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누나 같은 든든한 성격이 좋아 결혼했던 내가 돈 관리 면에선 어린애 수준을 면치 못했던 것이 언제나, 늘 불만이었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도록 늘 신경 써주시는 부모님 덕에 크게 위기 대처나 저축의 필요성은 못 느끼고 자랐던 나는 저축과는 영 거리가 멀었고 재테크에도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저 남편이 주는 생활비 안에서 최대한 좋은 환경을 아이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전시, 좋은 경험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언제 또 경험할지 장담 못하는 것들은 아이에게 최대한 경험시켜주려 노력했고 지금 당장 이 돈을 안 쓰고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이자가 얼마 나오지도 않는 은행에 넣어놓고 "불어나라~불어나라~." 하면서 주구장창주문을 외우 고만 싶지는 않았다.물론 펀드도 있고 주식도 있고 하려고만 하면야 여러 루트가 있었겠지만 주변에 주식 펀드로 물 먹은 지인을 몇 보고는 그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같은 돈으로 마치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지금 당장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작은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 (실제로 지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알만한 '토스 TOSS'나 '배달의 민족', ' 당근 마켓' 등은 이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 '알토스 벤쳐스'의 초기 투자로 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처음엔 작고 보잘것없는 회사였지만 그간 본 적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지금은 자타공인 엄청난 성취를 이룬 회사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회사도 투자자도 윈윈 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듯 나는 아이를 그저 밥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학교 보내고 성적 관리하고....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이상적인' (자, 이 부분에서 '이상적'이라는 표현은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이다. 각 엄마들마다 충분히 '이상적인'의 정의가 다를 수 있고 나는 10000% 존중하는 바이다.)아이로 키우기 위한 거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비장한 자세로 임했다.
자 그럼 잠깐 옆으로 세서... 그렇게 처음엔 미미하고 보잘것없던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앞서 예로 들었던 '알토스 벤쳐스' 에선 과연 어떤 지원을 했을까(내가 너무 좋아하는 회사라 부연 설명을 해본다. 혹 TMI라고 생각되시면 스킵하시라)
일단 내가 애정 하는 회사 '알토스'의 그간 성과에 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알토스벤처스'는 2020년 말부터 올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투자자 중에 하나로 우리가 코로나 시국으로 더욱 하루가 멀다 하고 이용하고 있는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을 40억 달러 규모로 2019년 말에 매각 성사시켰던 회사다.
올해 초에는 매스컴을 연일 달구었던 쿠팡의 600억 달러 규모 뉴욕 증시 상장에도 알투스가 있었고 특히 우리 아들이 애정 하는 게임이었던 '로블록스(ROBLOX)'의 380억 달러 규모 뉴욕 증시 상장, 또 국내 기업으로 이용자 중 글로벌 이용자 비중이 99퍼센트를 차지하며 2020년 12 월 앱스토어 소셜 네트워크 기준 세계 60개국에서 매출 Top 10에 이름을 올린 영상 메신저 'Azar'를 개발한 하이퍼 커넥트의 약 2조 원 규모 매각, 그리고 얼마 전 '카카오 커머스'로부터 인적 분할된 '스타일 사업부문'과 합병절차를 마치고 새로운 사명 '카카오스타일'로 공식 출발하게 된 쇼핑 애플리케이션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 닷컴'의 1조 원 규모 매각, 마지막으로 지난 8월 10일, 코스피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9%로 마감하면서 종가 기준 시가총액 22조 1,997억 원, 순위 19위로 출발했던 '배틀그라운드'의 엄마 '크래프톤'까지...
이 모든 회사의 초기 투자자가 '알토스벤처스'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겨난 또 다른 질문, 그럼 이 VC(Venture Capital) 거물 '알토스벤처스'는 과연, 대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회사인가...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알토스벤처스'는 스탠퍼드 MBA 출신인 한국계 Ho Nam과 Han Kim 그리고 나중에 조인한 중국계 Anthony Lee으로 구성된 벤처캐피털 Venture Capital이다.
1995년 가을 스탠퍼드의 Jin Wang 교수를 통해서 VC 투자를 하고 싶다는 투자자의 연락을 Han Kim이 받아 VC경험이 있던 Ho Nam과 같이 사업계획서를 쓰게 되면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알토스'는 수많은 투자 실패와 자금조달의 어려움과 성과를 내기까지 기약 없는 인내의 시간을 가지는 등 갖가지 시행착오들을 거치며 지금의 멋진 투자 포트폴리오를 가지게 된다.
특히 '알토스'는 창업자들에게 굉장히 집중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들은 이 또한 초기의 투자 실패 사례에서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알토스' 초기에는(타 VC들처럼) 미래에 성장 전망이 좋은 비즈니스들을 선택해서, 그 회사들에 투자하고, 이후 전통적인 더 큰 VC(Venture Capital) 들로부터 투자를 끌어와 '더 좋은 경영진을 투입(혹은 교체)'한 후 Investment Banker들을 데려와서 상장시키면 좋은 투자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 결과, 초기 투자 건들은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이후부터는 ' 알토스'의 사전에 특히 '창업자 교체'는 아예 없는 단어가 되었으며 차라리 발굴 처음부터 회사를 상장과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뛰어난 '창업자'를 찾는데 주안점을 두기로 방향을 전환, 지금 우리가 책이나 강연으로도 많이 접했던 '배달의민족(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를 비롯, 주옥같은 창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물론 배달앱들의 입점 업체들에 대한 갑질, 수수료 인상 문제 등 사업이 진행되면서 일부 부정적인 의견들도 감지되었으나 여기에선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를 거의 무자본 상태에서 시작해 거대 유니콘 기업으로 키워낸 업적 부분에 초점을 맞추겠다.)
또 한 가지 '알토스'가 꼽는 투자의 기본자세로 그들은 '인내'를 꼽는다. 앞서 말한 우리 아들이 애정 하'던' 게임인 (이젠 중학생이시라 '로블록스'를 떠나셨다) '로블록스'의 경우 시작은 가상세계에서 다양한 플레이를 하는 미국 초등생들의 게임이었으나 이제는 구찌 등 명품 브랜드들에서조차 로블록스 내 가상공간을 만들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치솟은 메타버스 대장주로 성장해 어느덧 '알토스벤처스' 펀드들이 보유하고 있는 '로블록스'의 지분 가치가 7~8조 원 수준이 되었고, 이는 '로블록스'의 창업자보다도 지분율이 높다.
이런 '로블록스'와 '알토스'의 인연은 2008년에 최초로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150만 달러를 시작으로 그 이후 추가로 약 4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현재에 이르렀으며, '알토스'는 이제 '로블록스'의 최대주주가 되었고 그 투자 지분이 현재 80억 달러 수준의 가치가 되었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알토스벤처스'의 창업자 관리에 대해 첨언을 좀 하자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사실 지금은 유니콘 기업이 된 많은 스타트업들이 초기엔 정말 단 한 업체도 예외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난을 고질적으로 겪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 좋은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현실화시키기까지는 사실 '매 순간 매 초'가 다 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무실에 앉아 심지어 밥도 안 먹고 그저 숨만 쉬며 일만 해도 일단 사무실 임대료 및 관리비가 다달이 나가기 때문에 이른바 "숨만 쉬어도 다 돈이다."가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이런 이유들로 요즘 공유 주방, 공유 오피스 등의 공유 경제가 붐을 일으킨 면도 적잖이 있다고 본다.아니 팔 할이 그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초기 투자 비용과 연이은 고정 비용의 압박 등으로 아마 모르긴 몰라도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져 가는 찬란한 아이디어들이 아마 한해에도 수백 개는 되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토스'의 이승건 대표도 안정적인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관두고 창업의 세계로 뛰어들어 8번 만에 창업을 성공한 케이스라고 하는 인터뷰를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내 일도 아닌데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순간 감정 이입이 되어 이젠 뭐 별 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달관한 듯한 표정으로 툭 던지는 듯이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이젠 굳은살로 딴딴해진 그의 심장이 보였다.
그 안정적인 직업을 뒤로하고 이 험난한 창업의 바다를 헤엄쳐 오면서 그는 어떻게 정신줄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여정에서의 애로점 중 팔 할은 나를 지켜보는 주변 지인들의 불안한 눈빛이지않았을까
일단 실패하면 내가 무지 힘들 테니까 나를 사랑해서든 못 믿어서든 무튼 주변 지인들은 좌우지간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반대가 디폴트 값인 경향을 보인다. 난 그것을 여든 넘은 어머니가 오십 넘은 아들에게 차조심하라고 하는 뭐 그런 상황인 것으로 아름답게 받아들이기로 한 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무 코너에 몰릴 때면 폭발해버릴 때가 있다. 세상 모두가 다 나를 못 믿고 못해낼 거라고 해도 너는, 너만큼은 믿어주었으면 했는데 안타깝게도 많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은 말 그대로 '가까운 사람'이기에 안되면 같이 안타깝고 잘되어도 잘되었을 때 내게 알게 모르게 끼칠 영향 (아마 부정적인 면이나 긍정적인면 둘 다 무시 못할 것이다.)때문에 대놓고 지지하지도 대놓고 반대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알토스벤처스'는 실제로 창업자들과 술자리도 자주 같은 등 자주 만나서 비즈니스 관련 주제뿐 아니라 창업자가 일을 진행해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또 함께 고민도 해주는 일종의 '창업자 멘털 관리'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고 한다.
사실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은 업계 사람이 아니므로 나 개인에 대한 애정은 가지고 있으나 그저 내가 뭔가를 토로하니 일방적으로 들어만 줄 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 등을 기대하긴 어렵다. 또한 반대로 업계 사람이라고 하면 당연히 동종업계 사람이니까 대화도 되고 서로의 의견도 나눌 수는 있겠지만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말 그대로 아직은 '스타트업 종사자' 이므로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남다른 insight나 거시적인 안목으로 내게 조언해 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양대 거대 서점에 가면 창업 관련 코너에 책들이 실로 매대마다 넘쳐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책으로 배운 키스는 절대 달콤할 수 없다는 걸.
게다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소스가 있어도 실제로 그것을 발전시켜 현실화하여 세상에 내어 놓고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물의 가치를 대변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현금화"하기 까지는 처음 창업자의 지치지 않는 '캔디 정신' 없이는 그 아무리 날고 기는 아이디어라도 살아남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특히 '알토스벤처스 '의 스타트업 투자에 대한 여러 접근법 중 '창업자 멘털 관리'라는 어쩌면 한국계와 중국계가 함께한( 따라서 Western-based 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개인주의적일 수 있는) Asian-based VC였기에 가능했었을 케어가 지금의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벤처캐피털 '알토스벤처스'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더 이상 돈도 못 벌면서 눈만 높은 쓸모없는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크게 생산적이라 느껴지지 않는(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순전히 내 생각이다. 오해 말길) '저축' 대신 공부를 시작하고(저축을 일원이라도 하고 공부도 했었으면 더 좋겠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제가 그렇게까지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님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또 내 공부도 하면서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서로 힘이 되어 주며 아이도 정말 제대로 키워보자는 나름 내게는 비장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내게 '알토스벤처스' 같은 멘티는 없었다.
"나가서 돈을 벌거면 남편은 놀아도 아무 문제없게 뻑적지근 하게 많이 벌어 오든가, 아니 어차피 넌 까탈스러워서아무데서나 일 못할 거고 따라서 결국 못할 것이 분명하니 집안일 잘하고 애 잘 키우면서 우리 엄마처럼 저축이라도 꼬박꼬박 하라"는 남편 말과는 달리 지금 당장 돈도 안되고 뭐 잘될지 안될지도 모르는공부를 하면서 "무슨 강태공도 아니고 지금 공부를 시작해 나이 80 되어서 일을 시작할 참이냐 다 늙어서 무슨 또 공부를 시작한다고 들어앉아 깨작거리고 있냐 할 거면 진작 할 것이지 너 학비랑 공부를 할 돈은 있냐"는 빈정거림을 견디기를 몇 년, 작게나마 작년 말 대학원 4군데 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줄곧 외로운 싸움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