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reat my wife as an employee whom I cannot fire. I have my own bedroom and avoid being alone with her.''
"나는 아내를 해고할 수 없는 직원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침실이 따로있으며 그녀와 단둘이 있는 것을 피합니다.''
'두번째 부인인 Elsa Einstein과 함께있는 Albert Einstein' Image credit: Wikimedia
1913년 한창 새로운 연인인 엘사와 바람이 나 2년차니 생리학적으로 그맘때쯤 한창 분비중일 사랑호르몬의 감칠맛나는 소금기에 둘 다 흠뻑 염장되어있을 무렵 아인슈타인은 새연인 엘사에게 쓴 편지에 자신의 부인인 밀레바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번째부인 밀레바와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and wife Mileva Maric Image credit: innerchange.com.au.
물론 뭐 새연인이 생겼으니 헤어져달라고 했는데 연애시절 4살 연상의 게다가 걸크러쉬까지 뿜뿜하던 누나가 결혼 후 점점 시간이 갈수록 기존 걸크러쉬의 시크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그저 억척스런 아줌마 근성만 남아
"내 인생에 '이혼'이라는 단어는 없어. 누구 좋으라고 내가 이혼을 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루 이혼만큼은 안해줄거야 아니 못해줘!!!!."
라고 외치며 마치 노망난 노파라도 된 듯 진상을 부렸을 수도 있다.(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사촌과 바람이 난 후 여러번 이혼을 요구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새로운 연인에게 현배우자를 필요 이상으로 비하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거나, 필요하거나, 효과적일까
그런데 가만히 보아하니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 자체가 '매번 새로운 사랑에 빠질때마다 지나친 과몰입으로 상대에게 필요이상의 충성을 맹세해대는 습성'을 지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Pauline Einstein (née Koch)아인슈타인의 어머니 폴린 아인슈타인(1858–1920) Wikipedia
실제로 그는 자신이 어린시절 학교에서의 부적응으로 힘들어하던 시절, 자신을 폄하하고 부정했던 선생님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엄마를 첫번째 결혼 상대였던 밀레바 마리치와의 서신에서 상당히 비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심지어는 '속물philistine'이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엄마와 여동생을 지적능력은 떨어지는데 각종 욕심은 많은 세속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러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힘들기때문에 지적 능력 등 여러모로 그들과는 다른 레벨인 밀레바당신과의 시간을 너무도 그리워한다."는 식의 무리한 전개를 통해 연인을 필요이상으로 신격화하고 과하게 충성을 맹세해서라도 상대를 흡족하게 만들어 결국 상대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안심이되는 다소 유아적인 형태의 연애를 전개해나간다.
게다가 더 문제인건 이 상황이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아인슈타인이 상대가 바뀔때마다 '기존의 연인들을 폄하하는 방법으로 뉴페이스를 상대적으로 높여 그들의 만족을 이끌어내야만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패턴'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저자존감 소유자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연애 상대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진하게 불러재끼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긴 하다.
Albert Einstein lecturing in 1921–Wikimedia
그러나 이렇게 전前연인 혹은 현재 배우자를 인격적으로 심하게 비하하면서까지 새로운 연인에게 충성을 맹세해서 인정을 받아야만 안심이 되는 이러한 양태는 기본적으로 평소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 자신의 평가보다는 자신이 우월하다고 판단한 특정상대의 평가에 더 가치를 두어 그들에게 확실하게 인정을 받아야만 특정 가치가 확보된다고 믿는 등불안정한 자존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대개전형적으로 보이는 특징 중 하나인데 소위 천재물리학자라고 불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아인슈타인이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필자에게 상당히 당혹스러운 부분이었던것이다.
Albert Einstein sailing : with his step-daughter Ilse and her husband Rudolf Kayser일제,그녀의 남편과 아인슈타인
Snapshot of Albert Einstein’s stepdaughter Ilse on a sailboat: 요트에 탄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의붓딸 일제의 스냅샷lbi.org
이렇게 이성과의 관계 부분에서 문제가 있던 아인슈타인은 당연히 두번째 부인인 엘사와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도 모든 일의 진행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실은 엘사Elsa가 아닌 엘사의 큰 딸이던 일제Ilse에게 반해 심지어 Elsa와의 약혼을 중단하고 대신 20세의 일제에게 프러포즈할 것을 고려하기까지 했던 아인슈타인은 결국 아픈 자신을 성심껏 간호했던 엘사와의 결혼을 추진하긴 했으나아니나다를까 엘사와의 결혼 직후 여비서와 열렬한 연애를 시작하는 등 끊임없이 이성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물질들이 돌아가는 이치에는 해박해 천재 물리학자로 명성을 떨쳤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삶과 자아에 대한 통찰은 미흡해 가족이나 배우자를 비롯 타인 특히 이성과 삶 및 감정을 나누고 함께 살아나가는 스킬에는 낙제점을 보였던 아인슈타인에 대해 'Einstein: His Life and Universe' 의 저자 Walter Isaacson 은 '물리학자의 이중성'을 언급하며
"다른 사람들의 감정적 필요에 직면했을 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과학적 객관성으로 후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단점투성이인 천재 물리학자에 대한 온건한 쉴드를 시도하기도 하는데...안타깝게도 여기까지만 봤을때는 필자에게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은 부모 형제에게도 또 배우자와 자식에게도 분리수거도 안되는 쓰레기같은 인성을 가진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I am sure you know that most men (as well as quite a number of women) are not monogamously endowed by nature,”
"나는 대부분의 남성(대부분의 여성뿐만 아니라)이 본성적으로 일부일처제를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러한연애행보에 나름의 정당성을 스스로 끊임없이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관련하여 나름의 지론을 설파하기까지 하는데 1953년 6월 경 그는 남편의 외도로 힘들어하고 있는 그의 여자사람친구에게 '속임수는 인간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라는 말과 함께 위와 같은 의견을 표명해, 자신의 '내츄럴 본natural born 자유연애추종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는 "관습과 환경이 개인을 방해한다면 본성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일종의 협박성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한다.
게다가 첫번째 아내였던 밀레바를 '해고할 수 없는 직원'이라고 칭하며 "단둘이 있기도 싫어 다른 방을 쓰고 있다."고 엘사에게 TMI를 난사하면서 잘보이려고 할땐 언제고 훗날자신은 두번째 아내인 엘사랑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고주장했던 그는1980년대 초 엘사 아인슈타인의 딸 마고가 자신의 사후 20년 이후에 공개될 것을 약속 받으며 기증한 편지 중 1915년에 씌여진것으로 보이는 어느 편지에서
엘자와 의붓딸 마고와 함께 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29 베를린Image Credit: TOP PHOTO
The attempts to force me into marriage come from my cousin’s parents and is mainly attributable to vanity, though moral prejudice, which is still very much alive in the old generation, plays a part.”
“나를 강제로 결혼시키려는 시도는 사촌의 부모(엘사의 부모)가 한 것이며, 물론 비록 구세대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도덕적 편견이 한몫을 했겠지만 나는 그들의 허영심이 이 결혼을 추진했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거만함이 함량초과 상태인 이른바 '자의식 과잉 상태' 를 보이며 전형적인 왕자병 말기 환자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에 그치지않고 남편이 배우자를 다른 방식으로 예의 바르게 대했다면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용인해야 한다며 "당신은 미소로 그의 죄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얼토당토않는 말을 늘어놓질 않나 좌우지간 대단했던 그는 남자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도록 강요할 때 그것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쓰라린 열매”라고 말하는 것도 모자라자신이 아내의 친구 중 한 명인 베를린 사교계의 명사 에미카노프스키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알게 된 그의 두 번째 부인 엘사에게
“ONE SHOULD DO WHAT ONE ENJOYS, AND WON’T HARM ANYONE ELSE.”
"사람은 자신이 즐기는 것을 해야 하며,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라는가히 뒷목을 잡게 만드는 주장을 펼치며 좌우지간 평생 크고 작은 각종 이슈들을 통해 그의 '내츄럴 본 자유연애추종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삶'을 살아간다.
심지어 그는 두 번째 부인인 엘사와 결혼한 후 열렬한 관계를 시작한 그의 비서인 베티 노이만Betty Neumann에게 그녀와 부인인 엘사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함께 큰 집에 살자는 제안을 했다가 기각당하고는 "그녀가 삼각 기하학의 어려움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한다"고 인정하기도 하는 등 실로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편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 편에선 수십 년 동안 이 편지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아인슈타인 연구 학자들은 이러한 편지 내용들의 대대적인 공개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그중 한 명인 하버드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인Gerald Holton 은 "당시 유럽 분위기상 아인슈타인의 행동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치곤 그다지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며 아인슈타인에 대한 그의 무한한 쉴드 스탠스를 다시 한 번 재확인시켜주기도 하였다.
왼쪽부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여동생 마야 아인슈타인, 정체불명의 여성,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정부 마가리타 코넨코바(image: albert.ias.edu )
허나 타임리스 보편적 가치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므로. 예나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카리스마 아닌 카리스마 할아버지가 있는 사람이어도 이성부분에 유독 약한 사람은 약하고 또 그런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웃오브안중인 바, 뭐 필자는 하버드도 뭣도 아니고 그냥 일개 아줌마일뿐이지만 위에 쉴드를 쳐주신 분이 적어도 하버드 물리학자정도 되시면 이 천재에게 좀 더 고차원적이고 신박한 쉴드를 쳐주셨어야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그 당시엔 뭐 잘나가는 사람들은 다들 그런 분위기였다." 라는 자칫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킬만한 지극히 1차원적인 쉴드가 아닌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그가 그렇게 화려한 여성 편력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대내외적 이유를 간략히 찝어 주셨으면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저 천재의 범상치 않은 행보를 보다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평생을 각지의 여성분들과 신나게 즐기며 살아온 그는 말년에는 이러한 본인의 이건 뭐 거장의 민낯이라기에도 민망하기 그지없는 단점에 대한 참회의 시간을 개인적으로 가지기 시작했는지급회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그 회심의 심경을 우리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Michele Besso가 죽은 후 그의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55년 3월 21일 프린스턴에서 아인슈타인이 Michele Besso의 아들 Vero와 딸Bice Rusconi에게 보낸 서신credit: Christie's
"But what I most admired in him as a man was the circumstance that he managed to live for many years not only in peace but in lasting consonance with a wife—an undertaking at which I twice rather shamefully failed.”
"그러나 내가 한 남자로서 그를 가장 존경했던 것은 나는 두번이나 크게 실패한 일인 '평생 한 여자와 평화롭게 잘살기'를 당신의 아버지는 성공했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실패'라는 표현을 쓰며 자신의 일련의연애 행보를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사실 이 편지의 내용을 읽기 전까지 필자에게 아인슈타인은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가지고 있어도 그렇지 사실 머리만 좋은 쓰레기일 뿐인데 어쩌다 포장이 잘되어 올타임 레전드로 숭상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당장 아이방에 있는 위인전집 중에서 아인슈타인편 만을 뽑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불끈불끈 들게하는 위인이긴 했다.
그런데 이 편지까지 보고나니 갑자기 (호기심이 왕성해서 궁금한 것도 많고 에너지도 솟구치는 중학생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인간 아인슈타인이 참 안쓰럽게 느껴지기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이렇게 평생 백년해로한 친구를 부러워하며 자책하지 않고 그냥 계속 "나는 내츄럴 본 자유연애추종자고 이게 만물의 법칙이야."하면서 끝까지 뻣뻣하게 살다가 갔으면 욕은 좀 했겠지만 이렇게까지 복잡미묘하고 이상한 기분이진 않을텐데...
이렇게 절친의 죽음 후에 "나는 실패한 것을 당신 아버지는 해냈다."며 자신의 평생의 연애 행보를 본인이 덤덤히 '실패'라고 규정한아인슈타인이 그 말 한마디로 본인이 평생을 고수하고 그 정당성을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노력한 것에 모자라 심지어 주변에 설파까지 해 온 그 남다른 소신을 한순간에 부정하면서 본인을 관련분야 실패자라고 스스로 인정하고그저 연기처럼 홀연히 떠나버리는 모습을 보니 필자는 급 '아인슈타인이 그간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친분은 없지만 어릴적부터 위인전을 비롯 각종 매체를 통해 지겹도록 봐온 분이라 그런지) 애잔한 마음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져 힌두교와 불교 교리의 이론적ㆍ사상적 토대를 이루며 동서양을 통틀어 자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철학적 사유들을 집대성한 경전으로 특히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철학 체계를 구성하는 데 이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도 유명한 '우파니샤드 <उपनिषद् Upaniṣad'(인도 산스크리트 어로 '스승에게 가까이 앉아 귓속말로 전해듣는 진리' 라는 뜻)에는 '자신의 정체성를 잊고 살아온 한 새끼 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파니샤드 시리즈 중 하나인Subala-upanishad는 Raikva(Subala)와 Prajapati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우주론, 형이상학, 심리학, 생리학 등을 다룬다.
우파니샤드는 힌두교 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Vedas의 Samhitas, Brahmanas, Aranyakas Upanishads 네 부분중 하나로 명상, 철학 의식 등을 다룬다
어느날 엄마사자가 사냥꾼에게 잡혀서 혼자 남은 새끼 사자를 염소떼가 데려다가 자기 새끼처럼 키웠다. 염소들에게 둘러싸여 자란 새끼 사자는 당연히 자신도 염소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으나 점차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마음속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사자의 본성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주변의 염소들은 "그런 행동은 염소의 것이 아니니 염소처럼 행동하라."며 불편해했고 사자는 그런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위해 나날이 강해지는 사자의 본성을 억누르고 염소인 것처럼 조신하게 행동하며 살게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덕 위에서 힘을 다해 포효하는거대한 사자가 나타났다. 염소들은 다 도망갔지만 왠지모를 끌림에 거대한 사자에게 다가갔던 새끼 사자는 "넌 누구냐?" 는 거대한 사자의 질문에 자신을 "염소"라고 소개한다.
이에 거대한 사자는 새끼 사자를 근처 연못으로 데려가 연못의 파도가 완전히 고요하고 모든 것이 고요해질 때까지 물가에서 기다렸고 거울같이 맑은 연못에 나란히 비친 두 사자의 모습을 보며 새끼 사자는 그제서야 "자신이 염소가 아닌 사자였음"을 깨닫고 크게 포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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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외로웠을 것이다.
본인을 당황시키는 질문을 던지니 자신이 원하는대로 따라오지 않는 학생이고쓸데없이 수업을 방해하는 학교 부적응자라며 낙인을 찍어버리기 일쑤였던 선생들 사이에서 ...
또 자신의 천재성을 시샘했던 동료들사이에서...
또한 그런 자신을 위로해주긴 했지만 지적인 대화는 불가능했던가족들 사이에서...
그리고 물론 지적인 대화는 가능했으나 그의 의외성을 띈 유아스러움을 이해해주고 품어주기엔 본디 강한 성격의 소유자에 게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어 자주 날카로웠을 첫째부인과의 사이에서 ...
마지막으로 첫째부인과는 달리 내게 편안함을 주긴 하지만 역시 그 편안함과 따뜻함 이상의 지적인 교류를 나누기엔한참 모자라던 두번째 부인 엘사와의 사이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부모Herman and Pauline와 형제들 및 친인척들
물론 사람은 누구나 다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다 조금씩은 부족한 사람들이고 또 그렇게 만들어졌기에 혼자살수없고 자웅동체가 아니며 고로 누구와 꼭 짝을 지어야만 자손을 만들고 대대로 번성하며 살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따라서 평소 장난기가 많은 성격을 지녔지만 비상한 두뇌 또한 탑재했던 아인슈타인과 지적인 유희를 즐기면서도 어린시절부터 상처가 많았던 그를 이해하고 서로를 정서적으로 어루만져주는 따뜻함 역시 갖춘 대상 즉 첫째부인인 밀레바와 둘째부인인 엘사를 적절히 섞은 정도의 여자를 아인슈타인은 평생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1951년 3월 14일 UPI(United Press International) 사진가 Arthur Sasse가 프린스턴 클럽에서 72번째 생일파티 후 나오는 아인슈타인을촬영한 것
그러나 어디 그런 사람 찾기가 쉬운가?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올타임 레전드 천재라며 그리도 추앙하는 것처럼 그런 그를 감당하고 생산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 역시 찾기 힘든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전 챕터에서 말했듯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본디 존재감이 커 큰 중력장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연인이라는 살을 부딪히고 사는 관계까지 가기가 쉽지 않으므로 결국 아인슈타인 스스로가 지덕체를 갖춘 인물로 자가발전을 해 좀 더 건강한 이성관을 갖추고 이성들과의 관계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어린 시절 부터 자신의 타고난 천재성이 자신을 주변인과 섞이지 못하게 해(언제나 인간의 무리에선 능력과 상관없이 소수는 다수에게 언제나 을乙이므로)끊임없이 그 사이에서 상처받고 좌절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그의 상처투성이인 자존감이 그에게 건강한 이성관을 생성하게 하는데 큰 저해요소로 작용했던 것은아닐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인슈타인의 삶이 마치 '인류의 과학 발전을 위해 한 인간이 "천재성"이라는 저주를 가지고 태어나 평생을 자신과는 뇌구조 자체가 다른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어떻게든 잘 어울려보려고 애를 쓰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인류에게 과학적인 업적만을 평생을 자신을 갈아넣어 남긴채 홀연히 떠나 심지어 죽어서도 신체의 일부분이 훼손된채 여기저기에 흩어지게 되는 너무도 딱한 스토리의 주인공'처럼 느껴져 급 가슴이 먹먹하기도 한데....
청소년기의 아인슈타인Image credit: learningtoytips.com
실제로 어떤 범죄 심리학자가 인터뷰에서 범죄자의 심리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자기도 놀란 부분이 "범죄자들 중 성장과정이 불행하지 않았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라고 인터뷰한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 물론 모든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정서적 결핍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지 아인슈타인과 범죄자들을 일직선상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필자가 그저 한명의 여자 그리고 아내의 입장에서 아인슈타인을 바라보았다면 그가 심히 똑똑은 했을지 몰라도 인성 부분에 있어선 실로 '천인공노할 쓰레기'인 것 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으나 또 한편으로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아인슈타인의 경우가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우파니샤드 우화에서 나온 새끼사자의 경우처럼 실제로 평범한 사람들속에서 사는 비범한 사람은 무리에서 방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그들에게 맞추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매순간순간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
물론 그나마 자족이 가능한 성인의 경우에는 덜할지 모르겠으나 아직 자립이 불가능해 모든 면에서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아이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매순간순간 자체가 도전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어린시절Photo courtesy The Albert Einstein Archives,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Israel
또한 어린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인정 받는 것이 그 시절 자존감 형성과 아이의 삶 정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곤 하는데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을 대놓고 비하하고 폄하하는 학교 선생님을 포함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린 아인슈타인은 부모에게도 말 못할 큰 좌절을 겪었을 것이며 결국 이러한 자신을 집에선 따뜻하게 위로는 해주었을지 모르겠으나 집을 벗어난 사회에서는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던 무력한 부모에 대해 어린 아인슈타인은 그가 집 밖 사회에서 받았던 고통만큼 크나큰 실망을 해 그 원망이 오래도록 남았을지도 모를 일인것이다.
Portrait of German-born US physicist and mathematician Albert Einstein, 1944. foto via Getty Images
그렇게 상처투성이인 자존감을 가지고 " 뭣같은 세상! 나는 그냥 비뚤어져버리겠다." 며 요란한 용문신을 가슴팍에장착한채 오토바이를 타고 부릉부릉 온동네를 돌아다니며 애들 돈을 뺏거나 면도칼을 씹지 않고 이렇게나 끊임없이 학업에 정진해 그 어린시절 가혹했던 사회의 편견에서 고군분투하는 자신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지 못했던 부모에게도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게 해주고 또 그의 자손들에게는 이렇게 그의 메모 한 조각까지도 다 경매에 내놓아 현금을 두둑하게 챙기게 해주고 나아가 남들과 다른 자신에게 그리도 매몰찾던 사회에도 그 인류들을 위한 과학계의 큰 족적을 남긴 그를.... 이쯤되면 격하게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러나 신통방통하게도 필자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대중은 이미 거대한 업적 만큼이나 많은 어두운 점을 가졌던 아인슈타인의 장점만을 잘 선별해 그들이 좋아하고 존경하고픈 아인슈타인의 모습을 재창조, 오랜 기간 애정을 듬뿍 주며 좋아해오고 있으니 이미 오래전 유명을 달리한 그에게 이것이 작은 위로라도 되려나...
Albert Einstein-Mileva Maric Love Letters를 포함한 아인슈타인 가족 서신 Einstein Family Correspondence Trust.
자 그럼 이제 다음장에서는 1996년 있었던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연애편지나 각종 과학메모 또 드로잉 등 아인슈타인관련 문서들의 경매 결과를 통해 그렇게 딱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천인공노할 면면도 탑재한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비롯 여러 유명인에 대해 애정을 표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하는 방식에 있어서 이 시대의 대중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특징들에 관해 알아보고 우리 주변에 소위 '영웅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허와 실에 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