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가질 수 있는 일자리는 다양하지만, 그중 교육청과 교육청 산하기관, 학교에 취업하는 '복지 일자리'가 있다.
오늘은 그 복지 일자리'에 근무했었던 학생이자 직장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보통 이러한 일자리는 생각보다 자리가 잘 나지 않고, 경쟁률도 제법 있는 편이다.
왜냐하면 몇 달의 인턴기간을 지나고 무기직으로 전환된다면, 많은 벌이는 아니더라도 고용이 안정된 상태로 꾸준히 일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수업체나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교직원들과 일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환경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리에 교육청 청소 인턴 공석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공고를 올렸는데 지원자가 한 명만 신청한 굉장히 신기하고 러키? 한 상황에 놓인 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의 첫인상은 굉장히 우람했다. 물론 고등학교 졸업반, 혹은 졸업을 한 친구들이 일자리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다들 성인이었으나, 성인의 키와 몸무게를 훨씬 넘나드는 덩치에 듬직함이 느껴졌다.
내가 면접에 들어가지 않아 학생과 소통해보지 않아서 지적 수준과, 업무 능력을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윗선의 판단으로 인턴으로 채용이 되었다. 그리고 학생의 지도 및 관리는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00 씨의 지적 수준이나 업무 능력은 기대했던 것에 비해요 훌륭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부분들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는데, 땀에 절어 며칠씩 갈아입지 않은 옷, 씻지 않아 떡진 머리와 얼굴, 업무시간에 중간중간 화장실로 사라져 화캉스를 즐기는 태도, 청소를 부탁했지만 잘 수행하지 못하는 업무 능력까지..
나는 이 직장이 얼마나 좋은 기회이고 원하는 학생들이 많은지 알고 있기에,
00 씨를 지도하면서 느낀 스트레스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인생의 기회가 왔지만 기회인 줄 모르는 학생을 바라볼 때의 아쉬움이랄까.
시간이 몇 달 흘러 00 씨의 무기직 채용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지금까지의 복무 태도와 능력을 체크한 자료를 앞에 두고 협의회가 실시되었다.
객관적인 모든 지표는 인턴계약 종료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만 장학사님께서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나 희망을 말씀하셨지만,
워낙 이 일자리를 희망하는 아이들이 많고 예민한 자리인 만큼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추후 알게 된 이야기지만 00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할머니와 시내에서 리어카를 끌며 폐지나 분리수거 용품을 주우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장학사님 역시 이러한 사정을 아시고 인턴 면접 때 약간의 추가 점수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시내를 운전하다가 리어카를 끌고 있는 00 씨와 할머니를 지나치게 되었다.
이전과 똑같이 땀에 절어 며칠은 입은 듯 한 티셔츠와 떡진 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00 씨는 더위와 싸워가며 열심히 리어카를 밀고 있었다.
내가 내린 선택이 과연 맞는 선택이었을까? 너무 냉정하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까?
내 자동차가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제법 많은 씁쓸함이 나를 스쳐지나고 말았다.