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혼자 술마시는 여자

대안을 주고 떠드세요

by 계영배



나는 술을 잘 못하고 심지어 조금만 마셔도 온몸이 불덩이처럼 벌게지는 체질이다. 그런데도 생각해보면 내게 힘들 때 가장 쉽고 빠르고 효과적으로 평안을 주는 소울푸드는 술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나는 값이 착한 막걸리를 즐기는 탓에 그 어떤 숨 쉬고 있는 지구 상 무엇보다 술은 내게 유사시에 가성비 갑의 효과를 주었다.







쇼핑을 하던 여행을 가던 혹은 영화를 보는 등 다운된 기분을 업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활동들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혈압인 탓에 정상 가동시간이 하루 최대 5시간을 넘지 않고 또 쉽게 지치며 따라서 웬만해선 밖에 나가지 않는 전형적인 집순이 성향을 가진 나는 뭐 따로 특별히 식탁에 차릴 것도 없이 부엌 싱크대에 달린 작은 티브이 앞에 접시 하나 젓가락, 막걸리 잔 그리고 예민한 내 몸을 위한 '비건 지향식' (사실 내겐 건강상 '비건식' 이상적이나 어쩌다 발동이 걸린 날은 '비건'이라던 여자는 어디 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소 한 마리를 다 잡아먹을 기세로 불판 위의 고기를 싹쓸이하는 경향을 가졌으므로 양심상 '비건 지향'이라고 쓰겠다.) 한 접시에 막걸리 하나면


내겐 천국이었다.







힘들고 속상할 때 비고 슬픈 감정으로 쓰린 속에 막걸리를 흘려 넣을 때면 그분이 굉장히 신속 정확하게 식도 내 각 세포 들을 고루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것을 아주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막걸리와 나는 같은 처지였다. 막걸리는 나처럼 맑게 먹을 수도 있고 흔히들 하듯 흔들어서 진하게 즐길 수도 있으며 가격이 착한 것은 두 말할 필요 없고 배변 활동을 도와 똥배 제거에 탁월할 뿐 아니라 혈액 순환을 도와 나처럼 수족냉증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좋으며 프리미엄 주로도 개발해 각종 국가 행사에서 국위 선양에 한몫을 담당하기도 하는 등 혼자 좌우지간 엄청 바쁘다. 그러나 여전히 큰 대접은 못 받는다.





막걸리는 배만 부르다고? 그럴 줄 알고 나는 막걸리의 위에 뜬 맑은 부분만 마셨다. 남편은 그럴 거면 아예 동동주를 마시지 뭐 하는 거냐고 했지만 뭐 그러든지 말든지.,... 막걸리의 위에 맑은 물과 바닥에 찌꺼기를 나누는 작업은 굉장히 심지어 내게는 신성한 작업이었고 마트에서 윗물과 건더기가 확실히 제대로 나누어진 막걸리병이 가지런히 정렬된 모습은 내게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평온함을 선사했다.







그중 아주 기가 막히게 층이 분리가 된 막걸리 너뎃병을 신중하게 골라 카트에 싣고는 막걸리 병이 쏟아지지 않게 아주 조심조심 계산대에 가져갔는데 계산대의 아주머니께서 바코드 찍는다고 휙 병을 눕히실 때면.






하아....... .ㅡ






거기까지만 하자.




술은 우리에게 조력자이기도 안식처이기도 도화선이기도 그 무엇도 되었다. 우리는 원래 술친구로 시작한 사이였으니까 그랬는지 어쨌는지 무튼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술은 우리와 함께였다.






대판 싸우고 분위기가 어색해졌을 때도 술이 한 잔 들어가고 그를 볼 때면 참 저 얼굴 보겠다고 맨날 맨날 만나다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했었는데 싸웠던 그 일이 뭐라고 그렇게 악을 악을 쓰면서 싸웠나 싶어 분노로 가득 찼던 맘이 스르륵 가라앉기도 하고 또 축하할 일이 있을 땐 뭐 대단한 주류와 함께가 아니어도 분위기를 즉각적으로 달구는 데는 술만 한 것이 없었다.








이런 다소 안쓰러운 이미지의 막걸리와 달리 전 세계적으로 사랑도 받고 대접도 받는 주류의 대명사 와인, 즉 포도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더 앞선다 아니 앞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나는 중학교 땐가 '명왕성 사건'이후 세상 모든 공식 매체를 통한 기사나 공식 출판물 등의 활자화된 발행물 혹은 영상물 등에 신뢰도를 70~ 80% 정도만 부여한다. '명왕성 사건'에 대해선 후에 기술하겠다. - "아니 당연한 거 아냐? 그럼 여태 100% 다 믿었다는 거야?"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다. 제가 쫌 그렇다. 죄송하다. 그러나 더 슬픈 건 후에 성인이 되어 40대 초반에 공식 매체에 대한 신뢰도를 50~60% 까지 끌어내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그러나 너무 감사하게도 그 일은 내가 좀 더 세상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무튼 이러한 술이 만들어지는데 가장 일등 공신은 바로 효모이다. 이름이 그럴싸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세균 할 때 그 '균류'이다(곰팡이와도 친척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생물학이나 유전공학 실험에도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몸인 이 친구는 '산소가 없어야지만 성장할 수 있는 '혐기성 미생물'이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기질을 분해시키고 발효시키는 '혐기성 반응'에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반대의 호기성 반응에서는 물과 이산화탄소만을 배출한다' 고 알려져 있다. (좌우지간 복잡하다, 그래서 학창 시절 생물시간엔 그간 밀린 잠을 자곤 했다.)





무튼 이렇게 효모의 무기 호흡에 의해 나오는 부산물, 즉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용되어 왔는데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창세기' 등 인류에 가장 오래된 기록물 등에도 와인이 주구장창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미 고대시절부터 술을 빚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즉 포도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더 앞섰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볼 수 있겠다.






사실 포도 껍질에는 자연스레 천연 효모가 붙어 있어서, 뭘 넣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단순히 포도를 으깨서 놓기만 하면 원시적 형태의 포도주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과실이나 벌꿀과 같은 당분을 함유한 액체에 공기 중의 효모가 들어가면 쉽게 자연발효를 통해 알코올 함유 액체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원숭이들이 먹다 남긴 과일 등이 나무 밑동이나 고인 웅덩이에 떨어져 발효된 것이 술의 기원이 되었다면서 최초로 술을 빚은 생명체는 사람이 아닌 원숭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이제 난 아무리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 나온 주장이라도 100% 믿지 않기 때문에 이 주장을 꽤 설득력 있게 소개했던 기사를 그 당시 흥미롭게 읽긴 했으나 이 주장을 100%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인생을 반백년 정도 살다 보니 옛 어른들의 말씀 틀린 게 하나~~~ 도 없음을 몸소 하루하루 체험하고 있는 바, 특히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리 없다."는 속담의 좌우지간 기가 막힌 예리함에 대해선 실로 내 생애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크고 작은 무수한 사건들을 통해 매번 실감하고 있는 터라, 물론 시각에 따라서는 글이 다소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는 여러 흥미를 끄는 색다른 기사 중 하나로 내게 남아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원숭이들도 인간이 추수감사절을 지내듯 수확이 많은 시기에 수확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일종의 축제를 여는데 그 와중에 움푹한 곳에 떨어진 과실들이 자연 발효된 액체를 마시고 취해서 괴성을 지르는 등 일종의 인간의 주사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며 결국 지금의 술과 같은 형태를 가진 그 액체로 그들의 잔치가 더욱 달아오르게 된다. 그런데 이런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 인간들이 호기심에 그 액체를 맛보게 되고 그 짜릿함에 반해 인간들도 술이란 것을 만들게 되었다. 뭐 대충 이런 스토리인데 나름 내게는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실제로 과학 기술의 개발 등에 연구진들이 많은 경우 자연물들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심심치 않게 밝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아무리 고도의 발달된 과학기술로 멋들어지게 만들어놓은 신문물이라도 쓰나미나 토네이도 혹은 지진 등의 자연재해 앞에선 순식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수차례 목격해온 것이 사실인 만큼 우리들은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네 뭐네 하면서 인간 이외의 지구 상 존재물들보다 우월하다며 자만하기보다는 언제나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함을 날이 갈수록 더욱 실감하게 된다.







"아 그건 알겠는데 그래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다 인간이 만들었지 뭐 원숭이가 만들었나? 그리고 나 이런 대단한 업적을 가진 사람 이아~~"라고 하시며 자뻑 유전자를 좀처럼 못 버리시는 분들이 간혹 계실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란 책을 권해드린다.







뭐 외관상은 우주 사진이 떡하니 붙어있는 그저 특대 사이즈의 천문학에 관한 책이긴 하나, 읽다 보면 이 광활한 우주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먼지보다 작은 존재이며 이 거대한 우주는 그냥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규칙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며 실로 심오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광활한 우주 안에서도 저 ~~~ 멀리 귀퉁이에 자리 잡은 마치 먼지 같은 행성인 지구 안에 정말 그 먼지 같은 행성보다도 무지 작고, 고로 결국은 언젠가 '존재감 0'에 수렴하고 말 듯한 '미물(微物)'인 우리가 그냥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지지고 볶고 살고 있는 '우愚를 범犯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정말 주옥같은 책이다.





너무나도 주옥같기 그지없는 이 책은 그 남다른 깊이감과 통찰력으로 특히 평소 자뻑 유전자로 충만하신 분들에겐 진심 '주제 파악'의 기회를, 그냥 마음이 여려가지고 언제나 걱정 근심에 잠 못 드시는 이른바 '소심(小心)'이 디폴트 값인 분들에겐 그들이 걱정하는 우환이나 두려워하고 있는 존재 등이 다~~ 우리와 똑같이 우주 안에선 그저 '먼지보다 못한 미물(微物)'일 뿐 이라며 "결국 <존재감 0>에 수렴하는 존재인 건 걔들이나 너나 다 똑같으니 두려움은 접어두고 무엇에든 담대히 맞서라"는 큰 용기를 줄 수 있는 아주 멋진 책이다. (나는 이 책이랑은 일도 관련 없음을 밝혀둔다.)







무튼 다시 술 얘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포도껍질에 효모가 다닥다닥 붙어있기 때문에 그냥 잘 익은 포도를 으깨서 놓아만두어도 포도의 당분을 이용해 스스로 발효 작용을 해 포도주가 만들어질 뿐 아니라 또한 우리 주변에 많은 천연발효빵을 만드노라고 내세우는 빵집들에서 사용하는 천연 발효종 만들기에도 큰 역할을 하는 등 이렇게 당을 이용하여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산하는 효모의 발효과정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어 왔다.






특히 근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구밀도가 급격히 높아진 탓에 제빵이 산업화되면서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맥주를 만들던 양조장이 '맥주 양조'와 '이스트 생산' 이렇게 '두 가지 용도 동시 충족'을 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는 미생물에 대한 지식이 걸음마 수준이었으므로 효모를 용처에 따라 분류 생산이 불가했던 터라 대부분의 빵 제조는 맥주효모를 이용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당연히 효모가 만드는 또 다른 부산물인 알코올이 빵에도 역시 존재하게 되는데, 어디선가 보니 알코올이 대략 식빵 한 장에 0.5% 정도 들어있어 우리가 약 90장 정도를 먹었을 때 330ml 맥주 한 캔 정도의 알코올을 섭취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밀가루 알레르기에도 불구, 가끔 빵을 먹으면 기분이 무지 좋아지는 것인가)






이렇게 구성성분 중 단백질이 50% 이상이며, 그 외에도 비타민 B1과 B2, 니코틴산, 엽산 등이 가득해 이른바 '영양 덩어리'인 효모는 그 '충만함'에 빵 제조 이외에도 채식주의자들이 치즈 대용으로 쓰는 영양 효모로도 판매되고 있다.(당시 맥주공장 노동자들의 머리숱이 그렇게 풍성했다고)






특히 내게는 어릴 적 아빠가 먹는 것을 호기심에 한 번 먹어 보고는 그 미묘한 맛에 매료되어 사실 그것 말고도 이미 오랜 기간 '동생의 분유를 몰래 퍼먹음'이라는 경범죄를 저질러왔음에도 불구, 그 나쁜 버릇을 끊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 더해 또 다른 '장기 경범죄'의 시작을 이끈 '내겐 너무나도 매력적인 맛'을 가진 건강보조식품이었던 '원기소'의 원료로 쓰여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렇게 실로 효모는 오랜 기간 각종 발효를 돕는 조력자 역할뿐 아니라 우리에게 그 자체로도 값싼 지방과 단백질의 공급원으로써의 중요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근데 뭔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나






나는 '키친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다.






무언가 규정짓거나 쉽사리 '이것은 이것이다.' 라며 정의를 내려버리는 것을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으나 언젠가 매스컴에서 관련 기사를 떠들어 대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어 찾아보니 '키친 드렁커(kitchen drunker)'라는 용어가 있긴 하던데 소개를 좀 해보자면 그 단어는 대충 '중년 여성 중 스트레스를 풀려고 혹은 자식을 출가시킨 뒤 상실감을 해소하려고 부엌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 습관적으로 마시게 되는 사람' 정도의 정의를 가지고 있었다






음... 나와 그 단어 간에 연결고리를 좀 찾아보자면...

나는 '중년 여성'이긴 하지만 자식을 출가시키진 않았고 다행히 아드님이 세상에서 젤 예쁠 리가 '절대' 없는 엄마를 아직도 젤 예쁘다고 해주시고(아마도 립서비스계의 최준) 또 아직도 엄마에게 뽀뽀를 마구 날려주시는 등 세상 스위트하셔서 '자식으로 인한 상실감'은 제로에 가까우니 일단 그 부분은 해당이 안 된다고 볼 수 있겠다.





...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의 목적' 즉 '힘든 하루를 달콤한 술 한 잔으로 스무드하게 마감용'... 이 표현은 어느 정도는 맞다고 본다.





그리고 세 번째로 '부엌에서 마신다....' 이 항목에 관해 생각을 좀 해보자면... 사실 나는 내가 혼자 뭘 먹자고 식탁이나 어디에 차려 본 적이 거의 없고 심지어 내겐 아직도 그런 것이 세상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 혼자 먹자고 어디로 음식을 가져가서 주욱 차렸다가 또다시 걷어서 싱크대로 가져오고 그릇이며 벌여놨던 곳은 또 닦아야 하고...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태산인 내게 그런 상차림은 생각만 해도 귀찮다. 그냥 필요하면 그릇을 싱크대 상부장에서 바로 꺼내고 불도 바로 쓸 수 있고 물도 바로 쓸 수 있고 게다가 나의 최애 프로인 '편스토랑'이나 'EBS건축 탐구 <집>' 등의 티브이 프로그램도 볼 수 있는 자그마한 '키친 TV'도 있고... 그래서 난 싱크대 위에서 먹는 것이 제일 편하다.






다시 말해, 난 부엌이 아닌 곳에서 술을 마실 일이 집에 손님이나 오면 모를까 거의 없으니 부엌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해당하나 딱히 그게 왜 나쁜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음주 관련 전문가님들의 말씀은 "얘들아~~ 엄마 술 마신다~~~~" 하면서 시간을 친히 따로 내 가지고 거실 한복판에 술상을 제대로 펴고 음주를 시작해야 올바른 음주법이란 것인지... (저 정의 내리신 전문가분이 우리 집에 정기적으로 오시는 육아와 집안일 담당 도우미 분들을 보내주시면 나도 주방이 아닌 거실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깔고 우아하게 주류를 음미한 후 절대 아무것도 치우지 않고 몸만 쏙 빠져나가 잠자리에 들어보고 싶다) 무튼 난 여기엔 해당하는 걸로






다음!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 이 항목에 대해선 음 약간 애매한 게 일단 나랑 남편은 식단이 완전히 르다. 따라서 평소 나는 남편과 아이의 식사는 식탁에 차려주고 나는 그 식사 준비 중간 및 또 그들의 식사가 시작되면 식사 서포트 중간중간에 싱크대 위에 차려진 나의 식사인 풀떼기들과 과일, 견과류 등을 오며 가며 주워 먹으면서 목이 마르면 주스도 마셨다가 막걸리도 마셨다가 어느 날 기분이 달콤한 것이 댕긴다 하는 날이면 모스카토 와인도 가끔 마셨다가 그러다 남편이 오늘 비율이 특히 좋았던지 잘 만들어진 소맥 친구들 같은 것이 있어 권하면 좀 마시기도 하고 또 남편이랑 아들이 다 먹었다며 음식을 남긴 접시를 물리면 남은 음식이 아까우니 (내가 지향하는 바의 음식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안주삼아 또 한 잔 마시기도 하고....






좌우지간 요는 남편이 허리 좀 펴고 다니라고 할 정도로 항상 기동성 탑재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엄마 사람은 집안에 뭔 일이 생기면 항상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니까)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또 내 팔자에 그런 여유가 가능키도 쉽지 않으므로 결국 내게는 '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는 다소 한가하고 팔자가 좋거나 혹은 반대로 뭔가 무진장 사연 있어 보이는 표현보다는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은 무지 많고 시간은 항상 모자라니 부엌에서 뭔가 번잡스럽게 움직이며 부엌일을 하는 그 중간중간에 알코올을 적절히 <수혈>한다.' 정도가 맞다고 수 있겠다.






그럼 여기서 질문. '키친 드렁커'에 관한 전문가님들의 정의를 보면 그 저변에 이른바 '혼술'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만일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그렇게나 부정적인 모습이라면 술이 한 잔 하고 싶은데 집에 남편이 없을 때 엄마는 혼술이 나쁜 거니까 같이 마실 친구들을 집안에 저녁에 불러들인다거나(낮부터 마시긴 좀 그러니까) 아니면 반대로 "엄마 오늘 술을 좀 마시려고 하는데 전문가가 혼자 마시면 알코올 중독 이랬으니까 엄마 꼭 다른 사람과 함께 마셔야 해서 밖에 나가 술 좀 마시고 올게" 하고 나가야만 옳은 것인가...





그럼 내 애는 대체 누가 봐주나 아니 애가 초등 고학년 등 좀 커서 특별히 돌봄의 잠깐 공백은 큰 문제가 되는 나이가 아니라 해도 밤에 엄마가 혼술은 절대 안 되니 동반 음주를 하라고 해서 한 외출이 아이들에게 키친에서 혼술을 한 엄마의 모습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물론 밥만 조금 이쁘게 먹고 우아하게 커피나 디저트를 조금 즐긴 후 얌전히 설거지를 마친 다음에 아름다운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고 아이들과 베드타임 스토리를 읽으면서 분위기 있게 잠들 수 있었으면 나도 너무 좋겠으나 내 안엔 하루 동안 쌓인 여러 가지 감정의 찌꺼기들을 정리해 내게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말 그대로 '나를 다독여 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혹 누군가 "애엄마가 애만 보면 힘들어도 피로가 다 풀리는 것 아냐? 아니 무슨 엄마가 스트레스를 술로 풀어? 커피나 다른 것으로 풀면 되지. 그렇게 말씀을 하신다면 물론 그런 것들로도 풀지만 언제나 그것으로만 풀리지는 않는 못난 군상이라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실 우리나라라는 사회가 일로 회식이 있는 것도 아닌 전업주부가 밤에 술을 마신다고 외출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인지도 나는 묻고 싶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들은 다 동감하겠지만) 다수의 엄마들은 안 마시면 안 마셨지 타인들과 음주를 위해 밤에 아이를 집에 놓고 혹은 아이가 없더라도 그렇게 쉽게 음주만을 위한 밤 외출을 선택하진 못한다. 고로 위에 정의 내리신 분께 혼자 부엌에서 먹는 것이 정말 그렇게 심각하게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정말 진지하게 여쭈어보고 싶다. 답 좀 주시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습관적으로 마신다'???

음... 나는 몸이 모지리인지 언제부턴가 음식이 몸속에 들어가면 머리가 그때부터 빠릿빠릿하게 안 돌아가고 급 둔해지게 되었다. 누군가는 소화하는데 혈액이 다 몰려서 그렇다고 하던데 내가 관련 분야 전문가가 아니니 잘은 모르겠지만 무튼 그래서 어느샌가부터 수업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등의 예민한 정신상태를 요구하는 작업 중에는 식사 때가 되어도 밥을 먹기보다는 정 배가 고프면 과일을 조금 먹는 것으로 허기를 달래고 식사는 되도록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고 하루 할 일을 대충 마쳐 더 이상 예민하고 기민한 정신상태를 요하지 않고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등 정신적으로 루즈함이 허락되는 저녁시간에만 밥을 먹게 되었다.(대신 그 양이 좀 많아 남편이 "또 먹어?", "또 먹어?"를 좌우지간 몇 번을 물어보곤 한다 -"그래! 또 먹는다)





따라서 몸 컨디션만 받쳐준다면 "저녁 식사 시간은 내게 식사 시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므로 많이들 아시다시피 일반적으로 종교에서도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이 의식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가톨릭에서는 포도주가 예수 피의 상징이라 하여 세례에 쓰이기도 하며 또 구약 성서에서는 하느님이 노아에게 포도주의 제조 방법을 전수했다고 하는 등 예부터 술은 알코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일종의 <신성神聖의 경지>에서 플레이하던 존재였으므로(잘도 갖다 붙인다) 나의 하루를 마감하는 말 그대로 '신성'한 저녁 식사 시간의 시작은 되도록 맑은술과 함께 함을 지향하고 있다."라는 멘트로 대답을 갈음하겠다.(원래 '막걸리'나 '소주'를 자주 즐기면 '알코올 중독'이고 같은 술이라도 '와인'을 자주 즐기면 '와인 애호가'인 법이다)






그래서 결론은 내가 '키친드렁커'인 게 뭐 문제가 있냐는 거다. 술 마시고 집안일을 안 해서 집안이 엉망이라거나 육아를 소홀히 한다거나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퇴근한 남편의 식사를 챙기지 않는다거나(맞벌이는 시간 되는 사람이 챙기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먹는 것이 대체 뭐가 문제냐는 거다(난 아주 가끔 음주로 잠이 물밀듯이 밀려오거나 컨디션이 최악인 날이어도 설거지를 비롯, 집안은 싹 치우고 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물론 개인의 정신 건강이 걱정되어서 부정적 의견을 내신다고 한다면 나는 '비만은 의지박약이 아닌 정신질환'이라고 했던 어느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전문가 선생님'의 의견을 예로 들고 싶다.







그 전문가에 따르면 보통 '비만 치료' 하면 살을 빼기 위한 적절한 운동을 처방하고 식이를 제한하는 등의 과정을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비만은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과거 상처나 트라우마가 치료되지 않는 부분을 먹는 행위를 통해 해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자의 '의지박약'등을 비난하거나 무조건적인 식이제한을 종용할 것이 아니라 결국 비만 치료는 '정신적 치유'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거기에 100% 동의한다. 알코올 의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게 키친에서 먹든 거실에서 먹든 자주 쓸쓸히 술 마시는 모습이 목격된다면 그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바쁜 와중에 내일 출근을 하거나 일이 있으니까 친구들과 만나 뭔가 거하게 마시진 못하더라도 회사에서 퇴근해서든 육아 퇴근을 해서든 혼자 시원한 맥주 한잔 정도를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 및 여유 있게 그날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게 그렇게 큰 '의존'이나 '중독' 일까






음 또 다른 측면에서도 생각을 해보자면 아빠 사람에 있어서의 그런 형태의 하루 마감과 엄마 사람에게 있어서의 그런 형태의 하루 마감을 바라보는 세인들의 시선이나 의학적인 유해정도는 어떻게 다를까 혹 아니면 같은 남자라도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은 사람에게 있어서의 그런 식의 하루 마감과 여자지만 알코올 분해효소가 충만한 사람에게 있어서의 그런 형태의 하루 마감은 어떻게 다르게 바라봐야 할까 이렇게 제각기 다른 수많은 케이스의 음주 형태를 정확하게 진단할 범세계적인 공신력을 가진 체크 리스트가 존재하긴 할까 혹 있다고 한다면 그 체크 리스트가 가진 이른바 '공신력의 신빙성' 은 또 누가 개런티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그 사람의 상황이나 처한 상태에 대한 진단이나 관심이 우선이지 단순히 음주의 양과 횟수 또는 음주장소나 환경으로 개개인의 알코올 의존도를 측정하기엔 내 생각엔 다소 아니 많이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각종 매체들에서 개재해놓은 키친드렁커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마치 심각한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 인 것 모양 심각하게 써놓은 기사들이 많았는데 (물론 그 전문가들의 직업 자체가 특정 신드롬들에 대해 선제적으로 위험요소를 감지하고 의도적으로 다소 농도가 짙은 경고를 발표함으로써 어떤 종류의 유행이나 현상이 부정적 기류를 타고 결국 개인적으로든 국가 전반이든 큰 손해를 끼치는 상태까지는 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주 임무 임은 나도 알고 있다 ) 그러나 난 여전히 이런 기사들 매체들의 일종의 '선동(?)'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선동'이라는 단어가 다소 불편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사실 미디어 등 소위 공신력 있는 매체 등에 그간 신뢰도가 실제 강했던 내게는 살다 보니 안타깝게도 그런 기사 등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나 신뢰가 실제 불안감만 가중시킬 뿐 결국 나의 상황들을 호전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그런 기사들의 예를 들어 오늘은 '이것이 어떤 증상에 좋다' 고 했다가 다음엔 '이런 증상은 이런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으니 그런 상황엔 이러이러한 대처를 하는 게 좋다'라고 했다가 또 언젠가는 또 다른 의견을 발표했는데 결국 읽다 보면 특정 약품 광고이기도 하는 등 소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으로 만들어진, 또 결국 특정인의 이익 추구를 위해 발간되고 운영되는 크고 작은 매체들에서 생산해내는 무수한 의견들의 정확도는 다 결국 소위 '케바케(case by case) 일 뿐 범 세계 혹은 범 국민적으로 적용되는 체크 리스트는 애초에 존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여러 일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그런 리스트니 소위 전문가의 의견 등에 우리가 크게 좌지우지되기보다는 의견은 의견 일뿐 말 그대로 내게 전적으로 커스터마이즈드된 진단은 아니므로 그보다는 일단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니 정신적으로는 개인적인 명상의 시간 등을 통해 내게 일어나는 특정 증상의 자체 원인 규명의 시간을 고요히 가지면서 나의 지친 마음을 읽어주고 동시에 육체적으로는 요가 등을 통해 내 몸에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여러 증상들을 파악하고 완화해줌으로써 내가 내 몸이 내게 하는 소리들을 먼저 들어주는 것이 (환자의 정신 건강을 책임지는 정신과 의사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내장질환 전문 의사가 내장질환으로 안타까운 결말을 맞는 일들도 일어나는 지금 그들도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할 수 없으므로) 이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중병에 걸렸다면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아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적으로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타인에게 나의 상태 진단을 의뢰하기보다 일단 내가 내 맘속에서 내게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즉, 맨날 신문 등 각종 매체들에서 무슨 체크리스트니 뭐니 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 마시면 알코올 중독이다. 몇 잔 이상이면 심각한 상태이다." 라며 겁을 잔뜩 주지만 사실 '두세 번의 음주'라고 해도 각 음주 시 음주량이나 누구와 먹고 무엇을 안주로 먹었는지 혹은 당시 음주자의 스트레스의 정도나 평소 건강 정도 등등에 따라 그날 음주가 각 개인에게 미치는 정도는 다 다를 것이므로 그런 획일적인 기준으로 나의 알코올 라이프를 진단해 건강을 자만하거나 반대로 소위 바람직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누구는 백화점 쇼핑으로 풀고 누구는 홈쇼핑으로 풀고 누구는 식구들한테 버럭 성질을 내는 것으로 풀고 누구는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 특정 상대에 관한 욕을 바가지로 하는 것으로 풀고 누구는 클럽에서 춤을 미친 듯이 추면서 풀기도 하고 또 누구는 글을 써서 풀기도 하고 누구는 노래를 불러서 풀기도 하고 누구는 해외로 무작정 여행을 나가버리기도 하고...







우리는 우리네 다양한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가지고 있고 그중에서 전업주부에게 가장 손쉽고 저렴하게 즉, 가성비 갑인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가 부엌에서 혼자 술 마시기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애들은 울고 집안에 할 일은 태산인데 남편은 일한다고 바쁘고.... 대체 엄마는 어딜 나가서 뭘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어야 여기저기서 책잡히지 않고 용인될 수 있었던 건지... 그저 집안에서 종일 일하다 저녁에 애들이 잠들면 부엌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푸는 것이 회사 끝나고 회식하며 푸는 직장인들의 음주 형태에 비해 그렇게 크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왜 회사 끝나고 회식하는 직장인들의 알코올 의존도에 관한 기사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부엌에서 술 마시는 엄마들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는 넘쳐나는 건지...






백번 양보해 전문가분들께서 상대적으로 알코올에 취약한 연약하고 가녀린 여성분들의 건강이 염려되어 나온 기사라면 그보다는 "이런 모습을 가진 엄마나 와이프에게는 이런 슬픔이 있거나 이런 부분에서 힘듦을 혼자 삭이고 있으니 이런 식으로 손을 내밀어 주세요."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좀 내주시면 안 될까..... "부엌에서 술 먹는 당신 엄마나 부인 알코올 중독이 의심된다" 이런 식 자극적인 타이틀을 단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점철된 기사 말고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디오니소스 축제'라고 국가에서 주최하는 이른바 '술파티' 문화가 있었다. 디오니소스(dionysus)는 로마 신화에서는 바커스(Bacchus)라고도 하며 술과 다산을 상징하는 신으로 한마디로 나라에서 "이 기간에는 술 마시고 즐기며 노십시오." 하고 권하고 지원해주는 파티였다.






합창과 무용 연극이나 가장행렬 등으로 이루어진 이 축제는

대략 일주일 정도 진행됐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나라에서 술 먹고 노는 파티를 열어준다니 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과거 거대 제국을 통치했던 나라의 지도자들은 인간의 욕구들은 누른다고 눌러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 제국을 오랫동안 통치한 왕들일수록 각 식민지 고유의 특성을 존중해주고 한나라를 오랜 기간 통치한 왕일 수록 백성들 개개인의 기본 욕구 해소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 제의 기능이 단순히 백성들의 원초적 욕구 해소의 통로로만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1년에 4번 열렸던 것으로 알려진 이 축제는 봄과 겨울에 열린 연극의 주제가 달랐는데 각각 비극과 희극으로 발전되어 훗날 서양 연극 장르의 기본 형태를 이루었으며 또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치는 합창 찬가인 디티람브(dithyramb)는 그리스 연극으로 발전하게 되고 각종 경연을 통해 여러 유명 시인들을 탄생시키는 등 특히 예술계 발전에 여러 순 기능도 많이 낳았다.






대게 평범한 시민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많은 부침을 겪지만 그러나 그 부침들 속에서도 나 혼자가 아니라 자식도 있고 가정도 있는터라 어떻게든 그들과 함께 잘 살아나가기 위하여 각종 책도 읽고 강연도 듣는 등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들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건설적인 방법으로 본인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려고 하지 않는 것은 맞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며 사람들이 과거보다 좀 더 심리건강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따라서 각종 매체들에서도 심리건강증진에 도움을 주는 각종 서적 발행이나 프로그램들 신설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언론들에서 연일 발표하는 이제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대거 쏟아져 나오는 여러 가지 이른바 '나의 삶을 규정짓거나 평가하는 수많은 잣대' 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과연 그 잣대들을 제작 의도 그대로 '우리 삶 개선의 효과적인 방편'으로 잘 쓰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한 번 살아보고자 나라는 사람의 삶을 그 잣대들에 오롯이 대입해보고 진단이란 것을 시도할 때 사실 대체 누가 언제 어떤 루트로 얻은 또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가진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는지도 혹은 설사 신빙성 있는 자료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코로나를 경험하며 단 6개월 아니 길어야 일 년 여 만에 완전히 달라진 딴 세상에서 살고 있듯 그 체크 리스트를 만들 당시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를 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과연 그런 소위 체크리스트들이 이제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도를 줄 수 있는지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고로 아무리 공신력 있는 매체들에서 개재한 기사들에서 내놓는 체크리스트들이나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의견일 뿐, 특정인들이 만든 특정 잣대들에 그들과 같지 않은 또 다른 자아인 내가 나를 한 번 끼워 맞춰 보고는 그들이 내린 평가상 안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여 너무도 쉽사리 흔들리거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물론 이런 강단을 가지기 전엔 먼저 나 자신의 정서적 올바름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이 전제되어야 혹시 남을 수 있는 찜찜한 느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너무 오래되어 생각은 잘 안 나는데 나름 공부 좀 하는 학생이었던 나는 그때도 지구과학 시험을 보기 위해서 태양계를 좌우지간 열심히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인가를 달달 외워서 시험을 봤었다. 그런데 당시 지구과학을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는 딴에는 열심히 가르치신다고 수업시간에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렇게 외우는 방법까지 알려주시면서 태양계 행성들을 외우게 시키셨는데 일부 공부에 흥미가 없던 학생들이 선생님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 마지막 행성인 명왕성을 빼먹는 등 틀린 답을 써내 시험이 끝나고 지구과학 시간에 그 문제를 틀린 학생 다 나오라고 해서 교복 치마를 펄럭이며 칠판 앞에서 단체로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외우는 법 까지 알려줬는데 그것도 못쓰냐며 교복 치마를 펄럭이며 엉덩이를 단체로 맞았었는데 어이없는 일은 그 후로 대략 십수 년 후에 일어난다.






2006년 8월, 어느 더운 여름날 맥주로 더위를 식히며 뉴스를 보고 있는데 국제 천문 연맹(IAU)에서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라고 발표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이었다. 별생각 없이 멍하게 티브이를 보던 나는 티브이 앞으로 바짝 붙어 앉아 이게 대체 뭔 소린가 하고 볼륨을 높였다.





이유를 들어보니 크기가 달만 하다고 생각되었던 명왕성이 사실은 달 크기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았고 다른 행성들은 거의 원에 가까운 궤도로 태양 주위를 도는데, 명왕성은 길쭉한 타원 모양의 궤도를 가지고 있으며 또 다른 위성들은 행성을 중심으로 원에 가까운 모양으로 행성 주위를 도는데, 명왕성의 위성인 카론과 명왕성은 서로의 주위를 돌고 있고, 결정적으로 같은 벨트 내에서 명왕성보다 큰 천체가 발견되면서 명왕성의 지위는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명왕성을 '왜소 행성'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결국 국제 천문 연맹은 2008년 6월에 열린 회의에서 명왕성과 에리스(제나의 정식 이름)를 새로운 천체 부류인 '플루토이드'로 분류하기로 결정, 태양계의 행성은 명왕성을 뺀 여덟 개로 줄게 된다)






아니 이게 뭔 소린가 그놈의 명왕성 때문에 우리 반 친구들 십여 명의 엉덩이가 멍들고 반애들 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었는데 이제와 걔들이 맞다니... 지구과학 선생님께서 아무리 주장하시고 강조하셨어도 우리 맘 속에 명왕성은 영원히 행성이 아니라던 그녀들이 맞았다는 것이 십수 년 후에 드디어 밝혀진 것이다. (이거 뭐 억울했던 그녀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과거사 진상위원회라도 꾸려야 하나)






여름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던 내 가슴이 갑자기 턱 막혔다.

"아 짜증 나 뭐냐..."

그 후로도 며칠을 그 일로 짜증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내가 세상을 너무도 몰랐던 것이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그렇기에 일찍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으로 보이는 빅뱅의 지드래곤은 그의 노래 "삐딱하게"에서 말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그렇다 세상은 다 변하고 그게 당연하며 그래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가 아직도 지방에서 서울을 가려고 한여름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한복을 치렁치렁 입고 짚신을 신고는 수일을 걸었어야 했을 것이다. 난 그렇게 살기 싫다. 그래서 변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야만 하는데. 그 여름날 나는 명왕성 뉴스에 왜 그리 화가 났었는지...






근데 사실 며칠 짜증이 좀 났었으나 그날 이후로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그 명왕성 관련 천체학자들을 비롯 세상 그 어느 대단하신 분이라도 실수 유전자는 기본으로 탑재되어있다.






그러나 또한 흥미롭게도 세상의 모든 시도에 의해 나온 그 어떤 실수라도 가치가 '0'인 것은 없는데 많은 사례 중 '뉴튼의 고전역학의 사례'를 잠깐 들어보고자 한다.






사과나무를 보고 발견했다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 '뉴튼의 역학'은 발견 당시 엄청나게 획기적인 것이었으나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의 출연 이후 앞에 '고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물러나면서 새로운 역학들에 최신의 자리를 내주었다.






음... 우리의 학창 시절 물리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것을 소환해 조금만 설명을 해보자면 예를 들어 '입자의 질량은 일정하므로 어떤 시각의 위치와 속도를 정하면 그 뒤의 입자의 운동은 완전히 결정된다'라고 믿었던 '뉴턴의 고전역학'과 달리 '상대성이론'에서는 질량을 일정하다고 보지 않고 운동에 대한 생각도 근본적으로 달랐다.






게다가 그 유명한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로 대표되는 '양자 역학'의 입장에서는, 고전역학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기술하는 것을 공간에 적용하는 것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운동은 '확률론'적으로 밖에 정해지지 않는다면서 고전역학에서와 같은 인과율에 입각한 결정론적 견해에 반기를 드는 등 얼핏 보면 고전역학 이후 나온 상대성원리나 양자역학은 다 고전역학의 전복을 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국은 마치 수학에서 함수나 미적분의 세계 안에는 이미 사칙연산 개념이 디폴트 값으로 깔려 있듯 고전 역학 이후에 만들어진 이론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뉴턴 역학에서 발견한 운동량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고전 역학에서 발견한 개념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는 설명을 할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상대성원리나 양자역학 등의 이론 등을 정립할 때 과학자들이 이미 기존의 뉴턴 역학 등의 원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위로 새로운 개념들을 쌓아가다가 나온 이론들이기 때문이다(이건 마치 계란을 부치는 방법을 알았기에 오므라이스를 만들 수 있었던 원리와 비슷하달까?- 비유가 맘에 안 드셨다면 사과드린다)






무튼 따라서 훗날 앞서 말한 '명왕성의 자격 상실 이슈'는 또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세상은 그저 이 시간에도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변화 여지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세상을 향해 좀 더 여유 있는 시각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절대 , 무척, 많이, 있는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시인이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펴내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시집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말이다. 그때 내가 아이도 어리고 나도 어리고 남편도 어렸던 시절에 좌우지간 여기에 뭘 좀 깨달은 사람 모양 끄적대고 있는 것을 그 당시에 눈곱만큼이라도 알았더라면....






고백을 해보자면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를 우울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 것들 중 하나는 각종 매체들에서 쏟아져 나오던 이른바 공동육아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이제 트렌드가 남자가 밖에서 돈을 벌어오긴 하지만 집에 와서 아기도 같이 키우는 등 공동육아가 대세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남편이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 없는 내겐 슬픈 내 현실을 놀리는 듯한 기사라 난 덕분에 더 우울해졌었다.






얼마 전 소위 재벌과 결혼한 여배우가 과거 육아 프로그램에 나와 "<남편이 너 혼자 애 키우냐>고 했다며 독박 육아의 고충을 얘기하는 등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더니 결국 이혼했다. 당시 육아 전문가가 심히 우려하면서 언젠가는 터진다고 하더니 결국 터질게 터졌다"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기사의 댓글에 '독박 육아는 힘들고 독박 벌이는 안 힘드냐'라고 써놓은 댓글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 댓글을 보고 나는 한동안 멍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독박 벌이에 대해 남자들이 부당함을 토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왔는데 집에 와서도 또 애기를 보고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면.... 그것도 참 쉽지 않은 얘기다.






실제로 과거 모계 사회였던 적도 있었고 또 지금도 홍콩 등에 가면 여성이 전반적으로 남성들보다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면서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권이 강한 나라들을 종종 볼 수 있는 사회도 존재하기에 우리가 이제는 남자는 나가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독박 육아'에 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나 관심의 대상이 되는 반면 '독박 벌이'에 관해서는 그저 많은 나라에서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댓글은 내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물론 나가서 돈을 버는 것이나 집에서 집안 일과 육아를 담당하는 것 둘 다 힘든 일이다. 나는 집안일 등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박 육아는 육아대로 독박 벌이는 벌이대로 다 각자 애로사항이 있다는 뜻이다.)






무튼 남자든 여자든 성별에 상관없이 각자 돈 벌기에 더 장점을 가진 사람은 돈을 벌고 집안 일과 육아에 더 적성이 맞는 사람이 집안일을 맡고 그럼 될 텐데 사회적으로 만들어 놓은 통념상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 이렇게 구분 지어 놓으니 그렇지 않은 상황일 땐 당사자나 주변인이나 그 부분을 편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선 없던 9시 출근 6시 퇴근제에 맞추어 산업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시간표에 따라 나도 모르게 그게 정석이라 생각하며 우리가 살고 있듯 나도 모르게 우리는 이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쳇바퀴 위를 일단 올려져 있으니 생각 없이 연신 돌기는 하고 있는데 한 번쯤은 잠깐 멈춰 서서 이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이 바퀴를 돌며 집안에서 살면 주인이 밥을 주는 등 배곯을 일은 없겠지만 이게 세상의 다가 아니지 않을까.... 이 작은집을 벗어나면 처음엔 좀 두렵긴 하겠지만 내가 상상도 못 했던 더 큰 세계를 만나 그간 세상의 전부라 생각했던 내가 거했던 공간과 또 즐거움 중 가장 일차원적인 단순 먹이를 통한 즐거움 그 이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거대한 세계를 누리며 살 수 있진 않을까' 하는 등의 생각 말이다.







술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파리에 처음 가서 가장 놀랐던 것이 아침 10시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사람들이 동네 카페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는 거였다. 이건 마치 전날 과음하고 해장하러 해장국집에 갔는데 옆 테이블에서 해장술이라며 아침부터 또다시 술잔을 들이켜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난 여태 45년 살면서 그렇게 '아침부터 와인을 마시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은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백번 양보해 내가 본 그 사람처럼 아침부터 와인을 들이켜는 프랑스인은 많지 않고 따라서 내가 일종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한다 치자 그럼 점심을 하연서 와인을 곁들이는 수많은 프랑스인들은 어쩔 것인가 이것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일갈해 버릴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으며 술을 곁들였다고 해도 같은 평가를 받을 것인가





이렇게 맨날 연일 신문 헬스란을 장식하는 알코올 중독 리스트니 그런 소위 공신력 있다는 리스트나 전문가에게 묻지 않아도 이건 누가 봐도 빼박 알코올 중독들인데 사람들은 그들을 알코올 중독이라고 낙인찍기는커녕 미식의 나라라며 그들의 식문화를 동경하고 "전통주 소믈리에" 등 그들의 음식에 와인을 페어링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호칭을 가져와 우리의 전통주 전문가를 소위 있어 보이게 지칭하는 용어에 사용하기도 하는 등 그들의 식문화를 보다 선진 문화로 인식한다.





"그것은 프랑스인들이 워낙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따라서 그 정도의 음주는 그들 몸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만든 리스트를 잣대로 그들 알코올 의존도가 심각한 상태라고 말할 수 없다 각자 나라마다 상황이나 신체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런 마인드를 프랑스 식문화 등 소위 '특정분야의 선진문화 옹호'에만 쓰지 말고 우리 사회 전반에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에게는 잘 익은 김치 냄새가 입에 군침을 돌게 하지만 서양인들에겐 참기 힘든 냄새이고 같은 동양인이라도 중국의 취두부가 우리에겐 여전히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이다. 이렇듯 나라마다 지역마다 또 개개인마다 각자 다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존중하고 가능하다면 비판 없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소위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스탠스가 아닐까






앞서 언젠가 말했듯 나는 세상 엄마들이 엄마들마다 다 다른 교육관을 가진 것처럼 각자 다 각기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를 가졌으므로 우리가 우리와 다른 심지어 같은 이슈에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문화가 있더라도 앞서 강조했듯이 그 문화 형성에 우리가 전적으로 '재정을 지원해 크게 이바지한 바'가 없다면 난 절대 왈가왈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프랑스 와인 산업에 고려, 조선 등 역대 우리나라 그 어떤 왕조에서도 돈을 대줬다는 기록이 없으니 그들이 식전 댓바람부터 술을 마시던 와인을 심지어 술이 아니라고 하든 말든 우리가 상관해서는 안된단 얘기다.






탈무드에 보면 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심고 있을 때 악마가 찾아와 포도주의 진귀함에 대해 듣고는 자신도 포도재배에 참여의사를 밝히며 양, 사자, 원숭이, 돼지 등의 피를 거름으로 주면서 포도주가 처음으로 세상에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술은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며 거기에서 좀 더 마시게 되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를 부르다가, 거기에서 좀 더 마시면 결국 토하고 뒹굴고 하면서 돼지처럼 추해진다." 고 말하며 술을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술을 마실 때 처음엔 양처럼 온순해졌다가 그다음엔 사자처럼 사나워졌다가 더 마시면 또다시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등 변화무쌍한 주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유해 지거나 말이 많아지는 등 에너지가 업되었다가 나 같은 사람은 별일 없는 날에는 그저 잠이 들거나 슬픈 일이 있는 날이면 울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감정이 격해져서 싸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술이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존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술은 마법의 약 같다. (그래서 그렇게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교의식 등에 술이 꼭 빠지지 않았던 것인지도)





‘Odd Fish!’





직역하면 ‘기묘한 물고기’라는 뜻으로 오늘날 실생활에서는 ‘똑똑한 사람’ 또는 ‘네가 맞다’는 의미로 쓰이는 이 단어는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제3대 왕이었던 찰스 2세가 당대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항에 살아 있는 붕어를 넣으면 무게의 변화가 거의 없지만 죽은 붕어를 넣으면 무게가 늘어난다." 다소 황당한 주장을 하며 이를 증명하라는 주문을 했을 당시 특히나 왕권신수설의 신봉자로 알려진 찰스 2세 앞이었기에 과학자들이 더욱 목숨을 걸고 해야만 했던 실험에서 국왕의 주장이 틀렸음이 밝혀지자 찰스 2세가 외쳤던 말이었다.






찰스 2세와 이 다소 엉뚱한 실험을 했던 학자들의 모임은 ‘자연과학 진흥을 위한 런던 왕립학회(Royal Society of London for the Improvement of Natural Knowledge)’로 이 왕립학회의 문장(紋章)에 적힌 라틴어 문구 ‘nullius in verba’는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저명 과학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왕립학회에서 지금까지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만 280여 명이 되는 등 세계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가진 왕립학회에서 왜 다소 생뚱맞게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는 말을 모토로 내세웠을까 그 '누구'에 누구보다도 박학다식한 '그들 자신은 빼고'라는 말은 없는 것에 우리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국은 그 모든 권위에도 '권위'라는 이름 앞에 지 말라는 뜻은 아닐까 그 모든 권위나 공신력도 다 부족한 인간들이 저들끼리 주고받고 했을 뿐






창세기에서 보면 노아에게 하나님이 포도 재배와 포도주 제조를 허락하셨지만 탈무드에는 포도주를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 표현하며 죄악시하고 유대교가 아닌 개신교나 특히 가톨릭에서도 포도주를 미사 등에 사용은 하지만 포도주의 과용은 좋게 보지 않는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일종의 '양날의 검'으로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는 것 아닐까 그 뜻은 또 '영원한 참도 또 영원한 거짓도 없다'는 말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현세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규명이 가능하다고 전 세계에서 신뢰를 부여한 단체인 '영국 왕립학회'의 모토가 그저 " nullius in verba(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인 것 일지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던가.... 영화로도 제작됐던 불교 경전 '화엄경'의 중심사상처럼 '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생각했던 모든 나를 괴롭혔던 것들의 실상이 사실은 내 안에 있었을 수도' 있다.







고로 내가 힘든 것은 남편이나 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거나 혹 내가 어디가 고장 난 것 같으면 나보다 관련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더 많이 알 것 같은 전문가에게 무작정 쪼르르 달려가는 등 내 안의 모든 문제를 타인에게서 답을 찾기보다는(물론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일단 그전에 지금 아픈 나와,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나와 앞서 말했듯 명상의 시간을 가지든 맑은술 한 잔을 따라놓고 침잠의 시간을 가지든 내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을 고요히 직면하며 나부터 좀 내 얘기를 일단 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이 어디 딱히 호소할 데 없는 그리고 얘기해봐야 어차피 해결해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인 나의 얘기를 말이다.






나는 뭐 그럴 때 막걸리가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곤 했었는데 내가 막걸리 사업자 연합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특별히 막걸리를 추천하는 건 아니니 그저 무엇이 되었든 누가 혼자 술 마신다고 욕을 하든지 말든지 저들이 술을 사준 것도 아니니까 절대 신경 쓰지 말고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을 내 방식대로 가지자는 이야기가 너무너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