막 북돋기도 했다(허... 참 지금 생각하니 좀 어이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만났는데 매일 좋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싸울 땐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의 공격력을 탑재한 우리였다( 아 참 다시 생각해도 둘 다 성격 참... 여기까지만 하겠다)
그런데도 신기한 게 또 금방 화해를 하고(남편이 주로 먼저 화해를 신청하곤 했다) 또 신나게 놀러를 다니곤 했다(그래서 사랑싸움은칼로 물 베기 아니던가)
나는 집에서 장녀였는데 근면성실로 점철된 인생을 평생 사신 부모님과 이십여 년을 살면서 전혀 근면 성실하지 않은 나의 본성은 끊임없이 나를 죄책감으로 몰아갔다. 그렇지만 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다름을 드러내는 배짱도 없는 찌질이였던 나는 소위 장녀 콤플렉스의 전형으로 살면서 알게 모르게 (적어도 내게는) 많은 양의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살아왔었다.
그건 뭐 누가 그렇게 살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나 혼자내게 만들어준 룰이었으며 ' 이런 환경에서 이런 부모님이 이런 정도로 내게 최선을 다하시는데 적어도 사람이면 이렇게 정도는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며 내가 내게 만들어 놓은 나만의 바운더리였다.
그런데 나는 앞서 말했듯 근면 성실하지도 않고 끈기도 없으며 크게 신실한 사람도 아니라 요즘에 조금 드실 뿐 애들 키울 땐 술 한잔을 입에 댄 적 없고 모델하우스 같은 냉장고를 평생 유지하며 사신 엄마와 적어도 내겐 자수성가의 아이콘 같은 존재인 아빠 밑에서 그런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장녀로 잘 살려고 노력하면서 그간 내가 입고 있던 소위 '위장된 어른스러움'과 '위장된 성숙함'에 결말을 맺고 싶은 마음이 실로 항상 간절했었는데 남편은 내게 그런 결말을 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ENFJ 유형의 전형적인 약점이 여기서 드러난 걸까 - '사람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상화')
동갑이지만 많이 동안이었던 그는 나를 종종 누나로 보이게 했으나(아 나 참...) 같이 놀 때는 마치 놀이학교 친구들처럼 천진난만하게 놀았던 그는 나를 보살필 때는 또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나의 보호자처럼 알뜰살뜰 챙겨주었다. 그래서 그와 있을 땐 난 어른스럽거나 장녀스럽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그는 한 번도 "내가 결혼 후에도 네 경제적 후견인은 물론이고 정서적으로도 이 따뜻함을 계속 유지할게."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게 물심양면으로 잘해주었을 뿐이고 20여 년을 '위장된 어른스러움'을 입고 그 거추장스러움에 어쩔 줄 몰랐던 나는 '이 사람이면 내가 그 거추장스러움을 벗고 그저 나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삶을 선물해주겠지.'라고 나 혼자 내 그간 20여 년의 삶을 통해 쌓아 올린 갖은 경험들을 통해 추측하고 낸 결론을 가지고 나 혼자 결혼을 덜컥 결정해버린 것이었다.
결론은 내가 내 머릿속에서 만든 사람과 내가 상상해서 만든 결혼 생활을 기대하며 결혼한 셈인데 그러니 탈이 안나는 것이 이상한 거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당최 하나도 맞는 구석이 없는 우리는(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당최 맞는 구석이 없는 우리였기에 우리는 연애 때 귀신같이 내 단점 모두를 커버할 수 있는 장점을 모조리 갖고 있는 서로가 더욱더 절실히 의지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혼 때에도 남들처럼 종종 다퉜지만 정말 아이가 태어나고는 상극인 육아관에 이렇게 많이 싸울 수 있나 싶게 싸웠고 그 위기를 왠 난데없는 공부로 풀려고 했던 나는 당시 하나도 실질적이지 않은 해결책밖에 찾지 못한 내가 싫어서 더 슬프기만 했다.
우리는 정치 성향도 완전 정반대였는데 지금 둘 다 중도로 안착한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남편과의 정치적인 대척점을 비롯,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왜 같은 사안에 관해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똑같은 나이의 심지어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끼리도 생각이 다른 건지, 또 한 때 같았다 해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왜들 변하는 건지 아니면 전 세계의 나라들은 왜 과거 천하를 호령했던 나라들이 어쩌다가 지금은 저렇게 찌그러져 있는 것인지 또 침잠하던 나라들의 급부상은 무슨 이유인지.... 아니면 또 특정 사상이나 정치세력에 목을 매는 저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런 건지 혹시 특별한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의 일신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문 채 나의 시선을 자꾸 밖으로 밖으로 이끌어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남편은 내게 남편판 위징魏徵이었다.
중국 당나라 제2대 황제 당태종(唐太宗)의 형 이건성의 책사였던 위징은 이건성에게 훗날 당태종이 되는 동생 이세민을 죽이라고 종용했었던 자였는데 이세민(李世民)은 당태종이 된 후 그런 사실을 알고도 위징의 능력과 기개를 높이 사 위징을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의 요직 준 후 나중에 재상에까지 임명하게 된다.
평생을 당태종에게 입바른 소리를 해 당태종의 속을 매번 뒤집었지만 그의 간언(諫言) 모두가 다 참이었으므로 당태종은 결국 위징이 죽자 "무릇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옛날로 거울을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으며, 사람으로 거울을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다. 짐은 일찍이 이 세 가지를 가져 내 허물을 막을 수 있었다. 지금 위징이 세상을 떠나니, 거울 하나를 잃어버렸도다.(夫以銅爲鑑 可正衣冠 以古爲鑑 可知興替 以人爲鑑 可明得失 朕嘗保此三鑑 內防己過 今魏徵逝 一鑑亡矣)" 라며 탄식했다고 하는데 평생을 내게 그놈의 팩트(fact) 공격으로 괴롭혔던 남편이 죽으면 나도 저렇게 탄식의 시를 읊게 되려나.....
앞서 우리 프랑스 철학자이자 외교관인 조셉 드 메스트르 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결국 윈스턴 처칠이 말한 것으로 치기로 했던 "모든 국가의 국민은 다 국민의 수준(형편)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명언을 조금 적용해보자면 나는 내 형편에 딱 맞는 남편을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그렇게 당태종을 평생 갈구었던 위징처럼 날 팩트 폭격기로 공격하지 않고 그저 항상 스위트했다면 난 절대 공부 따윈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직도 내가 맞다고 생각되는 특정 사상이나 정치세력을 옹호하면서 정반대 편에 있는 사람들을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고로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로 단정 짓고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모든 나와 다른 당최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싶은 타인을 그저 사랑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마법 같은실험을 하나 공개하겠다. 누구나 다 아는 아니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바로 '파블로프의 개'라는 명칭을 가진 실험이다.
1900년대 초반 러시아의 유명한 생리학자인 파블로프(Ivan P. Pavlov)는 개들이 먹이를 먹을 때마다 분비되는 침의 양을 측정하는 연구를 하다가 우연히 그 개가 먹이 주는 사람 발소리를 듣거나 심지어 빈 밥그릇만 보아도 침을 분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결과 파블로프는 그 유명한 '개에게 종소리와 함께 고기를 주었더니 후에 고기를 주지 않고 종소리만 들려도 소화액이 분비되었다'라는 의미 있는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즉 실험에 참여했던 개는 실험을 통해 발소리와 그릇이 언제나 먹이와 함께 나타난다는 '특정 사건들 연합'의 반복을 경험하게 되고 기존에 전혀 서로 연관이 없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상황 하에서 반복적으로 엮여서 같이 일어나게 됨으로써 그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의 주제 하에 같이 묶여 개에게 기억되었고 따라서 연관되어 일어났던 사건들을 뭉쳐놓은 덩어리, 소위 특정 ‘연합(association)’을 실험에 참여했던 개가 학습하게 된다.
따라서 그 학습을 통해 개에게는 종소리와 먹이가 함께 연합되어 기억 속에 저장되었기 때문에 결국 개는 기존에 종소리와 먹이의 연합을 경험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음이라는조건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심지어 먹이 없이 아무 상관없는 종소리만 들려도 침을 분비하는 조건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고 이 상황을 두고 파블로프는 종소리와 침 분비가 서로 조건 자극과 조건반응 관계이다 라고 말하게 된다.
뭐 심리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조건반응이니 조건 자극이니 이런 전문용어가 어렵긴 한데 너무 길어지니 요점만 말하면 '누군가에게는 아무 감정도 일으키지 않을 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의 삶의 궤적상 그에게는 특정 나쁜 사건과 함께 기억에 남게 된 소재였으므로 고통스러울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심지어 고통스러울 수 있는 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았던 일과 함께 기억된 사건이므로 고통스럽기는커녕 심지어 호의적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면서 보통 사이가 갈라지고 심지어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우리는 다 다른 생김새 성격 성장배경 등을 가지고 있는 다 다른 사람들이므로 동일 이슈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이 파블로프의 실험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던 시기에 특히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인간들의 행동들에 대한 중요한 근거를 제시해 주며 큰 관심을 모으게 되는데 그간 정신의학이나 심리 연구가 미진했던 시기에는 특정 상황에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마다 다양한 공포나 혐오 반응 등의 난제들을 안타깝게도 주술 의식이나 혹은 비과학적이고 실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간 특정 조건하에서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갖가지 다양한 정서 반응, 그리고 특히 특정 인종이나 지역, 혹은 종교나 단체에 대한 상식을 뛰어넘는 편견을 가진 인간들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극단적인 행동 등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이 이론의 출현은 인간의 다양한 행동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는 데 큰 의의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파블로프의 연구는 1930년 초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의 법칙들을 인간의 정신이상을 설명하는 데 적용하는 등 수많은 난제들을 푸는데 프로이트의 이론과 함께 지대한 역할을 하였으며 학계에선 이를 일종의 '현대 심리학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또 한편에서는 동물을 마취 없이 연구하는 그의 방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다(언제나 유명세는 안티를 품에 안고 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학계의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후에 왓슨(Watson)의 행동주의와 스키너(Skinner)의 행동심리학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파블로프의 연구는 이런 위대한 분들의 연구에도 큰 영향을 끼쳤지만 경기도 어느 산 밑에 사는 평범한 중년 아줌마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앞서 실로 지난하게 풀어놓았던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정계 이슈들에 관한 나의 의견들이나 장점만 부각되어서 그렇지 우리들처럼 그들도 역시 허점 투성이었던 세계적인 위인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을 묻지도 않았는데 다 탈탈 털어 보여주며 세인(世人)들에게 죽을 때까지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설파하고자 했던 톨스토이에 관한 이야기.... 등
(특별히 톨스토이는 내가 한때 그의 작품과 생애에 관해 급관심이 생겨 오랜 기간 마음을 두었던 작가로 작품뿐 아니라 그의 복잡다단했던 생애와 각종 욕망으로 가득 찼던 자신을 발가벗기면서까지 대중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이타성과 비범함에 큰 박수를 보냈던 작가였다. 그러나 그랬던 그도 결국 기본적으로 다수의 전과에 준하는 범법 행위를 저지른 자였고 그의 부인에게는 평생을 머리끄덩이 잡고 싸운 이른바 원수 덩어리였으며소크라테스나 공자처럼 사회적으로는 이른바 성공한 자 일지 몰라도 그들을 지아비로 둔 여자들에겐 그저 세상에 빼앗긴 남편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를사람이었다)
집에서 애만 키우고 소위 솥뚜껑 운전만 하던 여자가 앞서 끄적인 것처럼 세상 일에 대해 뭘 좀 안다는 듯이 뭐라고 뭐라고 떠들게 된 건 순전히 앞서 말했듯 남편계의 '위징'이자 팩트 폭격기였던남편 때문이었고 뭔가 나도 저축은 못하지만 가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는 내게 이해 못할 사람이 없게 만들어 주었다.
내게 한때 정치적 견해의 다름으로 좋았던 관계가 틀어진 지인이 있었다. 그때는 너무도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 이제는 너무도 이해가 된다. 그 어떤 누가 뭐라 해도 그녀의 삶의 굽이굽이에 그 특정인이 끼친 영향이 너무도 큰 거였다. 그것은 누군가 그녀에게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런데 너는 어떻게 나름 똑똑하다는 애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것을 우기고있니"라고 그녀의 논리적 미비에 답답해하며 흥분할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파블로프의 실험을 생각하면 세상에 이해 안 되는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
이런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면 티브이를 틀면 나오는 정쟁들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 및 지인들의 (내 입장에서 봤을 땐) 특이 행동도 이해 못할 것이 없다(그들의 견해는 또 내 행동을 특이행동으로 간주하고 있을 수 있다)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수많은 다름이 혼재하고 있는 지금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나름 넓어진 세계관을 가지기까지 남편계의 '위징'인 그 사람이 없었다면 이런 세상을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또 그의 유전자가 없이는 남편의팩트 폭격기에난자된 나를 언제나 따뜻하게 감사 주었던 짜리 몽땅한 엄마 아빠와는 달리 길쭉길쭉하기까지 해서 더욱 감사한 우리 아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래서 세인世人들이 이렇게 말했나 보다
"신은 감당할 만한 시련만 주신다."
그리고 그 내게 맞춤으로 설계된 시련은 우리를 무럭무럭 자라게 한다.
모르긴 몰라도 주야장천 싸우긴 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대작들을 연달아 써 내려간 톨스토이에게 부인의 존재는 그의 예술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그녀와의 삶의 여정 굽이굽이가 그가 써낸 소설들 글 들 여기저기에서 숨 쉬고 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소피아에겐 톨스토이가 안성맞춤이었고 또 일개 중년 아줌마지만 무언가 목소리를 내보려고 하는 내게는 나의 남편이 안성맞춤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우리 남편은 폭력 살인 전과 등이 전무할뿐더러배는 굶지않고 돈도 좀 써가면서그렇지만 속을 쉴새없이 뒤집어 난데없는 학습욕구까지 불타게 했으니 이보다 더 내게 안성맞춤인 사람이 있을 수가 있을까(이건 뭐 남편 통장에 감사하다고 금일봉이라도 쏴야 하나)
"쉰 살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기이한 개성의 소유자 이탁오(李卓吾)는 명나라 사상가로 유교사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자 한 시대의 이단아였다. 유교적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자아 중심의 혁신사상을 제창하고 금욕주의·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는 결국 반(反) 유교적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죽게 된다.
'그림자를 보고 개가 짖어대기 시작하니, 뒤에 있는 개 또한 전후 사정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 짖어대는 모습'을 묘사하며 남들이 무엇이 그렇다고 하면 생각도 해보지 않고 그저 동조하기에 바빴던 자신의 삶을 "그림자에 놀라 짖어대는 개를 따라 짖어대는 개와 나는 다를 바가 없다."는 비유로 설명한 이탁오의 일화에서 처럼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또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뭐 일찌기초등학교 때부터배운 것 같긴 한데 지금 학교를 졸업한 지30년도 더 지났음에도 불구,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남들이 짖는다고 따라 짖는 개가 되는 건 싫어 오늘도 뭔가 읽을거리, 배울 거리 없나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릴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고로 의도했든 안했든 결과적으로 이런 환경을 내게 만들어준 남편이 적어도 내게는 톨스토이 아닌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위대할 수 있다.
하지만 원래 공부를 시작한 취지가 남편이 맨날 저축도 안하고 돈도 못벌면서 눈만 높다고 하도 나를 괴롭히니 공부 열심히 하고 보란 듯 잘되어서 꼭 복수하려고 했는데.... 공부를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전투력 급감에 심지어 복수 자체의 무의미함을 느낀 내 동공은 갈길을 잃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