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수능 감독을 1~2번 가봤다.
횟수를 정확하게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뇌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끔찍한 기억을 자체적으로 삭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면 수능을 보는 아이들이 없고, 인력이 항상 부족하기에 수능 시험장에 끌려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번에 일반 중학교로 근무지를 옮겼고, 오늘 문뜩 올해 수능 감독으로 내가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수능 감독이란, 마치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혀, 숨 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벌을 받는 것보다 더 좋지 않다. 왜냐면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는 고소를 받을 위험성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수능 감독의 기억은 끔찍한 기억들로 가득 차 있는데, 1~2번 감독을 한 것 치고 순탄하지 않았다.
내가 영어 감독에 들어갔을 때, 난 살짝 감기에 걸려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들숨과 날숨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콧물은 마치 나를 탈수시킬 것처럼 흘렀으나, 코를 푼다는 선택지는 나에게 없었다. 주머니 가득 콧물로 촉촉해진 휴지가 가득했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시련의 시작이었을 뿐, 국가의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는 듣기 평가 문제가 방송되는 와중에 재채기 신호가 오고야 만 것이다.
그 짧은 몇 초간 난 필사적으로 조상님과 함께 문제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문제와 문제 사이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고 재채기에 성공했다. 그날 난 재채기가 정신력으로 조절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수학시간에 있었다.
수능 시험은 생각보다 과목 간 준비 및 여유시간이 제법 있는데 바로 이날과 같은 상황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저경력으로 보조감독으로 주 감독과 함께 수학시험 감독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방송에 맞추어 포장된 시험지 봉투를 열고 배부하기 위하여 분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할게 되었다. 3장 있어야 할 시험지가 2장밖에 없다는 사실을....
수능시험에 이런 변수라니.. 제법 당황스러웠만, 나를 더 당황시킨 것은 주 감독 선생님의 반응이었다.
이미 그분은 선체로 기절을 하신 것처럼 보였다. 동공은 너무 흔들려서 탁구를 칠 수 있을 정도였고, 지시를 내려야 할 입술은 굳게 닫혀있었다.
일단 내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시험지의 페이지와 수량을 확인하고, 일단 뛰었다.
복도를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미친놈 처럼 시험본부가 어디인지 물어보며 달렸다.
(시험 감독 선생님들 역시 수능시험장은 처음 오기 때문이 학교의 세부적인 위치를 잘 모른다.)
이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달려 본 것은 초등 3학년 때 엄마가 보러 왔던 운동회 계주 이후 처음이었다.
정신없이 시험본부에 도착한 후, 시험지 관리 제대로 안 하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 체, 급한 대로 추가로 시험지를 받아 다시 뛰어 교실로 복귀했다.
다행히도 수학 시험은 큰 문제없이 종료되었고, 나는 가능하다면 다시는 수능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수능감독이 다가올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더불어 그날 이후 몇 년간 현장의 분위기는 더 좋지 않아 졌다.
꼭 수능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슈로 주변 동료들이 고소고소 총난타를 받는 것을 보면서, 과연 수능시험에서 컨닝하는 학생을 보아도 내가 그 학생을 잡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잘못 본 거라면?, 그 학생의 커닝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그 학생 외에 다른 학생이 시끄러워 시험에 손해를 봤다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처음 수능 감독 연수를 갔을 때 연수를 하신 분이 하신 말씀이 새롭게 다가온다.
-너무 적극적으로 부정행위자를 잡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분의 말에 현실이 투영된 얼마나 많은 조심스러움과, 우려와, 두려움이 담겨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 이 사회와 집단 속에서, 수능 시험에서 컨닝하는 학생을 잡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