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전설적인 천재의 불편한 애정사

이혼하기 전에 읽는 책-12

by 계영배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James Smithson)의 기부금으로 1846년 미국 워싱턴DC에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박물관 '스미소니언 박물관The Smithsonian Institution' 은 매달 스미소니언의 과학, 역사, 예술, 대중 문화 및 혁신에 대해 연구 및 전시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스미소니언 매거진Smithsonian Magazine > 을 발행하고 있다.


'The Smithsonian Institution' Image credit: SHUTTERSTOCK



2014년 12 월 5일 이 <스미소니언 매거진Smithsonian Magazine >의 온라인 페이지는 스마트 뉴스란에 "Creep Through Albert Einstein’s Love Letters.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연애편지 속으로 들어가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면서 아인슈타인이 몸담았던 프린스턴 대학에서 역사학자인 Diana Kormos-Buchwald의 지휘로 진행되고 있는 "Princeton University's new Digital Einstein archive"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를 실은 바 있는데 당시 아인슈타인에 관한 이 새로운 디지털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 온라인으로 약 5,000개의 문서를 포함한 아인슈타인의 13권의 논문을 공개하고 있다고 밝힌 이 기사는 특히 많은 문서들 중에서 아인슈타인이 연인과 주고 받았던 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눈길을 끌었다.






아인슈타인의 연인에서 훗날 아내가 되는 Milena Marić과 Einstein 1912. Image credit: ETH Zurich Archives


과학 논문이나 각종 메모 그리고, 동료에게 보내는 편지 등 천재 물리학자가 남긴 수많은 문서들 중에서 '당신의 Albert', '당신의 연인your Sweetheart' 혹은 때로는 "Johonzel(첫번째 아내 밀레바가 아인슈타인에게 붙여준 별명)"이라는 서명과 함께 아인슈타인이 그의 첫번째 아내였던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c'에게 보냈던 편지들은 특히 과학에 관한 열정만큼이나 뜨거웠던 천재물리학자의 아주 내밀한 애정생활을 보여주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렇게 활활 불타오르는 뜨거운 심장을 뽐내었던 천재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여지없이 앞서 언급한 설렘 호르몬 유한 공급 법칙 앞에서는 무릎을 꿇은건지 어쩐건지 그 뜨거웠던 연애기간이 지나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 것으로 알려져 우리에게 진정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고 또 영원한 사랑도 없다."는 말이 만고의 진리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한다.



Albert Einstein Personal Handwritten Letter To his Wife Mileva Maric' 아내에게 보내는 친필서신 @worthpoint.com







그렇다면 과연 특정 분야에서는 가히 신적인 존재였지만 아인슈타인 역시 집에 돌아가서는 그저 한집안의 가장이자 남편 혹은 아버지였을뿐일텐데 그런 자리에서 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역시 다른 전설적인 현자들인 '소크라테스'나 '공자'처럼 사회적으로는 명망이 있으나 집안에선 멍멍이 무시를 당하는 찬밥신세였을까?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오줌병을 붓고 있는 그의 아내 Xanthippe' Image credit: conchapman.wordpress.com








아니면 천재 물리학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진심 큰 그릇을 가진 사람으로, 가정에서도 역시 존경을 받는 그야말로 '퍼펙트 가이', 그자체 였을까





Falk, Lepore & Noe, 2013, Albert Einstein의 대뇌 피질: 미공개 사진에 대한 설명 및 예비 분석, lmage credit: BBC



현재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필라델피아의 뮈터 박물관뿐이다. Evi Numen, 2011, 필라델피아 의대 뮈터 박물관 the Mütter Museum 소장



이제 죽은 후에도 오죽하면 전세계 수많은 곳에서 그의 뇌조각을 가져가 연구할 정도로 전설적인 천재 과학자의 널리 알려진 학문적인 면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의 애정사愛情事 안으로 들어가 과연 애정생활을 영위하는 면에서의 천재물리학자의 모습은 어땠는지 살펴보며 전설적인 천재의 연애는 범인凡人의 그것과 어떻게 달랐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my street urchin

나의 작은 악당







dear Dollie, I don't want to go to bed without answering your dear little letter...a most sweet little letter. Once again, I'm looking forward to seeing my dear Dollie on Sunday. Cheer up and don't worry -- you are my best and dearest sweetheart, come what may"

(Letter 35, second half of May?1901).



"사랑하는 돌리(아인슈타인이 첫번째 부인인 밀레바에게 붙여준 별명), 나는 당신의 달콤하고 소중한 작은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사랑하는 돌리를 일요일에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힘내요.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나의 최고이자 가장 사랑하는 연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오세요."


(35번째 편지 1901년 5월 하순즈음)






"I can't wait until I have you again, my everything, my little so-and-so, my street urchin, my little rascal!"

(Letter 22, 19 September 1900).



"나는 당신을 다시 가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나의 모든 것, 나의 작은 말썽꾸러기, 나의 작고 가여운 떠돌이, 내 작은 악당!"


(22번째 편지, 1900년 9월 19일).







"Oh my! That Johnnie boy! So crazy with desire, While thinking of his Dollie, His pillow catches fire."

(Letter 19, 20 August 1900)


"오 이런!

저 욕망에 미쳐버린 쟈니(밀레바가 아인슈타인에게 붙여준 별명) 보이! 그의 돌리를 생각하느라 그의 베개엔 불이 붙었버렸어요."


(19번째 편지, 1900년 8월 20일)






1996년 11 월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s 에 아인슈타인의 연애편지가 등장했다.






총 149쪽에 달하는 이 문서들은 1898년부터 1903년 사이에 취리히, 밀라노, 샤프하우젠, 베른, 윈터투어등 다양한 장소에서 쓰여진 것들이었는데




아인슈타인-밀레바 마리치의 러브레터를 포함한 아인슈타인 가족 서신과 부부의 초상화. David Cheskin—PA 이미지/게티 이미지
밀레바가 아인슈타인에게 덧신을 만들어주려고 발 사이즈를 요청했지만 그가 그녀의 공부시간을 빼앗을 것을 염려해 거절하다 몇 주 후 보냈다는 아인슈타인의 발 드로잉




첫번째 부인이었던 밀레바 마리치에게 아인슈타인이 썼던 연애편지들을 비롯, 정사각형 과학 메모지, 방정식과 도표가 있는 편지, 혹은 밀레바가 쓴 영어 연습문제나 세르비아어(밀레바가 세르비아인이다)로 쓰여진 밀레바의 친구가 쓴 메모들 그리고 잉크로 발바닥을 그린 드로잉에 심지어 아인슈타인과 밀레바의 결혼소식을 알리는 문서까지 포함되어 있는 등 아인슈타인이 밀레바와 연애하던 시절 나누었던 사랑과 각종 학문적 교류전반을 담고있는 생생한 증거물들로 이루어진 이 문서들은 4살이나 연상이었고 세르비아인에 장애까지 있는 탓에 아인슈타인 부모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히 절절했던 연인이자 동료 과학자로서의 밀레바와 아인슈타인의 사이의 열정적이기 그지없는 사랑을 여과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서로에게 "Doxerl" 또는 "Dollie" 혹은 "Johonzel" 또는 "Johnny"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등 그 누구보다 알콩달콩한 연애를 이어가던 그들은 특히 아인슈타인이 1900년 8월경 밀레바에게 보낸 편지에서의


"When I'm not with you I feel as if I'm not whole...


내가 당신과 함께 있지 않을 때 나는 온전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라던지 1900년 8윌의 편지 내용 중


"How was I able to live alone before, my little everything? Without you I lack self-confidence, passion for work, and enjoyment of life -- in short, without you, my life is no life.


나의 작은 모든 것, 내가 어떻게 혼자 살 수 있겠어요? 당신이 없으면 나는 자신감, 일에 대한 열정, 삶의 즐거움이 없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 삶은 인생이 아닙니다."



에서 볼 수 있듯 전형적인 연상연하커플로서의 찐케미를 보여주었는데 특히 1900년 10 월 편지 내용인



""I'm so lucky to have found you, a creature who is my equal, and who is as strong and independent as I am.


나와 동등하고 나만큼 강하고 독립적인 당신을 발견해서 정말 행운입니다!"




1896년, 그녀가 취리히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만난 해'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c' Image credit: 베르니쉬 역사박물관



에서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1896년 취리히 폴리테크닉 대학 (Zurich Polytechnic Institute)의 학생이었을 때 그가 만난 연구소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는 유일한 여성이었던 누나 밀레바의 걸크러쉬가 4살 연하의 청년 아인슈타인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우리가 수차례 언급했듯 아무리 전설적인 천재과학자로 비범성을 뽐내는 아인슈타인이었다해도 그 역시 한낱 인간에 불과했기에 심지어 부모님의 반대로 한때는 그 안타까운 사랑에 역효과의 기름이 부어지자 더욱 더 젊은 혈기에 활활타서 열과 성의를 다하기도 했으나 결국엔 그 역시 '누구에게나 연애 초기 잠시만 왔다가 볼일이 끝나면 뒤도 보지않고 사라진다는 가차없는 <사랑호르몬 유한성의 법칙>'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청년 아인슈타인 역시 연상의 연인 밀레바와의 관계에서 잠시잠깐 사랑 호르몬들의 영향력하에 놓였던 기간이 지나자 마치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에 대해 180도 달라진 애티튜드를 급장착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가 앞서 입이 마르고 닳도록 언급한 그 유명한 '설렘의 기간'이 끝나던 어느날, (심지어 그녀와 결혼을 해 아이가 둘이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 아인슈타인은 한때 그렇게 죽고 못살겠다던 세르비아 출신 걸크러쉬 누나에게 어처구니없는 문서를 디밀고 만다.






''A. You will see to it

(1) that my clothes and linen are kept in order,
(2) that I am served three regular meals a day in my room.


B. You will renounce all personal relations with me, except when these are required to keep up social appearances.''


And: ''You will expect no affection from me . . . You must leave my bedroom or study at once without protesting when I ask you to.''




A. 당신이 해야 할 일


(1) 내 옷과 아마포가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2) 내 방에서 하루 세 끼의 정규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B. 사회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와의 모든 개인적인 관계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어떤 애정도 기대할 수 없다. . 또한, 내가 원하면, 즉시 내 침실에서 나가거나 군말없이 즉각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1914년 7월, 결국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두 아들까지 낳고 여태 잘 살아온 첫 번째 아내 밀레바 마리치에게 위와 같은 편지를 보내 그가 그녀 곁에 있어주는(?) 대신 그녀가 동의해야 할 위와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전설적인 천재 물리학자의 남다른 인성 클라스'를 보여준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와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와 에두아르드Eduard 두 아들을 가졌으나 에두아르드는 정신분열증으로 후에 사망한다@Leo Baeck Institute








보통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때 우리는 당사자나 곁에서 지켜보는 지인이나 혹은 생판 모르는 제 3 자 라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숨이 가빠지고 콧평수가 넓어지며 가슴이 답답해지고 뒷목이 급 땡기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진심, 정말, 다행스럽게도 여태 사랑호르몬의 매커니즘에 대해 수십장에 걸쳐 공부를 해온 우리들은 절대, 네버 흥분하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잠시 호르몬의 영향을 씨게 받아 '연하의 꿀벌가이'로 변신했을 뿐 아인슈타인은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




이렇게 그 누구보다도 열렬한 연애기간을 거쳤지만 안타깝게도 1903년 결혼 이후 아들 둘을 낳아 기르며 가정을 꾸려나가던 둘은 점점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1912년 아인슈타인이 사촌인 엘사 아인슈타인 로웬탈(Elsa Einstein Lowenthal)과 바람이 나면서 결국 두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Albert Einstein and Elsa Lowenthal. 아인슈타인과 그의 두번째 부인 엘사







한때 연인이자 또 아인슈타인의 각종 획기적인 이론 정립(1905년에 그는 광전 효과, 브라운 운동, 그리고 한 달 후 특수 상대성 이론에 관한 3개의 기본 논문을 발표했다).에 초창기 그 누구보다도 큰 기여를 했던 동료과학자로 가히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던 둘의 결혼생활은 이렇게 아인슈타인이 사촌과 바람이 난 이후 그로인해 신경쇠약에 걸린 밀레바에게 지속적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등 막장으로 치닫게 되는데 결국 노벨상을 타면 밀레바에게 양도하겠다는 약속을 아인슈타인이 해주면서 1919년 그 파란만장하던 관계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애석하게도 아인슈타인 선생은 돈문제에도 깔끔하지 못했는데 약속한대로 노벨상 상금을 밀레바에게 바로 주지않고 그들이 거주하는 스위스의 신탁은행에 예치해놓고는 밀레바가 인출할때마다 자신의 승인이 있어야만 인출을 가능하도록 해놓는 등 인성 뿐 아니라 돈문제에 있어서도 지저분한 면모를 한 껏 자랑하는 등 좌우지간 동급최강의 더티플레이를 선보이신다.







여기까지만 봐도 사실 세계적인 위인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남다른 인성 클라스에 적잖이 놀라게 되는데 이제 다음 장에선 "이 분이 역시 난 분." 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아인슈타인의 또 다른 편지를 살펴보며 결국 전설적인 천재 물리학자로 명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남다른 두뇌만큼이나 또 대단히 남다른 인성을 가져 우리에게 '과연 진정 완벽한 인간이란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다시 한 번 품게 하는 그의 삶 전반에 관해 사뭇 진지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